222-판이 개판이면, 뒤엎으면 그만(7)
“허허….”
아연실색하며 경악하는 것은 설기만이 아닌, 여기 자리한 모두가 그러했다.
뭐지, 대체 자신들은 무엇을 보는 거지…?
‘교주가, [그 교주]가 저러다니, 대체 뭔….’
교주가 어릴 적부터 알아온 지기(知己)와 진배없는 지괴는 소리 없는 경악을 내뱉었다.
백천 주교 또한 남들에게 도도하고 고귀한 자라 불리지만. 교주가 어릴 적에는 현재의 주교들 전부가 하찮아 보일 정도로 오만하고도 고고(孤高)했으니…!
그야말로 타고나기를 지배자이자 고귀했던 이가 다름 아닌 교주였으며. 옆에 기기련이 이상한 괴음을 내며 현기증을 선보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었음이다.
“으, 으에에?”
“기련아, 정신 차리거라.”
“…에에?”
“맛이 갔구나, 허허.”
아마 기기련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지괴와는 다른 이유이리라.
그녀에겐 손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던 품을 처음 만난 타인에게 기꺼이 양보하는 것이니, 어쩌면 그녀의 속에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나, 나도 허락받지 못한 것을, 처, 처음 만난 이에게 어찌…!”
질시(嫉視), 혹은 애증(愛憎). 또한 갈증(渴症)과 갈망(渴望).
그녀 자신의 신앙심(信仰心)은 오로지 교주 한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지만. 이는 그릇된 신앙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릇된 욕망과 신앙은 기어이 불온한 욕망을 표출하며 줄기찬 살기를 뿜어내려….
──!
털썩…!
…쩌렁쩌렁한 포효가 기기련 단 한 명에게 집중되어 쏘아졌고. 기기련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혼절했다.
“교주?”
“그녀의 충심(忠心)은 높게 사고 있으나, 지금은 도움이 되질 않는군. 지괴, 그대가 다른 곳에 던져놓고 오도록.”
“…허허, 다 늙은 노인을 써먹으려고 하는 심보는 어디서 배운 것이오, 교주.”
“그대에게서.”
“……한 방 먹었구먼.”
지괴는 살며시 교주의 시선을 피했다.
1년 남짓에 불과했으나, 어린 시절 교주에게 일탈행위(逸脫行爲)를 가르친 경력이 있는 노인은 유구무언 한 법이었으니.
* * *
‘뭐야 이게?’
방금 전까지 여명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던 기분 나쁜 아줌마는 갑자기 혼자 픽 하고 쓰러지고. 지괴란 영감님은 그녀를 어디론가 던져버리러 떠나고.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련의 과정은 혼란스럽기까지 했으며. 여명은 눈을 연달아 끔뻑였다.
그때.
“─그녀가 그대에게 불온한 짓을 하려 했다 들었다. 이에 대해 사죄하지.”
아….
덩치에 걸맞은 웅웅 울리는 음성으로 천마가 입을 열었다.
기기련과 여명 사이에 있었던 일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이 개, 아니 사람 왜 이렇게 정중해?’
여명은 마교의 수장이라기에 한없이 오만하고도 지독한 외골수라 여겼다.
실제로 설기의 설명에서도 그의 이미지는 오만한 폭군(暴君)과 같았으니.
한데 실제로 본 천마는 그러지 않았다. 한없이 진중했으며 늠름했다.
또한 제 수하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참된 리더와 마찬가지였으니…!
“…야, 백설기. 이거 뭐야? 네가 말한 거랑 다르게 되게 멋있는 분인데?”
“…….”
“…설기야?”
“…왈….”
‘자신은 저런 인간 모른다….’며 멍하니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첫 인사부터 무언가 꼬인 상태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천마와 여명은 그다지 어색함을 느끼지 않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원래는 설기가 천마와 얘기하러 온 것이었는데, 어째 여명이 더 입을 많이 움직이는 상황.
뭐, 그래도.
“-그런 식으로 약 1년 동안 설기를 알게 됐는데.”
“─음.”
“아, 한 번은….”
“으음.”
언뜻 보면 천마가 지루한 기색을 참으며 억지로 호응해주는 것 같지만. 이는 천마가 먼저 요청한 대화였다.
-어떻게 알게 된 것이지?
딱 이 물음뿐이었지만. 오늘 따라 설기가 입이 무거우니 여명이 대신 해주는 것이었으며. 무뚝뚝하게 응대하는 것 같아도 천마는 그의 이야기를 집중하며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뭐, 대화 주제가 없어서 어색해지는 것보다, 주제 하나를 높은 분이 정해주면 여명이야 편했고. 무엇보다….
‘난 또 왜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지?’
평소에도 뻣뻣하진 않아도 유연하진 않던 입이 목줄 풀린 개처럼 날뛰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천마, 저 거대한 붉은 사모예드 닮은 개를 만나는 건 분명 처음일 텐데, 어느 순간 친숙함을 느끼는 자신도. 대놓고 친숙함을 드러내는 저 붉은 개도.
모든 게 이상한 일이다.
‘설기를 낳아준 분이라 그런가?’
어쩌면 설기의 부모이기에 느끼는 친숙함이 아닐까 싶다.
왜 제 반려견이 낳은 자식을 제 손자처럼 느끼는 반려인들처럼, 자신 또한 반려견의 부모를 보고 친근함을 느끼는 것이….
“백룡(白龍), 그자를 만났다고 들었다.”
그러한 생각의 흐름을 끊듯 천마가 처음으로 그에게 되묻는 익숙한 이름을 꺼내었다.
“아아, 그 양반을 아세요?”
“안다. 나와도 몇 번이나 싸워보았으며. 어느 정도 친분이 있지.”
“친분이요?”
“그를 키운 영수와 연(緣)이 있다, 그 정도만 알아두어도 된다.”
“헤에….”
신기한 인연일세.
설마 그 특이한 양반과도 인연이 있을 줄이야, 이리 들으니 이 드넓다 못해 현대의 육대주(六大洲) 모두를 합친 면적보다 넓다는 중원삼국조차 무언가 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옆 동네만 와도 이리 지인끼리 엮여 있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옆 동네 수준이 아니긴 하네.’
그렇게 세상의 좁다란 말이 어떤 세상이건 통용된다 싶을 때쯤, 천마는.
“혹시, 그에게 무슨 얘기를 듣지 못하였나.”
“…얘기?”
“으음, 그 모습을 보건데, 아무것도 듣지 못한 모양이군. 그럼 되었다.”
“??”
…나쁜 행위야 참으로 많지만. 이렇게 뒷얘기를 하려다 말려는 행위가 제일 나쁜 행위이거늘.
“내가 나쁜가?”
“…아.”
맞다, 마음 읽을 줄 알았지, 참.
“일부러 얘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고맙군.”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천마는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시종일관 그를 배려해주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토록 호의를 베풀어주고 있는데, 자신이 떼를 쓴다는 것도 웃긴 일일 터.
‘생각해 보니 이상하네? 나 원래 이런 놈 아닌데?’
처음 만난, 그것도 황족 지위마저 가진 권력자 앞에서 왜 이토록 자신은 대화를 잘 나누는 것이고. 친근함마저 느끼는 것일까.
원래 자신은 누군가와 친해지는 건 잘해도, 그렇다고 억지를 부리는 놈은 아닌데, 이상하게 천마의 앞에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여명은 이것이 못내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조, 조금 이상한 소리 같긴 한데…. 혹시 우리들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까?”
“…….”
“…큼큼.”
여명은 제가 말하고도 무안하고도 해괴한 물음이었다며 헛기침을 내었다.
작업 거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망신스러운 질문인지 원.
역시 괜한 것을 물-.
“─있다. 만난 적이.”
“!!?”
“그러나, 그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와 본인의 만남은 오직 본인만이 간직하고 있을 기억이니…….”
“…….”
“그러니, 애써 떠올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
여명은 저러한 충고 어린 답변에도 무어라 답변하지 않고 침묵했다.
천마의 말이 강경해서도, 그렇다고 이상함을 느껴서도 아니었다.
그저….
‘왜 저리 슬퍼 보여?’
저리 말하는 천마가 일순 슬퍼 보였다는 것은 착각일까.
여명은 못내 신경 쓰이면서도 차마 물음을 잇지 못하였다.
더 이상의 질문을 그가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며.
………
………
………
“음? 후배 나왔나?”
“아, 어르신.”
석문 밖으로 나오니 어찌 된 일인지 지괴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이나 천마와 대화를 나누어도 돌아오지 않기에 무슨 일이 있나 싶었거늘, 왜 석문 앞에 있는 걸까.
“흘흘, 우리 교주가 자네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싶은 눈치인지라,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네. 어떻게, 대화는 잘했는가?”
“그냥 어느 정도는….”
“다행이구먼. 한데 소교주가 안 보이는구나.”
“설기는 아직 대화할 게 남았다고 하네요….”
“그렇구먼.”
지괴는 확실히 부녀 사이에 쌓인 얘기가 많긴 할 것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배려 차원으로 나온 겐가? 기특한고.”
“하하, 간단한 예의죠. 그보다 그 여자는 어디 있나요?”
“기련이라면 반나절간 움직이지 못할 걸세.”
“그렇게 강한 공격을 받은 건가요?”
“아니. 만년한철과 천잠사 등으로 꽁꽁 묶어두고 왔다네. 아무리 절대고수라 할지라도 반나절은 잡아두겠지.”
“…….”
여명은 그 적대감 심한 여자가 조금은 불쌍해지려고 했으나, 자업자득이다 싶었다.
그러니 심성을 곱게 써야지.
“표정만 보아도 알겠구먼. 그 애를 너무 미워하지 말게나. 그저 충성심이 심할 뿐이니.”
“충성심이라…, 제가 봤을 땐 그릇된 신앙심일 뿐인데 말이죠.”
“호오, 말하는 것을 보니 소교주에게 들은 모양이군.”
“네에, 어느 정도는.”
여명은 볼을 긁적였다.
그저께 설기에 들은 가출의 이유에는 흑원신교의 존재의의 등도 있었는데, 그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대 교주란 존재는 무조건 흑원에게 도전을 해야 한다죠? 흑원을, 자신들의 신(神)을 죽이기 위해서.”
신을, 신수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종교 집단이라니….
처음 이 얘기를 듣고 여명은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농담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신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종교가 성립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흘흘, 종교란 그런 것일세. 말이 되지 않는 것을 이루기 위해 불가능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며 한없이 잔인해지지.”
후우.
지괴의 손에는 어느 순간 곰방대가 있었다.
멋스러운 곰방대였고. 조심스레 불을 붙이려고 하더니.
“아, 혹시 싫어하나?”
“괜찮아요. 다만, 냄새는 안 나게.”
“…어려운 부탁이구먼.”
우웅.
곰방대 하나 피고자 기어이 기환술마저 쓰며 연기를 모아두는 재주를 선보인 지괴는 잠시 연기를 머금고 뱉어내기를 반복하며 점차 심유해진 눈으로 그를 향해 말문을 이었다.
“그래, 소교주에게 어디까지 들었나?”
“대강 중요한 것만 들었어요. 자세한 교리나 역사는 저한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니 그냥 무시했고요.”
“허허, 그걸 들어야 우리의 종교관과 맹목적인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거늘, 어떻게 지금이라도 들어보겠나?”
“아니요.”
“…단호하구먼.”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니까.”
여명은 같은 말을 반복하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흑원신교가 가진 교리나 역사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흑원신교란 집단이 설기에게 큰 괴로움을 얹으려 한다는 점만이 그에게 중요할 뿐이지.
“‘인조영수(人造靈獸)’라니…. 저런 애한테 생체실험은 너무하잖아요.”
그들의 신념이란 이름에 변명과 광기(狂氣)를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이해해주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tmi후기.
-원래는 마교의 자세한 역사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내용이 늘어질 것 같아 빼기로 했고. 궁금하다는 댓글이 있다면 tmi에 적어놓기로 하겠다.
-이제 알 독자님들은 다 알 테지만. 설기는 인간이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개조당하고. 여러 일을 통해 인조인견(人造人犬)이 된 상태다.
-개념을 설명하자면 드래곤볼에서 나오는 17,18호를 떠올리면 된다.
-인간은 인간이지만, 개조당한 상태다. 다만 고통은 없다.
-스포를 하자면……(스포를 원하지 않는 독자님께선 밑을 보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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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의 최종목적을 이해하기 쉽도록 예시를 들어 설명하자면, 드래곤볼의 악당인 완전체 셀을 만드는 것이 마교의 최종목적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문제는 흑원과 같은 신수는 비루스 수준이란 걸 모르고 마교는 나대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