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26화 (226/261)

226-판이 개판이면, 뒤엎으면 그만(11)

후루룩.

“음, 이거 맛있구려. 피로가 절로 풀리는 맛이 아닐 수 없어, 허허.”

수제 두유(豆乳)는 고소했다.

그냥 고소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감칠맛을 냈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 좋은 풍미가 입안을 덮으니 그동안 쌓인 심신의 피로가 단박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자운은 ‘한데 평소보다 다섯 배는 맛있는 것 같은데?’라는 의문을 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홀린 사람처럼 계속 두유를 마시려 했는데….

“말코야, 그래서 언제 정파에서 마도로 소속을 옮겼냐?”

“…무슨 헛소리인가.”

“헛소리는. 말코 지금 네 모습이 어떤지는 아냐.”

“내 모습이 어떻다는 건가.”

자신은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것처럼 당당한 자운이었고. 천리후는 자신보다 더 뻔뻔한 놈이라며 그를 욕하며 말을 이었다.

“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이 딱 봐도 혈귀(血鬼) 그 자체인데, 소속을 옮긴 게 아니라고? 농담이 많이 늘었구나.”

“…아.”

그제야 자운은 제 꼴이 어떤지 짐작하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는 듯, 혹은 실수다 싶은 표정.

자운은 자기 맞은편에 있는 누군가의 팔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본도가 실수했군.”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운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여명과 다른 이들에게 사죄의 눈길을 보냈고. 여명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안색이 창백해 있긴 했지만.

“어르신, 제가 실제로 사람 팔이 잘린 건 처음 봐서 그러는데, 좀 숨겨주면 안 될까요? 조금 보기가….”

“크흠, 미안하구려, 이 사부.”

다른 무림인들이야 사지 분열된 육편 등을 흔하게 보았을 테지만. 이 사부는 일반인이 아니던가.

배려심이 부족했다며 쑥스러워하는 자운이었다.

‘이게 쑥스러운 건가?’

여명은 자운의 반응이 미묘하다 싶어 헛웃음을 내었다.

‘앞으로 공포 영화 봐도 안 무섭겠다.’

영화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더니, 이토록 현실에서 생상하게 보는 사람의 잘린 팔은 가히 엽기적이다 못해 괴랄한 것이었다.

만약 여명 본인이 심약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광경을 견디지 못하고 구역질이 나거나 현기증이 났을지도 모를 일.

영화에서 시체 보고 기절하는 사람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 고증이 확실하다는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깨달으며 연거푸 물을 마시고 있을 때, 자운이 여전히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음, 이 사부. 한데 본도가 이 팔을 치울 수는 없을 것 같네.”

그래, 아직 더 미안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처럼.

“예에?”

여명은 자운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갸우뚱거렸고. 설기와 삼존 등이 자운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월!”

“말코 너 미쳤어! 보여줄 게 따로 있지!”

“간만에 살풀이 좀 하고 싶나 보지?”

“천산의 규율을 잊었군.”

천산의 절대규율. 이 사부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처단한다.

천산의 모든 고수에게 적대시 당한다는 의미였고. 저 규율을 어기는 건 웬만히 어리석은 이가 아니곤 없을 거라 여겼거늘.

“한데 설마 자네가 규율을 가장 먼저 어기는 어리석은 이라곤 생각지도 못했군.”

빠각!

금천후는 단단한 무쇠로 만들어졌을 컵을 종이컵처럼 구겼다.

네 명의 고수들, 그것도 정천팔걸과 육존자라 불리는 위대한 고수들이 내뿜는 강렬한 기세가 자운을 압박했고. 그야말로 일촉즉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본도는 어쩌자고 그런 놈을 사제로 삼아서 이런 푸대접을 받는지, 원.”

왠지 억울해 보이는 낯빛으로 한숨을 쉬고는 누군가의 팔을 톡톡 건드렸다.

“이제 시작해라, 본도가 죽을 판이니.”

-……….

“진짜 잘라주랴?”

-움찔!

자운의 협박과도 같은 말이 떨어지자 잘린 팔이 꿈틀거렸다.

자운을 노려보던 이들조차 당황하며 잘려 나간 팔이 움직이는 기행에 기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뭐, 뭐야 저거?”

무림의 고수들이 이토록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허공섭물로 팔을 공중으로 띄우는 것이야 그들도 가능한 바이지만. 잘려 나간 팔을 공중에 띄우는 것과….

꿈틀, 꿈틀.

저토록 살아있는 생물처럼 생생하게 움직이게 하는 건 또 다른 말이었으니까.

가히 웬만한 잔인한 광경은 모두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림인들조차 속이 안 좋아지는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

한데 무림인들과 달리 여명을 비롯한 몇몇만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저건….”

“월.”

“크릉.”

“컹!”

사마윤윤을 비롯한 강아지 삼총사 등등, 기환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들은 저 팔이 마냥 잘려나간 팔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분명 잘려나간 팔이 맞지만,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그래, 저 팔은 여전히 본체와 연결된 팔이었음이다.

…이상한 말인 걸 알지만.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기환술의 경지가 높은 여명의 눈에는 그러한 본체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따름이었다.

“자허 영감님?”

여명은 제 눈에 보이는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고. 누군가의, 아니 자허의 팔은 그를 향해.

흐뭇!

…유쾌해하는 것만 같았다.

“……저 양반은 왜 혼자 네크로맨서를 하고 있는 거야?”

아, 무협이니 강시술사라고 해야 하나?

여명은 자신이 익힌 기환술이 혹시 흑마법이 아닐까 하고 약간 걱정마저 되었다.

* * *

“일단, 그 팔을 자른 건 본도가 맞네.”

자운은 범죄를 이실직고하듯 말문을 열었다.

“허나 본도가 사제의 팔을 자른 이유는 사제가 자르길 원해서였다네. 그러니 오해는 말아주게.”

“…으음.”

대체 어느 부분에서 태클을 걸어야 하는 걸까?

자기 팔을 잘라 달라 요청한 자허? 아니면 그러한 팔을 망설이지 않고 잘라내어 여기까지 가져온 자운?

어느 쪽이건.

‘이상한 건 변함이 없네.’

여명은 자운 이 어르신도 겉보기엔 점잖긴 하지만. 속내는 누구보다 무림인다운 양반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이 팔을 여기까지 가져온 이유는 보다시피.”

사사사삭!

“의사소통을 원해서라고 말하더구려.”

여명이 늘 가지고 다니는 공책과 만년필 등을 쥐여주니 자허의 팔은 물 만난 고기처럼 거침없이 글을 써갔다.

하고 싶은 얘기를 써가듯이.

“그, 그럼, 제가 만나러 가지 않아서….”

천마를 만나느라 진이 다 빠졌던지라 자허를 만나러 가지 않았던 여명이었고. 그 때문에 저하가 자기 팔을 잘라 갖다 주었다는 대목에 여명은 눈을 부릅떴다.

자기 때문에 이 사달이 났나 싶어.

“허허, 그럴 리가. 사제를 만나러 가는 것은 이 사부 개인의 선택일뿐더러. 아귀굴은 이 사부가 갈 곳이 아니란 것이 본도의 생각이었네. 만약 이 사부가 아귀굴까지 간다고 했다면 본도가 말렸을 것이야.”

“…….”

“그리고 사제는 본도의 뜻을 꺾지 못했고. 이런 과격한 방식을 쓴 것이니, 따지고 보면 본도의 죄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러니 이 사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구려. 있다면 본도와 본도의 어리석은 사제에게 죄가 있는 것이지.”

“으음.”

저를 위로해주려 이리 말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자운의 말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고. 여명은 미묘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가 됐건 자기 때문에 자른 건 아니란 거니….

‘아, 아닌가? 이거 나 때문에 자른 거 맞지 않아?’

툭툭,

상황을 되돌아보니 마냥 무관계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기 직전, 자허의 팔이 만년필을 툭툭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 여전하구나. 이 정도는 얼마든지 다시 붙일 수 있으니 걱정일랑 말거라. 하여튼 팔 하나 가지고 호들갑은.]

“…호들갑을 안 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참고로 팔뿐이라 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말을 걸 거면 손등에 손을 얹고 말해라.]

“…….”

진기명기도 아니고.

‘마교 양반들도 이상하긴 한데, 자허 이 영감님이 제일 이상해.’

왜 풍운괴선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다며 여명이 어처구니없어할 때, 자허가 글을 이었다.

[어쨌든 장문사형이 호들갑을 떨면서 데리고 올 수가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팔만 보냈다. 그래도 이거 조금 아프니까 장문사형한테 빨리 팔 좀 갖다 달라고 말 좀 해줘.]

“…아프긴 한가 보네요.”

[그럼 안 아플까.]

팔로만 의사소통이 되는 특이한 상황에서 여명은 이렇게까지 할 것도 없이 그냥 아귀굴로 직접 가면 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자운은 단호했다.

“참으시오 이 사부. 아귀굴을 내려가니 지독한 시독(屍毒)도 시독이지만, 아귀들이 내뿜는 악의 어린 기운이 어마어마하더구려. 괜히 내려갔다가 이 사부 몸에 피해라도 생기면 본도는-.”

“우리 손에 죽겠지.”

“마찬가지로 곤륜도.”

“-들으셨을 테니 알겠구려. 본도와 곤륜을 가엽게 생각해주신다면 제발 그 사제 놈을 만나러 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려, 허허….”

“……네에.”

못난 사고뭉치 사제 하나 때문에 오늘따라 유난히 기를 못 펴는 자운이었고. 여명은 자운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강하게 키우려면 좀 험한 곳도 와봐야….]

“넌 닥치거라, 이놈아!”

[……왜 음성이 들리지?]

자운과 자허의 대화는 충분히 재밌는 것이었지만. 언제까지고 들을 수 없는 노릇이었고. 여명은 자허의 팔을 툭 치며 물었다.

“그보다 저를 왜 그렇게 원하시는 거예요? 원했던 음식은 어르신 통해서 줬잖아요. 혹시 아직도 고집부리고 계세요?”

애초에 자허가 아귀굴이라 불리는 마교의 교도소에 갇힌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가 마교의 보물 중 하나인 ‘성화’를 훔쳤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 때문에 잡힌 주제에 여전히 성화를 돌려주지 않는다고 하니, 참작여지도 없는 바였다.

“솔직히 영감님 잘못이 10할이니까, 그냥 성화 좀 돌려줘요. 언제까지 민폐를 끼칠 거예요.”

[스승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스승 아니라고 한 사람은 영감이었습니다만.”

[…이놈 언제 이렇게 까칠해졌지?]

작년에 만났을 때보다 강단 있어진 여명에게 놀라는 자허의 떨떠름함을 무시하며 여명은 다시금 강건하게 말했다.

“다시금 말하지만 영감님이 한 짓은 절도예요, 절도. 마교 사람들 적당히 좀 괴롭히고 돌려줘요.”

그런 여명의 말에 감동한 것은 마교의 사람들이었다.

“식선…!”

“멋진 분이네요.”

“크릉!”

사마윤윤과 갈지윤 같은 이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여명의 발언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공공의 적 앞에선 마교건 정파가 상관없이 화합된다고 했던가, 자허는 아주 멋진 공공의 적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었다.

[나만 나쁜 놈이구먼, 쳇!]

“…삐치지 마시고요. 얼른 답이나 해주세요. 성화 안 돌려줄 거예요?”

[…….]

“영감님?”

제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기분이 상한 걸까.

답변이 없는 자허였고. 여명은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이 양반이 겨우 이런 거에 삐진다고?’

자신이 아는 자허는 그 정도로 섬세한 양반이 아니었다.

욕을 아무리 먹더라도 오히려 사탕 먹듯 즐기는 양반이 다름 아닌 자허였으니까.

그러니 이 양반이 답변이 없는 이유는….

“영감님,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요.”

[…….]

“그 성화라는 거, 무사하긴 하죠?”

[……커험.]

“…….”

이 양반이…!?

여명은 순간 깨우쳤다.

이 양반, 돌려주고 싶지 않아서 안 돌려주는 게 아니라….

‘없네.’

여명의 안색은 창백해져갔다.

………

………

쿠르릉!

아미산.

신비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거목들로 이루어진 신목이자. 황룡국을 넘어 삼국 내에서도 가장 거대한 산이라 불리는 천혜의 낙원.

한데 그런 천혜의 낙원이 오늘 따라 소란스러웠다.

아미파의 제자들은 술렁이는 아마산의 하늘을, 먹구름을 보며 대경실색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아미산 위에 웬 먹구름이…?”

아미파가 위치한 곳은 아미산의 중간자락이지만. 중간만 되어도 구름을 뚫을 정도로 높은 위치였고. 오로지 맑은 하늘만 보여야 하는 것이 정상적일 텐데, 먹구름이 있는 것이었다.

아미파의 제자들이 놀라 까무러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먹구름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니 아찔하기까지 한 노릇.

아미파의 제자들은 난생처음 겪는 기상이변에 마냥 넋이 나가고 말았다.

쿠르릉!!

“…조사(祖師)께, 혹 무슨 일이 생기신 것인가?”

다만 아미파의 문주이자, 천하에서 지혜롭기로 손꼽히는 노인은 먹구름에서 어떠한 감정을 느꼈다.

백미선자, 그녀에게 있어 왜인지 저러한 천재지변과 같은 먹구름과 벼락 소리 등이.

“으음, 불만이라도 있으신 겐가?”

아미산의 조사, 백모신원께서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쿠르르릉!

tmi후기.

-참고로 아미산과 백모신원의 에피소드는 82화부터 등장했다.

-자허가 현재 쓰는 기술은 기환술이 아니라, 진짜배기 사술(邪術)이다.

-워낙 오랜 세월을 살아온지라, 여러 기술을 가지고 있고. 사령술도 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자허가 타락한다면 시체 군단을 일으켜서 무림판 오버로드가 탄생하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사술이나 주술은 기환술과 별개의 재능이며. 여명은 쓰지 못한다.

-세계관 설정상 자허는 삼국에서 화력(火力)만으로 따지면 비공식적으로 4위 안에 든다.(물론 인류 내에서)

-1위는 천마이고. 2위는 만박자, 3위는 무봉일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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