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판이 개판이면, 뒤엎으면 그만(15)
“반도단(蟠桃丹)을 주마.”
자허는 여명의 발언에 기꺼이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며 선선히 자신이 지불할 대가를 입에 담았다.
그가 가진 것 중 가장 값어치가 큰 것으로.
“반도단?”
여명은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나, 다른 이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하게 경악을 보였다.
“반도!? 그게 실존했다고…!”
“곤륜의 연단술은 이미 소실된 것이 아니었던가.”
“자운…?”
“보, 본도도 몰랐다네.”
당혹스러워하는 그들은 반도단의 이름이 나오며 당혹감만을 비추었고. 여명은 의문 섞인 시선으로 북궁린을 보았다.
그녀라면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은 것이었고. 북궁린은 기대에 보답하듯 다른 이들보다 비교적 냉정한 자세로 답변을 주었다.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입니다만. 한때 곤륜의 연단술은 삼국에서도 알아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400년 전에 큰 화재(火災)로 연단술의 비기를 모두 잃고. 곤륜연단술의 맥은 끊겼다고 전해졌습니다.”
“400년이라, 엄청나게 오래된 얘기구나.”
“예에, 한데도 곤륜연단술에 대한 얘기가 전해지는 것은 그만큼 곤륜의 연단술이 대단하다는 증거이고. 그 전설은 여전히 화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중 곤륜연단술의 상징과 다름없던 비약이 다름 아닌 반도단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불로단, 혹은 왕모단(王母丹)이라고 불리지요.”
“왕모? 왕모면….”
“예에, 맞습니다. 왕모낭랑(王母娘娘), 즉 서왕모를 일컫는 말입니다.”
“…….”
삼국에서 아무리 삼신수가 존재하여 기존의 종교들이 힘을 잃었다고 한들, 여전히 도교와 불교 등은 중원삼국에 깊게 뿌리박혀 있었다.
그리고 서왕모는 도교의 정점에 위치한 최상위 신 중 하나였으며. 그런 여신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천인공노할 불경이 아닐 수 없을 터인데, 이를 다른 곳도 아니고 도교신앙의 시조라 불리는 곤륜에서 붙였다는 것은 즉.
“반도단이 그만큼 대단하단 의미지요.”
“…이제 보니 반도가 그 반도구나.”
과거 서유기에도 등장하는 서왕모의 복숭아.
이러한 여명의 생각을 꿰뚫어 보듯 북궁린이 말을 이었다.
“반도단의 위명이 지금도 자자한 이유는 하나만 먹어도 수명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만 먹어도 영생(永生)을 누릴 수 있다고 하니….”
“-그거 와전된 거야. 영생은 무슨, 그냥 좀 더 오래 살고 늙지 않는 것밖에 없는데, 뭐.”
“……예에?”
“기껏해야 수명이 한 30년 더 늘려나? 대신 30년 동안 늙지 않으니 불로(不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지. 그래도 거기까지야. 목이 베이거나 심장이 터지기라도 하면 죽거든. 즉, 불로는 돼도 불사는 안 되더라 이 말이지. 하여튼 장단점이 확실해서 문제지, 원.”
“…….”
…북궁린은 할 말을 잃었다.
저게 지금.
‘불만을 내뱉는 겁니까, 아니면 자랑하는 겁니까?’
장단점은 고사하고 장점밖에 안 들리는 건 아마 그녀의 착각이 아니리라.
* * *
“우리 스승님, 그러니까 태상진인은 곤륜의 무인이기도 했지만. 연단술의 천재이기도 했지. 과거의 기록과 곤륜에 남아 있는 영약을 모두 분해하고 조사하여 곤륜연단술의 8할가량을 복원시켰으니. 그리고 난 그 전진을 이어 나머지 2할을 가까스로 부활시킨 것뿐이지.”
자허가 드물게 겸손한 발언을 보였다.
“하긴 태상진인이라면야.”
“저 노인네를 그나마 사람 구실 하게 만든 양반이니.”
“삼국, 아니 천하에서 보기 드문 호인이었지.”
삼존조차 저리 평가하는 것을 보니, 여러모로 대단한 양반이 맞을 터.
“이것들이…!”
“됐고. 그 반도단이란 걸 저한테 준다는 거죠?”
“…그래, 아마 그것이라면 충분히 대가를 치르고도 거스름돈이 남을 게다.”
“흐음, 얘기만 들어보면 엄청나게 귀한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귀한 거 맞다. 재료는 별것 없지만.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기본적으로 50년은 걸리는 것이니까. 대신 그만한 효능을 자랑하지.”
“수명이 는다고 했지요….”
“흘흘, 그런 자잘한 효능만 있으면 어찌 서왕모의 이름을 붙였을까.”
반도단의 진정한 가치는 젊음을 늘릴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만병통치(萬病通治)의 약이 이것이니까.”
“네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지만. 자허는 덤덤히 설명을 이어갈 따름이었다.
그가 잘못 들은 게 아니란 걸 재확인시켜주듯.
“만병불침(萬病不侵)의 경지에 오르는 거다. 앞으로 살면서 그 어떠한 병도 너를 괴롭힐 수 없을 게야.”
“…암, 그러니까 반위나 구안와사 같은 것도, 그럼…?”
“그따위 병마가 무슨 문제라고. 다시금 말하지만 그 어떤 병마(病魔)도 너의 몸을 침범할 수 없을 것이다.”
“…….”
여명은 그제야 입을 떡 벌렸다.
저 말은 그러니까.
‘세계적인 대재벌이건 대통령이건 누구 하나 없이 가지고 싶어 미칠 약을 준다는 거잖아?’
의학과 과학 등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직 질병(疾病)이란 놈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21세기 현대 인류였다.
한데 지금. 그 질병을 완전 극복하게 해줄지도 모르는 약이 등장한 것과 다름없으니, 이 얼마나 대경실색할 일인가.
‘값어치를 매길 수가 없겠다, 이건.’
제약회사가 저 약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성분을 알기 위해 밤낮을 안 가리고 매달릴 게 분명하다.
실존하는 만병통치약이다.
저걸 조사하여 어떤 약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감히 범인에 불과한 여명이 어찌 예상하랴.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저 약의 존재가 밝혀지는 순간 여명의 인생은 하드모드를 넘어 헬모드로 넘어가리란 것이다.
…뭐, 그렇다 한들.
“진짜 가지고 있긴 하죠?”
“흘흘, 그래도 가지고 싶긴 한가 보구나.”
“큼큼.”
인간인 이상,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물건이었다.
물론.
“우리 영감님 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참고로 이거 상당히 귀한 거다만, 그걸 남한테 주겠다고?”
“반대로 묻겠는데, 이미 건강한 제가 먹어봤자 별 의미는 없지 않을까요.”
“아아.”
이 자식 기환학사였지, 참.
“그럼 별 의미 없긴 하겠구나.”
천하의 모든 권력자가 탐욕 내지 않을 수 없는 약을 마냥 영양제처럼 대하는 여명이나, 자허의 대화는 어딘지 이질적인 것이었으며. 다른 이들은 어딘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마저 욕심이 생기는 약이 저들에겐 하등 밥값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그래서, 이제 어쩔 거예요?”
받기로 한 선불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여명은 다시금 협조적인 자세를 취했고. 자허는 여전히 목만 남은 기괴한 상태에서 말을 이었다.
“요(要)는 이거다. 결국 마교 놈들이 나를 못살게 구는 건 성화 때문이지. 그러니 성화를 부활시키면 나에 대한 심문도 멈출 테고.”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러더냐!”
자운은 자허의 얘기를 듣자마자 이제 성질부터 나왔다.
저런 얘기는 성성이도 할 수 있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조금 전 이 사부가 전심전력을 다하여 기력을 불어넣었음에도 반응조차 하지 않던 성화다. 한데 어찌 부활시킨단 말이더냐.”
“그러니 다른 수단을 써야지, 어쩌겠소.”
“다른 수단?”
“그렇지.”
자허는 한층 진지하게 눈에 이채를 띠었다. 어쩌면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성화를 부활시키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며.
“성화를 불 피운 당사자에게 부탁하는 것이오. 성화를 하나 더 달라고.”
“…….”
일순 찾아온 침묵.
그들은 미친놈 바라보듯 자허를 보았고. 기어이.
“미친….”
“거, 사실이라도 고운 말 좀 쓰시오. 애들도 있는데.”
“지금 발언은 북궁가 애가 말한 거다.”
“……저것도 재주군.”
원수인 북궁제에게조차 하지 않던 욕설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큰 재주가 아닐까 싶었다.
* * *
성화를 준 당사자.
그것이 누구인지 이 자리에서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흑원, 그자를 찾아가겠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알 거라고 본다만.”
삼국을 통치하는 세 명의 황제 중 하나이자, 가장 호전적인 신수로도 유명하여 ‘투신’으로도 불리는 존재.
그것이 바로 흑원이었으며. 현 마교가 숭배하는 신이자 성화를 내려준 당사였음이다.
“그래서 말했지 않소. 어려울 것이라고. 괜히 반도의 이름을 언급했을까.”
“…미친놈.”
“식상하니 이제 그 호칭도 질리는구먼. 좀 더 신선한 표현을 기대하지, 흘흘.”
“…….”
욕설은 이미 그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고. 그들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저거랑 상식적인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처럼.
그런 와중 유일하게 모든 얘기를 진지하게 듣던 여명이 물음을 던졌다.
“뭐가 있죠?”
“무엇이?”
“제가 영감님을 오래 안 건 아니지만. 어떤 양반인지는 대충 알아요. 겉보기엔 허술하고, 미친 것 같고. 어떨 때는 정신병이랑 착란증도 있으시고. 개념이란 걸 태어날 때부터 안 가지고 계시는 분 같지만-.”
“…….”
“아, 어쨌든 할 말은 많지만 영감님이 마냥 허술한 양반은 아니란 걸 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일부러 욕 드실 얘기만 하지 말고. 머리 안에 든 거 다 털어놔 봐요.”
“…거, 기분 요상하네.”
현대인의 팩트 폭력은 욕설보다도 아픈 것이었고. 자허는 조금 꿀꿀한 기분을 느끼며 입맛을 다셨다.
“쩝, 사실을 말하자면 성화를 얻기 위해 우리가 만나야 할 상대는 흑원이 아니다.”
“흑원이 아니라고요?”
“그래, 마교 녀석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불길이 어디서 파생되었는지 잘못 알고 있더구나, 쯧쯧.”
“???”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알고 있었다고?
그럼 대체….
“누가 불을 준 건데요?”
그러한 물음에 자허는 피식거리며 그 이름을 담았다.
과연 이 이름을 듣고 이 녀석이, 사형과 다른 이들이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고.
어떻게 보면 흑원보다 더욱 만나기 어려운 존재이자. 영수들보다 더욱 위대하기 짝이 없는 신불(神佛)에 속한 존재…!
다름 아닌.
“아미산의 주인.”
백모신원이었음이-.
“아아, 백모요? 난 또 누구라고.”
…다?
“……응?”
어쩐지 냉정하다 못해 세상 태평한 반응이 돌아왔고. 여명은 볼을 긁적였다.
“그럼 처음부터 말하지. 괜히 생고생만 했네, 진짜.”
“뭐?”
“백모한테 부탁하면 불 주는 거 맞죠?”
“…?”
“그럼 일단 연락해 볼게요. 부탁해 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녀석 지금 뭐라는 거냐?”
자허는 이놈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혹시 자신이 너무 놀려 장난을 치는 건가 싶기도 했고.
자허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툭 쏘아내듯 말했다.
“하, 만나고 싶다고 잘도 만나주겠구나. 한번 오게 할 수 있으면 해보거라. 그때는 내가…. 그래 네놈 노비(奴婢)라도 되어주마, 흘흘!”
자허는 진심이었다.
………
………
쿠우우웅!!!
[우오?]
불렀어?
……그, 아니 그녀는 마치 그렇게 묻는 것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간만에 자신을 부른 친구를 위해 기꺼이 행차한 그녀였고. 여명은 백광과 같은 아름다운 털을 흩날리는 그녀, 백모신원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리고….
“……내가 꿈을 꾸나?”
자허, 아니 노비는 멍하니 입을 벌릴 따름이었다.
그야말로 판이 뒤집혀, 아니….
십만대산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tmi후기.
-반도단은 진짜 복숭아 같은 모습과 맛을 가지고 있으며. 단맛이 좋은 딱복 같은 맛이 난다.
-먹으면 일평생 디스크와 염좌와 같은 외상 등도 발생하지 않으며. 설사 부상이 생기더라도 자연치유력으로 하루면 거뜬히 회복한다.
-장애 등이 있더라도 먹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백모신원은 여명의 단골이지만. 모든 은거자들이 돌아간 늦은 저녁에 찾아오기에 은거자들도 그 존재를 몰랐다.
-백모신원에 대해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아미산 편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덧붙이자면 백모신원은 영수가 아닌, 부처의 깨달음을 얻은 고릴라이며. 영수가 아닌 신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삼신수와 유일하게 비견할 수 있다.
-그러니 세계관 끝판왕 중 한 명이라 볼 수 있다.
-참고로 세계관 최고 미녀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