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31화 (231/261)

231-마교 최후의 날(1)

쿠우우웅!

지하가, 산이…. 아니다, 이것은.

“십만대산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이게 대체…?!”

십만대산의 마인들은 하나같이 지진에 익숙하다.

당장 만마전이 바깥이 아니라, 지저세계에 있는 이유 또한 지진이나 태풍, 혹은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가 지나치게 자주 일어나 이를 피하기 위해 옮긴 것일 정도이니….

그들에겐 지진이란 일상이며. 지저세계로 이주한 이후부터는 낮잠 중 일어나는 사소한 일과와도 같았다.

한데 이것은….

“아니다. 이건 지진이 아니다.”

“무슨 말이지, 광마?”

“산이 떨고 있는 것이지.”

“……뭐?”

저놈이 오래 살더니 미친 것일까?

산이 동물도 아니고, 떨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무백은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듯.

터억.

“허허, 이거 노인네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구먼.”

“지괴?”

단백설과 마찬가지로 신교의 살아있는 역사서라 불리는 불명지괴가 홀연히 모습을 비추었고. 단백설은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디에서 기인한 건지 알고 있는 거야?”

“대충은. 그보다 이러고 있지 말고 얼른 사람들을 모으게나.”

“아니, 설명도 없이 뭔….”

“교주는 십만대산의 결계를 지켜야 할 테니 제외시키더라도 십칠마종 중 올 수 있는 인원을 가능한 한 전부 모으게나. 반대로 노부는 마선오괴 전부를 모으도록 하지.”

“……뭐?”

단백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신교의 최고위 전력 전원을 소집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그의 말에 어찌 놀라지 않을까.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설명을 추가로 요구하고 싶은 단백설이었으나, 지괴는 그럴 시간도 아깝다며 입을 놀렸다.

“자칫, 대접이 소홀하면 신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판이라네. 허허….”

지괴는 평소처럼 여유 있게 웃는 것 같았지만. 어딘지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하려 각오를 다지는 것처럼.

“…음.”

처음 보는 지괴의 긴장한 모습에 그녀는 낯빛이 굳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단백설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이토록 신교 전체를 긴장시킨 원흉은….

“뭐 이렇게 소란스럽대?”

“……월.”

그걸 몰라서 그러냐며 강아지는 주인을 꾸짖었다.

* * *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구름이었다.

높게 치솟은 산맥과 비견할 만한 구름이 기류의 흐름을 타며 흘러오는 모습은 장관이다 못해 절로 위압될 정도였고. 어딘지 모르게 신비롭기까지 한 광경이었으니.

흔히 적란운(積亂雲)이라 불리는 거대 구름의 등장이었다.

“멋지네.”

여명은 저토록 멋진 적란운은 처음 보았다며 감탄부터 나왔다.

로키산맥의 곧고도 아름다운 형태가 연상되면서도 아무런 이물질이 섞이지 않은 청정한 백색 구름이 뭉게뭉게 모여 저토록 다가오니 웅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또한 누군가가 적란운을 보며 무서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여명에겐 한없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거센 돌풍을 동반한 바람조차, 지금은 누군가의 인사 소리처럼 들릴 따름이니.

[콰아아아! 콰아아앙!]

“맞네, 진짜 와준 거네.”

“월….”

한낮에 날벼락이 치는 것만 같은 거대한 울림.

여명은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월.”

“넌 드러밍이란 걸 어떻게 아냐?”

“왈왈.”

“그놈의 미튜브는 안 나오는 게 없구먼.”

드러밍. 단순히 고릴라가 자신의 가슴을 두들길 뿐인 행위였지만. 지금 울리는 이 소리는 일반적인 드러밍과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천둥번개가 떨어지는 소리와 비견할 만했으니까.

“하, 하늘이 노하셨다!”

“흐, 흑원이시여…!”

“으으으!”

뭐, 여타의 사람들 입장에선 두렵기 짝이 없는 현상일 거다.

여명이야 알고 있는 입장이니 마냥 그러려니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이 소리가 마치 천벌(天罰)과 같이 느껴질 터.

실상은.

“단순히 반가워서 저러는 것뿐인데.”

“월….”

“내, 내가 의도한 건 아니잖아.”

“왈왈.”

“…….”

설기는 오늘 여명이 여러 사람 심장 떨군다며 혀를 찼고. 여명은 억울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비록 와달라고 요청하긴 했지만. 설마 이토록 요란하게 올지 그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이 사부. 이게 지금 무슨 대체…?”

“허허, 살다 살다, 이런 광경을 다 보는군.”

“으음.”

“…허허.”

여명의 또 하나의 단골에 대해 모르는 노인들이 허탈하고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마냥 입을 우물거렸다.

대관절 이게 무슨 기사(奇事)인가 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여우님이나 백효 님 같은 단골손님 겸 친구예요, 친구.”

“…단골?”

“네에, 어르신들이랑 똑같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거대한 친구죠.”

후우웅!

일순 적란운이 형태를 갖추어갔다.

어릴 적 자주 구름의 모양을 사물에 빗대었던 것처럼. 구름은 그 형태와 모양을 잡아갔고.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었다.

팔과 다리. 몸통과 머리를 순서로 차례대로 형태를 갖추며 등장한 거인- 아니, 거성(巨狌).

거대한 성성이가 구름 속에서 등장했다.

[━━우오.]

우오오오오오!

백색 성성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듯 울부짖었다.

하늘과 땅, 바다와 산을 뒤흔드는 전율적인 포효가 아닐 수 없었고. 무림의 절세고수들은 식은땀을 줄기차게 흘렸다.

‘저, 저건…, 못 이긴다!’

처음이었다.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은.

항상 승자로 군림하며, 설사 영수라 할지라도 다른 이들과 힘을 합치거나 계략을 꾸민다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으리라 여긴 오만한 이들조차 그저 아연실색하며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지금 이 순간, 석가여래가 태어났을 때 내뱉었다는 지고(至高)한 어문이 왜 떠오르는 것일까.

신불(神佛)이 내뱉은 장엄하고 고고한 기운 앞에서 고수들은 마냥 몸이 굳은 채 말을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저 존재’와 대화하는 것조차 감히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반대로 절세의 고수들과 달리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가장 허약한 남자는 마냥 반갑게 신불을 향해 인사를 건네었다.

“진짜 와줬구나.”

[우오오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지?”

[우오….]

“하하, 미안해. 요즘 바빠서 식당을 늦게까지 못 열었어. 나중에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줄게.”

[우오?]

“정말이지, 그럼.”

[우오오.]

정답게 장난을 치는 것만 같은 여명과 신불은 부드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인간과 신불이란 격차는 그들에게 하등 의미가 없다는 것처럼.

“어, 어찌 신원과 인간이….”

자허는 믿기지가 않는 광경에 어버버 거리며 목소리를 떨었다.

평소 오만하고도 재수 없는 행태와 다른 겸손하고도 바보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었으나, 이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신원(神猿)이 누구이던가.

원숭이의 몸으로 신불의 깨달음을 얻은 현존하는 유일한 불타(佛陀)의 존재가 아니던가.

삼국의 황제 삼신수와 유일하게 비견될 만한 격을 갖추고 있으며.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인계(人界)를 벗어나 저 드높은 극락정토의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미산의 주인 백모신원이었다.

자허는 영수에게는 막 대할지언정, 저 고고하기 그지없는 불타에게 함부로 대할 엄두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피어오르며 머리가, 아니 영혼이 떨리는 느낌인데 어찌 대들 수 있으랴.

“네, 네 녀석은 대체 뭔데 신원과 알고 있는 것이냐!?”

“말했잖아요. 식당 단골이라고.”

“허어…. 말 같지도 않은 답변이 아닐 수 없구나.”

“말 같지도 않다니요. 저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도 돼요?”

“뭐가?”

“아니 그렇잖아요. ‘노·비’가 반말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

“안 그래요, 노비 양반.”

“……이런 씨-.”

[━우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불타여.”

자허 향년 119세.

머리가 잘려도 깨우치지 못했던 겸손을 배우는 순간이었다.

* * *

여명과 백모신원이 이토록 친근한 이유는 마냥 백모신원이 단골이라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예화 덕분에 단골 관리 확실하게 했지.’

워낙 드넓은 중원삼국이다 보니, 새로 사귄 지인이나 고객 등이 천산에 오기는 요원할 따름이었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 꾸준히 대화하지 않으면 서로의 사이가 멀어지는 게 사람의 심리인 법.

현대에서도 그렇고, 무림에서도 그렇고. 매년 사람들 생일이나 새해 인사 등을 빼먹지 않는 착실한 여명에게 새로 사귄 인연도 도외시하지 못할 소중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명은 과거 기예화에게 배운 만리전성을 기반으로 현대의 전화기처럼 사용 가능한 법구를 몇몇 지인에게 나눠주었다.

하북의 팽가려.

안휘의 남궁패.

사천의 당천제.

아미산의 백미선자.

…그리고 본의 아니게 봉마림의 무봉일패 등등.

지인 관리는 확실하게 하는 여명이었고. 이들과는 간간이 연락도 나눌 정도였다.

특히 여명과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이 오는 이들도 있었는데. 다름 아닌 팽가려와 남궁세가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들조차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그에게 연락하는 또 한 명이 있었는데, 그게 다름 아닌.

[우오….]

“아아, 법구가 벌써 망가졌구나. 그러니 적당히 좀 연락하라니까.”

[우오.]

“알겠어. 나중에 또 만들어줄게.”

여전히 밥값으로 주먹만 한 다이아를 주는 탓에 부담되는 건 여전했으나. 그래도 그동안 꾸준히 연락을 나누며 백모와 나름 친해졌다고 해도 무방할 터다.

그 증거로 그 멀고 먼 아미산에서 십만대산까지 단숨에 와준 의리만 보아도 친해졌다는 건 여명만의 생각이 아니리라.

“일단 법구 고쳐주기 전에 얘기 좀 하자.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

[우오!]

‘얼마든지 해라!’라며 무한의 신뢰를 보이는 백모였고. 여명은 역시 힘들 땐 친구가 제일이라며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혹시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성화라는 거 알아?”

[우오……?]

“그, 하얗게 타오르는 불길인데, 네가 마교한테 줬다고 들었거든.”

[…??]

“몰라?”

[…우오!]

“아, 이제 기억났구나.”

다행스럽게도 백모는 성화를 기억해냈다.

천 년 전에 주었다고 하기에 까먹었으면 어찌할까 싶었으나 다행히 기억을 하는 모양이다.

“미안한데, 이 양반이 그 성화를 꺼버렸대. 그래서 말인데…, 하, 하나만 더 줄 수 있을까?”

말하면서도 조금 창피했다.

마치 이게 무어랄까.

초등학교 시절 분식집 하는 친구한테 떡볶이를 먹다가 쏟았는데, 1인분만 더 주면 안 되냐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기분?

자신이 한 일도 아니건만. 누군가를 대리하여 부탁하려니 어딘지 창피하고. 미안함이 생기는 그였다.

허나 여명의 미안함과 달리.

[우오?]

그거면 돼?

사소하다 못해 심심풀이와 같은 부탁이라며 백모신원은 웃었다.

뭐, 그래도 이런 심심풀이와 같은 부탁 덕분에 간만에 친구 얼굴을 보러 ‘산책’도 나왔으니 기분은 좋다.

백모신원은.

[우오!]

친구가 가지고 싶어 하는 불을 ‘많이’ 주기로 하였다.

━━화르르르르르르륵!

십마대산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tmi후기.

-만리전성에 대한 개념은 119화에서 등장했으며. 원래는 기력이 있는 사람만 사용 가능하지만. 여명이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전기 충전하듯 기력을 충전해주는 중이다.

-현재 백모신원이 꺼낸 성화는 메테오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떨어지면 그날로 십만대산 사라지는 날이다.

-현재 백모신원은 그냥 장난처럼 불꽃을 꺼낸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바다에서 컵으로 물 뜬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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