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마교 최후의 날(2)
그건 불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아무튼 엄청나게 거대했으며. 하늘마저 삼켜버릴 하나의 호수가, 아니 대호(大湖)가 연상되는 불길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 안 보이는 거 실화냐?”
“…월.”
요리사 견주와 강아지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게임 속 메테오와 같은 불길이 마냥 비현실적인지 사이좋게 눈을 끔뻑였고. 또 동시에 팔 혹은 앞발로 눈을 비볐다.
자신들이 보는 것이 환각은 아닌가 싶어.
허나.
화르르르르륵!
“내 눈이 미쳤나 봐. 계속 보이네?”
“왈.”
아무리 눈을 비벼도 눈앞에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 법이었고. 여명과 설기는 그제야 좀 현실감이 드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어서.
그리고 눈이 마주친 단골들은.
“…오늘따라 유난히 날씨가 화창하구나.”
“누가 아니래. 화창하다 못해 화형(火刑)을 당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네.”
“거, 이승 하직하기 딱 좋은 날이구먼.”
“어허허….”
……음.
“다들 맛이 가셨구먼.”
정신 줄을 거하게 놓아버린 단골 어르신들이었고. 여명은 그들을 보는 대신 이 사건을 일으킨 원흉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너무 지나치잖아, 이 녀석아.”
[우오오?]
백모는 이해를 못 하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토록 ‘미약한’ 불길이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 * *
십칠마종 전원이 모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서로를 적대하거나 혹은 동맹하고 배신하는 경우가 수두룩한 그들은 알게 모르게 하나씩 원한이 있을 정도였으니, 마주치는 날에는 그날로 전쟁이 나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만나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도 이로울 따름이었다.
다만 지금만큼은 모든 원한을 전부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미친.”
단백설을 시작으로 모든 십칠마종이 아연실색한 어조로 낯빛이 창백하게 물들어 갔다.
도저히 싸워서 이기지 못할 상대를 만났을 때 느끼는 무력감과 절망, 그리고 공포 등등이 온몸을 잠식하며 무력감이 전신을 억눌렀다…!
절세고수의 경지에 오른 이들조차 감히 대적한다는 오만함을 보이지 못한 채 멍하니 있으니 다섯 노괴가 흘흘거리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넋이 빠지는 것이야 이해하지만. 그쯤 해두어라.”
“상대의 힘을 가늠하는 것이 무림인의 본능인 것은 알지만. …‘저것’과 힘을 가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을 테지.”
“아무렴.”
십칠마종과 같이 신교의 권력을 이분화하는 권력자들, 일명 마선오괴라 불리는 다섯 노괴들이 평소처럼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며 다가왔으나, 어색할 정도로 굳은 눈에서 그들 또한 긴장감 탓에 몸이 굳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우리보다 저들이 더 놀라긴 했겠지.’
무인들이야 그저 기감으로 느껴지는 끝없는 미지의 바다 앞에서 마냥 몸을 떨 뿐이라면, 기환학사들은 미지의 바다가 가진 깊이를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깊이를 아는 만큼 더욱 무서울 수밖에 없을 테고.
십칠마종이 느끼는 공포와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그때.
화르르륵….
십만대산의 하늘을 뒤덮던 새하얀 불길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며 화창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청명하다 느끼는 이들은 없었다.
외려 십만대산을 뒤덮던 모든 안개와 구름마저 소멸시킨 저 방대한 불길에 아연함만 느낄 뿐.
“다행히 떨어지지 않았구나. 오늘이 신교 최후의 날이 되는 줄 알았거늘, 흘흘.”
“…농이라도 그런 말씀은 말지요, 지괴.”
“크릉.”
“흘흘,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더냐.”
홀연히 나타난 지괴는 혼자가 아니었다.
호법사자를 비롯해 주교 전원이 모여 있었고. 막내 주교인 금천 주교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움츠리고 낑낑거렸다.
비록 백천 주교와 같은 완전한 재능은 갖추지 못했으나, 기력에 대한 감지 능력만큼은 탁월한 교주의 자식들인 만큼 공포를 느끼는 것이었다.
“지괴, 어쩌자고 주교들을…!”
“그럼 어찌할까. 아무리 어리다고 한들 저분을 뵙는데 주교들이 빠지는 것이 말이나 될 것 같은가?”
“그, 그건….”
“이 또한 신의 핏줄이 감당해내야 하는 숙명일 테지. 뭐, 이 아이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커엉!”
“허허, 그래 애 취급하지 않으마.”
“…….”
십칠마종은 지괴에게 쓴웃음을 지었다.
우습게도 신교에서 가장 괴상한 양반 취급받는 노인이, 지금만큼은 가장 믿음직스럽게 느껴졌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남들에게 여유롭게 비춰지는 겉과 달리 그의 속내는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신모께서 이토록 뜬금없이 강림하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신모 백모신원.
흑원신교의 위대한 교신(敎神) 흑원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삼신수와 동등하다 불리는 불타(佛陀)의 존재.
과거 백모신원을 만나기 위해 무수한 신교의 마인들이 아미산을 찾아갔지만. 그 그림자조차 뵌 적이 없으며. 수개월 전 강림하였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다시금 단혁세 등이 찾아갔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였다는 보고만이 그들이 들을 수 있는 전부였다.
어찌 보면 신모께선 신교에 대한 정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내심 선대들처럼 이번 생에서는 만날 수 없으리라 여기기도 했었다.
한데.
‘늙으니 감이 떨어졌군, 떨어졌어.’
불타, 아니 신은 인간의 예측을 농락하듯 십마대산을 직접 찾아왔고. 겁화(劫火)와 같은 불길을 휘두르며 제 심기를 보여주었다.
혹 그들이 결례한 것이 있던 걸까?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테지.”
“지괴?”
“내 말이 맞지 않은가. 지금 중요한 것은 모신(母神)의 저의를 헤아리는 게 아니야. 무엇보다 하찮은 인간이 신의 저의를 어찌 예상할 수 있으랴. 안 그런가 천괴?”
“……그것도 그렇구먼.”
천괴는 오래된 지우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저 말대로 인간이 어찌 감히 신의 저의를 예측하리오.
그러니 지금 그들이 할 일은.
“자, 그럼 이제 가보세. 천 년 만에 이 땅에 강림하신 신모(神母)를 경배하기 위해서라도.”
충실한 종으로서 증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여전히 당신을 경애한다고.
설사….
‘오신 이유가 신교의 파멸이 있을지라도.’
지괴는 애써 뒷말을 삼키며 덤덤히 앞으로 나아갈 따름이었다.
………
………
“그래, 맛있어?”
[우오오!]
“다행이다. 만두를 싫어하면 어쩌나 싶었네.”
[우오!]
“더 달라고? 두부를 더 많이 넣어서? 어쩌지…. 두부는 만들려면 조금 시간이 더 걸릴 텐데….”
[우오…….]
“실망하지 마. 더 줄 테니까. 그리고…. 응? 어르신?”
“…….”
“가, 갑자기 왜 오셨어요? 그것도 단체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하는구먼.”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걸음을 옮긴 것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에 지괴는 떨떠름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아, 쪽팔려.
………
………
십칠마종과 마선오괴, 그밖에 신교의 요직에 위치한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은 채 그들의 모신인 백모신원을 경배했다.
“모신을 뵙습니다!”
━━모신을 뵙나이다!
십만대산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거대한 목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는 듯했다.
설사 천하제일인일지라도 이들의 목소리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지만. 상대는 안타깝게도 천하제일인을 ‘따위’로 만들 수 있는 존재였다.
[……오오.]
그들에게 관심조차 비추지 않으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백모신원은 퉁명스럽게 답변조차 하지 않으며 하품을 내었다.
그들이 귀찮아 이러는 것이 아닌, 배를 좀 채우니 식곤증이 밀려오는 것처럼.
다만 이런 모습을 어찌 오인했는지 몰라도 교인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백모신원의 지루한 모습이 마치 그들을 탓하는 듯해서.
특히….
주르르륵….
“…으음!”
호법사자는 비가 오듯 식은땀을 흘렸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며. 모진 고문을 당할지라도 공포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호법사자였으나, 그는 지금 정신이 아득하니 멀어지듯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그도 그럴 게.
‘불 좀 다시 줄 수 있나 부탁하려고 불렀다’는 식선의 말이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았으니까.
아니, 그럼….
‘이 사태가, 우, 우리 호법원 때문에 일어난 건가?’
그들이 성화를 가져가서?
호법사자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 지푸라기만큼 남은 성화를 어떻게든 보호하고자 가져갔을 뿐인데 갑자기 하늘에서 신이, 아니 부처가 내려온 격이었으니까.
허나 사정이 어찌 됐건 이 사태의 시발점을 열어준 건 호법원이었고. 그들로선 눈앞이 깜깜해질 노릇이었다.
모신을 강림하였으면 기뻐해 마지않는 일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으나, 그건 신이 호의적이었을 때 일이지.
[우오?]
“……커헉.”
지금처럼, 무심하다 못해 떨떠름해하는 시선만이 느껴지니 어찌 긴장하지 않고 배기랴.
호법사자는 마냥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그는 죽일 듯한 시선으로 ‘원수’를 보았다.
‘이번 일만 무사히 넘어가면 반드시 죽이고 말 테다!’
머리통만 남은 신교의 대적(大賊)과도 마찬가지인 일인.
이 모든 사태의 원흉!
‘괴선, 내 기필코 저 괴물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이는 호법사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충 이 사태의 발단 과정을 모두 들은 십칠마종과 마선오괴, 나머지 교인들까지.
전원이 자허에게 살의를 품으며 이를 가는 중이었지.
‘저놈의 새끼는 신교랑 무슨 원수를 졌기에!’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곤륜을…! 아니다. 곤륜 자체는 식선님과 친분이 있으니 놔둔다고 쳐도. 자허만큼은….’
분명 백모신원을 부른 것은 여명이었지만, 그를 원망하는 이는 없었다.
아니, 불가(不可)했다.
‘미쳤다고 신원의 지기지우(知己之友)에게 원한을 품어?’
‘죽고 싶어 환장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뭐 실수한 거 없지?’
‘앞으로 식선께서 땅을 보고 하늘이라고 하면 하늘인 것이고. 돌을 보고 여인이라고 하면 절세가인인인 것이다.’
어느새 식선의 지위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단순히 천외 등급 귀빈(貴賓)을 넘어 교주와 동등한 지위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현재 한정으론 교주보다 높을지도?
“백모. 조금 전 성화보다 좀 작게 만들 수 없을까? 천 년 전에 줬던 거랑 비슷한 거면 될 것 같은데.”
[우오오!]
봐라, 그들의 모신과 저토록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우오우오.]
“어? 지, 진짜?”
[우오.]
도중 무슨 말을 들었는지 식선은 당황하며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선.
“어어, 저기 호법사자님?”
“겨, 경어는 빼주셔도 됩니다, 식선이시여! 그저 벌레라고 하셔도 됩니다!”
“…제가 멀쩡한 사람한테 벌레라고 부르는 취미는 없네요. 그보다 제 얘기 좀 들어주시죠.”
“무슨 말씀이든 하십시오!!”
“……느낌이 영 이상한데.”
어쩐지 이등병한테 군생활 편하냐고 묻는 3스타가 된 기분을 느끼며 여명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그것도 잠시.
“으음, 다른 게 아니고. 그 성화라는 거 있잖아요.”
“말씀만 하시면 즉시 대령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거 꺼진 거 아무래도 자허 영감님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요?”
“……예에?”
순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호법사자는 불경하게 되묻는 행위를 하고 말았다.
아차 싶었으나, 여명은 신경 쓰지 않고 얘기를 이었다.
“으음, 원래 어떤 물건이든 수명이란 게 다 있잖아요. 근데, 그 성화도 하필 이 시점에서 수명이 다한 것 같아요. 뭐, 유통기한이 천 년이면 엄청나게 긴 건 맞았던 것 같지만.”
“…….”
…교인들 전원을 얼빠지게 하는 충격적인 얘기를 말이다.
“아, 아니 대체 무슨 근거로…?”
누군가가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말실수를 하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교인 전원이 동감했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저런 말을-.
“─백모가 그렇다는데요?”
[우오.]
“…….”
…말실수, 아니 천인공노할 망언을 내뱉은 십칠마종의 일인 혈마는 전신에 핏기가 빠지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평소 혈마란 이름답게 혈색 좋던 낯은 색목인의 피부보다 창백했음이다.
그리고 그는.
“하, 할복(割腹)하면 되겠습니까?”
“그런 취미 없다니까요.”
“…….”
“…다른 분들도 도와주려고 하지 말고요.”
십칠마종이 십육마종으로 될 뻔한 것을 말려준 여명이었다.
tmi후기.
-십칠마종 명단이 궁금할 수도 있는 분들이 있을 수 있기에 tmi로 설명하자면.
-천마종·광마종·검마종·독마종·뇌마종·강마종·권마종·철마종·염마종·혈마종·금마종·창마종·도마종·비마종·투마종·환마종·빙마종 등이 있다.
-추가로 마선오괴는 지괴와 천괴, 음양괴, 목괴, 수괴 등이 있다.
-참고로 백모신원은 마교에게 무관심하게 구는 것은 마교에 대한 존재를 정말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천 년 전 백모는 아미파라는 건실한 대기업 차리느라 바빴고. 흑원은 신강에서 불량배들 모아서 마교란 마피아 조직 하나 차린 거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 보니 남편(흑원)이 무슨 조직 차린 건 알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성화는 대충 축하 화환 삼아 준 거라고 볼 수 있다.
-끝으로 흑원이 백모에게 준 화환이 다름 아닌 아미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