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남자가 일찍 죽는 이유(1)
쿠웅.
“하아, 돌아왔다….”
“왈왈!”
“설기님 말씀대로, 역시 집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십만대산의 공기가 천산보다도 맑고 깔끔하긴 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천산의 공기가 십만대산보다 수십 배는 더욱 달고 맛있게 느껴졌다.
어느 나라에 환상적인 휴양지나 고급 호텔을 갈지라도 집보다 못하다는 소중한 깨달음과 함께 여명은 중얼거렸다.
“반갑다, 내 보금자리야.”
근 나흘 만에 귀환이었다.
돌아오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말하자면 정말 날밤을 새워도 부족할 것이다.
그 정도로 십만대산은, 마교의 인간들은 징글징글할 정도로 끈질겼다.
-신인이시여! 이대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부디 자비를 보이소서…!
-한 마디만! 딱 한 마디만 더…!!
…지금 생각해도 오싹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흑원과 대면한 순간부터 마교의 성인 혹은 신인 취급을 받으며. 그를 끈질기게 따르는 인간들이 어찌나 많은지 원.
여명은 어째서 마교가 여타의 국가에서 기피되는지 알 것 같았다.
이토록 맹목적이고. 미친 인간들만 모여 있으니 타인에게 기피당하는 것이지.
-자업자득이네, 진짜.
-허허, 미안하게 됐네.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말게나. 모두 후배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니.
-…하하.
-그리고 저 아이들도 마찬가지일세.
-네에?
-허허. 부디 잘 대해주게나.
의미심장한 지괴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설기의 형제들.
흑색, 청색, 금색으로 나뉜 강아지들이 그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어딘지 애절하기 짝이 없는 시선.
-…컹.
가지 말라는 듯 그를 붙잡는 그들이었고. 여명은 이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발이 안 떨어졌다.
이만한 유혹도 또 없다며.
하지만.
-언젠가 또 보자. 아니면 천산으로 놀러와. 언제든 환영할 테니까.
-끼잉….
-그래, 진짜야.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줄게.
세 강아지와 만난 시간은 한없이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여명은 이들이 참으로 외로운 아이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러한 점 때문에 갖은 트러블을 일으켜도 미워하지 못하는 걸지도?
저들의 애절함에 의해 떨어지지 않는 발이었고. 여명은 설기와 형제견들을 번갈아 보았다.
-누가 핏줄 아니랄까 봐, 영악하기 짝이 없다, 진짜.
-멍?
-모른 척하지 말고, 이 녀석아. 그리고 말할 줄 알면 말을 해 그냥.
-머, 멍~?
-…또 개인 척하고 있다.
솔직히 아직 마교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제법 수두룩했다.
북궁제는 어떻게 되고. 자허와 마교는 그동안 쌓인 앙금을 어찌 풀 것이며. 지괴는 어째서 흑색 댕댕이를 밀어주는 것이고. 천마는 대체 여명의 무엇을 알고 있는 건지도….
그야말로 아직 풀어야 할 얘기들이 넘쳐나는 수준이었으나, 여명은.
-됐다. 이걸 다 풀어서 어쩌라고.
그 모든 의문을 접어두기로 했다.
지난 며칠간 이것저것 고생했으면 됐지, 사서 고생하여 마교에서 골치 썩고 싶지는 않은 바였으니까.
무엇보다 이제는.
-집에 가자.
집이 그리웠고. 천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여명은 누가 만류하건 말건 천산으로 돌아왔다.
마교란 징글징글한 인간들의 굴레와 속박을 모두 던져버리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나듯이.
그렇게 여명은 축지를 펼쳤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도록, 이제 그들의 일은 그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도록.
그렇게 현재.
“아아, 살 것 같다.”
여명은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겨우 나흘이었지만. 그 어느 날보다 농후했던 시간을 이겨낸 자기 자신에게 포상을 주듯이.
창문을 활짝 여니 보이는 것은 해맑은 천산의 하늘이 아닌 현대의 하늘이었다.
전깃줄도 있고. 매연도 좀 있으며, 황사도 있는 그런 우중충한 하늘이었고. 풍경 또한 우거진 대나무 숲이 아니라 빈틈없이 빼곡하게 세워진 건물과 빌딩 등 때문에 숨 막히기 그지없는 도시의 흔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여명은 이 우중충한 도시가.
“이게 행복이지.”
마음에 들었다.
십만대산에서 매일 같이 환상적인 천혜의 환경만 보다가 이런 광경을 보니 느낌이 뭐랄까.
‘간만에 불량식품 먹는 기분이네.’
느슨해졌던 혈관을 긴장시키는 느낌이기도 했지만. 원래 사람이 이렇다.
아무리 환상적인 절경을 보더라도, 도시의 맛을 아는 사람은 문명의 향취(香臭)를 끊지 못하는 것처럼.
“월….”
“…넌 도시견이 아니잖아.”
“월월.”
“그 말이 그 말이던가?”
서당개 3년이면 시구를 읊는다고 단언하는 설기였고. 그 예시가 지금과 같은 맥락인가 하고 의문이었으나, 여명은 곧 나른하게 침대에 몸을 눕혔다.
설기와의 반박조차 지금은 자장가처럼 들릴 뿐이니.
“왈.”
그런 여명의 배 위로 올라온 설기도 같이 몸을 뉘이니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 따름.
“이대로 한 달, 아니 일주일? ……아니다 이틀만 좀 쉬고 싶네.”
“월?”
‘왜 자꾸 휴식기가 줄어?’ 어이없어하는 설기였지만.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천성이었다.
안 그래도 나흘이나 식당을 열지 않기도 했으니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그런 여명의 걱정에 설기는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저것도 병이라며.
“월.”
“병까진 아니야, 이 녀석아.”
“월?”
“…아마도.”
차마 이 부분에서 자신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일에 미친 사람이 맞으니까. 하지만 원래 사람이 힘을 충전하는 방식은 다양한 법이었다.
누군가는 남들과 대화하여 힘을 얻고. 또 누군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힘을 얻는 것처럼. 여명은 요리를 해서 타인의 만족감을 이끌어냈을 때 더할 나위 없는 충족감을 얻을 뿐.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그만의 충전방식이란 의미였으니.
……또한.
“머리 복잡할 땐 정신없는 게 좀 나아.”
“……멍.”
이번만큼은 투덜거리는 대신 고개를 주억거려 주는 설기였다.
그 정도로 그의 속을 앓게 하는 원흉은 거물(巨物)이었으니 말이다.
* * *
신수 황룡.
황룡국의 황제이자, 삼신수 중 가장 심후한 연장자이며, 살아온 세월을 가늠하는 것조차 불가하다는 존재.
이는 인간만의 발언이 아니라, 영수들의 의견도 대동소이했는데, 여우님과 백효님 등은 황룡에 대해 이리 평했다.
-기분 나쁜 늙은이니라. 사람이건 영수건 상관없이 항상 난제(難題)에 들게 하는 기분 나쁜 취미를 가지고 있지. 흑원이 무식하고. 백록이 음흉하다면, 황룡은 그대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꼰대’이니라.
-흥, 저것과 뜻이 같은 건 여도 불쾌한 일이지만. 저 말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구나. 그래, 참으로 기분 나쁜 늙은이지.
-가능하면 절대 만나지 말거라. 그대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까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구나.
-이 또한 기분 나쁘지만 동감하는구나.
…영수에게 꼰대 소리 들을 정도면 얼마나 까칠한 것일까?
왠지 앞뒤가 꽉 막힌 고집스러운 노인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것이리라.
허나 이런 의견과 상대적으로 황룡의 자비로움과 관련된 전설은 무수하기 짝이 없었다.
바다에 잠긴 중원대륙을 다시 물 밖으로 올려줬다느니.
하늘에서 떨어진 태양의 일부가 세상을 태워버리기 직전 삼켜줬다느니.
부활한 태초의 신 반고(盤古)를 무찔렀다느니.
이 밖에도 황룡이 세상을 몇 번이나 구했다는 신화와 전설, 그리고 유적지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며 여전히 황룡은 황룡국만이 아닌, 중원삼국 전체에서도 그 비밀과 전설이 끝도 없이 퍼지는 태고(太古)의 용(龍)이었다.
‘들은 얘기 중 반절이 아니라, 일부분만 사실이어도 진짜 웬만한 신화보다 더 웅장한 거지.’
현대의 서적이나 역사서 등에서 나오는 신화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황룡의 이야기였고. 여명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황룡의 유적지를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직접 만나고 싶다는 견물생심까진 없지만. 그래도 신화의 발자취를 좇는 건 흥미로운 일이니까.
무엇보다 흑원의 경우처럼 신이란 가까이가 아니라, 멀고도 먼 아득한 저편에서 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친 것도 아닌데 폭풍우가 치는 바다를 헤엄치는 인간이 없는 것처….
“─이번에 친구가 서핑한다고 태풍 부는 날에 바다를 간 거 있죠. 빅 웨이브니 뭐니 하면서 염병을 떠는데, 참…. 죽을 뻔한 거 소방관 선생님들이 살려줬대요, 쯧쯧.”
…있구나.
“그, 그래?”
“한 번씩 생각하는 건데 사람만큼 스릴에 미친 동물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재해가 왜 재해인 줄 모르나? 하여튼 자살하려고 발악하려는 인간들이 많아서 문제예요. 사람들이 사장님처럼 상식적이어야 하는 건데.”
“…크흠.”
“음? 목 아프세요?”
“아, 아니야. 그냥 입이 바짝바짝 마르네, 하하….”
여명은 간만에 만난 단골 여대생의 직설적인 말들을 들으며 어쩐지 가슴이 콕콕 쑤셨다.
왠지 모르게 자신을 저격하는 것처럼 들리는지라.
“그, 친구분은 멀쩡하대?”
“아니요. 지금 병원에서 재활 중이에요. 잘못했으면 반신불수였을 거래요. 재활만 4년 필요하다고 하던가? 하여튼 왜 그딴 짓을 해서 모두를 고생시키는지, 진짜 미친놈이라니까요.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 그러네.”
“하아, 죄송해요. 사장님한테 할 말은 아닌데, 간만에 사장님을 보니 속에 쌓인 얘기를 저절로 하게 되네요, 이상하죠, 참?”
“그럴 수도 있지, 그, 그보다 얼른 밥 먹어. 식겠다.”
“아, 네넵, 가장 중요한 걸 까먹었네요, 어디…, 와아!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제 속이 다 답답하다며 성질을 부리던 예진이었으나, 그녀는 곧 여명의 백반 정식을 먹더니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며 감탄했다.
친구의 불행조차 한순간 잊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맛이었고. 예진은 안 그래도 맛있던 여명의 요리가 100배는 맛있어졌다며 엄지를 척 들었다.
오늘만 열대 번은 더 들었을 소리였고. 여명은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일말의 씁쓸함을 숨겨야 했다.
분명 음식이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아야 하거늘, 이상하게 저조해져만 간다.
“미친 짓이라….”
그래, 맞는 말이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폭풍우를 향해 자처해서 뛰어들까.
오늘처럼 평화로운 나날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거늘.
…하지만.
‘내가 흑원 그 양반 만나면서도 아무래도 맛이 좀 갔나 봐.’
흑원이 남긴 떡밥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 때문에 이토록 호기심 들끓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호기심 하나 때문에 갈수록 생각하고 만다.
‘황룡이라.’
황룡, 그 위대한 신수를 만나보고 싶다.
그러한 메아리와 같은 울림이 뇌리를 자꾸만 울렸고. 여명은 쓰게 웃고 말았다.
진땀이 날 정도로 일하면 잊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이렇게 자꾸만 떠오르는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고도 웃프다며.
그리고선 생각한다.
‘얘 말처럼 남자가 일찍 죽는 이유가 있어.’
미친 짓에 목숨을 거는 건 아무래도 남자의 본능인가 보다.
tmi후기.
-황룡의 신화는 대부분 사실이며. 태양의 일부를 먹었다는 얘기는 사실 떨어지는 운석을 브레스로 터트린 것을 보고 와전돼서 퍼진 얘기다.
-여명의 요리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생긴 추가 효능이 있다면, 몸속 노폐물과 우울증을 치료해주는 효능이 있다.
-특히 마약중독자에게 긍정적인 효력을 발휘하며. 다시금 나쁜 짓을 하려고 하면 여명의 기력 때문에 나쁜 짓을 못 하게 된다.
-참고로 예진의 친구는 여명의 요리를 먹고 단 두 달 만에 재활에 성공하며. 안전불감증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유는 위험한 짓을 하려고 할 때마다 여명의 기력이 다리를 부러트린 덕분이지만. 그 누구도 이를 모른다.
-이 때문에 여명의 식당에 안전불감증 자식을 둔 부모들이 많이 찾아오게 되며 다른 의미로 유명해지게 되지만, 이는 훗날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