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남자가 일찍 죽는 이유(4)
-사장님, 안 될 말입니다! 황성이라니, 아니 천의각이라니…!?
여명의 선택을 항상 존중하고 따라주던 북궁린의 말이었고. 설마 이토록 격렬히 반대할 줄 몰랐던 여명은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또한 말리는 사람은 북궁린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 봐 이 사부.
-그 인외마굴에 기어들어 가는 건 팔걸도 안 할 미친 짓일세.
-하아, 이 사부. 유언장은 써뒀는가?
-야, 이 미친 늙은이야! 그게 무슨 재수 없는 소린가!!
단골 어르신 대부분이 사서 전쟁터로 뛰어드는 어린 후배를 보는 시선을 주는데….
이게 참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었으나, 여명은 저들이 자신을 걱정하기에 이런 시선을 주는 것을 알기에 마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내가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을 할까.
또한 이미 칼은 뽑은 시점이고.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라 하지 않던가?
특히 칼질을 생업으로 삼은 이라면.
-제가 요리사 나부랭이 소리 듣지만. 그래도 칼밥 먹고 사는 놈입니다. 그러니 칼 뽑았으면 무 정도가 아니라, 작정하고 마지막까지 썰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거죠. 그러니….
말리지 말고. 믿고 맡겨 달라.
드물게 단언하는 여명의 말투에 단골들도 더는 말리지 못했다.
그들도 사내인지라, 누구보다 저러한 기분을 알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할 때.
그것은 논리적으로 하는 일이 아닌, 그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이 사부 뜻대로 하게. 그것이 자네의 심장이 시키는 것이라면.
-감사해요, 어르신들.
여명은 힘이 되어주는 어르신들의 말에 흐뭇하게 웃으며 준비를….
-어딜 가신단 말입니까! 심장은 얼어 죽을입니다!
-왈-!
-……음.
끝까지 반대를 외치는 북궁린과 설기는 그야말로 강적이나 다름없었다.
-린아, 나 숨 막혀….
-안 놓습니다.
북궁린은 혹시라도 그가 기환술로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그를 잡은 채 놓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북궁린에게 질식사당할 뻔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그렇게 근 이틀간 북궁린을 달래고. 여우님과 같이 가고. 감시역인 설기가 있다고 하니 그제야 조금 진정한 북궁린은 그를 잡은 손을 드디어 놔주었다.
-바,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알겠어. 돌아올게.
어쩐지 떠나가는 임을 보는 아낙네와 같은 북궁린의 대사였고. 여명은 다시금 실감하고 만다.
자신이 가는 황성이란 곳이 무림인조차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생사불문의 마경(魔境)이란 것을.
-…까짓 거 죽기야 하겠어.
여명은 자신이 불길한 클리셰와 같은 문장을 읊는 줄도 모른 채 황성으로 향하는 문을 향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단골들이 이토록 경계하고 위험하다고 하는 장소를 향하니 과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긴장감을 높이며─!
……한데.
“…뭐야, 이거?”
여명은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눈만을 끔뻑였다.
“천의객잔에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식사를 하시겠어요? 아니면 숙소를 찾으시나요? 말만 하세요, 오호호!”
“……?”
뭐지, 진짜?
천의각.
그곳은.
‘여기 숙박업소야?’
여명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장소였는지라.
* * *
천의각 본거지의 외향은 언뜻 볼품이 없었다.
허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껏 보았던 여러 세력의 외향과 달리 전혀 웅대함이나 깊이가 느껴지지 않다는 것이지.
굳이 말하자면.
‘여기라고? 이런 객잔이…?’
그래, 중원삼국의 전통적인 숙박업소, 즉 객잔이었다.
흔히 무림에서 싸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순위 1위이자, 무협 소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무대 배경과 같은 장소.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깊은 숲속에 있다는 점?’
시골조차 이보다는 나을 것 같은 험준하고도 수풀이 우거진, 깊고도 깊은 숲속에 만들어진. 그렇다고 비밀스럽다는 느낌보다 산행을 하는 여행자가 우연히 발견할 법한 평범한 객잔.
아마 여행자는 여기가 진짜 객잔인 줄 알고 들러서 음식을 주문하고 방이 없냐고 묻지 않을까 싶었다.
“그럴 테지. 진짜 객잔이 맞으니까?”
“네에?”
수수께끼와 같은 미곡왕의 의미심장한 말이었고. 미곡왕은 답변을 주는 대신.
“등하불명.”
“??”
천의각과 황룡의 관계를 가리켰던 말을 다시금 반복했고. 여명에게 혼란을 선사했다.
그때 여명에게 말을 걸었던 점원, 아니 점소이가 물었다.
“실례지만 몇 분이신지요?”
“아, 세, 세 명입니다.”
“세 명이요? 흐으음….”
“…….”
여급(女給)의 시선이 충분히 해석이 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한 사람과 짐승 두 마리이거늘, 명(名)을 나타내고 있으니 여급의 시선이 흐릿해지는 것도 이해할 바.
허나 여급은 프로였다.
“그, 그러시군요. 이해했습니다.”
“아니, 뭘 이해했다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보다 자리로 안내하겠습니다. 그…, 두 분도요, 오호호….”
“…….”
뭔가 장대한 오해가 생긴 것 같지만. 여명은 낯빛만 붉힐 뿐. 무어라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이건 제 실수였으니까.
‘생각해 보니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네.’
지금껏 동물들을 당연히 인간처럼 대하는 반응들만 보아서 그런지 대응이 미흡했다.
이상한 오해가 생기는 것도 당연할 터.
‘아, 아니야 그래도 괜찮겠지. 큰 오해는 아닐 테니까.’
여명은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며 그렇게 넘겼다.
다만.
“그, 나리.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는 것인데, 동물에게 몹쓸 짓을 하는 이상자(異常者)는 아니시지요?”
“…….”
“큼큼, 호,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습니다. 그럼….”
“……염병.”
여명은 뒤늦게 욕지기를 내뱉으며 여급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떻게 하면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느냐는 어이없음에서 발로한 욕지기였음이다.
천의객잔은 지극히 정석적인 객잔이었다.
닭고기 만두나 어육만두, 소면과 같은 흔히 객잔에서 파는 음식을 내어주고. 맛 또한 정석적일 정도로 평범한….
그나마 가격이 좀 저렴한 것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런 특색조차 없는 객잔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여명은 객잔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여우님.”
“왜 그러느냐.”
“여기가 천의각이라고 하셨죠?”
“그렇다.”
“그런데, 왜 아무런 행동도 않으시는 거죠?”
“무엇을.”
“…….”
“후후,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니 화내지 마라라. 본녀의 털이 다 떨리는구나.”
“…엄살도 심하셔라.”
여명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삼켰다.
그의 반응이 이럴 만도 한 것이. 비구를 타고 천의각까지 온 게 벌써 반나절은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한데도 여명이 본 것은 기껏해야.
“월!”
“그래, 그렇지.”
설기의 말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음식과 평범한 객잔. 그리고 눈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기환학사까지…!
그동안 들은 소문이 무색할 정도로 여명은 아무것도 본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후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본녀는 분명 그대를 천의각으로 데리고 와주었다. 한데 왜 계속 본녀에게 답을 구하는지 모르겠구나.”
“…또 말장난이시네.”
“말장난이 아니란다. 오로지 참(眞)만을 말하고 있거늘~.”
“……음.”
여명은 미곡왕의 장난스러운 대응에 난감한 듯 미간을 좁혔다.
그녀가 저토록 두루뭉술하게 대응하는 이상,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뭔가, 조건이 있는 건가?’
지금껏 천의각에 대해 들은 것들이 사실이라면, 천의각은 황실과도 연관이 깊은 비밀스러운 세력이 아닐 수 없었다.
애초에 황성으로 가는 출입구라고 하는 대목에서부터 그들은 은밀해야 하는 것이 맞을 터.
그러니….
‘여우님도 발설하지 못하는 조건이 있는 거야. 그래서 나한테 의미심장한 말만 한 거고.’
허나 자신이 아는 미곡왕은 개구쟁이 같더라도, 마냥 장난을 칠 만한 위인이, 아니 여우가 아니다.
설혹 짓궂게 굴더라도 답을 찾기 쉽도록 안내해주는 유치원 선생님 같은 이였지.
‘힌트를 줬다면, 그거겠네.’
등하불명.
지금껏 미곡왕이 천의각을 표현할 때 썼던 말은 대부분 저것이었다.
마냥 폼 좀 재려고 한 말이 아니라면, 미곡왕은 자신에게 이리 말하는 것이리라.
-나무를 보지 말고. 숲 전체를 보거라. 그리 시야가 좁아서 어디다 쓸꼬?
‘아마 이런 뜻이겠지.’
하여튼 한 번씩 밉살스러운 구석이 있으시다.
“너는 무슨 뜻인지 이미 알지?”
“월~?”
“…넌 연기하지 마라, 다 티 나니까.”
“……멍.”
내 그럴 줄 알았다!
머리 회전 하나는 웬만한 영재보다 더욱 쌩쌩하게 돌아가는 녀석이었다.
아마 천의각의 비밀 또한 천의객잔에 발을 디딘 순간 바로 알았을 터.
다만 이를 여명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설기는 입을 꾹 다물 생각인 것이겠지.
안 그래도 자신이 황룡을 만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중이니….
‘계속 물어봐도 절대 답을 안 주겠지?’
억지로 알아내려고 해도, 쇠심줄보다 고집이 센 녀석이니 어떤 수단을 써도 답변을 들을 수도 없을 테고.
허면 결국….
‘내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는 건데, 대체 뭐지?’
여명은 고심했다.
과연 미곡왕과 설기만 아는 객잔의 비밀이 무엇이고. 진짜 천의각은 어디 있는지.
‘참….’
우물우물.
이래서 머리가 좋지 않으면 몸이 고생하는 모양이다.
스트레스 때문일까, 허기가 감도는 여명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을 우물거리며 먹었다.
정말 무난하다 못해, 어딘지 냉동식품을 데운 것만 같은 맛이었고. 배만 안 고팠으면 입에도 대지 않았으리라.
‘아니, 이거 직접 만든 건데 왜 이런 맛이 나지?’
천의각의 실체보다 더욱 거슬리는 음식의 맛.
직업병인지 모르겠으나, 남이 만든 요리만 먹어도 이게 냉동인지 수제인지는 대충 감이 올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 먹는 음식은 틀림없이 수제로 만든 것일 텐데, 어찌 이런 맛을 낼 수 있나 신기하기까지 하다.
‘무난해도 이렇게 무난할 수가 있나. 완전 기계가 만든 것 같은- ……어?’
흠칫!
“……설마?”
후루룩!
우물우물…!
여명은 다시금 닭고기 만두를 보았고 먹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요리를 보고 먹으며. 여명은 자신이 느끼는 위화감을 보다 더욱 선명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여우님.”
“왜 그러느냐.”
“제, 제가 말하고도 미친 소린 건 아는데…, 혹시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진짜’는 얼마나 됩니까?”
“호오.”
“…….”
“그래도 생각한 것보다 일찍 눈치챘구나, 후후.”
“…….”
…자신을 기특해하는 듯한 상냥한 눈길에 여명은 소리 없는 경악성을 내질렀다.
지금 저 말뜻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으며. 동시에 깨달았으니까.
이 객잔에는…!
“…하.”
“나리, 음식에 혹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나리?”
“…잠시 실례 좀 하죠.”
“예에?!”
일순 여명은 여급의 머리 위로 손을 대었다.
중원삼국에서 여성의 머리에 손을 대는 건 무례 중에서도 가장 큰 무례였으며. 여명 또한 타인에게 이런 희롱과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여성한테 말 붙이는 것도 힘겨워해 첫사랑이 30대 때였으니 말 다 한 것이다.
한데 그런 여명이 먼저 여성에게 손을 댄 거다.
만약 여명을 잘 아는 누군가 봤다면 ‘저놈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의심할 만한 상황!
허나 여명은 여인을 희롱할 생각도, 그렇다고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단지.
뚜욱!
“…염병, 이게 왜 진짜야?”
여급의 머리는 마치 장난감처럼 ‘분리’되었다.
그리고 분리된 부분에는.
째깍째깍.
……태엽(胎葉)이 돌아가고 있었다.
tmi후기.
-참고로 여명이 처음부터 여급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tmi하자면, 여급은 기환술이 아닌, 오로지 기술만으로 만들어진 순수 ‘태엽인간’이기에 그렇다.
-피부는 인면지주의 거미줄을 이용해서 만들어져, 인간의 피부와 다를 바가 없다.
-이전 편 후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천의각은 무림판 공돌이들이며. 중원삼국에서 가장 발전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태엽인간은 기환학사들이 신체 일부가 없는 이들을 위해 실험하는 의료용품을 위한 시험작이다.
-태엽인간의 생김새는 오로지 천의각 학사들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고. 미인이거나 미남인 경우가 많다.
-미래형 Ai만 존재한다면 안드로이드 완성이라고 보면 된다.
-훗날의 얘기지만. 중원삼국이 스팀펑크, 아니 태엽펑크가 일어나는 시초라 할 수 있다.
-신체 일부를 잃은 무림인들이 태엽 신체로 육체 개조를 하는 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