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42화 (242/261)

242-남자가 일찍 죽는 이유(5)

태엽인형. 혹은 오토마톤(Automaton).

여명은 그다지 취미가 아니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핫도그 집 사장 녀석은 그런 걸 참 좋아했다.

-이 엔틱함이 참 멋스럽고 좋다니까, 흐흐!

-…그런 게?

-태엽만으로 움직인다는 점도 좋고. 이런 것도 다 재테크가 되는 거야.

-참 나, 별게 다 재테크네.

본의 아니게 녀석의 재테크인지 덕질인지 모를 것과 어울리며 여명은 태엽인형이란 게 참 신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로지 태엽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기계장치.

뭇 형용하기 힘든 신비로움과 기괴함이 어우러져 보고 있노라면 특이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만약 이런 태엽 기술이 꾸준히 발전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석유나 전력이 아닌, 태엽력(胎葉力)이 발전했을지도?

정말 웃기기도 않는 호기심이지만. 여명은 금방 관심을 껐다.

도태되는 것에는 도태되는 이유가 있는 법이며. 현 세상을 지배하는 건 전력과 석유였으니.

한데.

“나리. 죄송하지만 이만 제 머리를 돌려주시겠어요?”

“…아, 미안합니다.”

“후후, 다음부터 조심해주세요.”

“…….”

아무래도 여명의 생각은 틀린 모양이다.

여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엇이 어처구니없느냐고?

“전부 이상하네….”

여명이 경악한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이 태엽인형이 기환술이 아닌, 오직 기술(技術)만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사실이었다.

‘내공의 흔적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에너지원이 보이는 것도 아니야. 그럼 진짜 수작업으로 이 여자 인형을 만들었다는 거잖아?’

경악할 사실이었다.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도무지 원리조차 감이 안 잡히며. 태엽인형이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자체도 이해 안 가는 구석투성이다.

아마 현대로 태엽인형을 가져가면 과학계가 경악하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서 두 번째로 경악한 사실은.

‘여기 머무는 모든 이들이 다 태엽인형이야.’

한번 천안이 태엽인형을 인식하자, 드디어 보인다.

여급을 포함한 숙수, 그리고 점소이와 객잔의 객들을 합친 총 열 명의 사람들, 그들이 전부 태엽인형이란 것이.

그리고 마지막. 그가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이 객잔 전체가 태엽으로 이루어져 있구나….’

또각또각.

들린다.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가.

그리고 보인다. 객잔 전체를 이루는 모든 게.

‘기관진식(機關陣式)이라고 했던가?’

기계로 이루어져 있는 기술의 총체(總體)란 사실을.

헛웃음이 안 나올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의문은.

‘여긴 대체 장르가 뭐야?’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세상 장르는 참 복잡하다 싶은 여명이었다.

* * *

“후후, 생각한 것보다 일찍 답을 알아냈구나. 시간이 좀 더 걸릴 줄 알았거늘.”

“저도 처음엔 눈치 못 챘어요. 근데 음식을 먹어보니 이상한 걸 알겠더라고요.”

“음식?”

“맛이 너무 일정해요. 마치 기계가 만든 것처럼.”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언가 정성(精誠)을 들여 만든 느낌이 하나도 없다고 할까?

“음식이란 솔직하니까요.”

스승인 강태산은 옛 시대의 요리사 특유의 정신론을 언급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지론이 있었다.

-요리사의 손길을 탄 음식에는 ‘힘’이 깃드는 법이다. 정성일 수도 있으며. 먹는 이를 생각하는 성의 등이 이러한 힘의 요소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이러한 힘을 깃들게 하여 손님에게 100%를 넘어서 200%, 1,000%의 만족감을 주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의 일이라 할 수 있지. 결코 기계 따위로는 하지 못하는 일이지, 암!!

누군가는 이런 말을 듣고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할 수도 있다만. 여명은 강태산에게 동의한다.

아닌 말로 요리사란 직업이 수천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이어진 것만 보아도 요리사의 역할은 단순히 재료를 다듬고 레시피를 만드는 것이 아닌, 먹는 이로 하여금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요리에는 그 ‘힘’이란 게 없어요. 도저히 사람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죠.”

“그거 흥미로운 관점이구나. 훗날 그대의 스승을 만나보면 재밌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겠어.”

“언젠가 그럴 기회가 있으면 좋긴 하겠네요. 어쨌든 여우님. 이제 슬슬 이 객잔의 정체를 가르쳐주시죠.”

“급하긴.”

미곡왕은 하여튼 사내란 것들은 기다림의 미학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자력으로 천의각의 비밀 중 하나를 알아낸 것은 칭찬할 일이었고. 그녀는.

“원래는 몇 가지 절차를 더 밟아야 하는 것이 옳으나. 특별히 본녀가 자비를 베풀도록 하마.”

“감사해야 할 부분이죠?”

“당연히!”

“…감사는 나중에 물질적인 것으로 보여드릴게요.”

“그대는 역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구나, 후후.”

툭툭.

미곡왕은 자신의 꼬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쳤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혹은 잠시 멈칫하며.

“그대는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 이 객잔에는 악보(樂譜)가 있단다.”

“악보라고요?”

“그래, 아마 그 어린 것은 진작 눈치챘을 터이지만.”

“…멍.”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하며 모른 척하는 설기였지만. 여명은 저게 거짓말이란 걸 바로 알았다.

‘이럴 줄 알았지.’

역시 다 알고 있었으면서 아무것도 안 가르쳐준 거다.

고약한 놈.

“천의각의 출입은 누구에게도 평등하나. 그 본모습을 보는 것은 얼마 되지 않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테지?”

“…걸러내는 건가요?”

“옳다. 오만불손한 것들이지, 후후.”

“…….”

“또한 걸러내는 내용은 항상 달라지지. 때론 지혜일 수도 있으며. 어떤 날은 재주나 무력을 보는 날도 있지. 뭐, 오늘은 지혜를 본 것 같다만.”

“저, 저만 왔으면 무조건 탈락했겠네요.”

“아니, 조금 시간은 걸렸어도 그대는 알았을 것이야. 그대는 본녀가 인정한 사내인데, 어찌 이를 모를까.”

“…으음.”

때때로 과한 신뢰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일이라더니.

‘정확하네.’

여명이 쓴웃음을 짓고 있는 줄도 모르며 미곡왕의 박자가 끝이 났을 때.

드륵, 드르르륵!

녹슨 기계가 억지로 돌아가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식탁이 회전하며 점차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그야말로 어릴 적 애니메이션에서나 볼법한 비밀스러운 장치였고. 사라진 식탁을 대신해 모습을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의 것이었다.

“내려가자꾸나.”

“…참 나.”

이제 하다 하다.

“승강기가 다 나오네.”

이제 놀라기도 지친다며 여명의 입에선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 * *

만약 지하에 숨겨진 공간이 있었다면 여명이 모를 일이 없었을 것이다.

기환학사란 인간들의 눈은 특수했고. 무림인의 기감과 다르지만. 특수한 직감 같은 것이 있었으니까.

한데도 알지 못했다는 건….

“이래서였구나.”

승강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여명은 총 다섯 차례 승강기를 갈아타야 했는데.

승강기는 아래로도 가지만, 뒤로도 가고. 위로도 가며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월….”

“글쎄? 방 찾기 게임도 이것보단 쉽지 않을까?”

또 웃긴 건 승강기는 숨겨져 있었으며. 치밀하게도 페이크가 섞여 있었다.

말 그대로 미로였으며. 이 미로를 빠져나가기 위해선 처음 천의객잔을 방문했을 때 주어진 ‘그날의 힌트’와 그밖에 추리 능력 등이 다양하게 필요한 것이다.

만약 꼼수로 통로를 발견했다고 해도 잘못된 답을 찾으면 천의객잔과 정 반대편에 있는 절벽으로 떨어질 것이고. 설사 절대고수급 무력을 가졌을지라도.

“아, 그건 건들지 말거라. 지반이 통째로 무너질 터이니.”

“…….”

압사당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땅속을 빠져나오기 위해 오만 고생을 다 할 것임이 분명하리라.

‘기력도 내공도 아니고. 오로지 순수한 기술력만으로 이런 걸 만들었다는 게 진짜….’

━미친 것 같다.

“어휴, 소름이야.”

“월….”

설기도 동의한다며 혀를 찼다.

존경스러운 게 당연한 일이거늘, 이상하게 이 공간을 마주하고 있자니 광기(狂氣) 어린 집념 때문에 소름이 끼칠 따름이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태엽인형이나 태엽객잔(胎葉客棧)도 그렇고. 이러한 승강기나 미로도 그렇고.

하나같이 기괴하고도 묘한 공포감을 선사하는 것들뿐이다.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와 같은….

“이러니까 황룡이 문을 맡겼나 보다.”

“월.”

찾아온 사람조차 후회하며 다시 돌아가고 말 테니까.

여긴 그 정도로 기분 나쁠 정도로 철저하고도 사람을 농락하는 공간이었다.

비밀이 지켜지는 수준을 넘어 알아낼 엄두조차 내지 못할 터.

“후후, 아마 그들에게 말해준다면 칭찬처럼 들을 것이다. 아, 여기가 마지막이다.”

“…진짜죠?”

“참이니라.”

“으음….”

“후후, 그래 계속 의심하고 또 의심해라. 천의각에서 순진한 것은 죄악으로 여겨지니.”

“…….”

여명의 안에서 천의각에 대한 평가가 사이코패스 집단으로 격상되었고. 미곡왕은 여유롭게 미로의 마지막 관문인 철문과 어떠한 수학 계산식을 관찰했다.

“호오, 이번에는 자물쇠인가? 어디…. 아, 이런 식이군.”

방대한 계산식을 풀어내 8자리 비밀번호를 알아내야만 열리는 자물쇠를 미곡왕은 심심풀이 스도쿠 퍼즐을 풀 듯 간단히 풀어내었다.

“월!”

“…너도 풀었냐?”

자신은 공식조차 이해가 안 가는데, 이토록 단시간에 풀어내는 여우와 강아지를 보고 있자니 자괴감이 들 정도다.

여우와 개보다 못한 인간이라니….

‘나 참. 이래서 사람이 수학 공부를 해야 해.’

좀 창피하더라도 중학교 수학 문제집이나 풀어볼까 고민을 하고 있으니, 자물쇠가 열리며 철문 또한 같이 열렸다.

쿠, 쿠구…구구구…구궁.

얼마나 오랜 시간 열리지 않았으면 녹슨 소리를 내는 철문이었는데, 데자뷰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객잔에서도 그렇고. 여기 찾기 더럽게 힘들구나.’

왠지 앞서 천의각을 찾으려고 했다가 눈물을 머금고 돌아갔어야 할 수포자 동지들이 뇌리를 스쳐 가며 여명의 눈망울은 촉촉하게 변했다.

“가자꾸나. 음? 무슨 일 있더냐?”

“…아니요. 그냥 동질감이 좀 들어서요.”

“음?”

“됐고. 얼른 가시죠.”

“그러자꾸나.”

아장아장한 발걸음으로 여우와 강아지가 앞서 발걸음을 옮기고. 여명이 그 뒤를 따라가니 그제야 보이는 것은 바깥의 풍경이었으며. 천의각의 본거지라 할 만한 곳을 눈에 담은 여명은 기분이 우울한 와중에도 피식하며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성격은 괴상해도 감성 하나는 죽이네.”

쏴아아아아!

폭포의 뒤편에 자리 잡은 지나치게 거대한 건축물이 그들을 환영했고. 여명은 멋쩍게 웃었다.

…인정하기 싫은데 자기 취향을 저격당했음을 인정하며.

………

………

“후, 제법 쓸 만한 젊은이군.”

“낭만을 아네, 낭만을.”

“호오, 저 젊은 나이에 벌써 등산경인가? 대단하군.”

“천의각에 들어오라고 한번 꼬셔 봐?”

“크흠, 그, 그럼 우리 쪽에 양보해 주지? 우리 인력 딸리는데….”

“죽고 싶나…!”

사람들은 싸웠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허나 인력이 귀한 그들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

한 명이라도 귀한 인력을 가지고 싶은 건 당연한 욕심이기에.

“우리 기술원생(技術院生)으로 삼으면 딱 좋을 것 같구먼.”

천의각의 각주, ‘만박자’는 유망한 연구 노비…, 아니 젊은이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tmi후기.

-기술원생은 현대로 따지면 대학원생이다.

-천의각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이 인력이 얼마 안 되는 줄 알지만. 상당히 많다.

-기환학사 자체의 숫자는 얼마 안 되지만. 수많은 장인과 학자 등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대학교수 같은 이들이다.

-중원삼국에선 실현하기 어려운 기술을 실현시키기 위해 천의각의 몸을 맡긴 객들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미곡왕과 설기가 마지막으로 푼 문제는 미적분이며. 천의각에선 기초과정이다.

-여명이 천의각을 싫어하게 되는 가장 큰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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