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남자가 일찍 죽는 이유(6)
쏴아아아!
한국에선 거대한 폭포를 볼 일이 드물다.
그런 만큼 외국 관광을 나간 이들이 가끔 웅대한 폭포를 보고 놀라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 여명이 지금 느끼는 심정도 그러할 것이다.
“폭이 거의 800미터는 되겠는데?”
높이도 대략 12층 빌딩과 맞먹을 정도이니….
‘여기가 드러날 일이 절대 없겠네.’
천의각이 어떻게 그 존재를 숨기고 있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강렬한 폭포의 방벽과 폭포의 웅장한 소리가 모든 걸 집어삼키고 있으니 어찌 이곳을 발견할 수 있으랴.
“잘도 이런 곳에 건축물을 지을 생각을 했구나….”
“후후, 대웅 폭포라고 하느니라. 절벽을 보면 곰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불리지.”
“진짜요?”
“궁금하면 나중에 한번 보거라 기회가 있을 테니.”
“크흠….”
관광 욕심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곳이었고. 여명이 헛기침을 했다.
곰처럼 생긴 바위는 보고 싶었으니까.
그때.
끼이이익…!
“녀석들, 그래도 예의는 아는구나. 들어가자꾸나.”
건축물의 석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입구가 드러나자 여명도 관광에 대한 생각은 잊은 채 천의각으로 입성했다.
과연 또 어떤 것이 그를 놀라게 할지 긴장하며.
‘이제 좀 그만 놀라자.’
심장도 좀 쉬어줘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여명은 그런 마음을 품으며 천의각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쿠웅! 쿠우웅!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똑바로 잡아, 이 머저리야!!”
“죄, 죄송합니다, 스승님!”
쿵쾅! 쿵쾅-!
“허허, 기압 조절 좀 잘하지? 지금 이게 몇 번째인가?”
“시정하겠습니다…!”
카앙! 카아아앙!
“계산식 똑바로 적은 거 맞아? 왜 이것밖에 못 버텨!”
“다, 다시 계산해 보겠습니다!”
“똑바로 해, 똑바로!! 이거 돈은 그냥 나오는 줄 알아…!”
“네, 네엡!”
“말꼬리 끌지 마, 이 머저리 새끼야!”
“…!!?”
…여명이 본 것은 지극히 다큐 하고도 삶의 고단함이 엿보이는 공방(工房)의 모습이었다.
“……여기 원래 이래요?”
“천의각에선 일상이지.”
“그, 그래요….”
여명은 떨떠름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어서.
‘여기 무림이 아니라 현대였나?’
언제 한번 갔던 어느 공대 교수의 연구소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었고. 여명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고 있었다.
…여기 있으면, 뭐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 * *
지금까지 본 것이 마냥 판타지SF나 스팀펑크였다면, 이제부터 보이는 것은 삶의 애환과 다를 바 없는 현장의 치열함이었다.
“이거 계산식을 다시 수정해야 할 것 같아.”
“어디서부터요?”
“처음부터 다시.”
“…….”
“울어도 되긴 해. 근데 손은 움직여. 계산해야지?”
“…끄으으윽!”
미치도록 큰 칠판에 적힌 공식은 대략 3개월은 들여 채웠을 수많은 숫자와 공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허나 그걸 전부 지우고 기어이 다시금 계산에 들어가는 어떤 교수와 대학원생, 아니 장인과 제자는 진짜 울면서 다시 공식을 써갔다.
웬만한 공포 영화보다 더욱 소름 끼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얼굴이 창백해지게 할 광기가 느껴져 뒤통수에 서늘함이 생긴다.
허나 더욱 오싹한 사실은.
“이거 다시 해. 이래선 태엽이 안 움직여.”
“아아아악!!”
“괴로워하는 건 상관없는데, 이거 못 끝내면 우리 굶어 죽는다는 것만 알아둬라.”
“씨…!!”
“미친 척해도 소용없어, 나도 다 해본 짓이야.”
“…!!?”
저러한 광기의 광경이 무려 한 곳도 아니고, 사방팔방 모든 곳에서 다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산처럼 쌓인 책들과 논문.
갖가지 광석과 수천 도의 열기를 내뿜는 화로.
끊이지 않는 고성과 노가다의 향연.
순간 여기가 지옥이 아닌가 의심이 들 광경이었고. 여명은 설기에게 슬쩍 말했다.
“설기야, 우리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지 않을까?”
“…월.”
설기는 동감한다며 빨리 벗어나려 했다.
허나 아쉽게도.
“허허, 귀중한 객이 오셨구먼.”
……입구에는 어느새 그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세우듯 사람들이 서 있었다.
흠칫!
여명은 다른 의미로 기겁했다.
그들을 포위하듯 서 있는 사람들은 물론 놀랄 상황이지만. 그가 흠칫거릴 이유로는 부족했다.
그의 간덩이는 십만대산을 갔다 온 이후 수십 배는 더 커진 상태였으니까.
그렇기에 그가 이토록 기겁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이 사람들…. 하나같이 기환학사다.’
그것도 기예화나 사마윤윤 같은 어설픈 기환학사가 아니라, 하나같이 여명과 비슷하거나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른 기환학사임이 분명하다.
특히….
‘저 어르신은, 하…! 자허 영감님보다 높을지도?’
여명이 아는 한 자허와 지괴를 뛰어넘을 기환학사는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삼국이 넓긴 한 모양이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더니….
그렇게 여명은 인생 처음으로 수십 명가량의 기환학사를 마주하는 귀한 경험을 하며 감탄이 계속 나올 때, 미곡왕이 먼저 반가움을 표시했다.
“간만이구나, 천의각주.”
“미곡왕께서도 여전하시군.”
천의각주라 불린 노인은 미곡왕과 안면이 있는지 반가워 보였고, 반가워하는 게 마냥 착각이 아닌지 대화 내용 자체는 부드럽게 흘러갔다.
“최근 연구는 진전이 있는가.”
“늘 그렇듯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 물론 위대한 황룡이 규제(規制)를 조금만 완화해줘도 좀 더 그럴듯한 결과가 나올 테지만.”
“후후, 건방진 노인이로다. 어찌 그리도 호기심이 많은지.”
“천성이 이런 것을 어쩌겠소, 허허.”
“우후후!”
“어허허!”
…아니, 착각이었다. 대화가 이뤄질수록 숨 막히는 공방전을 보는 듯했고. 여명을 비롯한 사람들은 땀을 삐질거렸다.
‘여우님한테 저렇게 막 대하는 어르신도 처음이네.’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지만. 그래도 어딘지 막 대하는 느낌이 있었고. 저러다 여우님한테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참 초지일관한 건방짐이로다.”
그녀는 그다지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유쾌해 보였지.
“흘흘, 그저 귀여운 후배의 재롱이라고 여기시오.”
“귀여운 후배는 무슨! 역겨운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되었고. 그쪽의 후배나 좀 소개시켜 주시오. 늙은이들끼리 대화하다가 세월만 흐르니, 원.”
“이 녀석이…!”
“소개 안 시켜줄 거면 나부터 먼저 하지. 반갑구먼, 유망한 젊은이.”
“…….”
“허허, 인사도 안 받아주는가?”
“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여명은 사과했다.
워낙 얼떨떨하였다고 해도, 실례한 것은 맞으니까.
“흘흘 솔직하고 순박하구먼. 그리 진지하게 사과하니 내가 도리어 무안하지 않나.”
“아아, 예에….”
여명은 실례되는 걸 알지만 또다시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이유? 별다른 게 아니었다.
‘왜 저렇게 보지?’
천의각주란 양반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야리꾸리해서….
여자도 아니고, 남자한테 저런 시선을 받으며 여명은 다른 의미로 오싹함을 느꼈다.
왜 저렇게 봐?
* * *
천의각주, 혹은 만박자.
지천명에 이르러 자신이 기환학사의 재능, 즉 선골(仙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환술을 익혀 3년도 되지 않아 기환학사의 정점을 찍었다는 불세출의 대가가 바로 그였다.
허나 그가 기환학사가 되기 전에도 그는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삼국에서도 손꼽히는 기관진식의 거장(巨匠)이기 때문이었다.
무수한 기물을 만들어내고.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편리한 도구를 만들어내어 뭇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이였으며. 기환학사가 되기 전에도 붙여진 별호가 만물의 모든 것을 아는 자라 하여 만박자(萬博者)였으니.
특이하기 짝이 없는 이력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시대의 걸물이란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자마자 천의각을 세워 5년도 채 되지 않아 황룡국 최고의 세력인 천의각을 일구어내며. 수많은 업적을 이루어내고. 황룡국을 넘어 삼국 전체의 백성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이리 말한다.
-사람은 좋지, 참 좋아…, 한데 엮이고 싶지는 않아.
-훌륭한 분이지. 아암, 훌륭하고말고. ……다만 친해지고 싶지는 않구먼.
-……참, 대단한 양반이지.
자신이 들은 평가를 풀이하자면 뭐랄까, 분명 굉장한 사람은 맞지만. 그래도 엮이지 않는 편이 좋은….
깔끔하게 요약하자면 ‘껄끄러운 양반’이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왜 껄끄러운지 알겠네.’
여명은 천산의 영감님들이 왜 이 어르신을 그렇게 평가했는지 깨달으며 쓰게 웃었다.
“황제를 뵙고 싶다고? 허허, 목숨 아까운지 모르는 젊은이로군. 그러지 말고 차라리 천의각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목숨을 버리기보단 삼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게 더 보람찰 걸세.”
“아, 아니요 저는 수학은 젬병인지라….”
“수리학(數理學) 말인가? 허허, 걱정 말게. 원래 수리학은 배우다 보면 익숙해지는 게지. 그러니 천의각으로 오게.”
“…아니요, 저는 생업이 따로 있어서.”
“그 또한 걱정 말게. 우리는 겸업(兼業)도 허락하니.”
“…….”
“아, 그러고 보니 신비한 요리를 만든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줄 수 있겠나? 그 원리가 참으로 궁금하구먼.”
“…으음.”
“아, 요리하니까 생각나는 것인데, 천의각에 들어오게 된다면-.”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가 어질어질한다.
여명은 이 양반이 이미 자신을 노비, 아니 천의각으로 들어올 것을 확정한 듯 말하는 걸 들으며 정신이 없었다.
돌려서 거절을 해도, 혹은 직설적으로 안 된다고 해도 이 양반에겐 이미 정해진 답안이 있었고. 거절은 또 거절해버리는 철면(鐵面)을 발휘하니, 원.
‘말이 안 통해.’
엄밀히 말해 나쁜 양반은 아니었다. 다만 친해지기엔 어려운 양반이란 게 문제이지.
“그만 좀 하거라. 우리 주인장이 안 한다면 안 한다는 것이지. 천의각주 그대가 강요할 일이 아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제안하는 것이오. 제안.”
“…아무리 봐도 강압인데, 어디서 헛소리더냐!”
“내가 말이오? 언제…?”
“…….”
진심으로 자신이 한 것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 특이한 사고회로가 아닐 수 없었고. 여명은 쓰게 웃었다.
더 얘기했다간 여우님이나 자신이나 복장만 터질 것 같다.
“저 어르신. 정말 죄송한데 일단 황궁으로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으음? 정말 황제를 만날 생각인가?”
“…아까부터 말한 것 같은데요.”
“허허, 목숨이 아홉 개가 아니고서야 권하고 싶지 않은 일이구먼.”
“…….”
만박자의 시선은 마치 자살희망자를 보는 눈빛이었다.
“뭐, 여러 번 들은 말이네요.”
이미 무수한 이들의 말을 통해 여명도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지 알고 있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거죠, 뭐.”
“…흠, 역시 젊어서 그런가? 말린다고 들을 눈이 아니구먼.”
“그런 것도 아세요?”
“이 나이까지 살다 보면 많은 것이 보이는 법일세, 허허.”
만박자의 표정에서 현기(玄機)가 감돌았다.
사정을 듣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처럼.
‘…이런 사람이구나.’
찰나의 순간 목격했을 뿐이지만. 여명은 저 현기야말로 만박자의 본질이 아닌가 싶었다.
마냥 괴짜 같고. 막무가내 같아도 흔히 ‘현자’라 불리는 양반이 가질 법한 범상치 않은 분위기.
저런 면 때문에 여우님도 좋게 보는 걸지도…?
“흐음, 뭐 어쩔 수 없지. 결심을 굳힌 젊은이가 원한다고 하는데 안 보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럼…?”
“한데….”
“……불안하게 왜 그러세요?”
말꼬리를 늘이는 만박자를 보며 여명이 불안한 듯 중얼거리니 여명은 초조한 표정을 지었고. 만박자는….
“백룡성과 전쟁을 준비 중인지라, 아무래도 지금은 좀….”
“???”
……아직 인생 삼재가 안 끝났던가?
여명은 허망한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한테 왜 그래?’
하필 하늘은 우라지게도 맑아 더욱 기분 나쁜 여명이었다.
자신을 약 올리는 것 같아서.
tmi후기.
-만박자는 초반에 한 번씩 언급된 적이 있다.(24화 참고)
-나중의 일이지만. 어느 장인들의 계산식의 틀린 부분을 확인한 설기가 훈수를 두고 영입 대상 1순위가 된다.
-천의각은 수학, 천문학, 물리학, 의학, 태엽공학, 무림 공학 등등을 연구하는 통합 연구 기관이며. 삼국의 여러 건축물과 기물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돈을 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지만. 연구비와 재료, 그리고 시험작을 만드느라 항상 적자에 시달린다.
-이미 플라스틱이나 비닐, 그리고 석유와 전력(電力), 원자력 등의 활용법도 알지만. 황룡의 규제로 인해 모두 만들지 못하는 중이다.
-참고로 만박자는 평생을 발명가로 살아온지라 결혼은커녕 연애도 한 적이 없는 지고지순함을 간직하고 있다.
-올해 나이 93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