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44화 (244/261)

244-백세지사(百世之師)(1)

백룡성과 천의각.

구파와 세가란 이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아스라이 흩어져 가는 새벽 구름의 가려진 달빛과 같다면, 백룡성과 천의각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봄날의 새싹과도 마찬가지였다.

정파제일인 무봉일패가 이끄는 백룡성.

황룡국 최고의 기환학사 만박자가 이끄는 천의각.

어느 쪽이건 만만치 않은 세력이었고. 호기심 많은 삼국의 호사꾼들 사이에선 이 둘을 비교하며 누가 더 우월한지 평가하는 게 유행과도 같았다.

-백룡성이 제일이다. 그들은 그냥 무림문파가 아닌, 군문(軍門)이며, 일만에 이르는 병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만에 이르는 병력 전원이 일류급 무인이다. 그야말로 일만이 천만의 병력을 압도할 것이다.

-아니다, 천의각이 제일이다. 그들은 비록 소수(少數)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천외기물(天外奇物)은 그야말로 인간의 상식을 벗어나 있으며. 지난날 대요물과 같은 괴물조차 ‘천둥의 기물’로 단번에 없앴지 않았던가. 일만이건 천만이건, 천벌(天伐)을 다루는 이들 앞에선 무용(無用)할 뿐이다.

사실상 어느 쪽이건 틀린 의견은 아니었다.

백룡성이 가진 강대한 군세와 무공, 그리고 무봉일패가 가진 힘은 천 년 전 제국이라 불렸던 이들조차 단숨에 고꾸라트리며 멸망시킬 정도의 힘이 있었으니까.

반대로 천의각은 세력은 부족할지라도 영수조차 경시하지 못하는 기물을 가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어느 쪽이건 용호상박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세력이었음이다.

그렇기에 세인들은 궁금했다.

과연 어떤 이들이 진정으로 황룡국의 제일인지를.

“어떤 세상이건 누가 제일 센지 궁금해하는 건 똑같네.”

“월….”

여명은 역시 사람 사는 동네는 어디든 다 비슷하다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자신 또한 과연 누가 강할지 호기심이 약간 생기는 것을 느꼈고.

‘나도 똑같은 놈이야.’

약간의 자괴감 비스름한 것을 느꼈다.

“그래서, 서로가 누가 더 센지 결판내려고 전쟁하는 겁니까?”

여명은 백룡성과 천의각이 전쟁을 하건 말건 솔직히 큰 관심이 없었다만, 당장 황성으로 가고 싶은 상황에서 천의각이 전쟁 때문에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심히 실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렇다 보니 묘하게 퉁명스레 말이 나갔는데, 만박자는 마냥 인자하게 그를 상대했다.

“허허, 설마 그런 유치한 이유로 싸우겠는가. 애초에 천의각과 백룡성의 분야는 전혀 통일되는 구석이 없는데, 서로를 비교해서 무얼 할까. 그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이면 그만이지.”

“…그, 그렇죠.”

생각보다 정상적인 답변이었다. 지금까지 행동하는 것만 보면 사이코패스 집단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

“-허나,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할 마음은 없지. 마침 실험해보고 싶은 것도 많으니, 흘흘!”

“동의합니다, 각주. 최근에 개발한 용암포(鎔巖砲)가 참으로 괜찮게 완성됐지요.”

“무림인이건 뭐건, 그걸 맞으면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모두 녹을 겁니다, 으흐흐-!”

“…….”

…아니구나, 역시 처음 예측한 것처럼 제대로 미친 인간들이 맞았다.

‘관상은 과학이라더니….’

여명은 다시금 설기를 안은 채 한 발자국 물러섰다.

언제라도 도주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듯.

“우리 주인장을 그만 놀리고. 진짜 이유를 말해 보아라. 백룡 그 아이와 싸우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미곡왕은 자신의 혀로 털을 손질하며 그들의 대화에 코웃음 쳤고. 마냥 같잖다며 물음을 던졌다.

웃기지도 않은 농은 됐으니, 진심을 말해보라는 듯이.

“흐, 역시 미곡왕이시구려. 반응이 참 재미가 없소.”

미곡왕의 반응이 기대 이하라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만박자는 개구쟁이 같은 환한 미소를 짓더니.

“뭐, 거창하게 전쟁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말게나. 어차피 가상(假像)전쟁일 뿐이니.”

“가상…전쟁?”

여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명을 들으니 도리어 더욱 이해가 안 간다며.

* * *

만박자는 말했지만. 결국 어떤 세력이건 자신만의 영역이 있으며. 그 분야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 그만인 바였다.

여명의 식당이 한식을 팔 뿐인 식당이라면, 다른 곳은 중식이나 양식을 파는 것처럼.

허나 분야가 나뉘어져 있다고 해서 서로가 교류하지 않는 건 아닌 것처럼.

“천의각과 백룡성도 교류를 할 뿐이지.”

“…교류를 하는데 전쟁을 한다고요?”

“그것만큼 확실한 교류가 없으니까.”

“??”

“월.”

설기는 여명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문화와 가치관, 역사, 교육 등등이 전부 다른 세상에서 온 이가 어찌 중원삼국의 감성을 느낄까.

“아니, 감성이고 뭐고 전쟁이거든?”

“월월.”

“…아니, 이게 내가 어린애 취급당할 일이야?”

“흘흘, 이해하게나. 그 강아지의 말도 일리는 있으니.”

만박자는 손주들이 재롱부리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조부처럼 허허롭게 웃었다.

젊은이들만큼 늙은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들도 또 없다는 표정이었고, 그는 설명을 보태었다.

“전쟁이라고 한들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의미하는 게 아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것이 가상전쟁의 목적이지.”

백룡성이나 천의각이나 공통점이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하나의 집단 안에 속해 있는 세력이었다.

“황실?”

“정답이네.”

백룡성이나 천의각이나 결국 황룡에게 속해 있는 곳이며. 어찌 보면 나랏일을 하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황실의 사명은 결국 백성과 나라를 지키는 것이지.”

그렇기에 황룡은 천의각과 백룡성에게 일정 부분에 있어서 높은 권리를 하사했다.

예를 들어.

“백룡성에게 사병(私兵)을, 천의각에겐 병기(兵器)의 개발 허용을 해준 것이지.”

“…혹시 그게 전부?”

“맞네, 나라를, 나아가 삼국 전체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지.”

의미심장하면서도 오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황룡국만이 아니라 삼국 전체를 지킨다니, 저게 무슨 뜻인가?

“허허, 아마 젊은 후배는 잘 모를 터이지만. 삼국에는 적들이 많다네. 비록 삼신수 덕분에 이 평화가 유지되고 있으나, 삼신수가 만약 하계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선계나 극락정토와 같은 곳으로 떠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삼국이란 이름은 빠르게 사라지고. 다시금 춘추전국의 시대가 찾아올 테지.”

“…무슨?”

뜬금 스케일이 국제적으로 번지는 만박자의 설명에 여명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고. 곧장 미곡왕을 보았다.

지금 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다 믿어도 되는 것이냐고.

“믿어도 되느니라, 본녀가 보장할 터이니.”

“…허어.”

참이라는 대목에서 여명이 할 말을 잃어버리자 만박자는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흐흐, 믿지 못할 얘기일 테지. 그럴 만하네, 그도 그럴 게 천의각과 백룡성의 ‘진정한 역할’에 대해 아는 건 오직 영수와 황실의 관계자뿐이니.”

백룡성과 천의각이 황룡국에 미치는 강대한 권한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 것이었고. 만약 호사가들이 알았다면 충격으로 몸져누웠을지도 모를 진실일 터다.

물론 여명에겐 그저 ‘이야, 영화인 줄….’ 하는 감상이 다였지만.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얘기의 핵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혹시나 올지 모르는 먼 미래를 대비하는 것. 그게 백룡성과 천의각의 존재의의란 말이네요.”

“호오, 이해력이 좋구먼.”

“그런 것보단 역사극을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한국 사극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역사 얘기만 봐도 자주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혹시나 찾아올지 모를 재앙에 대한 대비’였다.

…안타깝게도 이런 교훈을 잘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수두룩한 것이 문제였고.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한데 그들은.

“지금부터 미래를 대비한다고요? ……지금부터 계속?”

“당연한 거 아닌가. 국방(國防)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다고.”

“위, 위기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거지 않습니까? 이러면 시간뿐만 아니라, 소비도 장난이 아닐 텐데….”

“설사 위기가 언제 올지 모르더라도, 백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늙은이는 영수들을 참 좋아한다네. 특히 저기 미곡왕을 말일세.”

“…?”

“몰랐는가? 이 국방의 의무를 위한 자금과 세력을 만든 것이 미곡왕이라네. 하여튼 성격이랑 다르게 좋은 여우란 말이지.”

“누구 성격을 감히 평가하는 것이냐, 이 어린 녀석이!”

“어허허!”

“…….”

여명은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이야, 왜 이렇게 자괴감이 들지?’

여우 하나보다 못한 국방이라니….

‘여우님 하나가 300명 국회의원보다 더 나을지도?’

역성혁명, 아니 여우 혁명 한번 일으켜봐?

* * *

여명에게 어떤 불온한 사상이 피어오르는지도 모른 채 만박자가 설명을 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가 각자의 방식으로 국방을 책임지는 중대한 임무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네. 다만, 아무리 대책을 세우고. 대비를 위한 전력을 쌓는다고 해도 한 번의 실전 상황에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인간이 하는 일 중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음이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백룡성의 일만 병력과 천의각의 천외기물을 서로 실전에서 사용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은 게 다름 아닌 가상전쟁의 시작이었지.”

“…아, 그래서 진짜 전쟁이 아니라는 거군요.”

여명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들이 말하는 전쟁이 진짜 전쟁이 아니고. 어찌 보면 예행연습 비스름한 것이기에 여우님이나 설기나 반응이 태평하기 그지없던 것이구나.

다만.

“위험하지 않나요? 들어보니 천의각의 기물들은 하나같이 만만한 게 없던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실전에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전쟁의 내용을 대강 들어보니, 예비군 각개전투에서 총 들고 입으로 ‘탕탕’ 거리며 소리 내는 수준이 아니다.

실탄 혹은 수류탄을 들고 진짜로 전쟁을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연습하려다 부상자와 사상자가 생겨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데도 괜찮은 것인가?

여명이 의문 섞인 시선을 던지며 물으니.

“상관없다. 우리에겐 그것이 있으니까.”

“…그것?”

“아마 후배도 보았을 것이네. 천의객잔에 만들어놓은 인공체(人工體)를 말일세.”

“서, 설마….”

여명이 일순 떠올린 건 다름 아닌 오토마톤, 마치 정말 살아있던 것만 같던 태엽인형의 모습이었고….

“그것을 가지고 가상전쟁을 치를 것이라네.”

여명의 예상은 확신이 되었다.

그러나 의문이었다. 대체 그 인형으로 어떻게 전쟁을 치를지.

“흐흐, 그럼 반대로 묻겠네. 그 인형이 어떻게 말을 하고 후배 자네를 대접했던 것 같은가?”

“…….”

“모르겠지? 당연한 것이네. 어떻게, 답을 알려줄까.”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무렴. 뭐 별거라고.”

휙.

만박자는 마치 따라오라는 것처럼 뒤돌아섰고. 여명은 얼떨결에 그를 따라 걸었다.

‘궁금하긴 하네.’

과연 어떤 수를 부렸기에 그 인형들은 마치 사람처럼 그를 응대했던 것일까?

지금만큼은 요리사가 아닌, 기환학사로서 호기심을 품으며 여명은 만박자를 따랐다.

그렇게.

“자, 이것이 그 비밀이라네.”

“……아.”

“자네가 보아도 별게 아닌 것 같지? 허허.”

“…….”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가 본 광경은.

“월….”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그 인형은, 아니 ‘그들’은─.

“진짜였구나.”

여명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육신의 반절이 없거나, 생기를 잃은 육신을 부여잡고만 있는….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생자(生者)들의 모습이었다.

“아니지,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지. 그저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천의객잔의 점소이일 뿐이라네, 허허.”

“…….”

“음? 왜 그렇게 보는가?”

“아니요. 그냥….”

멋져서요.

여명은 차마 이 뒷말이 쑥스러워 내뱉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 깨달았다.

앞으로 여명은 이 노인네를 한평생 존경하게 될 것이라고.

백세지사(百世之師).

먼 후세까지 존경하기 마지 없는 이가 있다면 이러하겠지.

여명은 그리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tmi후기.

-태엽인형은 전신마비나, 신체 대부분이 없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의체衣體이며. 천의객잔은 그런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장소라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천의객잔에서 일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천의각과 만박자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며 그들을 돕는 학자가 되고 싶어 한다.

-중원삼국은 겉보기론 평화로워 보이지만. 삼신수가 모습을 감춘다면 모습을 드러낼 요괴들이 많다.

-만화 중 [이누야샤]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세계관처럼 숨겨지거나 봉인된 요괴들이 산처럼 많으며. 천의각과 백룡성을 그런 놈들을 때려잡기 위한 기관이다.

-굳이 예시를 들자면 백룡성은 제임스 본드고. 천의각은 비밀장비 만드는 박사라고 볼 수 있다.

-황룡을 비롯한 삼신수가 하늘로 올라가는 건 앞으로 수천 년 뒤에 일이며. 이후부터 [이누야샤]나 [콘스탄틴] 찍는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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