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45화 (245/261)

245-백세지사(百世之師)(2)

‘생각해 보니 이거 완전 아바타잖아?’

영화 혹은 신화 등에서 자주 나오는 소재이자, 아바타라(Avatara), 혹은 화신(化身) 등등.

쓰이는 말은 많지만. 여명이 봤을 때, 가상전쟁이란 것은 아바타를 이용한 대리전과 다름없었다.

‘일만 장병의 의식을 인공의체(人工衣體) 안에다 집어넣어서 싸우게 한다니, …이거 진짜 무협 정도가 아니라 현대 기술은 한참이나 뛰어넘은 거잖아?’

원리는 간단하다.

기환술 중 상위 기환술로 취급되는 몽환의 술.

전날 자허가 쓴 적도 있는 이 몽환의 술을 응용하여 인공의체와 인간의 정신 사이를 이어준다.

즉, 링크를 이어줌으로서 연결된 이는 인공의체를 자기 몸처럼 쓸 수 있는 것이다.

‘나 참, 기환술 진짜 만만세네.’

현대 과학자들의 꿈 중 하나를 이렇게 이뤄버렸으니, 원.

허나 기환술 같은 비과학적인 것을 마주한다면 아마 과학자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제 머리를 깨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껏 믿어온 상식과 쌓아온 지식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일 테니까.

물론.

“현대에는 이런 재료가 없을 테니, 만드는 건 불가능할 테지만.”

“월.”

“아, 고마워.”

“헥헥.”

“…아까도 만두 줬잖아.”

“월!”

“…왜 하루 세 끼가 아니라 십 끼를 먹어야 만족하는 거지, 넌?”

인면지주의 실.

녹촉(鹿蜀)의 털.

화혈서(火血鼠)의 피.

이밖에 중원삼국 생태계에서만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까지.

이러한 재료가 있지 않고선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것이 현실판 아바타였다.

그리고 그러한 재료들을 가지고 여명은.

“자, 이제 3,201구 남았다.”

열심히 노동(勞動) 중이었다.

* * *

결국 여명을 황성으로 보내주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잡힌 일정 준비를 위해 기환학사들의 손이 비지 않는 게 원인이었다.

-자네를 황성으로 보내려면 천의각의 기환학사 전원의 힘이 필요하지. 그리고 하루는 공 쳤다고 봐야 하고. 하니 우리가 쉽게 힘을 보태주지 못할 테지.

만박자의 말이 맞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황룡을 찾는 주제에, 수십 명 인력의 작업을 온종일 중단해달라는 여명의 부탁은 염치가 없다 못해 양심이 없는 수준과도 같은바.

자영업자 9년 차인 요리사로서 차마 부탁하기도 민망할 정도이니 어쩌겠는가.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없습니까.

대가를 치르거나, 그도 아니면 그들의 일을 재빨리 마칠 수 있도록 도와야지.

-흐음, 이게 그래도 전문직(專門職)이라 자네에게 맡길 일이 있나 싶기도 하네만…. 아, 그게 있었지, 참.

-다행히 할 게 있긴 하네요.

-허허, 그 말대로 마침 적당한 게 있네. 전문직이 아닐지라도 끈기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암.

-…….

‘끈기’라는 대목에서 여명은 어쩐지 뒤통수가 싸늘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인공체가, 그래 의체가 많이 필요하다네. 한데 아무래도 지금 진행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의체 제작에 차질이 빚어져서 말일세.

-제, 제가 해도 되는 건 맞죠?

기계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익숙한 것도 아닌 여명에겐 의체가 마치 수학 난제로 보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만박자는 단언했다.

-이건 그런 분야가 아닐세, 지극히 끈·기와 노·력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네!

-…왜 그 두 단어가 유독 강조되는 걸까요?

불길함에 실체를 확인하듯 여명은 끝내 시작해야 했다.

무려.

-9,930구만 만들면 조립하면 된다네.

-…….

-만약 후배가 저 모든 것을 조립할 수만 있다면 천의각의 모두가 후배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날 것이야, 허허!

-…그냥 때려칠까.

-어허허.

도망갈까 생각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여명은 만박자의 뒷말을 듣고 말았다.

-이 의체가 많아진다면 더욱 많은 이들에게 몸을 줄 수 있을 터인데…. 참 아쉬운 일이야.

-이, 일단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기나 해보세요.

-오오, 해주는 겐가!

-……네.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는데, 여명의 성격상 거절할 수 없는 제안과 마찬가지였다.

이미 여명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누군가가 즐겁게 일하는 꿈과 같은 광경을 보았으니까.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작업이 시작된 후, 다행인 점 하나와 불행한 점 하나가 각각 생겼다.

일단 다행인 점은.

-되, 되네?

기환술은 태엽인형을 만드는 데 특화된 직종이란 사실이었다.

기력을 가느다란 실처럼 만들어 설계도대로 태엽과 몸의 파츠 등을 조립하기만 하면 막힘없이 차곡차곡 진행되었는데, 마치 설명서를 읽고 블록이나 퍼즐을 맞추는 감각이었다.

왕년에 취미로 1만 피스 퍼즐까지 해본 경력이 있던 여명이었고. 그 경험이 인공의체를 조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불행한 점은.

-……차라리 일만 피스 퍼즐이 나아.

체감상 하나를 조립하는 데 들어가는 태엽의 숫자가 기본 50만 개.

어떤 것은 100만 개 가까운 태엽도 있었고. 여명은 백만 피스 퍼즐을 맞추는 느낌으로 기환술을 전력으로 활용해야 했다.

만약 그의 기력이 평균을 한참이나 웃도는 수준이 아니고. 경지가 낮았다면 하나를 조립하고 그대로 기절했을 것임이 분명하리라.

-…하루 최대 50구는 가능하겠네.

왜 만박자가 단순한 노동이라고 했는지 알겠다.

한 번 기환술로 감만 잡는다면 기력의 실이 공장의 자동조립 장치처럼 알아서 해결해주니 진득하게 단순반복만 하면 누구나 조립가능한 일인 것이다.

참으로…….

-염병.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는 무한노동이었다.

“후우!”

“월.”

“힘들긴 해도, 아직까진 할 만해.”

온몸을 적신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니, 뽀송했던 수건이 흠뻑 젖어 버렸다.

비를 맞아도 이것보단 땀이 덜 나지 않을까 싶었고. 탈수증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리 많이 힘들죠? 여기 공청석유 좀 드세요.”

“…아, 고마워요.”

“뭘요. ‘저희’를 위해 이렇게 노력해 주는데.”

“하하….”

공청석유.

중원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영약들에게 만약 순위를 매긴다면, 단언컨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영약이 다름 아닌 공청석유였다.

무림인이 한 방울만 마셔도 소원이 없다고 하며.

일반 양민이 한 방울을 마신다면 무병장수를 누린다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음이다.

한데 그런 보물을.

‘물처럼 마시고 있으니, 원.’

여명이 탈진할 정도로 땀을 흘리고. 체력을 빼앗겨도 멀쩡한 이유였다.

이런 귀물을 수돗물처럼 계속 마시고 있는데, 어찌 멀쩡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긴, 누가 알겠어. 설마 천의각이.’

“월!!”

“꼬꼬댁!!”

“…영물과 영약을 인공적으로 생성하는 장소라, 소문 퍼져나가면 여기저기서 피 보겠다, 진짜.”

금린화조.

설기가 쫓고 있는 닭의 이름이었으며. 효력으론 내공 십 년 치와 두통 완치가 되시겠다.

* * *

천의각에서 머물길 닷새.

그동안 천의각에서 지내며 안 것은 이곳에선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과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굉장한 곳이란 사실이었다.

‘인공의체도 기겁할 일인데, 인공 영약이랑 영물이라니, 뭐 이런 반칙적인 조직이 다 있어?’

완전히 치트키나 핵으로 무장한 버그 유저가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천의각의 실체를 알고 소문을 퍼트린다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천의각에 침입하는 이들이 태풍처럼 쏟아질 터.

‘진입 난이도가 높은 이유가 있었네.’

왜 천의각으로 오는 길들이 하나같이 난제(難題)였는지 이제야 납득이 간다.

이런 보물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어찌 아무나 들어올 수 있으랴.

“황룡, 그 늙은이 때문이지. 천의각에게 지나치게 혜택을 베풀었으니, 이 사달이 난 게야, 쯧쯧.”

“혜택이요?”

“그런 것이 있다. 대충 설명하자면 그 혜택 덕분에 인공영물이나 영약 같은 것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면 될 것이야. 쯧! 이 얼마나 불경한 일인지, 원.”

“…으음.”

“그래도 자연계에서 태어나는 영약보다 3할의 미치지 못하는 효력밖에 없으니,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지, 원.”

“그래도 충분히 대단한 건 맞죠.”

한 방울 먹는 것도 덜덜 떨어야 할 공청석유를 이온음료처럼 마실 수 있고. 삼대(三代)를 넘어 오대(五代)가 덕을 쌓아야만 먹을 수 있는 금린화조의 알을 매일 아침 달걀프라이로 먹는다.

이뿐인가?

겨우 닷새간 여명이 밥처럼 먹은 영약의 숫자만 해도 백 가지가 가뿐히 넘었다.

백첩 반상도 아니고, 천의각 사람들은 나물처럼 먹더라….

“여기 있으면 상식이 어긋나는 기분이에요.”

“상식이란 상대적인 것이지. 여기선 영약이 지천에 널려 있으며. 영물 농장 등이 있는 게 당연한 것뿐이겠지.”

“…참.”

플렉스도 그만한 플렉스가 없다.

‘현대에 가서 영물이니 영약이니 하는 것들 팔기만 해도 수조 원대 부자가 될 텐데, 참.’

수조 원대 원료들이 옥수수밭처럼 있는 이곳이 에덴동산이 아니고 무엇일까.

‘얼토당토않은 곳이라니까.’

여명은 혀를 내둘렀다.

* * *

“…무지막지하다 못해 얼토당토않은 후배구먼, 진짜.”

만박자를 비롯한 기환학사 대부분이 혀를 내둘렀다.

“저런 젊은이는 처음이에요.”

“혼자서 하루 50구? 저거 미친 거 아니야!?”

“지금은 70구야. 능숙해지니 갈수록 숫자가 늘어.”

“미친……!”

여명이 천의각을 보며 온종일 기막혀하고 있다면, 반대로 천의각은 여명을 보며 기막혀하는 상황이었다.

“쉽다고는 했지만, 결코 쉬운 게 아닌데….”

여명이 인공의체라 부르는 기물은 분명 조립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방식만 알고. 감만 잡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1구를 만들고 앓아눕는 이들이 속출해서 문제이지.

“저거 하나 만들고 나 기절한 거 기억나?”

“기절은, 사경을 헤매던데.”

“그러니까. 아니,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기력이 무슨 무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런 반복 작업이 결단코 쉬운 게 아니다.

정신력이 강인한 장인조차 1구를 만들고 나면 진이 빠지는 게 다름 아닌 인공의체였으니까.

또한.

“영약빨을 왜 저렇게 잘 받지?”

“타고난 게지, 타고난 게야.”

천의각의 사람들도 분명 영약을 반찬처럼 먹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약은 영약.

자연계에서 자라는 것보다 약효가 약할지라도 그 약력(藥力)을 몸이 감당하는 건 힘겨운 일이었다.

그들도 체력 부족을 방지하기 위해 간간히 먹는 수준이지. 여명처럼 저리 물처럼 마셔도 멀쩡할 수가 없다.

한데도 그는.

“멀쩡하다 못해 계속 마시더군.”

“…저놈을 다음 연구 대상으로 삼아봐?”

“그랬다간 미곡왕한테 죽을 걸세.”

“…농담이랑 진담을 좀 구분하세나.”

“음? 농담이었다고-?”

“…….”

어쨌든, 그들은 여명이 저토록 잘 적응할지도 몰랐으며. 이토록 일을 잘해 줄지 상상치도 못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10구 정도 만들면 기특해서라도 그냥 내쫓으려고 했는데.”

“누가 아니래.”

정말 9천구 이상을 홀로 만들게 할 마음은 아니었다. 단지 젊은이가 사지(死地)를 향해 간다는 데 어른 된 입장에서 말리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닌바.

그래서 대놓고 불가능한 과제를 준 것이고. 계속 말렸던 것인데, 이게 참…….

“진짜 보내줘야 할 판이구먼.”

“어처구니없는 젊은이야, 진짜.”

여명이 천의각을 말도 안 되는 집단으로 보았다면, 천의각은 여명을 말도 안 되는 괴물로 규정했다.

서로가 서로를 괴물이라 여기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야말로.

“월.”

“누가 아니래더냐, 흘흘, 하여튼 귀여운 것들이로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喜劇)이 아닐 수 없으니.

여우와 강아지는 인간들의 재미난 상황을 무대처럼 관람할 따름이었다.

tmi후기

-훗날의 얘기지만. 여명은 인공의체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신체마비나 신체 일부가 없는 이들에게 선물해준다.

-신기하게도 선물 받은 이들은 여명에 대한 비밀을 지켰고. 선물 받은 이들은 종교 비스름한 것을 만들게 된다.

-참고로 숭배 대상은 ‘의체’와 ‘여명’이며. 교단을 만든 뒷배로는 어느 새하얀 강아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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