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천벌지목(千伐之木).
여명은 푹 고이다 못해 농축된 사골 육수를 돌솥에 담았다.
뜨겁게 달군 돌솥에서 ‘자글자글’거리는 소리가 났고. 미리 삶아둔 양지와 머리고기, 그밖에 다양한 부위를 푸짐하게 쌓은 후. 훈제시킨 마늘 칩과 구운 소금을 빻아 다진 파로 간단히 간을 맞춰주니.
후륵.
“음, 진국이네.”
진국도 이런 진국이 없을 터.
요리사 본인조차 만족하는 음식이야말로 최상의 맛이라 할 수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후르르륵.
후륵.
후우우….
찬사는 없었지만. 국물 들이켜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며 여명을 흐뭇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
“다행이네.”
“월.”
“네 게 어디 있어? 이제 포장해서 줘야지.”
“…월.”
“욕심도 많아 가지곤.”
사골 육수라면 냉동보관만 해줘도 오래오래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음식 섭취를 귀찮아하는 양반들일지라도 끓여서 마시기만 하면 되니 그래도 먹기는 할 터.
‘그래도 시간 날 때마다 와야겠다.’
천의각의 인간들을 보고 있자면 영양실조로 죽을 이들이 태반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한 달에 한 번은 와봐야겠다며 신경을 쓰고 있자니….
툭툭.
“숙수님, 다른 요리는 어찌할까요?”
“아….”
인공의체, 아니 여급의 물음에 여명은 반응하며 중요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맞다, 그걸 잊고 있었네!”
“중요한 요리가 더 있나요?”
“아니요, 중요한 요리가 아니라 대접할 사람들이 더 있었는데, 이걸 잊고 있었네요.”
“네에?”
여급은 여명이 뭘 말하는 건지 감을 못 잡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체 저게 무슨 소리일까?
………
………
‘아, 이런 뜻이었구나.’
여급은 자신이 이토록 눈치가 없는 사람인 줄 몰랐다며 눈을 끔뻑였다.
진짜 몸이 아니라, 인공의체라 그런 것일까?
“설기야, 한 명씩 먹여, 천천히. 그리고 여우님도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월!”
“한가했으니 말이다.”
“……사람 참.”
여급은 첫 만남에서도 느낀 거지만.
‘선한 사람이야.’
그가 참 좋은 사람이다 싶었다.
* * *
천의각 병동(病棟)에 누워 있는 이들의 숫자는 약 서른 명.
불구의 몸이거나, 혹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뿐이었고. 차마 여명의 선식조차 도움이 안 되는 환자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건 병이 아니라, 그냥 없는 거니까.’
병이라면 차라리 낫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 오감(五感)이 없거나, 혹은 마비된 신체의 경우는 선식조차 통하지 않았다.
어찌 아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확인했으니까.’
이미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만박자의 동의하에 비밀스레 시험해봤지만. 전혀 효력이 없던 거였다.
단지 몸의 피로가 사라지고. 좀 더 따스한 느낌이 나는 것만이 다라고 하니….
-피로감을 덜어주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네. 그러니 실망하지 말게, 후배.
-……예에.
이때 여명은 처음으로 선식의 한계선을 알았고.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았다고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기력이란 힘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알게 된 무력감.
여명은 실망감이 엄습하려고 했으나….
─ 건방진 새끼. 지랄하고 자빠졌구나.
-아….
순간 떠오르는 건 스승 강태산의 꾸짖음이었다.
─ 네가 의사냐? 아니면 성자라도 되더냐? 얼마나 어깨가 올라갔으면 그따위로 오만해졌는지, 원. 그딴 마음가짐으로 일할 거면 때려쳐라!
강태산이 자신의 고민을 들었다면 분명 그리 말했으리라.
꼴값 떨지 말라고. 어디서 올챙이 시절 생각 안 하고 염병 떠냐며.
─ 네놈이 할 일은 의술이 아니라 요리다. 그리고 요리사가 하는 일은 무엇이냐? 잘 먹이고 배부르게 하는 거다. 혹은 누군가의 마음을 채워주는 거지. 한데 어디서 같잖게…! 이런 놈을 제자라고! 에잉, 쯧쯧!
-…뼈 좀 그만 때려요.
상상일 뿐임에도 뼈가 시릴 정도로 아팠다.
팩트 폭력도 이 정도면 정신적 충격으로 전치 2주는 나오겠다며 여명은 저도 모르게 울먹였지만. 울먹인 만큼 사람은 정신을 차리는 법이었을까.
-내가 할 일을 착각하지 말아야지.
해야 하는 일은 실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최선’을 해내려고 하는 노력이고 의지였다.
그리고 요리사에게 가능한 최선이란.
“든든하게 하는 것 말고는 없지, 뭐.”
여명은 나지막하게 자신의 최선을 읊조리며 사람들의 입에 적당한 온기가 감도는 육수를 흘려 넣었다.
제 의지로 육수를 넘기지 못하는 이도 있어, 기환술을 응용하여 넘길 수 있도록 도우니.
꿀꺽…!
그들은 가까스로 육수를 마셨다.
“아, 기뻐하고 있어요!”
여급은, 연연이란 이름을 가진 여인이 기뻐했다.
듣기론 인공의체 덕분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통하는 게 있다고 하며, 덕분인지 연연은 객잔에서 일하고 있는 어느 점소이가 흐뭇함을 느끼고 있는 것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주었다.
“그래요, 다행이네.”
허락은 받았지만. 혹시나 불쾌해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다행히 자신의 요리가 마음에 든 것 같다.
물론….
“으음, 어떤 분은 이제 괜찮다고 하네요. 어차피 맛도 못 느낀다고….”
“…….”
연연이 여명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고. 반대로 여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음식을 그만 줘도 된다고 한 이는 후천적인 사고로 오감 중 네 개를 잃고, 추가로 전신 화상으로 인해 항시 고통을 달고 사는 이였다.
듣기론 아이들을 구하려다 혀조차 녹아버린 이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몸이 이리되고 나선 가족에게 버림받고 죽어가던 것을 의원과 포졸들이 구원해주고, 만박자까지 나선 이후에야 그나마 평온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후우…!”
그 사연이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으니 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소방관도 그렇고, 의인(義人)도 그렇고. 희생의 대가가 왜 이토록 잔혹한지, 원.
슬쩍.
여명은 나머지 이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사연 없는 사람이 없었고. 여명은 이들이 의체가 아니면, 금방이라도 자결(自決)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이들임을 안다.
그도 그럴 게.
‘속이 시꺼매.’
그들의 속은 썩어 문드러지기 직전이었으니까.
일부러 엿본 것은 아니지만. 천안이 가르쳐준다.
그나마 아기 적부터 천의각에 거두어진 이들은 나은 형편이지만. 그 밖에 인원들이 가진 절망과 무기력함, 혹은 애증 어린 원한 등이 어찌나 거무죽죽한지 도저히 가슴에 품을 것들이 아니었다.
자칫 본인마저 파멸시킬 감정이 아닐 수 없었고.
‘…이걸 좀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오만한 생각임을 알지만. 여명은 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미약하더라도 [내일]이란 놈을 살 수 있는 희망을 말이다.
그러니….
“도움 좀 주시죠, 여우님.”
“본녀는 미래에서 온 파란 고양이가 아니다만?”
“……요즘 애니메이션도 보세요?”
“가리는 게 없어서 말이다. 제법 볼 만하더구나.”
“하하….”
어쩐지 최근 설기의 취향이 아닌 영상 플랫폼에서 결제 비용이 생겼다 싶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어이없음을 느끼며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여우가 보는 영상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저는 미래에서 온 파랑 고양이가 아니라, 지혜 깊은 여우님의 은혜가 필요하네요.”
북극 여우의 은총이 필요한 것이니까.
* * *
여명은 자신의 오만한 속내를 모두 밝혔다.
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이유, 그리고 요리사의 자존심 등.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을 것이다.
제 속내를 온전히 까발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벌거벗은 것보다 더욱 창피한 일이며. 훗날 분명 인생 최대의 흑역사로 남을 일이 아닐 수 없을 테니.
하지만 여명은 그깟 흑역사와 창피함은 모조리 감내하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여우님은 절대 도와주지 않을 것을 아니까.
공과 사가 분명하며. 세상일 모든 것이 놀이에 불과할 북극 여우를 설득할 방법은 오직 ‘진심’뿐이었다.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오만하구나.”
여우님은 자신의 모든 속내를 들으며 조소를 흘렸다. 솔직히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웠고. 여명은 쓰게 웃었다.
역시 먹히지 않은 것 같-.
“━그래도 마음에 드는 오만함이다.”
“……예에?”
여명은 일순 되물으며 그제야 북극 여우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세상 흥미롭고 재미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더니.
“본녀는 역시 그대란 사람이 좋구나, 후후.”
“…가, 감사합니다?”
“우후후!”
“??”
…잘 통한 건가?
어딘지 낯간지럽기까지 한 그녀의 반응에 내리 짐작하며 잘 풀린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설기는 혀를 내둘렀다.
“월….”
주인 저러다 저거 간도 빼 먹히겠다고.
* * *
‘정말 정성스럽긴 하지만, 우리는 괜찮은데 말이죠.’
연연은 식선님의 노력이 고맙긴 해도, 그다지 큰 희망은 품지 않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이리 살았고. 딱히 ‘맛’을 못 느낄지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그의 노력이 고맙긴 하여도 그다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의 노력이 고맙긴 하지만, 동시에 그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느낄 따름이니까.
‘다른 분들도 비슷했지.’
기환학사란 존재를 태어날 때부터 본 연연이었고. 그들의 기행(奇行)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상황.
선천적으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아주겠다며 몇 번이나 기행을 벌였으나, 그게 큰 도움이 된 적은….
‘없었지.’
허나 연연은 실망하지 않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큰 의미를 찾지 못했고. 무엇보다 의체를 만들어준 것만 해도 평생을 갚지 못할 은혜였으니까.
그러니.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연연은 슬슬 그를 말리고 싶었다.
의체를 무려 1만 구 가까이 만들어준 고마운 분이 이대로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도 못 볼 꼴이었으니.
“식선님,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제가 봤을 때 식선님의 정성은 이미 저희에게 잘….”
화아악!
“-됐, 음──?”
연연은 순간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게 뭐지…?
정신은 비록 의체에 있긴 하지만. 본체가 느끼는 것을 온전히 느끼는 연연이었고. 연연은 일순 어떠한 ‘따스함’을 느꼈다.
인생에서 최초로 느끼는 무언가가 가슴 속을 채우니 그녀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어?”
그래, 이름조차 모를 어떠한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만약 연연이 감각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알았을 감정.
그것의 이름은.
“왜, 왜 눈물이 나는 거죠…?”
[감동(感動)]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이름이었다.
“잘됐어, 정말.”
“그대의 노력 덕분이지.”
“여우님 덕분인 거죠.”
“후후, 그저 우리 모두의 덕이라고 하자꾸나.”
“월!”
“…그래. 그 말이 맞다.”
누구의 공인들 어떠하랴.
중요한 건.
‘해냈다는 거지.’
열 번 찍어 넘어가지(十伐之木) 않는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찍어보는 노력(千伐之木)을 해본다면.
‘결국 넘어가게 되는 게 것이.’
세상의 이치였으니 말이다.
tmi후기.
-미곡왕은 모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발명품에 흥미를 느끼며 4차원 주머니에 도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래도 대량의 물건(약 1톤)이 들어가는 가방을 만들어내어 중원삼국 무역업의 혁명을 일으킨다.
-미곡왕이 이러한 선행을 많이 베푸는 이유는 과거 경력 중 ‘달기’로 살았을 때 워낙 죄를 많이 지어 신수가 되지 못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미곡왕은 이미 신수로 진화할 정도로 긴 세월과 깨달음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의 악업(惡業)을 청산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상태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설기의 SNS를 통해 자신의 인간 모습을 보여 ‘구미호 코스프레녀’로 이름을 날리게 되며. ‘좋아요’와 ‘하트’를 많이 받아, 악업 중 무려 30%를 청산하게 된다.
-다만 편법인지라 황룡한테 까이고 여명의 품에서 울먹이게 되는 일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