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53화 (253/261)

253-내 손안에 남은 것(2)

기환술.

약 1년. 아니 어쩌면 세심공 수련까지 기환술의 연장성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략 9년간 그와 함께했던 노력의 결실(結實).

기환술이 있던 덕분에 그의 요리는 더욱 성장했고. 무수한 활용법 덕에 더할 나위 없는 윤택함을 누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 누구나 상상해 봤을 초능력자가 되는 상상. 그 상상을 실제로 이루는 신비한 힘을 얻었기에 여명은 기환술이 소중해져만 갔다.

이른바 또 하나의 팔이자 발이었고. 이제는 없는 게 더 어색하며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할 동반자가 아닐까 싶기도 했었으니.

한데….

‘이제 아무것도 안 느껴지네.’

여명은 팔다리가 잘려 나간 휑함과 허탈함, 우울감 등이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없어졌다, 아니 소실(消失)했다.

이제 더는 찾을 수도 만들 수도 없는 무언가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허망하구먼.”

어리석은 자의 말로가 이럴 터인가.

단지 오감과 인간성만 버렸다면 그는 모든 위인이 원했던 영원불멸의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

병과 노화, 죽음 등도 하등 신경 쓰지 않고. 하늘을 훨훨 나는 새가 되어 자유롭게 세상을 누빌 수도 있었으리라.

한데 그는 제 손으로 도려내었다.

‘선골과 기단(氣團)도 이제는 끝이네.’

기환학사의 재능인 선골을 강제로 없애고. 오장육부처럼 기력이란 분야를 담당하던 기단 또한 터트렸다.

다행히 어디도 다친 곳은 없지만. 멀쩡한 장기들을 자의로 뜯어내어 없앤 것이니 어찌 참담하지 않을 수 있으랴.

여명이 얻은 성과라곤, 결국 기화하던 몸이 다시금 인간이 된 것이며. 오감과 인간성을 유지하는, 사소하다 못해 보잘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벌써부터 후회가 되고. 울적하여 눈물이 다 날 것 같은데….

히죽….

“…나 다시 미친 건가?”

눈물이 난다는 인간치고 여명의 입매는 실룩거리고 있었다.

왜일까. 왜 이토록 흐뭇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 느낌일까.

‘아니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지.’

여명은 자신의 재산(財産)을, 아니 여명이란 인간을 이루는 근간(根幹)을 지킨 것이었다.

이는 분명히 말해 바른 일이었고. 성취감을 주었다.

누군가는 그를 보고 어리석으니, 모지라니 하며 욕하고 꾸짖는 자도 있을 테지만. 여명은 당당히 말할 거다.

나는 지켜 냈다고.

여명은 누군가에게 이토록 당당히 말할 자신이 있기에, 그렇기에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비록 눈물이 나올지라도.

“하하….”

여명은 울면서 웃었다.

내 생애 가장 큰 의미를 지켜냈지만. 생애의 노력을 도려낸 것에는 슬퍼하면서.

다만 그의 마음에 후회는 없었음이다.

그러니.

“자 이제.”

다시 바다를 건너가 볼까.

여전히 끝도 없는 지평선만이 보이는 황룡해.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표류한 절체절명인 상황이며. 이제는 편리한 기환술조차 쓰지 못하는 무능력자일 뿐인 삼십 대 중반 남자만 남아 있었지만. 그는 이상할 정도로 단단해져 있었다.

설령 다시 부러지는 날이 올지라도, 그는 이렇게 일어나 더욱 단단해지겠지.

거친 해파(海波)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여명은 그렇게 즐겁게 웃었….

[─운이 좋군.]

“…에에?”

조금 전만 해도 당당하기 그지없던 사내의 기개를 보인 여명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입에선 맹맹한 말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게.

후우우욱!

끝도 모를 바다가 3D 그래픽에 나오는 게임 화면처럼 순식간에 변화, 아니 재창조(再創造)되는 광경을 보고 누가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 수 있으랴.

바다가….

“구름?”

순백의 아름다움을 품은 것을 넘어 질량을 가진 푹신한 운해(雲海)로 뒤바뀌고 있었다.

* * *

“…….”

물로 가득 찼던 바다는 어디로 가고. 어느 순간 제 앞에는 새하얀 구름만이 가득한 세계가 펼쳐졌나니.

두루뭉술한 시가(詩歌)를 읊는 것이 아닌, 정말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사실 그대로를 고할 뿐이었음이다.

여명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운해를 눈에 담았다.

뇌가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는 데까지 10초.

예전이었으면 계속 얼을 탔겠지만. 황룡해의 표류로 나름 적응력이 엄청나게 좋아진 여명이었다.

후우욱!

하지만 여명이 적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갑작스레 운해를 뚫고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꼬리?”

그래, 그것은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파충류의 꼬리였다.

어찌나 길고도 굵은지 도무지 그 길이를 가늠하는 것도 불가한 어마어마한 꼬리.

서울 전역에 깔린 철도를 합쳐도 저 꼬리의 길이와 비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끝도 없이 펼쳐진 운해를 가득 장악한 그것이었고. 여명은 저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아….”

기환술조차 잃은 민간인이 견디기엔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거대한 기운이 그를 짓눌러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여명에게 마치 결정타를 넣듯 그가 자리 잡은 반경 안에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오오오오-!

구름을 뚫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거대한 산의 일부분… 이 아니라.

“…설마.”

산이라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봉우리가 제 모습을 드러내자 여명은 기막혔다.

그건 산의 봉우리나 일부분이 아닌, 단지….

“뿌, 뿔이라고?!!”

뿔. 짐승의 미간 등을 뚫고 자라나는 물질.

한데 그런 물질을 여명은 산이라고 여겼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토록 거대한 게 겨우 뿔의 일부일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놀랄 것은 이제부터라는 듯 끝도 없이 솟아난 뿔 다음에 드러난 건 눈을 멀게 하는 눈부신 금빛 광체(光體)였다.

꼬리에서도 금빛의 광체가 나긴 했지만. 이토록 근거리에서 빛나는 광체는 시력마저 멀게 할 따름이니.

“으으으윽!”

여명은 눈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시력을 상실한 건 아니지만.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태양 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처럼 괴로워하는 그였다.

[……미약하군.]

화악.

“??”

그러나 언제 아팠냐는 듯 여명의 눈과 몸은 따스한 바람이 지나가며 곧장 회복되었다.

저것이 자신을 치료해준 건가?

끔뻑끔뻑.

여명은 조심스레 눈을 뜨니, 여전히 광체가 부담스러웠고. 여명은 익숙해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시 눈을 부여잡고 쓰러질 것 같으니.

대략 10분은 더 지나서야 광체에 가까스로 익숙해진 여명은, 눈이 익숙해졌음에도 눈을 갸름하게 뜬 채 위를 조심스레 쳐다봤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

우우우우웅!

이는 정답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광체는 위를 올라볼수록 부담스러워져만 갔으며. 이 밖에도….

파지지직!

번쩍!

“……여기, 언제부터 적란운(積亂雲)이었어?”

운해는 여전히 맑고 청정하며. 이런 상황에서조차 눕고 싶게 부드럽고도 따스하다.

허나 날씨는 달랐다. 도저히 따스한 구름의 촉감과 매칭이 안 되도록 거센 벼락이 육안에 훤히 보였으며. 일종의 전자기장(電磁氣場)이 일대를 감쌌다.

이는 ‘저것’이 지닌 힘이 아닌 그저 존재를, 모습을 드러내며 일어난 일종의 자연현상에 불과하다는 게 아이러니하고도 공포스러운 진실일 터.

다만 그런 사실까지 모르는 여명의 눈에는 마냥 아찔할 뿐이었고. 마른침을 삼키며 드디어 제대로 그것의-.

[정신을 차리는 게 참으로 느리구나, 하찮은 존재야.]

“…….”

─용안(龍顏)을, 마주할 수 있었다.

상상 속에 나오는 용의 모습을 가졌으나, 기존의 용보다 훨씬 더 거대, 아니 광활(廣闊)하다는 표현이 그의 크기를 올바르게 나타내는 단어일 것이다.

그리고 여명은 눈앞에 존재를 알고 있다. 근 2년 동안 가장 만나고 싶었던 대상이 다름 아닌 그였을 것이니.

중원삼국의 일각에서 똬리를 트고. 실존하는 신으로 숭배받으며 황룡국의 황제이자 신수라고 불리는 격 높은 존재.

감히 인간 따위가 올려다볼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용을 보며 여명은 용의 이름을 불경스럽게도 내뱉고야 말았다.

“황… 룡.”

황룡.

전날 천산에서 만난 흑원보다도 더욱 압도적인 신수를 마주하며 여명은 몸이 사정없이 떨렸고. 그런 그에게 북풍한설보다 더욱 차가운 황룡의 눈이 향하니 떨림이 심해져만 갔다.

[비루한 것아. 그것이 신(神)을 배알하는 자세이더냐.]

또렷하게 울리는 음성. 아니 신언(神言)이 그를 덮친다.

그렇게 여명은…!

“꺼억…!”

[…….]

…결국 그가 내뱉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며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다시금 말하건대, 지금의 여명은 조금 건강할 뿐인 일반인이었고. 조금 건강할 뿐인 정도로 황룡이 내뱉는 위엄을 견디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이는 황룡의 실수가 분명했다.

물론 그가 실수를 인정할 리는 없겠으나.

[…하찮고도 또 하찮구나.]

냉혹하고도 위엄 넘치는 그의 목소리가 어딘지 당혹스러워 보이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닐지도 몰랐다.

………

………

………

“기어이 그를 만났는가.”

“끼이이잉….”

“쯧쯧, 칠칠치 못하긴.”

주인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어린 것이 앓는 소리를 내자 미곡왕은 혀를 찼다.

하여튼 어린애들은 이래서 질색이라는 듯.

하지만 질색하는 것치고 미곡왕은 설기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선술 등으로 몸의 피로와 내몰렸을 정신을 약간이나마 풀어주었다.

어느 순간 표정이 부드럽게 풀린 설기를 만족스레 본 미곡왕은 달이 뜬 하늘을 보았다.

“…역시 그대다운 선택지로다.”

미곡왕의 입가에는 만족스럽고도 해맑은 미소가 꽃피웠다.

그를 믿고 있긴 했다. 자신의 새로운 벗(友)은 분명히 수천 년에 삶을 산 그녀조차 간만에 본 걸물이었으니.

그라면 분명 올바른 길을 갈 것이라고 여겼고. 황룡의 기분 나쁜 시련(試鍊)조차 이겨내리라 믿었다.

다만 믿는 것과 결과는 다른 법.

요 ‘이틀’ 동안 그가 과연 무사할지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고.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천기(天機)의 흐름과 별의 운행을 계산하건대, 그는 지금 황룡과 만난 상태였고. 이는 즉 황룡의 시련을 가뿐히 통과해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가 알기로 황룡의 시련을 통과한 인간은 수만 년의 세월 동안 단 둘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오늘 드디어 한 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

이 얼마나 역사적인 순간인가…!

“허나, 이제부터가 문제일 테지.”

미곡왕의 표정은 흐뭇함을 벗어나 다시금 근심으로 얼룩졌다.

시련을 통과했다고 한들, 이는 일종의 1차 시험에서 통과한 것일 뿐이다.

성격이 안 좋은 걸 떠나, 아예 지하의 단단한 암반보다도 더욱 꽉 막혔고. 도저히 대화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망할 노인네를 상대로 과연….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을지, 원.”

미곡왕은 부정적이었고. 제발 그가 몸성히만 돌아오길 바라였다.

“분명 지금쯤이면 그 기분 나쁜 영감이 또 기분 나쁜 짓을 할 테지.”

안 보아도 훤히 그림이 그려진다며 미곡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히, 지금 그는.

[──답을 얻고자 한다면 돌을 집어라.]

“…갑자기요?”

[할 줄 모르나?]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문제없군.]

“…….”

여명은 이 상황이 심하게 당황스럽다.

아니, 이게 뭔.

‘내가 갑자기 왜 바둑을 두고 있냐?’

기절하고 깨어나 두 시간 후. 여명은 강제 대국(對局)을 시작해야만 했다.

tmi후기.

-저번부터 언급했지만. 황룡은 어마어마한 꼰대다. 도무지 얘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다만 나쁜 용은 아니다. 그저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이 미치도록 셀 뿐이다.

-황룡의 시련은 대충 3차까지 있으며. 황룡해가 1차 필기시험, 2차 바둑이 면접, 3차 압박 시험은 황룡 마음대로 바뀐다.

-다만 1차 시험(황룡해)을 통과만 해도 어느 정도 인정은 해준다.

-아무래도 욕망을 이겨낸 것이니, 인간혐오자인 황룡이라도 1차 시험을 통과한 이는 대충 인간이 아니라고 취급한다.

-즉, 인간 외적인 존재라고 여기게 되는데, 영물 비스름한 희귀동물 취급당한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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