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54화 (254/261)

254-내 손안에 남은 것(3)

바둑이란 것은 신비한 놀음이다.

휜 돌과 검은 돌이 서로의 진영을 빼앗을 뿐이지만. 진영을 구축하고. 상대방의 수를 읽어 싸우는 것이니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고래로부터 전해지는 유서 깊은 놀음이며. 최근에야 그다지 바둑을 두지 않지만. 여명과 비슷한 세대를 살았을 이들이라면 한 번쯤 바둑을 두고 배워본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명의 주위에는 제법 바둑 두는 양반들이 많았고. 특히 강태산과 천산의 어르신들도 툭 하면 바둑돌을 집어 자주 대국을 둬야 했다.

지인인 바둑 기사가 말하길, ‘여명 형 정도면 아마추어에선 적수가 없을 것 같은데?’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고. 이런 말을 듣다 보니 나름 바둑에 대한 자신감도 있긴 하였는데….

따악.

“…….”

[끝이다.]

“…….”

[백 번을 뒀음에도 백 번을 다 이겼군. 그 나이 먹도록 대체 무얼 한 것이지?]

“…으음.”

바둑 좀 못한다고 이런 말을 들을 일인가 싶기도 하나, 반박을 못 하겠다.

아니 정확히는 반박거리는 넘치는데, 차마 입을 열기가 껄끄럽고 무섭다고 할까?

‘이 양반, 대화가 안 통해.’

바둑이란 놀음이 재밌는 점은, 서로 수를 나눔으로 상대방의 성격과 성향을 파악하고. 일류 기사는 대국을 통해 무언의 대화마저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으니.

물론 여명이 일류란 말은 아니지만. 설령 일류가 아닐지라도 이 양반과 한두 번 대국을 하면 아마 알 것이다.

이 양반.

‘그냥 대화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양반인데?’

대화고 뭐고, 그냥 압도적인 공세(攻勢)로 무조건 이기려는 양반과 무슨 대화가 필요할까.

말 그대로.

‘이기려고 바둑 두는 양반이네.’

여명이 황룡과 바둑만 100판을 겨루며 알게 된 사실은 황룡이 덩치(?)와 달리 쪼잔한 양반이란 사실뿐이었다.

* * *

흔히 바둑이란 수 싸움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라 하였으나, AI의 등장으로 작품은 사라지고. 효율적이며 무조건 승리로 향하는 길만을 찾는 퍼즐 놀이가 돼버렸다는 것이 바둑 기사들의 의견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명은 지금 자신이 붙는 상대가 생물이 아닌, 마냥 Ai와 대국을 두는 기분이었고. 별다른 재미나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이럴 거면 왜 바둑을 두자는 거야?’

따악.

[또 이겼다.]

“…아, 예에.”

[흠, 왜 이렇게 못하지?]

“그, 그러게요. 아, 혹시 좀 봐주시는 건….”

[싫다. 왜 내가 승리를 양보해야 하지. 이길 수 있다면 이기면 되는 것인데.]

“…….”

저리 말하니 할 말은 없다.

정론이었으나, 또한 정론이기에 불편하다.

뭐지, 이 인간은…, 아니 용(龍)은?

‘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건지 감을 못 잡겠네.’

지기만 해서 불쾌한 기분은 그다지 들지 않았으나, 형용하기 힘든 분위기와 목적조차 흐릿한 안개와 같은 상황에 여명은 마냥 의문만 깊어졌다.

그때.

-내가 동네 공원에서 바둑 안 두는 이유? 그 영감쟁이들은 바둑 두러 오는 거 아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돈 따먹는 데 미친 영감뿐인데 내가 뭣 하러 두겠느냐. 뭣보다 그런 양반들은 워낙 다혈질이 많아 이겨도 문제고, 져도 지랄인 법이다. 뭐, 가끔은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

번뜩이는 무언가가 뇌리를 스쳐 갔다.

여명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을 멈칫거렸고. 황룡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그를 재촉했다.

[왜 안 두지? 벌써 패배를 인정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아, 우리 영감님, 역시 삶의 지혜는 어른 같은 어른한테 얻는 법이며. 뇌리 깊은 곳 메모장에 새겨지는 법이다.

…아니면 이대로 자꾸만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할 것 같은 위기감에 뇌가 활발해진 것일지도 모르고.

뭐 어느 쪽이건 이 답답한 뫼비우스 바둑을 끝낼 수 있다면.

‘시도는 해봐야지.’

여명은 위압스러운 황룡을 가까스로 마주 보며.

“저기, 황제 폐하?”

[왜 그러지.]

“……오목 하실 줄 아세요?”

[…?]

-아쉬운 놈이 대화를 주도해야지. 누가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바른말이 아닐 수 없었다.

황룡과 여명은 사실상 대화란 것을 나눈 적이 없었다.

황룡의 경우 인사를 건네준 것도 아니었고. 무뚝뚝하게 바둑을 하자고 했을 뿐. 사실상 호의를 보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반대로 여명도 기절하랴 정신없으랴, 바둑 상대하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마냥 미칠 듯한 어색함만이 감돌았던 것 같다.

마치.

‘친하지도 않지만. 그냥 안면만 있는 동네 동년배 지인 아버지랑 단둘이 밥을 먹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완전한 남남과 밥을 먹는다는 뜻이었지만. 그만큼 지금 상황은 어색하다 못해 숨이 막힌다는 의미리라.

허나 여명의 직업이 무엇이던가.

‘요리사 겸 식당 주인이지.’

식당 주인이란 손님을 가릴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지금이야 완전 예약식으로 바뀌었지만. 그 전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 인간군상을 상대하고 구슬려왔던가.

지금의 어색한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비록 상대방이 인간도 아니고, 신 비스름한 존재긴 하지만. 결국 대화가 통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성당이나 절에서처럼 아예 완전히 사상적 존재가 아니란 것도 중요했고.

대화가 성립되는 이상, 커뮤니케이션은 사람 하기 나름인 법.

그렇게.

따악.

“-기환술을 버리는 게 황제 폐하를 만나는 조건이었던 겁니까?”

[힘을 버리면 된다.]

“…아, 굳이 기환술이 아니어도 된다, 이 뜻이군요.”

[음.]

부정도 긍정도 아닌 응답이지만. 일단 무언가 반응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었고. 여명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목을 시작하고 ‘한 시간’을 투자하여 드디어 생산적인 답변 하나를 얻어낸 것이었으니까.

‘황룡해는 일종의 시험장이란 뜻이네.’

기환학사건 혹은 무림인이건. 그들이 쌓아온 신비(神祕)를 포기하므로 황룡을 만날 수 있는 티켓을 얻어내는 것.

한데 만약 황룡해에서 힘을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신선이 됐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너는 어디에도 없었을 테지.]

“…….”

이제 나름 황룡의 말을 해석할 수 있어서일까. 여명은 저 말이 이렇게 들렸다.

‘넌 세상에서 지워졌을 것이다’라고.

부르르.

서늘함에 잠시 손끝 마디가 떨려왔지만. 여명은 그러려니 했다.

이미 지난 일이었고. 자신은 올바른 선택지를 골랐으니까. 그러니 일일이 황룡의 말에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을 터.

따악.

[…이겼군.]

“네에, 이번에도 제가 졌네요.”

[흐음, 바둑보다는 잘 두는군.]

“치, 칭찬 맞으시죠?”

저 양반. 아니 신수가 하는 말은 어째 하나같이 비꼼으로 들리는 건 여명의 착각이 아니리라.

여명이 바둑이 아닌, 오목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굳이 바둑이 아닐지라도 황룡에겐 상관없는 것 같았으며, 차라리 바둑보다는 자신이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상대적으로 자신도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간단한 종목을 골랐을 뿐.

다행히 예측이 들어맞았는지 황룡은 여명이 종목 변경도 순순히 받아줬을뿐더러, 뜻밖에도 물음을 던지니 단답형으로나마 답변을 주었다.

지금처럼.

“근데, 황제 폐하께선….”

[황룡이라 불러라. 인간들이 붙인 지배자의 칭호는 불쾌할 뿐이니.]

“…황룡님께선 저에게 혹시 묻고 싶은 게 있나 싶어서 말입니다.”

[물음?]

“예에.”

[…….]

덜그럭….

처음으로 황룡에게서 가시적인 반응이 나왔다.

무언가 고심하는 것 같았고. 염력인지 뭔지로 움직이던 바둑돌 또한 멈칫거렸으니.

허나 상대적인 고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십 초도 되지 않아 용의 입에선.

[흑원이 널 여기 보낸 이유를 알고 싶은 건가.]

“!!”

알고 있었던 건가, 라는 멍청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역시 신수.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음이다.

[나는 모든 걸 안다. 어째서 목숨마저 보전 못 하는 이곳에 오기 위해 그리 발악한지도 알며. 가슴 속 응어리의 근원 또한 안다.]

“……아.”

말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이며 몸이 흔들린다.

신수가 그의 모든 속내가 까발려진 것이야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라고 담담하게 여기고 싶건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실제로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감각은 거북하다 못해 가슴이 절로 일렁이는 것이니.

[그러나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에겐 너에게 그럴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으니.]

“…맞는 말씀입니다.”

부정하지 못할 사실.

황룡의 입장에선 그는 멋대로 자가(自家)의 무단침입 한 왈패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내심 예상하고 있었던 답변이지만. 막상 들으니 속이 쓰려지고야 만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러나 망각(忘却)의 바다를 건넌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니 한 가지는 들어주마.]

후우웅!

“!!?”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에 돌연 휘몰아치는 바람이 몸을 휩쓰니 강대한 압력에 다시금 몸이 굳어버렸으나, 바람과 함께 나타난 그것을 보고 여명은 몸뿐만 아닌 머리 또한 같이 굳었다.

제 앞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분명 황룡해에서 별빛처럼 사라졌던….

“…용골.”

천마에게 받았던 선물이자, 모든 일의 시발점.

그것이 본연의 모습으로 다시금 여명의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 * *

황룡은 눈앞에 하찮은 ‘인간’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곧 벌레(蟲)라고 여기는 황룡에게 있어 하찮다고 해도 인간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었으나, 황룡은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과 저 여명이란 이름을 가진 생물이.

[우습다.]

마냥 거슬릴 뿐이었으니까.

황룡은 이미 인간이 하는 생각 정도는 모조리 읽어낸 지 오래였다.

미곡왕이나 흑원도 인간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을 숨 쉬듯 쉽게 해내거늘, 황룡이 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지어니.

같잖은 수작질을 모를 리가 없었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분명 조금 놀랍긴 했다.

사실 황룡은 저 인간이 여기까지 당도하지 못하리라 확신했었다.

벌레가 망각해(忘却海)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지난 수만 년의 세월 동안 무수한 인간들이 황룡에게 답을 구하고자 찾아왔지만. 망각의 바다에서 망가져 도달하지 못한 이들이 허다했다.

어떤 이는 며칠도 되지 않아 미쳐버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또 어떤 자는 힘에 미친 끝에 파멸하여 이 세상에서 완전히 존재가 지워진 이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중 드물게 정신도 잃지 않고. 탐욕에 지지 않아 제 앞까지 도달한 이들이 있긴 했으나 그것도 단둘밖에 존재하지 않았었거늘, 설마 오늘로 한 명이 더 추가될 주는 황룡조차 몰랐다.

이는 곧 황룡이 읽어낸 미래를 벗어난 격이니.

역천(逆天).

하늘을 거스른다고 하여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찮은 벌레들 중 드물게 태어나는 이들이며. 하늘이 정해준 순리를 거부하고. 제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자였으니까.

그런 뜻에서 황룡은 마냥 그를 벌레로 대할 수 없었다.

자신의 미래시(未來視)를 벗어났다는 건 이미 반선(半仙)의 씨앗이 싹텄다는 의미.

천 년간 벌레들 중 [등선자]가 나오지 않은 걸 생각하면 이는 기념할 만한 일이었으며. 안 그래도 그와 반목 중인 선계 등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일 것이다.

또한 극락정토나 삼신수의 진영에서도 인재가 부족한 것을 생각하면….

[…흥!]

미리미리 선점해두는 게 좋을 일일 테지만. 황룡은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저것’이 ‘또다시’ 그의 영역에 들어온다는 건 황룡에게 용납 못 할 일이었기에.

비록.

‘전생(前生)’의 일일지라도.

황룡, 그의 뒤끝은 고금제일(古今第一)이었음이다.

tmi후기.

-만약 여명이 훗날 신선이 된다면 선계는 난리가 날 예정이다.

-천 년 동안 신선이 없다는 의미는 신입사원이 없다는 의미고. 반선만 돼도 인턴이 아니라, 정규직 채용을 생각하는 게 현재 신선 업계다.

-다만 극락정토의 거물인 백모신원이 여명을 스카우트할 수도 있어 인재 영입이 치열해질 예정이다.

-또한 만약 삼신수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그대로 인계의 신선이 되어 남을 수도 있는지라, 자칫 잘못하면 천상대전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어느 세력이나 신선이 하나 수급되면 자연스레 세력의 힘이나 크기가 확장되는 원리이기에 아무래도 여명의 존재는 중요하다.

-여명의 선택지에 따라 입장도 달라지는데, 굳이 예시를 들자면 선계=공돌이. 극락정토=재벌가 사모님 비서. 삼신수 진영=영수들의 친구이자 황족, 등으로 입장이 갈릴 예정이다. 가능하면 선계만 피하는 것이 좋다.

-원래 고인물과는 엮이지 않는 게 답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