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56화 (256/261)

256-내 손안에 남은 것(5)

‘음, 이상한데?’

사사사사삭!

“이 사부?”

“허어, 오늘따라 칼질이 더 좋아졌구먼.”

“거기서 더 좋아진다고?! 역시 이 사부는 무공을 배웠어야 해!”

“…그럼 지금이라도 배울까요?”

유달리 손맛이 더욱 좋고. 칼질이 잘되어 흥이 났음일까.

여명은 단골들의 말에 호응하며 농담하듯 말을 던졌으나, 가벼운 농담이 가져온 여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아, 그랬지, 참! 선골이 없으니 이제 무공을 배울 수 있겠구려, 어허허!”

“오늘 당장 시작하지. 패력도신무를 가르쳐주겠네! 대성만 한다면 천하를 오시할 무공이지!”

“염병 말게. 이 사부. 다른 거 다 필요 없네. 만검비록 가르쳐주겠네. 이 사부라면 끝을 볼 수 있을 게야.”

이곳저곳에서 달려드는 러브콜.

여명은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니 이제 선골이 없으니 무공을 배울 수 있는 여명이었고. 안 그래도 예전부터 그에게 무공 한 수 가르쳐주고 싶었던 양반들이 날뛰는 건 당연지사.

‘입이 화근이라더니.’

여명은 쓰게 웃었으나, 이미 상황은 개판이 난 지 오래.

단골 노인들이 그에게 가르칠 무공을 놓고 토론을 벌이며. 이미 몇몇은 얼굴을 붉히며 밖으로 나가 비무를 벌이는 중이었다.

“-하, 아하하!”

허나 여명은 유쾌한 듯 웃었다.

2년 만에 보는 이 광경이 어딘지 정겹고 마냥 흥겨워서.

사람이 이토록 행복해도 좋나 싶을 따름이었다.

“월.”

“응? 아아, 아까 전에 왜 그런 반응을 보였냐고?”

“왈왈.”

설기는 여명의 품속에 있었다.

전날 떨어진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며 어리광을 부리는 거였다.

여명도 이 촉감이나 설기의 어리광이 마냥 귀여워 품 안에 있는 것을 허락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그동안 충전하지 못한 어떠한 성분이 충전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토닥토닥.

여명이 고마운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이 겪고 있는 ‘신비’를 가르쳐주었다.

“으음, 그게 말이지. 나, 여전히 [선식]을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멍?”

“그치? 말이 안 되지? 근데….”

되더라고.

* * *

놀랍게도 여명이 황룡해에 갇혀 있던 시간은 중원삼국의 시간으로 ‘이틀’밖에 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자신은 분명 2년 가까이 있었는데, 바깥에서 2일만 지난 상황은 무언가 혼란스럽기까지 했지만. 여우님의 설명이 그의 혼란을 가뿐히 잠재워줬다.

-이상한 일도 아니니라. 황룡의 세상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단절된 세계이니. 또한 그대의 몸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야. 아니, 오히려 기환술을 잃은 것을 빼고는 긍정적인 것밖에 없을 테지.

-네에?

-의원에게 진찰을 받으면 알게 될 게야.

…이 말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예언이 되었다.

천의각의 명의가 자신을 진찰하고는 눈을 부릅뜨며 설명하길.

-자, 자네 대체 무얼 하고 온 겐가?! 혹시 천 년 묵은 이무기의 내단이라도 먹은 것인가?!! 어찌 사람의 몸이 이토록 강건해지고 생기가 넘치는 것이지…!?

-나, 나쁜 건 아니죠?

-나쁘긴. 오히려 너무 건강해서 문제네. 대략 30년은 젊어졌구먼!

-…그러면 저 여섯 살인데요?

-청춘이 길어지겠구먼, 흘흘.

-…….

이후 거울 속 자신의 피부가 여인처럼 고와지다 못해, 마치 십대 시절처럼 생기가 좌르르 흐는 것을 확인했고. 또한 용골은 없을지라도 여전히 현대와 중원삼국이 이어져 있는 걸 확인하는 에피소드를 뒤로 하며, 현대의 병원에서 비싼 돈을 들여 종합검진을 해보니 거기서도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화, 환자분, 대, 대체 건강관리 비결이 뭡니까? 아니 뭔 우리 손자보다 신체나이가 더 좋겠네….

의사가 당황스러울 만도 한 것이. 최신의료기기가 여명의 신체나이를 ‘십 대’로 규정한 것이다.

아무리 놀아도 지치지 않고. 도리어 활력만 넘치는 그 시절로 돌아온 것이니.

-갓난아기처럼 생사현관이 타통되어 있네. 허허, 환골탈태를 열 번 해도 이렇게 깔끔할 수가 없거늘….

-…환골탈태보다 좋은 걸 할 뻔하긴 했죠.

신선이 될 뻔했지만. 그걸 포기하고 얻은 잔여물.

여명은 자신의 몸 상태가 그러한 상태임을 확인하며 쓰게 웃었다.

비록 기환술은 잃었지만. 그래도 건강 하나는 천하제일을 넘볼 수 있게 되었다며.

-그래도 역시, …좀 아쉽네.

축지나 어검, 천안 등도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을 확인하며 진한 아쉬움이 드는 건 사람 심리상 어쩔 수가 없는 노릇.

황룡을 만난 대가는 너무나 참혹한 것이었으며. 아쉬움이 미치도록 쏟아지는 건 그가 평범한 사람이란 증거일 테지.

-됐다. 이미 잃은 것 가지고 계속 붙잡는 것만큼 찌질한 것도 없다.

새롭게 가지게 된 ‘건강 체질’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미 떠나보낸 것을 그리워하지 말자.

여명은 더 이상 추악해지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다.

……한데.

-…어, 이게 왜 되지?

선식.

그 신묘한 요리가 여전히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여명은 어벙해지고 말았다.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

“저는 사장님이 왜 떨떠름해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저는 사장님에게 선식이 없다고 하여도 사장님의 요리를 좋아합니다!”

“린이 너, 못 본새 애교가 늘었다?”

“!!?”

“…예화 이 녀석, 애한테 뭘 가르친 거야?”

설기처럼 과하게 애정표현을 하는 건 아니지만. 북궁린은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하듯 일정 간격으로 자꾸만 그를 푹 끌어안고 후다닥 사라지는 행위를 반복했다.

자신이 설기에게 충전을 받듯, 그녀도 충전을 받아 가는 것처럼.

참 귀여운 몸놀림이 아닐 수 없으리라.

“후후, 저 아해의 말이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있으면 좋은 것이지, 뭘 그리 따지더냐.”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죠.”

“그 호기심 때문에 그 사달을 겪었으면서도 그러고 싶느냐?”

“아….”

“이래서 사내들이란, 쯧쯧.”

“으음….”

유구무언.

여명은 자신이 생각해도 참 반성 못 한다며 귓불을 붉혔다.

이번 사태로 그렇게 크게 화를 당했으면, 이제 호기심도 좀 죽일 줄 알아야 하는데, 여전히 이러는 것을 보면 자신이 철이 안 들긴 한 모양.

“후후, 귀엽긴. 특별히 본녀가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로 하마.”

“진짜요?”

“그대가 기특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어쩌겠느냐. 반한 여자 잘못이지.”

“…하하.”

미곡왕은 여명에게 유난히 관대하게 굴었다.

황룡의 시련을 멋지게 이겨낸 것도 있지만. 설사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중원삼국을, 그리고 그녀를 선택했다는 점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으니까.

‘이런, 더 빠지면 곤란한데.’

아홉 개의 꼬리 중 여덟 개가 살랑거리는 것을 보니, 언젠가 큰 사고 한번 일으키겠다는 예감을 받는 미곡왕이었다.

…여명이 알면 질색할 사실이지만.

* * *

“일단, 최근 본녀가 깨달은 것이지만. 그대가 사용하는 선식은 딱히 기환술이 아니라는 게다.”

“기환술이 아니라고요?”

여명은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혹 자신을 놀리는가 싶었고. 마냥 의문만 생기게 하는 묘한 얘기.

“…저만의 기환술이라고 했지 않으셨어요?”

자허나 다른 이들, 그리고 여우님과 같은 영수들까지 모두가 기환술이라고 해서 선식을 기환술로 여겼는데, 사실은 기환술이 아니다?

눈을 끔뻑이는 그에게 미곡왕은 설명을 이었다.

“본녀도 다른 이들도 오해가 깊었던 게지. 또한 최근 만박자를 통해 들으니 그대의 선식이 일반적인 기환술과 그 결이 다르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자세한 토의를 한번 해보았는데, …그대의 선식은 기환술이라기보단 하나의 경지와 맞닿아 있음을 깨우쳤지.”

“경지요?”

“으음, 아마 그대도 들어는 봤을 것이야.”

심검(心劍)을.

우당탕!

여우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응이 온 것은 저 멀리서 싸우던 무림인들이었다.

경이적인 감각을 가진 이들답게 둘의 대화를 이미 모두 들은 그들이었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시, 심검이라고!?”

“이 사부가…, 사실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

경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심검이란 이름이 나온 것이다.

검객, 아니 ‘무(武)’에 모든 걸 바쳐 살았던 이들에게 있어 심검이란 하나의 도달점이자 정점에 위치한 무학의 집대성과 같았음이다.

입신경에 오른 절대고수조차 그 실마리만을 잡았다고 전해지는 것이 바로 심검이라는 경지인데 그들이 대경실색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

“미곡왕,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심검이라니? 이 사부는 무림인도 아니거늘….”

“천치 같은 놈들! 어디서 괴랄한 헛소릴 지껄이는 게냐!”

미곡왕은 은거자들을 꾸짖었다.

마치 아집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놈들을 야단치듯.

“심검이란 애초에 마음의 공부이자, 혹은 심상의 도(道)를 깨우친 자가 얻는 학문과 같은 것. 누구에게도 문이 열려 있는 것이 심상의 도이거늘, 그것이 언제부터 무림인의 전유물이 되었더냐! 다른 이들도 아니고 너희들이 그런 편협함을 입에 담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할 것이야-!”

“……….”

…은거자들의 입이 합죽이가 되었다.

그 정도로 그녀의 호통은 정론이었고. 아무리 뻔뻔한 그들이라 한들 감당 못 할 수치였으니.

“…크흠, 반상해야겠구려.”

“맞는 말이지. 허허….”

“흥, 자세만큼은 좋구나.”

자신의 실수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만 해도 그들의 수양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여명에게 질시를 보내는 대신 감탄으로 얼룩진 강렬한 호기심을 내밀며 눈을 빛냈다.

심검이란 위대한 경지를 밟은 대종사에게 보내는 열렬한 시선.

“…무지 부담스럽습니다만.”

“…월.”

뜻하지 않은 아이돌 경험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고야 마는 여명이었다.

* * *

…일단 결론적으로 말해, 미곡왕의 얘기를 압축적으로 해석하자면.

“제 선식은 후천적으로 타고난 거다, 이런 말인가요?”

“본녀의 생각에는.”

중원삼국에 오기 전까지 여명의 요리는 평범했다고 했으니, 아마 중원삼국과 접촉하는 것을 신호로 여명은 심검이란 미지의 힘을 각성했을 가능성이 컸다.

또한 심검이란 ‘의지력’만 있다면 무한히 사용 가능한 선인의 학문에 불과하니 딱히 내공이나 기력이 없을지라도 사용 가능할 터.

어떻게 보면 자연지기가 흐릿하다 못해 사멸해가는 여명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힘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런데 심검이면 뭔가를 베어낸다는 뜻이 아닌가요?”

“말했지 않더냐. 심검이란 결국 심상의 도가 내포한 가능성 중 하나일 뿐. 누가 어떤 심상을 깨달을지는 신수도 모를 일이고. 검이건 창이건, 혹은 붓이나 바둑돌조차 심상의 도가 될 수 있는 법이지.”

“그럼 저는….”

“음, 그대의 심상은 본녀가 보건대, 요리란 ‘개념’이 의지력으로 변한 것이겠지. 그대답다면 그대답지만, 참….”

“?”

“귀엽구나.”

“…….”

─ 먹는 이가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의 형상화.

미곡왕의 입에서 귀엽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당연할 정도로 [착함]이 풀풀 풍기는, 마치 어린아이이가 말하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하는 몽상과 다를 바가 없다.

“커헉…!”

그러한 사실을 깨닫자 얼굴이 사정없이 붉어지는 여명이었고. 미곡왕은 깔깔 웃었다.

“참 그대다운 심상이로다.”

“…그만 놀리세요.”

“한데 미곡왕시여.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북해의 여급아.”

“사장님의 선식은 지금껏 기환술의 성장에 따라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는 어찌 설명이 가능한 겁니까?”

북궁린다운 날카로운 통찰이 아닐 수 없었으나….

“조미료지, 뭐. 원래 그냥 소금을 치는 것보다 여러 맛이 첨가되는 것이 매력적인 게지.”

“아….”

너무나도 쉽게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어쨌든 기력이 없을지라도 선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 핵심인바.

이루 말할 수 없게 긍정적인 행운이 아닐 수 없고. 여명은 어딘지 들뜨기까지 했다.

“아직, 만들 수 있구나….”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 손안에 남은 것이 있다.

그 사실이 이토록 가슴을 고양시키는 건, 마냥 여명의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다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심상의 도라는 걸 쓸 수 있는 걸까요? 전 그런 공부를 한 적도 없는데.”

“그건….”

이 대목에서만큼 그녀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예측 가는 것이 있긴 하다.

‘…과연 본녀의 예측이 정확한 것일까? 허나 말이 안 될 것도 없고….’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영수조차 차마 믿기 힘든 예측.

하지만 만약 그녀의 생각이 사실이라면….

“─역시 여우답군. 벌써 거기까지 도달한 건가.”

“!??!!”

미곡왕은, 아니 미곡왕뿐만 아니라 식당 내부에 인원 전부가 경악하고 말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등장하였는지도 모를 한 사람이, 아니 ‘존재’가 정중앙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당신.”

“가장 잘하는 것을 내와라.”

명령하듯 자신에게 ‘음식을 하여라’라고 말하는 그를 직시하며 여명은….

“허억!”

트라우마가 도진 사람처럼 심장이 벌떡거리는 그는 저도 모르는 새 무언가를 쥐어, 있는 힘껏 흩뿌리고 말았다.

새하얀 알갱이들을 말이다.

쫘아아아악!

“……음. 뭐 하는 짓이지.”

“저, 저도 모르게 그만?”

“…….”

“크흠…!”

드디어 제정신을 차린 여명이었지만. 이미 사고는 일어났고. 천일염으로 범벅된 그의 얼굴에서 여명은 시선을 회피했다.

차마 눈 마주치기가 무서워.

‘내가 미쳤구나….’

천산식선 이여명.

삼국 역사상 최초로 신수 황룡의 얼굴에 소금을 뿌린 남자로 등극했노라.

tmi후기

-여명이 황룡에게 뿌린 소금은 우연찮게도 국산 천일염이다.

-최근 중원삼국에 것만 쓰다가 간만에 지인을 통해 국산 것을 얻으며 일어난 우연의 일치다.

-황룡에게 강대한 진상력을 느끼고 생존본능을 느낀 식당 주인의 몸부림 같은 것이다.

-황룡은 천일염이 조금 아팠다고 한다.

+추신, 황룡을 만나러 간 것이 낭비라고 생각하며 노하신 독자님들에게 설명하자면, 황룡이란 캐릭터는 ‘불합리한 신’이라고 할 수 있고. 불합리한 신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선 이 정도 과정은 필요한 전개였다고 여기지만. 이 때문에 독자님들이 노하신 것은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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