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57화 (257/261)

257-내 손안에 남은 것(6)

이미 한 번 대면한 적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여명은 상대를 보자마자 정체를 파악하고 기겁했다.

황룡.

그 불합리함의 끝판왕이 다시금 등장하니 일순 숨이 턱턱 막히며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어 격렬한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이에 반사적으로 여명은.

촤아악!

그에게 뿌리고 말았다.

삼국 역사에서 일어난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리 없다고 여긴 신에게 던져지는 소금의 탄환들….

그야말로.

“우호호호! 거, 걸작이구나. 이러한 걸작이 없을 수가 없구나. 그대여, 그대는 최고이니라…!”

“여, 여가 인정한다. 그, 그대야말로 천하제일이니라, 푸후우우우!”

“…멋져.”

세 영수들이 배를 까뒤집고 웃어 재끼며 유쾌함을 표현했고. 그에게 찬사를 내비쳤다.

허나 반대로 영수들의 주접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후두둑….

“으음.”

여명이 흘리는 식은땀은 빗물처럼 떨어질 따름이었으니….

사면초가란 말이 절로 떠오르며 여명이 긴장감으로 몸을 굳힐 때쯤.

“잘하는 것을 내오라고 했을 텐데. 여기는 원래 이리도 굼뜬 것인가.”

“…네, 네엡!”

다시금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 같은 황룡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명의 몸은 곧장 움직였다.

물론 저 양반이 그토록 융통성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

‘왜 왔지, 진짜?’

‘왈….’

눈으로 대화가 통하는 견주와 애견은 눈을 마주치며 의문을 드러내었고. 여러 복잡한 속내를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명은 식도를 움직이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정성스레 재료를 다듬었다.

아무리 원수 같은 인간일지라도 일단 손님은 손님.

아니, 이 양반 한정으론.

‘손놈이라고 해야 하나?’

나름 대인배인 여명이지만. 차마 이 양반한테는 도저히 대인배가 아닌 소인배가 간절하였음이다.

* * *

여명의 식당은 조용했다.

뭐, 정정하자면 식당이 아예 대절 되었다는 것이 바른 말이겠지만.

-잘 부탁하오, 미곡왕.

-당신만 믿겠소.

-…위험하다 싶으면 말하시오. 어차피 다 늙어 죽는 몸. 한번 불태워볼 테니.

끝까지 비장했던 은거자들이 영수들에게 부탁을 남기는 것으로, 현재 밥심의 대나무 숲에는 웅묘가 평소처럼 멍하니 있지만. 잠을 자지 않고 있었으며.

백효는 지붕 위에서 유유자적하게 달을 보며 자리를 지켰다.

끝으로 꼬리 아홉 개 달린 북극 여우는.

“하계로 내려온 건 오랜만이군, 황룡.”

간만에 지상으로 내려온 지인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왜 그런 시선으로 보지?”

“설마 의태를 하고 왔을 줄은 몰라서 말이다, 후후.”

“…….”

“외유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알겠지만. 설마 인간을 싫어하는 당신이 그런 모습으로 내려올 줄이야.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군, 우후후.”

갈수록 과장되어 가는 미곡왕의 웃음에 황룡은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의태의 모습 또한 당신답군.”

“…시끄럽다.”

황룡의 겉모습은 누가 봐도 늙은 노인의 것이었다.

딱 봐도 고집불통 영감의 표본.

의태란 것은 가죽과 다를 바가 없지만. 황룡이란 신수의 본질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기에 저 꼬장꼬장한 모습이야말로 황룡의 성격과 인성, 아니 용성(龍性)을 제대로 알려주는 지표가 아닐까 싶다.

허나 꼬장꼬장한 노인네를 놀리면서도 미곡왕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대체 이 노인네는 무슨 생각으로 얘까지 내려왔단 말인가.

…물론 이건 생각해볼 것도 없이.

‘역시 본녀가 인정한 남자로다. 이 꼬장꼬장한 노인네에게 관심을 사다니.’

비록 이 용에게 관심받는 건 최악의 결과지만. 황룡 자체가 하계까지 내려오게 한 것은 크나큰 업적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과연 무엇이 저 수만 년 묵은 아집덩어리 영감을 움직이게 한 것일까.

미곡왕은 못내 그것이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았다.

‘본녀의 것을 나눌 마음은 없으니.’

이미 자신의 것으로 확정 지은 사내를 누구와 나눌 마음은 추호도 없었음이다.

“줘도 가지지 않는다.”

“…본녀의 마음을 읽은 건가?”

“헛소리.”

“그럼?”

“표정만 봐도 알겠군. 여전히 오랜 세월을 산 존재답지 않게 순박하다. 그러한 면은 고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과거처럼 배신당하기 싫다면.”

“…….”

격장지계.

그녀의 과거를 속속들이 아는 만큼 황룡의 말은 그녀의 노기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흑역사를 재생시켜 그녀의 반응을 즐기려는 못된 늙은이의 계략이 아닐까 싶었으나.

“흠,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

“그 표정은 뭐지? 혹, 본녀가 그 같잖은 과거에 화를 내고 역정을 부릴 줄 알았던가? 후후, 하여튼 과거에서 멈춘 늙은이답구나. 황룡, 본녀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가 언제인데 그딴 허접한 수작질이라니…. 참으로 실망스럽구나.”

“…변했군.”

그녀치곤 말이 길었으며. 어딘지 또박또박했다.

과거의 그녀였다면 저런 식으로 비꼬지도 않았을 것이며. 무식할 정도로 공격적인 반응만 보였을 텐데….

이제는 그럴 기미조차 없었다.

미곡왕도 자신의 변화가 어떠한지를 알기 때문인지 수줍은 소녀처럼 청순한 미소를 머금고는.

“우리 같은 존재에겐 확실히 변화란 드문 경우지.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야. 그대라면 알 테지? 영원(永遠)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 ‘자극’과 ‘신선함’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찌 보면 수천 년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삶의 활력소와 같은 것이지.”

“…음.”

황룡은 부정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은 그들 같은 존재들에게 지극히 정론이었으니.

또한.

“무엇보다 당신도 바뀌려고 여기 온 것이니, 그 미간 좀 풀 거라. 어차피 그대도 ‘확인’을 하러 온 것일 거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시치미 떼긴! 당신이 하계로 내려온 것이 본녀의 말을 증명하는 증거이거늘.”

“…….”

“불리하면 입을 다무는 건 하여튼 용들의 종특이지, 쯧쯧.”

“종특이란 게 뭐지?”

“시대에 뒤처진 늙은이는 알 것 없노라.”

“…큼.”

다시금 황룡에게 엿을 먹이는 미곡왕이었고. 황룡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그때.

“여우님, 초 쳐서 죄송한데, 요즘 종특이란 말 잘 안 써요.”

“뭐, 뭐시라!?”

“저 학생 때나 썼던 말을 간만에 듣네요.”

“그, 그럴 수가…! TV에선 분명….”

“그것도 이제 20년 전 드라마인지라, 뭐.”

“2, 20년 전이면 엊그제가 아니더냐?”

“…이 주제는 그냥 나중에 얘기하죠.”

계속 얘기해봤자 저 젊은 척하시는 여우님한테 대미지만 들어갈 것 같으니.

여명은 미곡왕에게 보내는 다정한 시선을 거두고 노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여전히 왜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를 신수.

누군가는 그의 강림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으나, 여명에게 그는 악연이었다.

물론 멋대로 그의 세상에 쳐들어간 것은 분명 자신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험이란 명목으로 자신을 장난감처럼 대한 것은 분명한 사실.

그렇기에 여명은 황룡이란 이를 만났을지라도 큰 감흥이 없었다.

…분노마저도.

그렇기에 그저.

“가장 잘하는 요리를 내오라 하셔서 일단….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내왔습니다.”

요리사, ‘숙수’란 이름을 가진 놈답게 객을 맞이한 이상, 최선을 다해 응대할 뿐이었고.

보글보글…!

“자작하게 끓인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달걀말이]입니다.”

먹음직스러운 한 상을 내놓는 정성을 선보일 뿐.

다만.

“…음.”

황룡은 그런 맛깔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인상만 찌푸릴 뿐이었지만.

허나 그건 음식이 마음에 안 들기보단.

- 드셔보세요, 아마 맛있을 거예요.

…뇌리를 자꾸만 긁어대는 ‘과거의 잔상’이 그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보글보글…!

* * *

-네 녀석이 나처럼 한식이 아니라, 일식, 양식, 중식 같은 걸 해도 상관없다만. 그래도 내 밑에서 배우는 놈이니 적어도 찌개 하나는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혹시 불만 있냐?

-불만 있으면 들어주기나 하시고요?

-들어는 줄 거다. 들어는…!

-…열심히 배울 테니까, 팔뚝 근육 좀 그만 보여줘요. 무서워 죽겠네.

강태산은 설령 요리사가 아닐지라도 한국인이라면 찌개 하나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며. 무엇보다 쉽기 그지없는 한식의 근본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허나 기본이니 근본이니 하는 말을 쓴다는 건, 요리사의 역량을 판가름하기 아주 적절한 요리란 뜻과 같았다.

흔한 찌개조차 자신만의 기술과 인생관을 담아 요리사만의 색깔을 담는다.

이는 결코 쉬운 기술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리어 프로일수록 이러한 주제로 더욱 엄격하게 평가받는 것을 생각하면 여명이 지금 내놓은 김치찌개는 결코 흔해선 안 되었다.

좀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지.

그리고 지금.

후루룩.

“…후.”

그가 당당히 내놓은 음식을 황룡이 침묵을 유지한 채 먹고 있었다.

먹는 내내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으며. 마냥 음식만을 섭취하는 그의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맛’에서만큼은 여명은 절대 자신감이 부족하지 않았고. 제 솜씨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요리한 놈이 자기 솜씨를 의심하는 것만큼 웃긴 일도 없지.’

요리사는 자기가 먹어도 ‘이건 끝내주게 맛있다!’는 평가가 나와야지만 그 메뉴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사람마다 입맛은 천차만별일 테지만. 자기 요리가 [최고]라는 생각이 없어서야 이 직업을 오래 유지하는 건 안 될 말일 터.

그렇기에 비록 저 양반이 무반응으로 일관한다 하여도 여명은 초조함만 느낄 뿐. 의심만큼은 않았다.

그리고….

“맛있구나, 그대여! 참으로 맛있다…!”

“월!”

“맛있습니다, 사장님.”

다른 이들의 입에선 만족스러운 답변이 나왔다.

묵은지는 배추부터 무, 마늘과 액젓까지 모두 꼼꼼히 따지고 엄선하여 만든 김치를 눈밭에서 숙성하여 맛을 들인 회심의 역작이요.

돼지고기는 통삼겹의 겉면만 장작불에서 구워 겉면은 바삭하게 만들고. 오랜 시간 푹 끓여 부드럽다 못해 입안에서 사라지는 명품 삼겹살이며.

육수는 단순히 멸치와 채수만 섞은 것이지만. 좋은 재료로 낸 육수는 그 자체만으로 진국이니.

단순하지만, 그 단순한 3박자가 따로 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고. 세 여인의 표정만 보아도 그의 임무는 성공적이었음이다.

“일부러 좀 더 자작하게 해봤는데, 마음에 드세요?”

“평소보다 더욱 마음에 드는구나! 이 몽실몽실한 두부도 좋고.”

“순두부예요. 마지막에 살짝 데치기만 한 거죠.”

“사장님, 매운데 맵지 않습니다!”

“당도가 높은 고춧가루를 썼거든. 매운맛이 부족하면 말하고. 청양고추 좀 넣게.”

“월!”

“…고기가 실종된 게 아니라, 다 먹은 거야, 이 녀석아.”

입안에서 빙과처럼 녹아버리는 부드러운 고기. 육수를 가득 머금었는데 아삭함을 가진 묵은지. 거기다 몽글몽글한 순두부의 조화는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추가로 달걀말이의 경우는.

“…달걀말이 좀 더 드릴까요?”

“…….”

“자, 잘 드시는 것 같네요.”

“…….”

“크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달걀말이를 하나 더 말았다.

유독 달걀말이가 빠르게 비워진 접시가 답을 알려주었기에.

그렇게 요리시의 입가에는 드디어 안도의 미소가 그려졌다.

승자의 미소였다.

* * *

적막한 황룡의 식사가 끝났다.

어떠한 평가도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깔끔하게 비워진 뚝배기와 접시, 밥그릇 등이 평가를 대신하는 듯했고. 여명은 어딘지 큰일 하나를 해낸 사람처럼 안도했다.

‘최근 했던 요리 중 가장 피곤하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진이 다 빠졌다.

체력은 이제 무림인에게도 지지 않는다 자부하는 여명이거늘, 왠지 내일 아침이면 몸살이 생길 것만 같다.

그렇게 잠시 멍을 때리던 중.

“─인간들은 밥을 먹으면 삯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

“예에?”

황룡이 정상인 같은 발언을 입에 담았다.

“내 말이 틀린가?”

“…아, 아니요.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이 양반이 뜬금 왜 갑자기 정상적인 대응을 할까 의구심이 절로 든다.

아니, 왜 답지도 않은…?

“다 들린다.”

“알고 있어요.”

“흐음. 여전히 무례하군.”

“누가 누구한테……, 어휴, 밥값은 됐어요. 그냥 가세요.”

여명은 이 양반과 같이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인지 그저 한시라도 빨리 돌려보내고 싶었다.

왜 굳이 천산까지 온 건지나, 그를 만나러 온 이유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저 양반한테 무언가를 궁금해하면 또 시험의 연속일 터이니.

이제 시험은 싫었다.

“시험은 없다.”

“…?”

“대신 일문일답을 해주도록 하지. 물어라. 무엇이든 답해줄 테니.”

“…….”

“의심하지 않아도 좋다, …허나, 이리 말한다고 해도 우매한 너로선 의심이 드는 것이 당연할 터. 특별히 선답을 해주마.”

“아니 저기….”

멋대로 얘기를 진행시켜주지 말길 바라며 여명은 무어라 하려 했다.

이제 됐다고. 아무것도 궁금한 것이….

“흑원, 그놈이 ‘며늘아기’ 너를 나에게 보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놈의 장난일 테지.”

“장난? 아니 무슨 장난을……, 아니, 잠깐만-!?”

잘못 들은 건가?

여명은 순간 귀를 의심하며 눈을 껌뻑였다.

뭔가 이상한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자, 잘못 들은 거겠지?’

여명은 건강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귀를 부정했다.

아니, 몸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피로 때문에 정신적으로 이상이 온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

“-정확히 들은 것이 맞다. …[며늘아기]야.”

“……시부럴, 이게 왜 진짜야?”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걸까?

여명은 힘없이 손을 떨구고 말았다.

환청일 게 분명한데,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리고 있어서.

tmi후기.

-일단 황룡과 전생의 여명은 아버님과 며느리 관계가 맞다.

-황룡의 아들은 봉마림에 있는 봉인당한 영수가 맞다.

-이 사실은 다른 영수들도 몰랐으며. 오직 무봉일패와 천마 등만이 안다.

-왜 그들만 아느냐고 묻는다면….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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