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전생일록(前生日錄)(2)
세월은 마치 유수(流水)와 같이 흐른다.
이 말뜻을 초희는 정말 확실하게 이해하는 바였다.
그도 그럴 게.
“으흠, 중원삼국에 온 지 얼마나 됐더라…?”
“전날 주인이 말해준 것을 계산해 보니 올해로 딱 100년이겠군.”
“아, 그렇구나!”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거지만, 주인이여. 노망이 난 것은 아니겠지?”
“이게!”
백 년.
조선의 기억이 흐릿해지다 못해 까마득해지고. 이제는 중원삼국이 태어난 고향처럼 느껴진다.
궁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지학에 불과했던 소녀가 이제는 제 나이조차 잊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못해….
“정말 나이만 먹었군.”
“너 혼난다…!!”
“으음.”
…조금 거시기하긴 했다.
“어휴, 설마 내가 [장생법]이랑 이렇게 잘 맞을지 누가 알았겠어.”
초희는 기환술에 대한 재능을 평가하자면 중하(中下)급이라 평가받았지만. 그녀는 어느 기환술을 한정으로 독보적인 재능을 선보였다.
다름 아닌 장생법(長生法).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생을 누리는 기환술이었고. 이 기환술은 적성이 맞으면 맞을수록 독특한 효력을 내는 기환술이었다.
어느 이는 그저 건강하고 오래 살 뿐이라면, 적성이 알맞은 자는.
“주인처럼 늙지도 않고, 오래 사는 것이군. 그야말로 모든 권력자가 부러워할 만한 업적. 주인은 이를 자랑스레 여겨도 좋다.”
“…넌 어린애가 왜 이렇게 말을 잘해?”
“5년을 살았으면 천명도 깨달을 시간이지.”
“어이구, 그랬어요, 우리 천둥이.”
토닥토닥.
“…다시금 청하건대, 그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마라, 주인이여. 목숨을 구해준 것에 감사하며 주종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그 이름은….”
“오구오구.”
“으음…, 얘기가 안 통하는군.”
“헤헤.”
백 년을 더욱 넘게 살았다고 해도, 육체가 젊으니 그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는 그녀는 여전히 처녀의 풋풋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허나 이는 초희란 여인이 마냥 철이 안 들어서 그런 게 아닌, 도리어 세상에 탁함에 물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록국 명문세가의 후계와 여러 안 좋은 일로 엮였을 때도, 대상단의 걸출한 단주가 자신을 납치하였어도, 대장군부의 젊은 장군에게 목숨을 노려져도.
그녀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꿋꿋하게 버티며 긍정적인 마음을 결코 잃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세월에 정신이 마모되어가는 것을 버텨내며. 여전히 깨끗한 선함을 지킨 그녀의 정신력이야말로 장생법보다 더욱 대단한 ‘재능’이 아닐 수 없으리라.
“뭐, 그 모진 세월 버텨낸 덕분에 널 만났으니, 어떻게 보면 행운이기도 하네, 후후.”
“…….”
“뭐야, 쑥스러워하는 거야?”
“…주인은 입만 좀 다물면 더 좋을 거다.”
“귀여워라.”
역대 최강의 마교 교주 무극천마.
30년 전 우연찮게 인연이 닿아 어쩌다 보니 연을 맺은 무극천마는 현재 흑원신교 안에서 일어난 내란 때문에 한창 고독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이 때문에 제 아들을 대피시킬 장소로 그녀를 선택했다.
30년 전 몇 번 만난 것이 다이거늘, 제 아들을 맡기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으나, 애기일 때부터 키우다 보니 정이란 정은 다 들고 말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엄마, 엄마’ 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주인’이라고 부르며 거리를 두는 것이 아쉽다.
“다시 엄마라고 안 불러줘?”
“할머니라고 부를 용의는 있다만.”
“…으음, 괜찮을지도?”
“…….”
천둥, 아니 흑원신교의 소교주이자 소천마라고 불리는 그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보통이 아니라는 듯.
‘뭐, 보통 인간은 백 년을 넘게 살 수 없다는 대목에서부터 이미 보통은 넘어갔지만.’
그는 초희의 손에서 키워지며 그녀가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안다고 자부했고. 마음속 깊이 인정하고야 만다.
초희라는 여인이 얼마나 대단하고 강인한 여인인지.
그렇기에 그는 자신에게 붙은 ‘천둥이’란 이름도 마냥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여인은 마냥 남이 아닌, 정말 어미와 같았기에.
그렇게 소천마, 아닌 천둥은 그녀의 쓰다듬음을 받으며 마냥 퉁명스러워하면서도 몸을 기대었다.
그녀가 좀 더 자신을 잘 쓰다듬을 수 있도록.
“…하여간, 솔직하지 못해.”
초희는 속삭이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천둥이를 인자하게 바라보았다.
이 아이는 알까.
자신에게 있어 그를 키운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나한테도 아이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이렇게 소중했을까?’
초희에게 연정을 품고 달려든 사내들은 많았다.
백년가약을 약속하며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이들도 수두룩했고.
그러나 그중 쭉정이가 대부분이었고. 그녀는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그게 백 년 가까이 이어지며, 백년독신 생활을 해버렸지만. 후회는 없었다.
덕분에 그녀는 부족한 재능으로도 식신(食神) 소리를 듣는 인정받는 숙수가 되었고. 기환술 또한 상위 기환학사라 불리는 등반경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많은 걸 이루었고. 이제 중원삼국에서도 함부로 못 할 지위까지 오른 바였다.
그러니 제 인생에는 전혀 부족할 것이 없다고, 그녀는 확신했-.
-킁킁.
“주인, 피 냄새가 난다.”
“으응?”
“그것도,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군.”
“…어?”
천둥이의 경고를 신호로 초희의 천안은 하늘로 향하였다.
그녀는 지난 세월 동안 지켜주었던 영민한 감각마저 움직이며 경고를 보내주었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진다고.
그리고 초희는.
후욱!
“주인이여!!”
몸이 멋대로 움직이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언가를 ‘구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구한 그것은….
“담비… 가, 아닌가?”
특이하게 생긴 동물이었다.
그리고 훗날 깨달은 거지만. 자신이 구한 그 동물이야말로….
[─내 운명이었어요.]
[호, 혹시.]
[네, 맞아요. 아마 당신도 잘 알 거예요.]
[…그렇게 된 거였구나.]
여명은 어떠한 사실을 깨달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지금까지 어긋나고 비워진 퍼즐 조각들이 대부분 제자리를 찾았다는 감각은 뇌리 한편에 한 줄기 광명(光明)이 비춰진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이름은 기유. 영수 기린(麒麟)이자, 신수 황룡과 백록 사이에서 태어난 영수였죠.]
또한 다른 이름으론.
[─우리 ‘낭군님’, 혹은 ‘타락한 영수’라 불리기도 하고요.]
* * *
영수 기유.
일단 태생부터가 남다른 그는 이미 태어날 적부터 영수였던 존재였다.
기린이란 것이 무엇이던가.
상제(上帝)의 사자라고 불리며 용을 비롯한 다양한 영수의 힘을 품은 경이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사실상 신수의 위가 확정된 영수가 아닐 수 없었고. 앞으로 수백 년의 세월만 지난다면 기린은 틀림없이 신수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다만….
[음, 제 낭군님이긴 하지만. 재수가 없었죠.]
[…네에?]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성격파탄자였어요. 흔히 재벌집 망나니 아들 같은 느낌?]
[…….]
[후후, 그런데 어쩔 수 없었죠. 태어나기를 하늘 아래에서 가장 고귀하게 태어났고. 신수가 되는 것이 확정된 이였는데, 성격이 모나지 않기가 어려웠을 테죠. 뭐, 그런 모습도 귀엽긴 했지만.]
[음….]
확실히 기억 속 화면으로 비춰지는 기린, 아니 기유란 영수의 모습은 마치 깜찍한 아기 담비와 같은 귀여움을 가지고 있었다.
황룡과 같은 금색 털을 가진 용의 머리와 백록의 자식임을 증명하듯 백각(白角)과 몸통 등도 이질적이기보단 하나의 섬세한 공예품과 같아 미술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한데 어쩌다 상처를 입고 하늘에서 떨어진 걸까?
[백효 님을 알죠?]
[그거야 당연히….]
[그분한테 시비를 걸었다고 하네요.]
[네에?]
[후후, 생긴 건 깜찍하시지만. 백효 님은 공중전에서만큼은 당할 자가 없다고 불리는 강력한 영수시죠. 무려 미곡왕 그분과 동시대를 살았다고 하시는 분이니 쌓아온 격도 심상치 않으시고요. 한데 하필 낭군님이 그런 분한테 대들었다고 해요.]
[…진짜 망나니네.]
[말했잖아요. 성격파탄자였다고.]
기린이 아무리 신수 예정자라고 한들, 수천 년을 산 영수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영수란 살아온 세월이 길수록 그 강함만큼은 신수에게도 비견되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천지 분간 못 하는 애송이가 챔피언한테 덤빈 격이니, 탈탈 털리는 것도 당연할 터.
[그런데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죠? 분명 낭군님을 상처 입혔지만. 그분 덕분에 전 낭군님을 만났고. 다시 태어나서도 연이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동감합니다.]
여명은 자신의 단골이 백색 올빼미를 떠올리며 이러한 인연도 있구나 하는 신비롭고도 오묘한 소름이 돋았다.
이런 경우도 다 있나 싶어서.
하지만 지금 여명이 궁금한 건 아쉽게도 백효나 기린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절 보고 며늘아기라고 했나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드디어 의문 하나가 풀렸다.
황룡의 발언이 드디어 이해가 갔고. 여명은 백효와 인연과는 다른 어떠한 소름이 돋으며 고개를 절레절레하고 말았다.
[성격파탄자인 건 부전자전이었나 보네요.]
[…으음, 아버님한텐 죄송하지만. 동의!]
‘나’와 ‘나’가 처음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순간이었다.
* * *
초희와 기유가 처음부터 서로에게 애정을 느낀 건 아니었다.
…아닌 말로 아기 담비를 보고 설렘을 느낄 여성이 얼마나 있을까?
귀엽기만 하지.
그래도….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지? 구해준 은혜를 갚겠다.”
“괜찮아요, 영수님. 그러니 이제 가셔도 돼요.”
“그럴 수 없다! 난 어떻게든 그대에게 빚을 갚겠노라!”
“…진짜 필요 없는데.”
자존심 센 영수와의 인연이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며 초희와 천둥이, 기유와의 삼국행이 시작되었다.
아마, 이 시점이 백 년을 산 초희에게 있어 새로운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셋과 함께 보낸 나날들은 의미 깊으며.
──아름다웠기에.
“그대의 요리는 정말 맛있군!”
“주인의 요리는 항상 맛있다.”
“후후, 당연하죠! 이래 봬도 식신이라고요!”
백록국을 넘어 황룡국에서 새롭게 터전을 세우기도 했다.
“여기가 천산이군요!”
“…제법 웅장하군.”
“천산에 잠시 터를 잡아보는 게 어떻겠는가?”
“그거 괜찮네요!”
천산은 비록 아무나 자리를 잡지 못하는 곳이었지만. 영수가 있는 이상 과연 누가 그들의 앞길을 막을 수 있을까.
그들이 돌아올 집이 생겼다.
“아미산을 가보도록 하지.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백모신원에게 인사를 드려야겠군.”
“같이 가 봐요, 그럼.”
“…아주 활동적이군.”
황룡국은 백록국과 다른 신비한 것들이 많았으며. 보고 싶은 것과 알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했다.
“흠, 백모신원께선 아쉽게도 자리를 비우신 건가. 안타깝군.”
“그럼 이왕 나온 거 호북이나 가 봐요, 우리. 거긴 흑점도 있다고 하던데.”
“그곳은 미곡왕께서 있으셔서 가보고 싶지가 않군.”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도 하며….
“소저, 저의 이름은 금천패라고 합니다! 금화상단이란 곳을 이끄는 아무개지요. 혹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이놈! 그녀에게서 떨어져라!”
“…소협은 누구신지?”
“네놈이 알 것 없다!”
귀여운 담비가 사실은 제법 잘생긴 남자로 둔갑할 줄 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질투심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교에서 온 것인가.”
“우리 천둥이 괴롭히지 마요!”
“초희!!”
어쩌다 보니 흑원신교의 일에 끼어들게 되며 흑원국에 가게 되기도 하는 등….
참 여러 가지 일을 겪다 보니.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헤헤, 미안해 천둥아.”
“크흠…!”
초희와 기유는 어느 순간 연인이 되어 있었고.
“이 아이, 영수와 인간의 피가 반반 섞였군. 어미는, 흠 이미 틀렸군.”
“영수는 어디 있는데요?”
“…무책임한 이들이 많은지라, 잘 모르겠군.”
“……우리가 키울 수는 없을까요?”
“…힘들 터인데, 괜찮겠는가?”
“대모 노릇 좀 해보죠, 뭐!”
“그대가 원한다면, 나도 기꺼이 따르지.”
서로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같이 힘듦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으로 그들은 연인을 넘어 어느 순간 부부(夫婦)가 되어 있었다.
이토록 행복할 수가 있을까 싶었고. 그들은 무수한 시간을 함께 보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님을 뵈러 가요.”
“으음, 아, 안 가면 안 될까?”
“그래도 가긴 가야죠. 안 그러면 노하실 텐데.”
“……알겠어.”
부부는 황룡을 만나러 갔고. 초희는 시련을 겪게 되었다.
“헤헤, 평범해지고 말았네요.”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낭군님이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그래도, 허락을 맡아서 다행이에요.”
“으응….”
초희는 백 년 동안 쌓은 소중한 기환술을 잃었지만, 대신 사랑을 얻었다.
기유 그가.
“난 반드시 인간이 될 거야.”
그와 남은 생을 보내준다고 약속하여 주었으니까.
* * *
[기유는 너무나 고귀한 탓에 저와 아이를 낳을 수 없었어요. 다른 영수들보다 격이 워낙 높아서 발생한 일이었죠.]
[그래서….]
[네에, 인간이 되기로 했죠. 신수가 되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으음….]
[아버님이 저를 싫어하는 것도 당연해요. 중원삼국에 새로운 신수가 탄생할 수도 있는데, 그게 불발된 거니까요. 그것도 저 같은 하찮은 인간 때문에.]
‘나’는 씁쓸하게 말하였다.
자기 때문에 모든 것이 엉클어진 것 같은 죄악감이 감도는 표정.
그래도
[당시 우리는 후회가 없었어요. 사랑하는 이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낳을 수 있다니. 이만큼 행복한 사실도 없으니까요. 다만, 아버님한테 인정받는 게 여러모로 힘들었죠.]
[또 뭘 했어요?]
[워낙 엄격한 분이니까요.]
[…만악의 근원일세.]
[…이것도 부정을 못 하겠네요, 정말. 후후.]
여전히 황룡은 기유가 인간이 되는 것을 반대하며 여러 차례 천산을 찾아와 그들을 방해하고. 혹은 다른 여타의 수단으로 유혹하기 일쑤였다.
누군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졌을 만큼 강렬했지만. 초희가 누구던가.
무려 백 년을 더 넘게 꿋꿋하게 살아온 잡초 같은 생존력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제 나름대로 황룡에게 인정을 받고자.
“드셔보세요, 아버님. 맛있을 거예요.”
“이런 것을 음식이라고 가져왔더냐.”
“…으음.”
…열심히 재주를 펼쳐보았지만. 성과를 보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신수에게 음식을 끌리게 하는 건 지극히 어렵고도 불가능에 가까운 시련이었으니까.
“…뭘 좋아하실까?”
초희는 그래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달릴 줄 알았으며. 절망하기보단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울 줄 알았다.
그렇게 적게는 수십 번, 많게는 수천 번의 혹평을 들으며 그녀는 드디어.
“다, 다 비우셨네요?”
“……흥.”
황룡에게 음식을 비우게 한다는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
“초희, 다, 당신이 어떻게 심상의 도를…?”
“그게 뭐예요?”
“아, 알지도 못하고 그걸 깨우쳤다고?”
“??”
“허허, 당신은 정말 대단한 여자요.”
기환술을 잃었지만. 그녀는 새로운 재주를 손에 넣으며 훨씬 더 대단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 어쩌면 기환술보다 더욱 값진 재주.
“선식, 그렇게 불러보려고요.”
“그거 좋은 이름이구려.”
이토록 행복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초희와 기유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때마침 천둥이는 마교의 내란이 끝나며 복귀했고. 백아와 용이도 무슨 무공을 제대로 배워보겠다며 군부로 가며 신혼생활을 제대로 만끽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초희,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인간이 돼서 돌아올 테니.”
“기다릴게요.”
행복에 취하여 방심했음일까?
아니면 기환술을 잃으며 초희 자신을 지켜준 감각을 잃은 탓일까.
초희는….
푸우욱!
“빨리 가져갈 수 있는 건 다 가지고 와! 영수의 보물만 얻을 수 있다면 그때부터 우리 세상이니까!”
“저년, 죽은 거 맞지?”
“흐흐, 아깝게 됐네. 예뻤는데.”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마치 거스를 수 없는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듯.
‘아, 안 되는데….’
미련이나 후회는 바보 같은 짓이라 여겼는데, 초희는 죽을 때가 돼서야 알았다.
미련과 후회가 남는 것은.
[…소중한 것이 세상에 무척이나 많아서 그랬던 거란 걸, 그제야 깨달은 거죠.]
[…….]
[후후, 정말 이렇게 미련한 여자가 다 있을 수 있나 싶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깨닫고야 만다.
세상이란 역시 불합리하다는걸.
여명은 슬픈 눈으로 ‘나’를 동정하고 말았다.
tmi후기.
-황룡과 기린이 있는데, 어찌 초희가 죽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다음 편에 나올 예정이다.
-초희와 기유의 행동들이 등신 같다 싶을 수도 있는데, 등신 맞다. 연애를 하거나 사랑을 하면 지능지수가 떨어지더라.
-본 작가가 수십 명 커플을 보며 느낀 점이고. 제3자가 보면 답이 뻔히 보이는데, 자기들은 심각하고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본 작가는 막장 드라마보다 현실 연애가 더욱 막장이라고 본다.
-끝으로 초희를 죽인 이들은 현재까지도 고문받는 중이며.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