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61화 (261/261)

261-전생일록(前生日錄)/ft.펀치(3)

안타깝다.

사람이라면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었고. 안타까움이 절로 솟구친다.

…허나 문득 얘기를 듣다 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좀 실례되는 거 질문해도 됩니까?]

[얼마든지요.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럼 사양 않고 물어보죠. 대체 왜 죽은 겁니까?]

[…진짜 실례되는 거 맞네요?]

[그래서 미리 말했잖습니까.]

[……이러면 또 할 말이 없네.]

어처구니없어하는 ‘나’였지만. 수긍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영수의 아내이자, 신수의 며느리인 그녀다. 한데도….

[그런 분인데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으음, 이게 참….]

‘나’는 처음으로 말끝을 흐리며 우물쭈물거렸다.

제 입으로 말하기 껄끄럽다기보단, 어딘지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처럼.

[…간단해요, 그저, 저희 부부가 머리가 꽃밭이었다는 게 문제 아닌 문제였어요.]

[?]

[후후, 사랑이란 게 사람의 지능지수를 아주 많이 떨어트리더라고요.]

당당히 자랑할 만한 얘기도 아니지만. 초희는 기유를 만난 이후, 젊은 시절로 회귀한 것처럼 머릿속이 꽃밭이 되어 갔다.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세상이 마냥 아름다워 보이고. 모든 것이 다 행복하고. 혹은 드라마처럼 앞으로 이어질 나날은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허나 이는 정말 어리석은 것이며.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고 처절할 따름일진대, 이를 초희와 기유는 정말 머저리처럼 인지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소문이 잘못 난 건지 모르겠지만. 천산에는 ‘영수 기린의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확실히 기유가 천산을 자주 날아다녔으니, 그런 소문이 퍼지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혹시 그 보물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름 아닌 저였죠.]

[…….]

[제, 제가 원해서 생긴 소문이 아니에요! 소문이란 게 퍼지면 원래 말도 안 되는 걸로 번진다는 걸 잘 알 거면서….]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보다 그런 소문이 퍼지면 확실히 노리는 사람이….]

[네에, 엄청나게 많았죠.]

이는 어떻게 보면 기린의 잘못이었다.

명확하게 초희가 누구인지 밝혔다면, 아니. 처음부터 천산이란 곳에 사람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그랬다면….

[모두 만약의 얘기일 뿐이지만요.]

분명히 말하자면 초희는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어느 정도 있었다.

기린에게 받은 보패 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천산의 주민들은 그렇지 않았죠.]

천산에는 마냥 은거자만이 사는 것이 아닌, 천산 태생에 주민들도 많았다.

그리고 천산의 보물을 찾기 위해 들른 무수한 무림인들이 과연 그 주민들을 얌전히 내버려 두었을까?

[아니었죠. 그래서-.]

[-오지랖을 부렸다, 그 뜻이죠?]

[……네에.]

[…….]

여명은 이제 뒷얘기를 듣지 않아도, 어떠한 상황이 그려졌다.

그야말로 환장의 콜라보를 넘어, 목이 꽉꽉 막히는 닭가슴살 100% 쉐이크보다 더욱 먹기 힘든 사건 사고가 일어났던 게 분명하리라.

‘이 사람 성격에 남들을 절대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테고.’

전생의 ‘나’와 몇 번 얘기를 나누며 이미 대충 어떤 인간상인지 파악한 여명이다.

이 사람은 절대 자기 때문에 누가 희생당하는 걸 지켜보지 못할 터.

또한 제 입으로 단호하게 말했지 않은가. 머리가 꽃밭이었다고.

아마 오지랖을 부리면서도.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고 여겼던 거겠죠. …지금 생각하면 미쳤던 거지만.]

[…….]

[그, 그렇게 보지 마요. 저 진짜 반성하고 있으니까요….]

[반성하면 뭐 합니까. 결과는 지금 이 모양 이 꼴인데.]

[…‘나’는 심술궂네요.]

[솔직한 겁니다.]

[쳇.]

[삐지는 건 나중에 삐지고 뒷얘기나 해줘요.]

[‘나’는 진짜 냉정하네요.]

이미 여명이 예측한 대로 이후 펼쳐지는 얘기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비극적인 스토리다.

괜히 나대다가, 혹은 정의감이란 같잖은 의협심을 보였다가 벌어진 서글픈 얘기.

[보패 대부분을 썼을 때 하필 아이를 지키려다 칼에 찔렸고. 그대로 죽고 말았죠.]

[으음….]

[아마 이와 같은 일이 생길 걸 아버님이나 기유나 몰랐을 거예요. 아버님은 애초에 인간들 일에 별 관심이 없으셔서 하계로 잘 내려오지도 않으실뿐더러, 기유도 때마침 아버님에게 가 있었으니.]

[황룡해….]

[후후, ‘나’도 가봤으니 알 거예요. 거긴 중원삼국과 완전히 단절된 세상이란 걸.]

[…진짜 재수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있나.]

여명은 그제야 초희가 죽은 이유에 대해 납득하면서도 불운이 얼마나 겹치면 저런 일이 발생할 수 있나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껏 저는 운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예상이지만 타고난 선골이 액막이가 되어 불운에서 저를 지켜준 게 아닐까 싶어요. 한데 기환술이 사라졌으니….]

[지금껏 오지 않았던 불행이 한꺼번에 왔다, 뭐 이런 뜻입니까?]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요. 그러니 가능하면 ‘나’도 조심해요. 가능하면 무공을 꼭 익히고요!]

[…그 얘기를 들으니 정말 미칠 듯이 익히고 싶긴 합니다.]

[푸하! 솔직하네요, 정말.]

‘나’는 깔깔 웃어대며 호감을 보였는데, 여명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보였다.

여명도 대책 없고 어벙한 전생의 자신이 조금 껄끄럽긴 하지만. 그저 타고난 인싸와 아싸의 성향 차이 때문에 생기는 껄끄러움이지. 사람 자체는 싫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과 별개인 활발한 성품이 부럽기까지 하였지.

‘…정말 아이러니하네.’

만약 그녀가, 초희란 사람이 실제로 살아 있었다면 서로의 요리를 공유하기도 하는 긍정적인 관계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가 죽었기에 자신이란 사람이 태어난 것이니….

이토록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흠흠, 아, 정말 ‘나’ 덕분에 실컷 웃었네요.]

[…더 해줄 얘기는 없습니까?]

슬슬 대화를 끝내려는 ‘나’의 모습에 조심스레 물음을 던지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요. 전 죽었다고. 죽은 사람이 생자(生者)들의 얘기를 알 도리가 없는 법이죠.]

그나마 현생을 살아가는 환생체. 여명이 전해준 경험과 지식 덕분에 초희란 여인이 죽은 이후 일어난 일을 대강이나마 알게 됐을 따름이었고. 이후의 일은 그녀에게 기억이 없었다.

그래도 몇 가지 예측하자면.

[우리 낭군님이 화가 많이 났을 거란 건 알죠. 그래도 다행인 게 낭군님이 많이 참아서 적당히 끝났다는 거죠.]

[…봉마대전은 엄청난 참변이었다고 하는데, 적당한 수준이라고요?]

[결국 참변 정도로 끝났다는 거니까요. 만약 낭군님이 정말 미쳐 날뛰었다면 중원삼국의 사람들은 모조리 다 죽었을 거예요. 그나마 절 생각해서 이성을 유지했기에 그 정도로 끝난 거겠죠.]

[허어….]

묘한 확신이 서린 그녀의 답변에 여명은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기억으로 보았던 기유란 존재가 가진 강함은 대단한 것이었고. 만약 정말 이지를 상실하고 미쳐 날뛰었다면….

부르르…!

‘상상도 하기 싫네.’

여명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는 아찔함을 느끼면서도, 저 정도로 자신의 남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나’에게.

[…당신이 봉인당한 그를 만나면 좋을 텐데….]

[후후, 현생의 나는 정말 착하네요. 저보고 호구라고 할 것도 없네요.]

[닮았나 보죠, 뭐.]

[인정! 역시 세 살 버릇 환생하고도 못 고치는 거군요.]

‘나’는, 초희는 여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곧장 이해했다.

이미 하나인 그들이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이상할 지경.

‘나에게 몸을 잠시 빌려주고 싶다는 거네요, 하여튼 사람이 너무 좋아요.’

어떤 장애가 생길 줄 알고 사자(死者)에게, 아니 전생에게 몸을 빌려준다는 건지, 원.

그러나 그가 순간의 의협심만으로 저러는 게 아닌, 초희란 사람을 믿기에 저러한 제안을 줬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래, 너무나 고마웠지만.

[‘나’도 알 거예요. 저라는 사람은 결국 아버님의 바람 덕분에 잠시나마 전세의 나를 만나는 게 허락됐을 뿐인 어설픈 ‘기억의 조각’이란 걸. 이 꿈이 끝난다면 저는 다시금 현재의 나와 하나가 될 테고. 앞으로 다시 저와 만나는 건 불가능할 테죠. 이미 하나의 존재가 따로 분리될 수는 없을 테니까.]

[으음….]

[그러니 안타까워하지 말아줘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 오히려 저는 ‘당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더욱 즐겁고 뿌듯해요.]

[…….]

[저 대신 더 많이 행복해져 주세요. 그게 이제 저에게 남은 하나밖에 없는 소망일 테니.]

[아….]

스르륵….

점차 안개처럼 몸이 흐릿해져 가는 초희를 보며 여명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아직 대화하고 싶은 것이 많고. 궁금한 것도 수두룩하지만.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허무하게 모든 것이 끝을 맺어가고 있다는 것이 뇌리를 관통했다.

여명의 허무한 손짓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점차 흐릿해지는 초희가 제 뜻을 남기듯 다정히 말을 이었다.

[이런 말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당신이 저의 환생이라 다행이에요. 나쁜 사람이었다면 좀 실망했을 것 같거든요.]

[아, 참. 유언 같은 건 딱히 아닌데, 만약 괜찮다면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한테 이 말들 좀 전해줄래요? 뭐냐면──.]

[그리고 이런 것도─.]

[…하아, 진짜 말하다 보니 계속 욕심이 과해지네요. 미안해요, 그래도…. 해줄 거죠~?]

어딘지 장난스러우며. 그가 당연히 거절하지 않으리란 말투에 여명은 무어라 잔소리하는 것도 잊은 채 마냥 헛웃음을 내뱉었다.

[…괘씸해서 안 해줄 것 같습니다만.]

[역시, 그럴 줄 알았어.]

[…….]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아니, 그들은 이미 하나였기에 속내를 숨긴다는 개념이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마워요.]

그녀의 영원한 이별과 같은 인사말을 끝으로 여명은 다시금 강제로 눈이 감겼다.

………

………

그렇게….

퍼억!!

여명의 주먹이 작렬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

“……무례한 놈.”

꼬장꼬장하기 짝이 없는 노인, 황룡의 얼굴에.

그야말로 반사적으로 날아간 주먹이었고. 여명은 그제야 주먹이 꽂힌 감각과 함께 인식했다.

“돌아왔구나, 나….”

자신이 깨어났음을.

그렇게 여명은….

“근데 왜 그렇게 가까이 있었어요?”

황룡을 꾸짖었다.

얼굴이 보여서 저도 모르게 강제(?) 폭행을 해버리고 말았다고 따지듯이.

“할 말이 그것밖에 없나 보지.”

“다른 말이요? …무슨 말이요?”

“…불쾌하군.”

그러한 여명의 반박에 황룡은 어딘지 미친놈 보듯 그를 보긴 했지만 여명은 당당했다.

노인의 얼굴 정면에 정권 펀치를 먹인 건 분명 잘못된 일이며. 나름 전생에는 아버님이기까지 했던 양반이니 삼강오륜의 법칙에 따라 머리 박고 사죄해야 하는 것이 옳을 테지만.

‘누가 앞에 있으래.’

안 그래도 더 싫어진 양반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침을 안 뱉은 게 어디겠는가.

여명은 전혀 사죄하고 싶지가 않았다.

도리어.

‘아, 속 시원하다!’

쾌감이 일어날 정도에 쾌감을 느꼈지.

소금을 뿌리는 것을 넘어 신수에게 아예 주먹질마저 성공하는 대업적을 성공시킨 여명은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보고 계세요 전생의 나…?

‘내가 해냈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 아니 전생을 하고도 늦지 않음이었다.

tmi후기.

-티는 안 냈지만 황룡은 여명의 펀치가 상당히 아팠다고 한다.

-여명은 태어나서 지금껏 남을 때린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때려 보았다고 한다.

-반대로 황룡은 지금껏 태어나서 누구한테 맞아본 적이 없는데, 처음 맞아본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흑원과 백록은 찬사를 보내며 여명에게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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