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47화 Ep.47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따끔따끔.
얼굴 쪽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알 수 없는 포근한 기운이 따뜻하게 감싸는 게 느껴졌다.
“•••꾈?”
“아,깨어나셨네요.”
눈을 뜨니 은은한 금빛이 흘러나오는 손바닥과 들은 적 있는 여자의 목소 리가들려왔다.
“아직 치료가 덜 끝났으니 잠깐 눈 감고 있으세요〜”
“아,옙.”
나는 목소리의 주인이 아침에 나에 게 식사와 함께 쪽지를 주고 갔던 사제 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을 감싸던 따스함이 사라졌다.
“네. 이제 일어나셔도괜찮아요.”
“옙.
얼른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이세계에 와서 마법은 비젤린님이 사용하시는 걸 몇 번 봐서 익숙했지만 설마 내가 신전에서 치유를 받는 일이 생길 줄이야.
아니,그런데 내가 왜 치유를 받고 있는 거지 엩
나는 나를 향해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제님께 물었다.
“모험가시론?”
내 질문에 답하는 것 대신 사제님은 고개를 슬그머니 뒤로 돌리더니 시선 을 살짝 아래로 향했다.
나 역시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침대 아래에 바 짝쭈그려 앉아눈만 빼꼼 내밀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론이 있었다.
“시론?”
너, 괜찮냐?”
“뭐가?”
기억 안나?”
사실 방금 시론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억이 났다.
시론이 날린 주먹질에 처음으로 앞이 깜깜해지는 경험을 한 것을 말이다. 그럼 에도 내 가 모른 척하는 건 시론의 행동이 귀 엽 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모 른 척 넘어가는 편이 나에게도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괜히 그뭐 시냐. 얻어맞은 거야사실 별 상관없는데 이렇게 모르는 척 넘어 가면 내가 다른 여자들을 보고 발기했던 사실까지 은근슬쩍 넘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뭐 ... 시론의 저 모습을보아하니 때린 게 미안해서라도 넘어가줄 것 같아 보이긴 하다만.
“스미스님? 아침에 저와만났던 건 기억하시죠?”
“옙.아침도 맛있게 먹었고 예. 기억합니다.”
“흐음〜”
“뭐뭐.
사제님이 힐끗 시론을 바라보자 시론이 흠칫 몸을 떨며 시선을 피했다. 아 무래도본인이 잘못한건 아나보다.그래서 귀엽다.
한참 사제님의 시선을 받던 시론은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와 같은 얼굴로 내 얼굴을 힐끗힐끗거렸다.
“지, 진짜로기억 안나?”
“아니, 그러니까 뭐 가?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시론 너가 찾아온 것까지 는 기억이 나는데 … 그랬는데 왜 침대에 누워 있었던 거지?”
사제님이 시론을 노려보는눈빛이 조금더 강해졌다.
시론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됐어!!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튼 너 몸은 괜찮은 거지?”
“응? 어. 아침에는노곤했는데 사제님 덕인지 팔팔하네.”
농담이 아니라진짜뻐근하던 허리라던지 전체적으로 몸이 아주 말짱해졌 다.
“그럼 얼른 나가자. 씨발, 당분간은 신전 꼴도보기 싫으니까.”
“어...그래.”
사제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해도 괜찮은 건가.
하긴. 언제 시론이 남의 눈치를 보긴 했던가. 아니, 아르델라님 앞에서는 눈치를 보긴 했었구나.
아무튼 나는 말짱해진 몸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내가 내려오기 무섭게 시론이 내 왼쪽 손을 붙잡았다.
“대금은 필요 없다고 했으니까. 우리 간다?”
“모험가시론. 여자가 남자를 폭….”
“아아아아!!! 간다!!”
“엌一!! 사, 사제님 감사했습니다!!”
나를 끌고 거의 달리듯 신전을 빠져나온 시론이 향한 곳은 다른 곳이 아닌 동쪽 경비대였다.
“오!! 스미스님!!”
“헉?! 스미스님이 오셨다!!”
“대장님께 알려라!!”
내 얼굴을 확인한 경비대원들이 하나같이 호들갑을 떨며 뛰어다녔다.
진짜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로 말이다.
저년들왜 저래?”
“그,글쎄?”
나는 존나 찔리는 게 너무 많아 일단 얼버무렸다.
“그, 그런데 시론아. 경비대는 갑자기 왜 온 거냐?”
“몰라. 케르낙스 그년이 면회 와서는 나중에 너 데리고 찾아오라고 그랬 거든.”
“오우
쉣.
아무래도 이 거 잘못했다가는 정수리 가 움푹 들어 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면회라니.
내 가 폭풍섹스 하는 동안 시론은 도대체 무슨 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다.
“아무튼… 몸은 정말괜찮은 거야?”
“엉? 아, 엉. 괜찮다. 이거 봐라.”
나는 놀고 있는 오른팔을 들어 내 탄탄한 근육을 과시해 보였다.
“……다른년들보니까하지마.”
“흐흐, 그래.”
얼굴을 살짝 붉히는 시론. 진심 존나 귀 엽다.
그런데 난 웃을 수가 없다. 왜냐면 조금 있으면 폭풍이 찾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지. 쓰벌.
우리는 경비대원의 안내를 받아 케르낙스의 집무실까지 매우 빠르게 도 착할수 있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
쾅一!!
경비대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론이 집무실의 문짝을 걷어차 열어버렸 다.
“그,그럼….”
천하의 경비대원도 시론의 무자비한 악명(엩)앞에는 어쩔 수 없는지 그저 눈치 를 보다가 호다닥 복도를 뛰 어 가 사라져 버 렸다.
“……문은 손으로 여는 거다. 발로 차지 말도록 모험가 시론.”
“어.나도알아.”
시론은 내 손을 붙잡은 상태로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고 나는 눈치껏 활 짝 열린 문을 엉덩이로 밀어서 닫았다.
“일단은둘다무사해서 다행이다.아,거기에 앉도록.”
“말 안해도 앉으려고 했어.”
아니, 시론아. 보통은 앉으면 안돼….
나는 시론과 함께 전에는 없었던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사이좋게 엉덩이 를 붙이고 앉았다.
케 르낙스는 처 리 하던 서류를 잠깐 뒤 로 미 루고서 자리 에 서 일 어 나 우리 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뭐길래 면회까지 와서 오라고 불렀냐.”
“흠.”
케르낙스는슬그머니 시론의 옆에 붙어 있는 내 얼굴을 힐끗했다.
“……왜 이새끼 눈치를 보냐.”
“모험가시론.”
“왜 씹년아.”
내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시론의 기분이 실시 간으로 나빠지고 있는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시론을 한동안 지그시 바라보던 케르낙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험가 시론. 우선은 이 공간에서 결코 무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내가? 왜?”
“아무리 너라하더라도 이곳은 경비대 내부다. 소란을 일으키면 원칙대로 널 포박해야 한다.”
“허 참…. 할수는 있냐?”
“……내가못할거라고보나?”
비교적 덤덤하던 케르낙스마저 시론의 계속된 도발에 끝내 눈을 찌푸리 고말았다.
이게 진짜내가 알던 여자들의 기 싸움이 맞나.
둘의 가슴이 좀 웅장하긴 하다.
한참을 서로를 노려보던 둘.
먼저 기세를죽인 건 역시나케르낙스였다.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지길 바란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그런데… 뭐 때문에 불렀냐고 물었는데 왜 계속 헛 소리야?”
“…….”
시론이 대답을 다시 한번 독촉하자 케르낙스의 입술이 몇 번인가 달싹거 렸다.
“모험가시론.”
시론은 대답하지 않고 ‘어디 말해 봐.’ 같은 눈으로 고개만 까딱거 렸다.
그 모습에 케르낙스의 남아 있던 망설임이 마저 사라진 것인지 케르낙스 가 당당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스미스와 연인 사이가 되 었다.”
“……하?”
시론의 눈썹이 V가되었다.
“잠깐만…. 내가… 잘못 들었나? 뭐?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스미스와 연인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까드드득.
시론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내 귀로 무언가 잔뜩 갈려나가는 섬뜩한 소리 가 들려왔다.
힐끗 옆을 보니 시론의 볼이 떨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론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지그시 케르낙스를 노려봤고 케르낙스는 시론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 것인지 그저 묵묵히 시론의 시선 을 받아낼 뿐이 었다.
“그러니 까… …. 내 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에 니년이 스미스를 꼬셨다고 ?”
..
나는심장이 너무 힘차게 뛰어서 가슴이 터지는 건 아닐까걱정이 되었다. 그도그럴 것이 먼저 꼬신 건 케르낙스가 아니라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선을 지 키려던 케르낙스에 게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무지성 섹스어필을 날린 탓에 케르낙스가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넘어온 것이지 결코 케르낙 스가 날 먼저 꼬시지 않았다.
만약 이 사실을 시론이 알게 된 다면 저 분노는 케 르낙스가 아닌 날 향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못해 확정에 가까웠다.
나는 마른침 을 삼키 며 케르낙스의 대 답을 기 다렸다.
그래.”
“하一!!”
결코 본인이 날 꼬신 적이 없음에도 케르낙스는 자신이 날 꼬셨다고 시론 에게 대답해줬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훈훈한 내 마음과 달리 케르낙스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집 무실의 분위 기는 말 그대로 씹창이 났다.
콰각一!!
시론과 케르낙스 사이에 놓여 있던 테이블이 시론의 발길질 한 방에 찢어 지듯 반으로 갈라졌다.
갈라지면서 생겨난 파편의 조각이 케르낙스의 얼굴에 고스란히 튀었다.
얼굴에 파편을 맞은 케르낙스는 담담하게 손으로 얼굴을 털어낼 뿐 어떤 행동도취하지 않았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버렸다.
“할말은. 그게 끝이냐?”
“모험 가 시론. 네 가 첫 번째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라. 스 미스는 네 녀석의 소유물이 ….”
케르낙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론의 발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반 토막이 난 테 이블의 한쪽을 걷어차 그대로 케르낙스의 얼굴에 날려버 린 것이다.하지만 이번엔 케르낙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쿠웅-
케 르낙스의 주먹 질 한 방에 조각난 테 이블은 수직 으로 다시 바닥에 처박 혀 완전히 조각나버렸다.
“……스미스는네 녀석의 소유물이 아니다.”
“씹년아. 누가 그걸 모를까 봐.”
“내 눈에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내가? 하! 내가진짜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면 진즉에 니년 머리통을 부 숴버렸을 거야.”
“사교도에 붙잡힌 주제에 내 머리를?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군.”
뭐?”
“뭘 못들은척하는 거지? 제대로들은 것이 맞다.모험가나부랭이.”
“너…….”
“왜. 자존심이 상하나? 허나자존심 상할필요는 없다.사실이니까.주변에 서 네 녀석을 은등급 모험가라고 떠받들어주니 정말로 네 년이 대단한줄 아 는 것 같은데 아주 큰 착각이라고 말해주지. 수도 근처의 도시만 가더라도 네 녀석과 비슷한수준의 모험가 정도는 쉽게 찾아볼수 있다.”
시론의 손등에 혈관이 꿈틀거리며 피부 위로드러나기 시작했다.
“화가 나나? 그렇다면 다행이군. 난 네 녀석이 분노나 수치심을 모르기에 남들에게 언제나 폭언을 퍼붓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다행이군.”
“너……!!”
“스미스.”
주먹을반쯤 들어 올렸던 시론은케르낙스의 입에서 내 이름이 튀어나오 자 몸을 흠칫 떨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스미스.”
“어,어?”
“미 안하지 만 오늘은 그만 길드로 돌아가라.”
“어……그….”
나는 반쯤 일어선 자세로 굳어 있는 시론을 살폈다.
진짜 이대로 떠나도 좋은 걸까.
그러 나 나는 곧 이 어진 케 르낙스의 말을 듣고 케 르낙스가 나에 게 부탁이 아닌 명령에 가깝게 이야기한 것을 알수 있었다.
“엿듣고 있는 놈들. 스미스를 길드까지 데려다주도록. 지금 당장.”
—예, 예엣!!
밖에서 우렁찬목소리와 함께 집무실의 문이 활짝 열렸고 세 명의 병사들 이 들어와 내 주변을 둘러쌌다.
“스미스. 여 자와 여 자의 대 화다. 지금 자리 에 선 남자인 네 가 있어봤자 좋 을 게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그만 돌아가도록.”
“……돌아가.”
케르낙스에 이어 시론까지 나에게 길드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나는 잠깐 그 둘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