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Ep.51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내가 아르델라님의 제안을 받아들인 직후, 아르델라님은 잠깐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우셨다.
나 역시 그사이에 아멜라 누님을 찾아가 아르델라님과 있었던 일을 이야 기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아멜라 누님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르델라님이 사전에 아멜라누님께 이미 다 이야기를끝낸 다음에 나를 찾아온것이다.
아멜라 누님은 시론에 게 주었던 물건 같은 것만 양산하지 말라는 주의 만 주시고는 그 이외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고 얼마 후에 아르델라님 이 다시 혼자 찾아오 셨다.그런데 이번에는 빈손이 아니었다.
사각사각사각.
아르델라님이 내 침대에 엎드려 조금 전에 가져오신 서류를 읽으며 깃팬 으로 무언 가를 빠르게 끄적 이고 넘 기고를 반복하는 중이 며 , 나는 그 옆에 서 수북하게 쌓인 서류들을 대충 종류별로 분류하는 중이 었다.
나는 바보처럼 ‘어째서 내 방에서?’ 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다만, 왜 멀 쩡한 책상을 두고 침대에서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에 아르델라님은 ‘책상처럼 딱딱한데 누울 수까지 있는 침대를 두고서 굳이 불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작업을 해야 할 이유라도?’ 라고 답하셨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르델라님의 그 터질듯한 가슴을 고려한다면 엎드리는 것도 썩 편할 것 같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당연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누님. 이걸로 마지막입니다.”
“음. 알겠다.”
나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도시의 치안 안건에 대한 서류를 아르델라님 께 건넸고 아르델라님은 잠깐 서류를 훑더니 깃팬을 잠깐 꼬적이는 것으로 서류를 돌돌 말아다가 옆에 놓았다.
둥글게 말린 서류가 거의 내 키만큼 쌓여 있는 모습을 보니 진짜 일다운 일 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생이 도와줘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빨리 끝난느낌이군.”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아르델라님 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바로 앉으셨다.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흉부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다.
“생각해보니 저녁도먹지 않았군.”
“아, 옙. 그, 그랬죠.”
아르델라님 의 맑은 목소리 에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아르 델라님의 얼굴을 보았다.
등불의 불빛에 비친 아르델라님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뭔가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달빛이 들어오는 창밖을 보고 있던 아르델라님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흠… 나가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오늘은 그다지 움직이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그러니 동생.누이를위해서 식사를좀 가져다줬으면 하는데.
“누님이 그러고 싶다면야 당연히 그렇게 해드려야죠. 잠시만 기다리십쇼.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아아, 메뉴는 어떤 게 좋습니까?”
“딱히 가리는 건 없다. 먹을수만 있다면 뭐든 입에 넣는주의라서 말이지.”
“흠…… 알겠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아무거나.’와 같은 수준의 주문을 받고 뒷계 단을 통해 주방으로 바로 내 려왔다.
다행히 아멜라 누님이 주방에 있었기에 나는 대충 상황을 설명하고 간단 하게 만들 수 있는 샌드위 치를 부탁드렸다.
“나중에 돈 내라.”
“……돈 내야 합니까?”
“이게 미쳤나. 당연히 돈 내야지. 누군 땅 파서 장사하냐?”
“누님….”
“쓰읍. 애교는너 새끼 애인들한테 가서 떨고, 아무튼나중에 돈 내라. 알 겠냐?”
“쳇.”
내 가 혀를 차자 아멜라 누님 이 낄낄 웃으며 적당히 채소와 고기를 넣은 샌 드위치를 넉넉하게 만들어 접시에 담아주셨다.
나는 밍밍한 맥주 대신 잔에다가 우유를 담아 재주 좋게 그것들을 들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샌드위치인가. 나쁘지 않지.”
다행히 아르델 라님의 입꼬리 가 흐릿하게 올라간 것을 보니 빈말로 좋다 고 말씀하신 건 아닌 듯 보였다.
...
여전히 내 침대에 앉아 있는 아르델라님을 위해 나는 바닥과 다름없는 내 침대 위에 가져온 것들을 가지런히 놓았다.
아르델라님은 두툼한 샌드위 치를 들고 말했다.
“영지 순회 를 돌다가 근처 마을에 휴식을 취하고 떠 날 때면 촌장이 나 그 남편들이 항상 이런 샌드위치 같은 먹을거리를 만들어주고는 했지.”
그리 말씀하시고는 샌드위치를 한 입 먹더니 ‘그래도 맛은 이게 훨씬 좋군 . 하]•하.’라고 말하며 작지만,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셨다.
그 모습이 또 서류를 처리하실 때와 다릴 무척 가볍고 소탈해 보였다.
음
E그 •
“왜 그러십니까?”
한참 샌드위 치를 드시 던 아르델라님 이 힐끗 내 얼굴을 보시 더니 고운 눈 썹을 아주, 아주 살짝 찡그리셨다.
“막상이렇게 같이 식사를하게 되니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모르겠군 . 내 가 말해 줄 수 있는 거 라고는 지 루하고 또 남자인 네 가 듣기 에는 다소 잔 혹한 것들뿐이니 말이다.”
“어,음….”
예상치 못한 아르델라님의 대답에 나도 순간 말문을 잃었다.
보통이 었다면 내 가 주저리 떠들었을 테지 만, 아르델라님의 신분이 또 신 분인 데다가 몰링타를 벗어 난 적도 없는 내 가 아는 이 야기 가 썩 재 미 있을 거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구의 이야기를또 꺼낼수도 없는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르델라님이 저렇게 눈을 찌푸리고 있는데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도 없기에 나는 놀고 있던 머리통을 최대한 굴렸다.
“그,누님은평소에 어떤 생활을하고 계십니까?”
“나말이냐?”
“예.누님.”
정말 안타깝게도 내 머리통으로는 아무리 굴려도 꺼내 볼 만한 이 야깃거리 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델라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냥 존 나 호응하기로 했다.
아르델라님은 만쯤 베어 문 샌드위치로 작은 입술을 툭툭 건드리시며 말 했다.
“어 떤 생 활이 라고 해도 말이 지 …. 저택 에 있는 시 간보단 영 지를 순회 하는 시간이 더 길단다.”
“그럼 계속 도시 에 서 도시로 이동하시는 겁니 까?”
“보통은 두 개의 도시를 점검하고 저택으로 돌아와 일주일 정도를 쉬고 다시 나가지.”
나는 태연하게 말하는 아르델라님의 반응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차도 기차도 없는 이 중세시대에서 오로지 말을 타고 도시에서 도시를 계 속 오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그럼 저택에 계실 때는무엇을하십니까?”
“밀린 서류를 처리하지. 어머니께선 국경을 돌아다니셔서 바쁘니 말이다.”
“동생분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
“녀석들은 서류를 보는 것보단 칼을 잡고 나가서 마수나 도적 따위 를 잡 는걸 더 좋아해서 말이지.”
내 착각일 지도모르겠지만 샌드위치에 가려져 있는 아르델라님의 입가 에 조금 쓴웃음이 그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언제 쉬는 겁니까?”
“서류를 처리하는 게 나에게는 휴식이다. 적어도 긴장을 풀고 제대로 앉 아 홍차나 군것질 같은 것을 편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 야. 하하.”
“오우쉣....”
나는 진심으로 눈앞에 있는 여성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의자에 앉아 밀린 서류작업을 하는 게 휴식 이라니.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역시 재미없지 ? 나도 내가 그다지 말주변이 없다는 걸 안다.”
아르델라님 이 흐릿하게 웃으며 입술을 두드리 던 남아 있던 샌드위 치를 마저 입안에 밀어 넣으셨다.
“누님.그러면오늘은원래 저택에 계셨어야하는날인데 일부러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음? 아아, 그렇지.”
아르델 라님 은 우유를 한 모금 마시 며 내 려 놓았다.
“너와의 일도 그렇고 그 두 녀석의 일도 그렇고 원래는 다른 가신을 보내도 괜찮았다만 내가 너를 보고 싶어서 직접 와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이 렇게 서류도 같이 가져왔지만. 하하.”
아르델라님은 내 침대 구석에 둘둘 말린 상태로 쌓여 있는 서류들을 한번 힐끗하시고는 작게 웃으셨다.
등불과 달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은은한 빛에 아르델라님의 흐릿한 미 소가합쳐지니 내 가슴 한켠이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다.
쓰벌, 스미스 씹새야. 정신 차려 라.
나는 헛기침을 하며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왜 그러지?”
“아닙니 다. 그것보다 부족하진 않으십니 까?”
“아아,평소에도그리 많이 먹는편이 아니라서 딱적당히 배가부르군.”
아르델라님은 어울리지 않게 본인의 배를 살짝두드려 보였다.
나는 눈치껏 남은 걸 얼른 입에 쑤셔 넣고 남은 우유와 함께 꿀떡 삼키며 빈 접시를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우고 오겠습니다. 뭐 따로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음. 없군.”
“옙.그럼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호다닥 아래로 내 려 가 접시와 잔을 주방에 넘 겨주고는 방으로 돌아 왔다.
당연하지만 아르델라님은 여전히 내 침대에 앉아 계셨고 창문으로 비치 는 달빛을 구경하시 다가 내 가 들어오자 나를 돌아보셨다.
“서 있지 말고 이리 가까이 앉아라.”
아르델라님 이 바로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고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아 주, 아주 살짝 엉덩이를 떨어트리고서 아르델라님의 옆에 앉았다.
그 모습을 지 켜보던 아르델라님 은 별말 없이 그저 특유의 그 흐릿한 미소 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 일 뿐이 었다. 그리 고는 다시 창밖에 떠 오른 달을 구경 하셨다.
“스미스.”
“옙.누님.”
“누이로서 작은 부탁이 있는데 괜찮다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제가할수 있는거라면야뭐.”
달을 바라보던 아르델라님 이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 며 내 얼굴을 바라봤 다.
“잠깐 잠을 청하려는데 무릎을 빌려줬으면 한다.”
무릎이요?”
“그래. 무릎.
솔직히 말해서 당황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었기에 그랬다.
“그… 상관은 없습니다만, 여기서 주무시고 가실 생각입니까?”
“불편한가?”
“어 •••그, 뭐시냐. 불편하다기보다는….”
남자와 여 자가 한방에 서 잔다니.
나는 절로 마른 침 이 목으로 넘 어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아르델라님이 재미있다는듯이 큭큭웃었다.
“동생에게 손을 뻗을 정도로 몰상식한누이는 아니니 긴장하지 마라.”
“아니뭐… 커흠.”
“하하.부하들에게도 따로 내 방을 잡으라고 일러두지 않았다. 그러니 누 이를 재워주게.”
정 말 순수한 미 소를 지 으며 말하는 아르델 라님 의 모습에 나는 고개 를 끄 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잠깐 무릎을좀빌리지. 자, 이쪽에 앉아라.”
아르델라님은 침대의 머리 쪽으로 나를 옆으로 앉혀 두 다리를 쭉 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는 내 허벅지 에 그 고운 은빛 머리 칼을 가지 런히 모으시고 는 머리를 눕히셨다.
“음, 나쁘지 않군. 무겁지는 않지?”
“전혀. 아주 가볍습니다.”
“하하, 그건 다행이군.”
아르델라님은 정말로 내 허벅지에 머리를 눕히고는 눈을 감으시더니 양 손을 배에 가지런히 모으셨다.
“한 번 잠들면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니 그때는 나를 내버려 두고 볼일을 봐도 좋다.”
“옙.,,
그 대 화를 끝으로 대 화는 끝이 났다.
내 방에는 작은 등불과 달빛. 그리고 아르델라님의 고른 숨소리만이 남게 되었다.
“•••꾈.”
“•••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멍하니 달빛에 비친 아르델라님의 얼굴을 감상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 랐다.
눈이 내린 것 같은 새하얀 피부에 조각 같은 코. 앵두같이 작고붉은 입술. 정말로 인형 같은 외모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누님.”
“…….”
“……누님. 잠드셨습니까?”
“…… ”
몇 번인가 소리를 조금씩 키워서 아르델라님을 불러보았으나 미동도 하 지 않고 그저 고른 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에 나는 완전히 깊게 잠들었다고 판단하며 조금씩 몸을 움직 였다.
꾹꾹.
아르델라님의 뺨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그리고 말랑했다.
체 구도 나보다 작았고 팔목도 나보다 얇았으며 나보다 큰 거 라고는 흉부 에 달린 풍만한 젖가슴뿐이 었다.
어떻게 이런 몸으로 그런 미친 일정을 소화 할수 있는지 정말로 궁금했다. 동시 에 조금 안쓰럽 다는 생 각도 들었다.
뭐 , 노예 인 내 가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 지만.
그것도 백작위를 물려받을 차기 장녀를.
하지만 그건 그거고 또 이건 이 거다.
나는 곤히 잠든 아르델 라님의 앞머 리를 아주 부드럽 게 , 그리 고 살살 쓰다 듬듯이 쓸어내 렸다.
아르델라님의 머릿결은 뺨만큼 이나 부드러웠다.
달빛을 받을 때마다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머리칼이라….
“정말 예쁘다.”
“…….”
마음속 깊은 곳에 서 우러러 나온 진심 이 었다.
시론의 붉은 머리칼도 케르낙스의 찬란한 금발도 무척이나 아름다웠지 만 두 사람에 게는 정말 미 안하게도 아르델라님의 은빛 머리 칼은 정 말 독보 적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한참을 아르델라님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내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 워짐을 느꼈다.
평소였다면 아직 한참 활동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아르델라님의 영 향을 받아서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아르델라님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내 방에서 유일 하게 푹신한 베개를 집어 얼른 아르델라님의 머리에 놓아드렸다.
엩,,
침대를 내려오던 나는 아르델라님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처럼 보였다.
“등불때문인가….”
나는 등불을 끄고 침대에 있는 이불을 아르델라님께 덮어 드린 다음 옷장 에서 적당히 쑤셔 넣은옷가지 몇 개를 꺼내 바닥에 깔고누웠다.
등이 좀 차긴 했지만 배가불러서 그런지 눕자마자눈이 자연스럽게 감겼 다.
“쓰읍
엩”
나는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닦으며 일어났다.
바닥에서 잠들어서 그런지 몸이 좀 쑤셨다.
“아니, 것보다벌써 아침이라고?”
창틀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 아.”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침대를 봤다.
침대는 비어 있었다. 덤으로 이불과베개가 아주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 었다.
“가셨……나?”
서류뭉치들도 사라진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내가 잠든 사이에 가버리신 모 양이다.
나는 배를 벅벅 긁으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음?
책상에 놓여 있는 작은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썼는지 단번에 예상이 갔기에 나는쪽지를펼쳐봤다.
『스미스. 덕분에 편히 쉴수 있었다.
너의 연인들은 점심쯤에 풀려 날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된다.
네가 만든 물건을 어머니께서 받아보시게 된다면…… 다음 만남은 아 마도저택이 되겠지.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도록.』
중간에 무언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쪽지를고이 접어 침대 아래에 내 비상금보관함에다넣은후에 기지개를 켰다.
“으그그그극……
나는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부턴 진짜 바쁘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