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73화〉Ep.73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아멜라는 스미스를 자신의 방에 남겨두고서 지부장실로 돌아왔다.
지부장실로 들어온 그녀는 곧바로 빵빵한 쿠션이 부착된 의자에 쓰러지 듯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젠장. 빌어먹을 귀쟁이 년들까지 알고 있을 정도면 마족도 이미 알고 있 단소리겠군.”
아멜라는 스미스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깊 은 한숨을 내쉬 었다.
“……그래도 멍청한년이 걸려줘서 다행이군. 빌어먹을.”
숲의 보호자라고 불림과 동시에 녹색 혼돈이라고도 불리는 숲의 지배자 인엘프.
그런 엘프를 다른 종족들은 엘프라는 종족 명보다는 귀 쟁 이, 깐프라는 명 칭으로 부르는 일이 더 많았다.
그만큼 엘프가 다른 종족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는 소리다.
지금은 대륙 서쪽에 있는 칼란 대산림을 중심으로 모든 엘프가 모여 왕국 을 이뤄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에는 각지의 숲에 부족 단위로 흩어져 살아가 고 있었다.
엘프가 다른 종족과 사이가 나빠진 것은 바로 이 과거 시절 때문이 다.
흔히 내로남불이라고,본인들이 터전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파내어 집을 만들거 나 하는 것은 괜찮고 다른 종족이 벌목이 나, 터 전을 위 해 조금이 라도 숲을 훼손하려 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어 난장판을 만들어버렸기 때 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틈만 나면 다른 종족의 남성을 씨받이로 이용하기 위해 납 치해 가는 일도 매우 흔한 일이 었다.
만약 엘프가 마법을 잘 다루지 못했다면 진즉에 씨가 말라 사라졌을 정도 로 엘프는 지금까지도 다른 종족들에게 있어서 마족 다음가는 경계 대상이 었다.
아멜라가 기에나를 엘프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공터의 벽을 허물게 만든 것이 활과 화살이 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 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멜라 역시 기에나가 마법을 이용해 변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길드에 방치하고 있었을 거다.
아멜라에게 있어서 오늘 기에나를 발견한 것은 그녀에게도, 또 다른 모험 가 지부에 있어서도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었다.
아멜라는 책상 서랍에서 둥근 받침과 투명한 수정 구슬을 꺼냈다.
수정 구슬을 먼저 책상에 내려놓고 둥근 받침을 뒤집어 아래를 손가락으 로 몇번 두드렸다.
그런 후에야 수정 구슬을 받침 위에 올려놓고 책상에 내려놓았다.
우우웅一
수정 구슬에 서 은은한 빛과 함께 굉 장히 낮은 소음이 흘러 나왔다.
—소란은 잘해결하셨습니까?
수정 구슬에 서 약간 소녀 에 가까운 맑은 목소리 가 흘러 나왔다.
아멜라가 피식 웃었다.
“벽이 부서지긴 했는데 크게 손해를보진 않았지.”
—뭔진 모르겠지만, 아멜라 지부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면 상 당한 이득을 보신 모양이 군요.
“물질적인 이득은 아니지만.
99
—잠시만요. 받아 적을 종이를 준비하겠습니다.
수정 구슬의 너머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됐습니다.
“귀쟁이 년들이 알아차렸다. 다행히 신전이나우리처럼 직접적으로 계시 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더군.”
—그 정신병 환자들이 알았다면, 마족 측도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높은 게 아니라 그년들도 이미 알아차렸겠지. 그래야만 휴전 협정을 20 년이나 앞당긴 이유가 납득이 가.”
—……아멜라 지부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20년이나 빨리 휴전 협정을 맺으려는 움직임이 보여 마족 측 내부에서 분란이 생긴 거라 생각했는데 아 무래도그게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그러게 말이다.”
아멜라도 수정구 너머의 소녀도 작게 한숨을 내쉬 었다.
—신전에 정신병 환자들에 마족이라니, 머리가 아프군요.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귀쟁이 년들만큼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확실히. 신전은 단합할 생각이 없고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아가사 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마족 역시 선은 지키는 녀석 들이니 서로 곤란한 일을 만들지는 않겠죠.
“그래 . 다른 녀 석들은 그나마 선이 라는 걸 지 키 지 만 귀 쟁 이 그년들은 선 이 라는게 없는미친년들이지.”
—대비 방안을 마련하신 겁니까?
“아아, 아주 좋은 호구를 하나 낚았거든.”
—다행이군요. 정신병 환자들이 병신들이기는해도 마법에 있어서 만큼은 타종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니 조금 곤란해질 것 같았는데 .
“그래도다른지부에 연락넣어서 귀쟁이 년들이 인간행세하며 돌아다니 고 있다고 정보 돌려라.”
—물론입니 다. 길드 지부뿐만 아니라, 상인 연합, 암흑가에도 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에게도 그년들은 경계의 대상일 테니까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엘프는 모든 이들의 경계 대상 이다.
특히, 노예를 다루는 상인과 암흑가의 경우에는 더더욱 민감했다.
숲과 자연, 그리고 활과 남자에 환장하는 엘프다.
상품을 위협하려 드는 적이 생겼다면, 위협을 받기 전에 그 싹을 잘라버리 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법이다.
엘프가 칼란 대산림을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암흑가와 상인 회에서 발 빠르게 움직여 수상한 자들을 신고하거나 자체적으로 조사 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고객 에 겐 친절하지 만, 재 산을 위 협하려 드는 이 에 게 는 한없이 냉혹한 것 이 그두집단이니 말이다.
“아. 페트미라 그 씹년들에 관해 들어온 정보 있냐?”
—특별히 주시할 만한 정보는 없습니다. 다만, 그때 알려주셨던 데로 조 사해 보니 골디 아스쪽 몇몇 귀족이 수상한 움직 임을 보인다는 보고를 받았 습니다.
“쯧쯧. 병신 같은 년들. 귀족이라는 년들이 사교에 넘어가기나 하고 말이 야.”
—아멜라 지부장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그쪽에서 몇 년간 작정 하고 공들인 계획 이 었다고. 아무리 귀 족이 라도 사교의 세뇌 를 버 티는 건 힘 든일일겁니다.
“하,차라리 혀 깨물고뒈지지.”
—아멜라지부장님.그런 말은 막 내뱉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다 자신 에게 되돌아오는 거라고요.
아멜라는 입을 다물고 수정 구슬을 향해 손가락 욕을 날렸다.
—반사.
“미친년.”
아멜라가 소리 없이 히죽 웃었다.
모든 모험가 길드 지부를 관리 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소녀이자, 튤리우스 제국 수도의 지부장인 여자.
이 미 몇십 년도 더 알고 지낸 사이 지만, 수정 구슬 너머의 목소리는 여전히 소녀의 그것과 같았다.
오랜 과거, 옥에 갇혀 형벌을 기다리고 있던 자신을 찾아왔던 회색 머리의 소녀.
지 부장으로 파견된 후로는 단 한 번도 그 얼굴을 다시 보지는 못했으나 이 렇게 목소리를 들어보면 분명, 소녀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소녀라는 사실을 아멜라는 알 수 있었다.
“보고는 이걸로 끝이다.”
—확인했습니다. 이쪽에선 딱히 드릴 만한 것이 없네요. 할 말은 이미 오늘 아침에 다 했던 것 같으니 까요.
“그렇지.그럼 다음 연락은휴전 협정 후가되겠군.”
—아니 면 마스터 가 돌아온 후가 될 지 도 모르고요.
“하루빨리 대장이 돌아왔으면 좋겠군.”
—후후. 그러면 통신을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소녀의 말이 끝남과동시에 수정 구슬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멈추며 본래 의 평범한구슬로 돌아갔다.
아멜라는 받침과 수정 구슬을 분리해 다시 원래 있던 서랍에 넣고는 의 자 에 등을 기대어 누웠다.
“기에나라고 했던가.”
장로의 명령을 무시하고 행동할 정도로 활에 미친 귀쟁이 녀석.
잠깐느슨하게 풀려있던 아멜라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곳에 흘러들어온 엘프가 기에나가 아닌, 장로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다 른 엘프였다면 최악의 경우 며칠 지나지 않아스미스를 납치당했을 거라는 게 아멜라 본인의 생각이었다.
엘프의 마력은 사교와 달리, 순수함그자체이기에 신전의 성직자들도엘 프를 찾아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마법으로 모습을 감춘 엘프를 찾을 수 있는 자는 비슷한 수준의 마법을 구사하거나 엘프보다 더 높은 수준의 마법사뿐이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모든 엘프의 마법을 간파 할 수 있는 마법사가 한 명 존재했다.
!..
......
제국 출신이 자 전 황실 마탑주였던 마법사.
비젤린.
정확히는 황실 마탑주에 오른 자들을 비젤린이라 부른다.
초대 황실 마탑주이 자, 초대 황제 에 게 대 마법사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자 의 이름이 비젤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정확히는 튤리우스 제국의 역대 황제와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
역대 마탑주의 자리에 오른 비젤린이 모두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비젤린 트리타니 아.
그것이 그녀의 풀네임이고 자신에게 허락된 정보의 경계선이었다.
모험가 길드 전체를 통틀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길드 마스터와 조금 전 수정 구를통해 대화를 나눴던 제국 수도의 지부장. 그리고 자신. 이렇게 셋이 전부였다.
물론, 앞선 두 사람은 자신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겠지만 옛날이 나 지금이 나 그다지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은 아니 라고 생 각한다.
아무튼, 그런 마법 사가 지 금 제국의 문제로 자리를 잠깐 비운 상태 다.
그렇기에 그녀를 대신할 존재 가 필요했다.
그랬기 에 오늘 기에 나라는 이름의 그 귀 쟁 이를 죽이 지 않고 살려둔 것이 다.
장로들이 밖으로 내보낼 정도의 실력을 가진 엘프.
장로들의 명령을 무시하고 본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는 엘프.
활에 집착을 넘어 광적 인 모습을 보이는 엘프.
스미스의 호위로 붙여두기에는 최적의 대상이다.
장로의 명 령을 무시 한 것은 활을 위 해서고 스미 스는 그 귀 쟁 이 가 극찬하 는 활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이다.
장담컨대 장로가 스미스에 게 해를 끼치려 든다면 장로조차 화살로 쏴죽 일 년이 분명했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맹세로족쇄를 채워뒀으니 본인이 원하지 않 더라도 그렇게 해야 할 테지만.”
모험가들이 기에나에게 활을 배우게 만드는 조건으로 뭐든 하겠다는 말 을 내뱉은 상태 였다.
기 에나는 내일이 되면 좋든 싫든 스미스의 호위를 자처해야 한다는 소리 였다.
“거 리 의 복구 작업도 슬슬 끝나가는 것 같고 그 셋 이 면 내 가 없더 라도 어 떻게든 해결하겠지.”
물론, 당장에 도시를 떠 날 일정은 없고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거 기 다 그 귀 쟁 이 년은 스미스를 남자가 아니 라 단순히 활을 만드는 장 인으로 보는 눈이 었으니 망할 두 년도 투덜거리 지는 않을 거 같고.”
아멜라는 잠깐 찝찝 한 느낌 이 들었으나 이 내 고개 를 저으며 서 랍에 서 깃 팬과 잉크를 꺼 냈다.
“그럼... 휴전후의 길드방침이나미리 정해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