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75화 Ep.75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똑! 똑! 똑!
단잠에 빠졌던 내 의식이 수면 위로끌려 나왔다.
—스미스씨.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니 … … 커흠!! 커허으음!! 아닙 니다!!”
깊게 잠긴 목을 조금요란하게 풀어내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입니까? 아직 새벽인데…?”
—필로리아 백작가에서 파견 나온 자가 지금 경비대에서 스미스씨를 기 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우 쓰벌.”
멍하니 서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얼른 옷장을 열어 대충옷을 껴입었다.
“지금나가요!!”
나는 문으로 뛰 어 가며 바지 끈을 묶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끈을 묶어낸 나는 얼른 문을 열고 방을 나왔다.
복도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기에나씨가 어깨에 화살이 가득 담긴 화살통 하나를 매고 한 손에는 내가 선물한 ‘위로의 활’을 든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상당히 급해 보이 기는 하던데 ••• 그래도 간단히 식사라도 하고 가실래요?”
“아뇨. 괜찮습니다. 갔다가오면서 뭐라도 사먹… 기에는조금 많이 이른 시간이네요.”
나는 창밖으로 보이 는 푸르스름한 거 리 에 머 리 를 긁적 였다.
“그냥 가죠. 갔다와서 먹읍시다.”
“그래요 그럼.”
나는 기에 나씨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1층으로 내려오니 나를 반긴 것은 예전보다 허전해진 검의 거치대였다.
그렇다. 이곳은 길드가 아닌, 새롭게 지어진 케르낙스의 집이고 나는 이곳 에서 벌써 열흘이나 생활했다.
벨라니스님 이 다녀 갔던 바로 그날, 복구가 끝난 곳의 사용 허 가가 떨 어졌 고 나와 기에나씨는 길드에서 곧바로 케르낙스의 집으로 짐을 옮겼다.
아멜라누님은 최근에 바빠서 챙겨주지 못했던 게 나름 마음에 걸렸던 것 인지 내가 케르낙스의 집으로 옮긴다는 것에 오히려 안심하는 것 같은 모습 을 보였다.
“이제는 날이 제법 따뜻해졌네요.”
“그러게요. 저번 주까지만 해도 이 시간이면 좀 서늘했는데.”
집을 나온 우리는 아직 마법등이 설치되지 않은 거리를 걸었다.
북쪽 거리의 복구 작업도 정말 막바지에 들어 사흘 정도만 더 하면 완전히 마무리 할수 있을 거 같다고 잔뜩 화가 난 시론에게서 들었다.
누구보다 작업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시론이겠지만, 사실은 시 론보다 내 가 더 그것을 바라고 있다고 나는 확실할 수 있었다.
마족령과 제국의 휴전 협정 사실을 전하기 위해 벨라니스님께서 다녀간 그날부터 케르낙스는 복구 작업에서 빠질 수 있었으나 그날부터 단 한 번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낮 가리지 않고 성벽을 확인하고 현재 도시에 시민권 없이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재차 신분을 확인하는 등, 오히려 복구 작업을 하던 때보다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 었다.
그렇다면 시론은 집으로 들어오는가?
그것도 아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시론은 케르낙스의 집이 복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케르낙스의 집무실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결론은 케르낙스의 집으로 옮긴 지 벌써 열흘이 지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혼자 잠을 청하는 중이란 소리다.
여자를 완전 모를 때라면 손으로라도 충분히 해결을 할 수 있었으나, 시론 과 케르낙스. 그 외 여러 여자의 맛을 알아버린 내 분신은 건방지게도 더는 손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씹새끼가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에 여전히 피부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기에나씨는 밤마다 내가 선물 한 활로 찌이이 인한 위로를 받으며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 양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다.
밤마다 복도를 걸을 때 들려오는 기 에나씨의 허덕이는 신음은 내 인내심 을 단련하는데 아주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중이 었다.
정말빌어먹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누구보다 복구 작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 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소리 다.
철그럭. 철그럭.
경갑을 차려입은 경비병들이 날선 기세로 우리의 옆을 지나쳤다.
평소였다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가벼운 잡담을 주고받았을 텐데, 마 족령과의 휴전 협정 소식이 알려진 후로는 계속 이런 상태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굉장히 의외 이면서도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다.
항상 상관인 케르낙스에게 장난을 치고 얻어터지고 도망 다니던 가벼운 모습만 보여주던 이들이 갑자기 무게를 잡고 바짝 날선 상태로 거리를 조용 히 돌아다니는데 어찌 낯설지 않게 느낄 수 있을까.
아무튼, 우리는 순찰중인 경비병 무리를 몇 번 더 지나치고 나서야동문에 도착할수 있었다.
“데칼로 향하는 짐이라면 이곳을 거칠 필요는 없을 텐데?”
“그게 ... 최근에 도르탄 산맥에 산적때가 자리를 잡았다는 소문이 돌아서 말입니다.”
“그렇군. 그럼 짐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리일 테니, 짐을 확인해 봐도 상 관없겠지?”
“무,물론입니다.”
“마차를 전부 확인해라!!”
이른 새 벽부터 활짝 열린 동문에 는 몰링 타로 들어오거 나 지 나치 기 위 한 사람들로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병사들은 평소의 가벼운 모습을 버리고 조금이 라도 수상쩍 으면 당장에 꼬나쥔 창으로 찔러버릴 기세로 사람들을 차례차례 검문하는 중이었다.
나와 기에나씨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조용히 경비대 건물 안으로 들어와 케르낙스의 집무실을 찾았다.
똑똑똑.
가볍게 노크를했다.
—누구지 엩
케르낙스의 딱딱하게 굳은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만났을 때도 이렇게 굳어 있지 않았는데.
“나야. 스미스.”
—아…….크흠. 들어오도록.
한순간목소리가 유순해지는 듯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다시 딱딱하게 굳 은 목소리로 안으로 들어올 것을 말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가자 집무실 책상에 앉아 깃팬을 잡고 있는 케르낙 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고, 다음으로 접대용 소파에 누워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시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자고 있는 시론의 옆으로 가 살살 뺨을 누르며 말했다.
“날 찾는다고 해서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아니다.곧 을 거다.보는 시선이 많아서 곧바로들어올수가 없어서 말이 다.”
“응? 아직 도시밖에 있는거야?”
“뭐...들어오기는했다만,아무튼그런 게 있으니 거기에 앉아서 기다리도 록.”
케르낙스가쓰게 웃으며 다시 서류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론의 입가에 살짝 흐른 침을 소매로 닦아준 다음 슬그머니 업무를 보고 있는 케 르낙스의 책상 앞으로 갔다.
왜그러지?”
책 상에 그림 자가 드리 우고 나서 야 나를 올려 다보는 케 르낙스를 향해 나 는 살짝 허리를 숙여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아.”
“언제집에 들어올 거야?”
“그
으” 번 •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연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혀를 움직여 조금 더 찐한 입맞춤을 했다.
“복구 작업 끝나면 시론이랑 같이 들어 올 거지?”
“……그… 하아…….그래. 그렇게 하겠다. 꼭들어가지.”
굳은 얼굴을 유지하던 케르낙스가 결국 한숨을 내뱉으며 살포시 웃어 보 였다.
케르낙스가 깃팬을 내려놓더니 책상 위에 올려진 내 한쪽 손을 꼭 붙잡아 본인의 얼굴로 가져갔다.
붙잡은 내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짧게 코를 킁킁거렸다.
“스미스…. 이런 애정 표현은 정말… 나를 기쁘게 한다.그러나당분간은 ••• 아니, 적어도공공장소에서 만큼은조금 참아줬으면 한다.”
“그래. 나도 이해해.오늘은 너무굳어 있는 것 같아서 그랬지.”
“……고맙다.”
케르낙스는 마지막으로 내 손등에 조금 길게 입을 맞춘 다음 손을 놓아주 었다.
!.
........
“앉아서 기다리도록.”
“그럴게.”
나는 시론의 머리를살짝들어 내 허벅지에 놓아주며 소파에 앉았다.
케르낙스는 다시 깃팬을 들고 서류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론의 머리를쓰다듬으며 시간을보내길 잠깐.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업무를보던 케르낙스가 잠깐고개를들더니, 내 옆에 인형처럼 서 있던 기 에나씨에게 짧게 턱짓했다.
기에나씨가 소리 없이 걸어가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아,감사합니다.”
후드를 눌러쓴 여인이 기에나씨와 함께 집무실로 들어왔다.
케르낙스는 깃팬을 쥐고 있지 않은 빈손으로 내 반대쪽 소파를 가리켰다.
“저쪽에 앉아서 이야기를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여인이 내 맞은편 소파에 앉더니 그대로후드를벗었다.
연한 갈색 머리칼에 뒷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차분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오른쪽 눈에 쓰고 있는 둥근 모노클이 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보는 것이었기에 더욱눈이 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개는 하지 않았지만 스미스님이시죠?”
“아,옙. 제가모험가길드의 스미스입니다.”
“ 저는필로리아 영주님을대신해 영지를관리하는행정관인밀리아라고 합니 다. 편하게 행 정관이 라고 불러주시 면 됩 니다.”
“앗, 옙. 행정관님.”
순하게 생긴 인상과는 달리, 아주아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 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니, 근데 이런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눠도괜찮은건가?
케르낙스는 태연하게 본인의 업무를 하는 중이었고 내 허벅지에는 시론 이 머리를 누이고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내 뒤쪽에는 활을 맨 기에나씨가 서 있었고.
마치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힘 없는 행정관님을 압박하고 있는… 좋지 않 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담이 작은 내 생각일 뿐이고 당사자인 행정관님께 선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스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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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옙.”
“하하, 긴장하지 않아도됩니다.”
“옙.,,
원래 높은 사람이 긴장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긴장되는 법이다.
그걸 높은 사람들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 지 만.
“기본적인 이야기는 영주님과 아르델라님께 들었으니 생략하도록 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 어 가도록 하겠습니 다.”
행정관님 이 한 손으로는 아랫 가슴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모노클을 살 짝고쳐올렸다.
“일단 계약의 내용을 조금 수정하겠습니다. 본래라면 달마다 일정량의 철 주괴를 공급하고 그에 맞는 물건을 넘겨받는 내용이었으나, 이 부분을 철주 괴를 공수할 때마다 지급하고 최대한 빠르게 많은 물건을 생산한다.’로 수 정하려고 합니다”
“어
“또한, 본래 복구 비용으로 지급하실 예정이었던 祄할인 금 102닢을 이쪽 에서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뼈 가 가루가 되 도록 만들겠습니 다!”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는 말에 나는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아니 뭐. 내가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재료만 빵빵하면 클릭 몇 번으로 복사가 되는 걸 두고 고민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시 원시 원해서 좋군요. 그러나 최우선 사항은 스미스님의 건강입니다. 건 강을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만들어주시 기 만 하면 됩 니다.”
“걱 정마십쇼. 제가 보통 남자들보다 배는 튼튼하거든요.”
“하하. 예.그렇게 보이는군요.”
행정관님은 팔근육을 빵빵하게 만들어 자랑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살포 시 웃어주었다.
뭔가 나이 많은 누나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살짝 부끄러워진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시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그리고一”
행정관님이 말을 하려던 그때, 행정관님의 품속에서 푸른 빛이 일렁이며 흘러나왔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행정관님 이 싱긋 웃으며 적당히 풍만한 가슴골 속으로 손을 넣더니 그곳 에서 반짝이는 작은 수정 구슬하나를 꺼냈다.
익 숙한 손놀림 으로 수정 구슬을 만지 작하더 니.
—행정관.
“예 . 영주님. 행정관 밀리 아입니다. 지금 몰링 타에 도착해 스미스님과 이 야기를 주고받던 중이 었습니 다.”
수정 구슬에 서 아주 맑은 목소리 가 흘러나왔다.
행 정관님은 수정 구슬 속 여 인을 향해 영주님 이 라 불렀다.
내가 영주님을 만난 적이 있었나?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목소리가귀에 낯익은 건지 모르겠 다.
—잘됐군.그럼 케르낙스도그 자리에 있나?
“네. 지금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는 중이고 이 대화도 전부 듣고 있는 중입 니다.”
—그렇군. 케르낙스.
분명… 분명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목소린데 …….
조금만, 조금만 더 기억을 더듬으면 떠올릴 것 같은느낌이 들던 바로그때 였다.
—병사들을 움직여라.
나는순간 내 귀를의심했다.
내 가 방금 잘 못 들은 건가?
그러나 수정 구슬을 들고 있던 행정관님의 굳은 얼굴을 확인한 나는 내가 잘 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