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86화 Ep.86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나는 오랜만에 정신이 아찔해지고 말았다.
“그, 러니까. 내가사흘이나 기절해 있었고 케르낙스가 어제 도시를 떠났
다는 거지?”
“•••꾈.”
시론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였다.
그런 시론의 확답에 머리가지끈했다.
나는 다급히 시론에게 물었다.
“혹시… 지하에 내가만들어 뒀던 밤의 요정들은…?”
“……그런 게 있었냐?”
나는 시론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으로 내 머리를 부여잡았다.
확실히 내가 스타킹을 몇 개나 만들어 뒀다는 말을 누구에게 알린 적은 없 다.
거 기 다가 스타킹을 눈에 띄 는 곳에 둔 것도 아니고 철 주괴 가 들어 있는 자루 안에다가 나눠 담아 구석에 박아뒀으니 … 혹시나 지하에 들어왔더라 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올라갔을 거 다.
미一”
“아니!! 어? 시론아. 방금 뭐 라 하려고 했었냐?”
“……아냐.”
시론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나는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기는 했으나 지금은 그것보다는 먼저 출발해 버린 케르낙스를 쫓아갈 방법을 찾는 쪽이 우선이었기에 시론의 말을 그냥 믿기로 했다.
“하루 정도 떨어진 거리라면 지금 쫓아가면 최소한 싸우기 전에 물건은 전 해 줄수있지 않을까?”
뭐. 그렇겠지.”
“그렇지? 그러면 일단출발 준비를一”
“진짜……!!”
시론이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더니 내 허벅지에서 일어나 아래로 내 려 갔다.
얼굴을 크게 쓸어내린 시론은 특유의 그 사나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준비는무슨준비야병신아!!준비는다해 놨는데 너 새끼가늦게 쳐 일어 나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발.”
“오…….”
평소의 박력 넘치는 시론으로 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심지어 출발 준비까지 끝나 있다니.
“그, 그럼 지금 바로출발할수 있는 거냐?”
“시발. 넌 그렇게 그년이 걱정되냐?”
“케 르낙스도 걱정이긴 한데 같이 간 병 사들도 걱정이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심심할 때마다 농담도 주고받던 사이인데 누구 한 명이라도 돌아오지 못한다면 상당히 가슴이 아플 것이다.
너도 쓰러졌다가 어제 깨어났다는 걸 좀 생각해라. 상식적으로 그런
몸으로 어 딜 가겠다는 발상을 누가 한다는 거 야?”
“……내가?”
“그러니까 병신이지… 하아.”
시론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의 깊이로 보아하니 저 한숨은 진심으로 날 한심하게 생각하는 한숨 이었다.
“커흠, 아니 시론아. 나 진짜 팔팔하다니까? 자, 봐봐.”
“아,됐어 병신아.”
내가 팔 근육을 자랑하려고 하자 시론이 꼴값 떨지 말라는 눈으로 나를 흘겼다.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 올렸던 팔을 내렸다.
“아무튼, 지금 당장 따라가고 싶다는 거 아냐?”
“엉.그렇지.”
혹시라도 내가늦게 도착해서 병사들이 생각하기도 끔찍한일을 당한다 면 진심으로 마음이 무거울 것 같다.
아니 쓰벌.
다른 일도 아니고 섹 스하다가 기 절해서 라니 .
농담이 아니라 어떻게든 병사들에게 내가 만든 새로운 스타킹을 전해주 지 못한다면 평생 가슴에 무거운 짐을 얹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시론은 내 얼굴이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내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 가자.”
“어디로?”
“시 발. 어디긴 어디야. 경비대로 가야지.”
“어, 그 그래.”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는 시론의 뒤를 급히 쫓았다.
“야!! 활쟁이야!! 짐 챙겨서 나와라!!”
시론이 계단을 내려가며 외쳤고.
“준비라면 어제 다끝내뒀었죠.”
아니.”
시론은이미 1층 계단에서 기다리고있던 기에나씨를바라보며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을 했다.
“먹을 거라던가… 갈아입을 옷 같은 건?
“사냥과 마법 이라는 편리한 방법이 있습니 다만.”
“……그래 너잘났다시발.”
시론은 달랑 화살통과 활만 챙긴 기에나씨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시론도 기에나씨의 광기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 셋은 집을 나와 경비대로 향했다.
경비대 집무실.
케르낙스가 앉아 집무를 보던 자리에는 행정관인 밀리아님께서 앉아 업 무를 보고 계셨다.
밀리아님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우리를 보며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지으 며 접대용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혹시 차 같은 게 필요할까요?”
아, 아뇨. 아닙니다』
내가 극구 사양하자 밀리아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 리들의 맞은편 소파로 자리를 옮기셨다.
자리를 옮긴 밀리 아님은 우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몸은좀 어떠세요?”
“어... 믿으실지는 모르겠는데 아주팔팔한상태입니다.”
“겉으로 보기 에는 확실히 팔팔해 보이시 네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제 가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니랍니다.”
“•••꾈그렇겠죠?”
상식 적으로 사흘이 나 기 절했던 놈이 깨어난 다음 날 찾아와서 멀쩡하다 고 한다면 나 같아도 헛소리 라고 생 각할 거 다.
“뭐 ... 그래도 스미스님의 말이니까 이번 한 번만특별히 그렇다고 믿어드 리도록 할게요.”
나는 밀리아님 이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밀리아님께서도 그런 내 반응을 알아차리셨는지 뒤에 말을 이었다.
“그러니 까. 케 르낙스경을 쫓아갈 수 있도록 마차를 빌려드리 겠다는 소 리랍니다.”
“오……엩 에…? 아니, 예?”
나는 내 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귀 를 후벼팠다.
그런 내 반응이 재미 있으셨던 건지 밀리 아님께서 작게 웃으셨다.
나는 놀란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옆에 앉아 있는 시론에게 작게 속삭 였다.
“그... 시론아? 우리 마차는누님이 준비해준 거 아니었냐?”
“……너. 누님이 덜렁 마차를 줄 것같냐?”
“……아니지.”
음. 절대로아니지.
나는 대번에 납득 해버렸다.
사이좋게 달라붙어 속닥이는 우리를 보고 있던 밀리아님이 웃으며 말했 다.
“하하, 딱히 누구에게 감사하고 그럴 건 아니랍니 다. 마차의 준비를 부탁 한 건 다름 아니 라 케르낙스경 이 니까요.”
“케르낙스가요?”
밀리아님께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라도 스미스님 께서 깨어 나고 뒤 늦게 라도 따라오려고 한다면 그때 마차를 내 어 달라고 저 에 게 부탁하고 떠 났답니 다.”
“허…….”
가슴 한쪽이 간질거렸다.
솔직히 너무 강렬하게 반대했던 케르낙스였기에 내가 기절해 있던 사이에 얼른 도시를 떠 났을 거라고 생 각했는데 … ….
이번엔… 정말로 반성을 조금해야할 것 같다.
사과의 의미로 이번에 케르낙스를 만나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주 찐한 입 맞춤을 해줘 야겠다.
“그리고 스미스님?”
“아,옙.”
밀리아님의 부름에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밤의 요정은 몇 명분까지 만드셨나요?”
“모두가 착용 할수 있도록준비해 뒀습니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대 답했다.
첫 날에야 20명분만 만들었는데 생각해보니 누가 지하에 들어올 일이 없 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 날, 남아 있던 철 주괴를 모두 보관소에 넣고 나머 지 285명분의 스타킹을 만들어 두었다.
정말인가요?”
“옙.,,
밀리아님 이 드물게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밀리아님께서 모노클을 살짝 고쳐 썼다.
“그렇군요. 305명분을 모두 준비하셨다라….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타 고 가실 마차부터 보러 가시죠.”
“어,직접 안내해 주시려고요?”
“하하. 산책도 할 겸 해서죠. 왜요. 저는 불편하신가요?”
“아, 아뇨. 그냥….”
나는 책상위에 쌓여 있는 서류를 슬쩍 보고는 얼른 고개를 다시 가로저었 다.
“하,하하. 가시죠.”
“네.가도록 하죠.”
우리는 다소 어색한 분위 기를 껴안고 경비대 옆에 있는 마구간으로 향했 다.
그곳에는 나에게 지급될 철 주괴들을 실은 마차들이 놓여 있었다.
“아
“왜 그러시나요?”
“아,아닙니다. 하, 하하….”
갑작스러 운 내 어 색 한 웃음에 밀리 아님 이 뭔 가 알 수 없는 웃음을 슬쩍 흘리시 고는 다시 앞으로 걸으셨다.
그 웃음에 나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왜냐면 내가 넘겨받은 주괴는 달랑 마차 한 대 분량인데 그것으로 305명 분의 물건을 모두 만들었다고 말해버 렸기 때문이 다.
장담컨대 방금 보였던 그 묘한 미소는 이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 려주려고했던 것이 아닐까.
진짜 스미스 씹새끼 ….
내가 생각해도 진심 존나 멍청한 새끼다.
나는 스스로의 멍청함을 한탄하며 밀리 아님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주괴가 실린 마차를 지나쳐 몇 개의 마사를 넘어갔을 때였다.
“바로 이거랍니다.”
“오…….”
나는 조금 전의 멍청한 실수를 모두 잊어버릴 정도로 눈앞에 나타난 커다 란 마차의 등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주괴를 싣고 왔던 마차보다 祄할은 더 커다랬으며 마차의 바퀴도 평범한 나무가 아니라 무슨 검은 철갑 같은 것으로 빈틈없이 둘려 있었다.
무엇보다 마차의 외관은 새하얀 순백의 바탕에 짙은 은색으로 커다란 매 가각인되어 있었는데,그게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안쪽도 보시죠.”
밀리아님께서 흐뭇하게 웃으며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처음으로 레고라는 것을 발견한 아이가 된 기분으로 거의 뭐에 홀린 것처럼 마차의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와…… 미친.”
그냥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이 튀 어나왔다.
언젠가 영상에서 봤던 리무진의 안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벽면과 바닥 전체가 붉은 쿠션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앉을 수 있는 자 리도 거의 침대와 같은 수준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거기다 뒤쪽에는 칸막이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문짝이 하나 달린 것을 보아 안쪽에 또 무언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 참고로 칸막이 뒤는 짐을 싣는공간이랍니다.”
“아…… 그렇군요.”
나는 그냥 고개 를 끄덕 였다.
그것 말고는 딱히 떠 오르는 감탄사가 없었기 때문이 다.
“마차는 마음에 드시나요?”
“•••마음에 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제가저런 걸 타도괜찮은지 역으로묻 고싶은데요…….”
혹시나 해서 말해두겠는데 내 신분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고작해야 변방 사막 출신의 노예다.
그런 내 가 저런 마차를 정말 타도 괜찮은 걸까.
그런 고민을 하는 나의 머 릿속을 들여 다본 것처 럼 밀리 아님 이 대 답했다.
“그럼요. 스미스님을 위해서 준비한 마차니까 당연히 스미스님께서 타셔 야죠.”
“……절 위해서 준비를요? 케르낙스가부탁한 겁니까?”
“정확히는 케르낙스경의 부탁을 받은 제가 따로 구해온 거랍니다.”
“……하루 만에 저런 걸 구할수 있는 겁니까?”
“하하.”
!.
........
밀리아님께선 가볍게 웃으시더니 그대로 입을 다무셨다.
뭐지.
나 또 뭔가 말실수 한 건가.
뭔가분위기가 어색해졌기에 나는 조용히 마차를 감상하는 척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밀리아님께서 다시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출발은 내 일 아침 에 하는 걸로 알고 있으면 될까요?”
“어...내일이요? 오늘저녁은안됩니까?”
“식량이나옷 같은건 이쪽에서 다준비를해둬서 스미스님의 짐만싣는다 면 당장 출발해도 상관은 없어요.”
“그런데……왜?”
“다른 게 아니라 케르낙스경을 제시간에 따라잡으려면 발이 아주 빠른 말 이 필요하겠죠?”
“어 •••그렇겠죠?”
“예. 그래서 제가 저기에서 쉬면서 밥만축내고 있는 아이 하나를 빌려드 리려고요.”
나는 밀리아님의 손을 따라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이곳 마구간에서 가장 넓은 마사였다.
바로 철 주괴 가 실린 무거운 짐 마차를 끌고 왔던 드레이크라는 놈들이 쉬 고 있는 바로 그곳이 었다.
“며칠 전에 알려드렸죠? 저 아이들이 낯을 많이 가린다고요. 그런데 저 아 이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이 지금 잠깐 밖으로 나가 있는 상황이거든요.”
“아… 그렇군요.”
“네 . 늦어도 오늘 저 녁 에는 돌아올 테 지 만, 그들도 반나절은 쉬 어 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요. 당연하죠.”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마차를 빌려주시는 것으로도 모자라 말 대신 드레이크라는 녀석과 그걸 끌어줄 기사까지 .
이런 상황에서 저녁에 출발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면 그건 진짜 개새끼다.
내 가 멍청한 건 맞지 만 그런 양심 출타한 양아치 는 아니 었다.
밀리아님께서 마차의 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마중을 보내도록 할게요.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 다면 늦은 시간이라도 상관없으니 저를 찾아오셔도 괜찮답니다.”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하. 앞으로 영지에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실 분인걸요.”
엩,,
감사를 표하고 내가고개를 들어 올릴 땐, 밀리아님께선 이미 내 뒤를 지 나쳐가고 계셨다.
“그러면 내일 뵙도록하죠. 저는 밀린 일들이 많아서 먼저 가볼게요.”
밀 리 아님 이 가볍 게 손을 흔들고는 그대 로 사라지 셨다.
“그러면… 일단 집으로 돌아갈까?”
나는 시론과 기에나씨를 보며 그리 말했다.
“아니, 그전에 먼저 갈곳이 있는데.”
“엉?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뒤돌아서던 나는 시론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시론이 살짝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여. 왜그래?”
나의 그런 질문에 시론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언니가 너 깨어나면 꼭 길드로 데려오라고했거든.”
시 론이 불쌍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돌려 기에나씨를 바라봤다.
“크흠.”
기에나씨가 처음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아무래 도 남 걱 정 이 나 하고 있을 때 가 아니 었던 모양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