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88화 Ep.88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출발의 날이 밝았다.
새벽 일찍 일어난 나는 시론과 함께 사이좋게 욕실에서 몸을 씻는 중이다.
“아앗... 아오, 아파라.”
머리를 감다가 어제 아멜라 누님께 얻어맞아 혹이 난 부분을 건드렸고 나 도 모르게 ‘아프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튀어나와 버렸다.
나는 혹을 만지 며 입맛을 다셨다.
**
밀리 아님과의 만남을 가진 후, 시론을 따라서 나는 길드로 향했다.
날선 거리의 분위 기와는 달리, 길드는 평소처럼 모험가들과 접수원들이 시끄럽게 다투는 소리로 활기가 가득했다.
다른 모험 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우리는 계 단을 통해 슩층으로 올라왔고 누님 이 있을 지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피 로함이 느껴 지는 누님의 목소리 가 문안에 서 들려왔고 우리 는 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끄적이고 있던 누님은 눈을 힐끗해 이쪽을 보더니, 정확히 가운데에 있던 나를 포착하시더니 그대로 고개를 매섭게 들 어올렸다.
누님이 잠깐 나를 빤히 노려보더니 양쪽에 서 있던 시론과 기에나씨에게 손짓했다.
“잠깐나가있어라.”
기에나씨는 조용히 문을 열었고 시론은 잠깐 누님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 내 기에나씨를 따라 밖으로 나가버렸다.
집무실의 문이 닫히고 누님과둘만 남게 된 나는 어째선지 등 뒤로 식은땀 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스미스야.”
“옙.누님.”
장난기를 쏙 빼고 진지함을 꽉꽉 담아 대답했다.
누님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를 좀 풀어주려고 하다가도 이번 같은 일을 보고 받으면 정말로 너 새끼를풀어줘도괜찮은지 고민이 된단다….”
책상을 검지로 두드리며 누님이 그리 이야기했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냥존나할 말이 없는 거다.
책상을 몇 번 두드리던 누님이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몸은 괜찮냐?”
“아, 옙. 특별히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나마다행이네.”
진심으로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슬쩍 바라보시더니 이내 다시 한숨 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잠깐 앞으로 좀 와 봐라.”
“앗, 옙.”
......
나는 얼른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누님이 고개를 들어 삐뚜름하게 나를 바라봤다.
“좀더가까이.”
“이렇게요?”
나는 책상에 팔을 걸치고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조금만 더 가까워진다면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누가 먼저 움직이 기라도 하면 금방이 라도 서로의 입술을 훔칠 수 있는 가 까운거리.
그런 묘한 거리를 두고 나와 누님은 서로를 빤히 바라봤다.
알 수 없는 간질간질한 분위 기에 내 가 입을 열려던 바로 그 순간이 었다.
순간 눈앞에 불똥이 튀 었다.
새하얗게 물든 시야에 뒤이어 귀가 먹먹해졌다.
삐一하고 소리가울리더니 뒤이어 정수리 쪽이 화끈거리는듯하더니 불 에 타는 듯한고통이 한발 늦게 찾아왔다.
“끄으으으윽一!!”
나는 정수리를 감싸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진다는데 사실이었다.
내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그래서 존나 아팠다.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은 아픔이다.
“하아... 마음 같아서는 한 대 더 쥐 어 박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란 말이지.”
너무 아파 뭐라 입을 열기도 힘든 내 귓가에 전신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 누님의 목소리 가 흘러들어왔다.
뒤이어 쭈그려 앉은내 몸이 강제적으로쭈욱끌어 올려졌다.
누가 내 뒷덜미를 잡아 일으킨 것이다.
“억울하냐?”
“아, 아뇨.”
아직도 정신이 조금 아찔하기는 했으나, 나는 누님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 답했다.
누님 이 복잡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쓸데없이 착해 빠져가지고.”
욕을 먹고 머리를 한대 맞고 그다음은 갑작스러운 칭찬이라니.
그저 당황스러웠다.
어정쩡하게 일으켜진 내 뒷덜미를 놓은 누님이 그 손으로 내 뺨을 떡 주무 르듯이 마구 주물렀다.
“어부으부르우브.
“이 덩치만큰 애새끼 같으니라고.”
가끔 느끼는 건데 누님은 정말로 어린애처럼 대할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한참 동안 내 뺨을 만지 작거 리 던 누님 이 드디 어 나를 놓아주시 더 니 터벅 터벅 걸어가책상 앞의자에 앉았다.
누님이 책상위에 얹은손에 턱을 괴며 나를바라보며 말했다.
“스미스야.”
“옙.
나는 어정쩡하게 정수리를 문지르며 대답했고 누님이 슬쩍 내 정수리를 흘겼다.
누님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정수리 쪽으로손을 뻗었다.
살포시 내 손등에 손을 얹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손등을 슥슥 문지르며 말 했다.
“아픈 거 아픈 거 다 날아가라.”
“푸흡.
상상도 못 했던 누님의 행동에 아픔도 잊어버린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 나오고 말았다.
내 손등을 쓰다듬던 누님의 손이 꿈틀거렸다.
잠깐 어색하게 서 있던 누님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의자에 앉아나를 바라 봤다.
누님의 목덜미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어색한침묵.
나는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먼저 말을 꺼 내보자는 생각으로 입을 열 었다.
“저,누... 컥?!”
갑작스럽게 얼굴로 날아드는 무언가에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 어 날아오는 것을 붙잡았다.
어쩌다가 손으로 붙잡아 버린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봤다.
내 손바닥에는 밤하늘보다 짙은 검은 바탕의 둥근 메달이 목줄에 꿰인 상 태로들려있었다.
나는 ‘이게 무엇인가?’ 하는 눈으로 고개를 들어 누님을 바라봤다.
누님이 언짢은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앞으로는 그걸 계속 차고 다녀라. 알겠냐?”
“상관은 없는데 … 뭡니까?”
“맞고 찰래 그냥 찰래 ?”
“어휴, 그냥 차야죠.”
여기서 머리를 한대 더 얻어맞았다가는 정말 백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내 뇌새포들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얼른 목줄을 풀어 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에 쥐고 있을 때는몰랐는데 목에 걸면서 메달이 뒤집히면서 숨겨져 있 던 각인이 드러났다.
그냥 봐도 엄청 비 쌀 것 같다는 생 각이 드는 새하얀 보석 이 아주 얇게 메 달에 박혀 있었는데 그 모양이 한 마리의 늑대를 표현하고 있었다.
“……이거 도둑맞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뒤지게 맞던가 알아서 찾아오던가.”
“히 익 ?! 이 , 이 거 그냥 안 하면 안 됩 니까?!”
딱 봐도 존나 비 싸 보이 는 걸 목에 걸고 다니 라니 .
이게 무슨 벌칙인가싶었다.
“새꺄.농담이야 임마.”
진짜죠?”
언짢아보이던 누님이 피식 웃으시더니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누가 훔쳐 가도 괜찮은 거니까. 그냥 목에 걸고만 다녀라. 알겠냐?”
옙.
누님이 다시 한번 피식 웃으시더니 내려놓았던 깃팬을 붙잡으며 고개를 숙였다.그러고는 다른손을 가볍게 나에게 흔들며 말했다.
“올때 괜찮은술이나한병 사와라.”
“……저, 나갑니까?”
“어 . 할 말 끝났으니 까. 밖에서 문에 귀 대고 있는 년들 데 리고 그만 꺼 지 렴 .
덜컥一누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살짝들썩 였다.
나는 열심히 깃팬을 움직이기 시작한 누님을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뒤 돌아섰다.
“스미스야.”
“예 ?”
누님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누님은 여전히 책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해서 갔다오라고.”
“아,옙.조심히 다녀오겠슴다.”
“그래.”
뭔가 다른 말을 하려고 하셨던 것 같았으나 나는 그저 능글맞게 웃으며 고 개를 다시 꾸벅였다.
누님은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왔 다.
**
“아픈거 아픈거 다 날아가라니 ….”
다시 생각해도 조금 웃겼다.
설마하니 누님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내 가 혼자 키득거리고 있을 때,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시론이 나를 불렀 다.
“병신아. 머리 감다 말고 왜 갑자기 웃고 그래.”
“아니, 그냥. 갑자기 웃겨서.”
“어디 아픈건아니지?”
“커흠.그럴 리가 있나. 자!!”
“……어휴.”
시론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는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반쯤 발기한 내 분신을 시론에게 보여주었다.
시론이 한숨을 내쉬더니 욕조 안으로 완전히 잠수해 버렸다.
“음.”
나는 시론의 반응에 머쓱히 머리를긁적이며 자리에 다시 자리에 앉아 마 저 머리를 감으며 생각했다.
잘은모르겠는데 어제부터 묘하게 시론이 나를 피하는느낌이 든다.
항상 한 침 대 에 누워 내 가 껴 안아 주기 를 바라던 시 론이 었는데 어 제 밤은 묘하게 덥다는 식으로 말을 돌리며 날 피했고 아침에도, 평소라면 내 자지를 물고 아침 식사 대용으로 내 정액을 탐했어야 했는데 무슨 일인지 그저 멀찍 이 떨어져 멀뚱히 내 얼굴만바라보고 있었다.
“푸하〜!!”
생각에 잠길 틈도 없이 시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욕조에서 일어났다.
물에 젖은 시론의 몸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나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너도 대충 씻고 나와라.”
내 시선에 시론이 잠깐몸을 흠칫하더니 이내 태연한척하며 욕조를 나가 버렸다.
“……진짜 뭐지?”
혹시 내 가 뭔 가 실수라도 한 걸까.
아님 여자들의 그날이 찾아오기라도 한 걸까.
나는 아리송한 기분으로 시론의 말처럼 대충 몸을 씻고 욕조를 나왔다.
—병신아!! 옷 입고 바로 내려와!!
욕실을 나오자마자 시론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벌써 마중이 도착한 모양이 다.
나는 오랜만에 시론이 선물해 줬던 고급 의류를 꺼내 껴 입었다.
마무리로 머리를 뒤로 넘겨준 다음, 방을 나와 현관으로 내려왔다.
활짝 열린 현관에는 병사들에게 전해줘야 할스타킹이 담긴 자루를 여럿 짊어지고 있는 기에나씨와 여벌의 옷과 간단한 간식거리가 담긴 배낭을 멘 시론이 서 있었다.
그 둘의 뒤로는 익숙한은빛 갑옷과함께 바이저를 내려 얼굴을 가리고 있 는기사가 보였다.
기 사는 내 가 도착한 것을 확인하자 몸을 돌려 걷 기 시 작했고 그 모습을 노 려보던 시론의 입술이 움찔거리는 것을 눈치챈 나는 얼른 둘의 손을 붙잡고 기사의 뒤를 따랐다.
—크르르릉.
“오…….”
기사를 따라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어제 마차를 봤던 바로 그 장소였다.
다만, 어제와는 조금 달라진 것들이 눈에 보였다.
첫 번째로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사슬로 마차와 연결되 어있는 난생처 음 보는 거대한 생명체였다.
덩치는 거의 마차와 비슷했으며 피부는 모래와 회색을 적절하게 조합한 색이 었으며 의외로 윤이 나는 비늘로 전신을 두르고 있었다.
저 거대한 이족 보행으로 서 있는 녀석이 아마도 드레이크라는 녀석인 모 양이다.
두 번째는 마차의 바퀴가 거의 祄배 정도 커져 있었다.
“어머,그렇게 입으시니 어디 귀족가의 도련님 같으시네요.”
“아,행정관님.”
잠깐 드레 이크와 마차에 정신이 팔려있었는데, 그 사이에 밀리아님께서 내 옆에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밀리아님이 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필요한 물품은 넉넉하게 넣어두었으니 가시는 동안 불편하지 않으실 겁 니다.”
“이제와서 이런 말하는 것도조금 부끄럽지만… 정말로 이렇게 다받기만 해도 괜찮은 겁니 까?”
“그럼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다녀오시 길.”
밀리 아님은 나를 향해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실 뿐이었다.
정말 압도적인 감사다.
“그리고 마부석에 올라타고 있는 저분이 스미스님의 일행의 안내역을 맡 은 베 네오경 이 라고 합니 다. 과묵한 분이 니 혹시 라도 질문 같은 거 에 대 답을 하지 않더라도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세요.”
“그럼요. 물론입니다.”
질문은 고사하고 귀 찮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냥 존나 입을 닫을 생 각이 었 다.
“그러면 올라타시죠. 바로 출발 할수 있도록 문도 미리 통제해 뒀답니다.”
“정 말 하나부터 전부 그냥 다 감사드립 니 다.”
“하하, 괜찮습니다.”
그저 웃으며 괜찮다며 고개만끄덕여 주시는 밀리아님.
나는 이미 마차 안에 올라타 가지고 왔던 짐을 뒤쪽의 칸막이 안의 공간에 정리하고 있는둘을보며 나 역시 마차에 올라타기 위해 몸을돌렸다.
쿠션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 바닥을 정말로 이런 흙 묻은 발로 밟고 타도 되는 건지 잠깐 고민이 되 었으나, 이미 시론과 기에 나씨 가 올라타 발자국을 남겼기에 나 역시 얼른 마차에 올라탔다.
내 가 마차에 올라타자 문이 저 절로 닫혔다.
문이 닫히자 밖과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 었다.
그저 감탄만 나왔다.
나는 유리창 밖에서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 밀리아님께 짧게 고개 를 숙여 마지 막으로 감사를 표했다.
“병신아. 그만꼴깝 떨고 이제 좀 앉아. 너 새끼가 앉아야 마차를 출발시킬 거 아냐.”
“아,그런거냐?”
“그래.
시 론이 턱 짓으로 마부석을 가리 키 자, 작은 유리 창 밖으로 이 쪽을 바라보 고 있는 베네오경이 보였다.
나는 얼른 시론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시론이 잠깐 움찔하더니 살짝 나와 거리를 벌렸다.
그에 내가고개를 돌리려고 할때였다.
우웅.
순간적으로 몸이 뒤로 쏠렸다.
흔히 차나 기차가 출발할 때 심 심하게 느껴 볼 수 있는 현상이 었다.
창밖을 보니 정말로 풍경 이 조금씩 움직 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창문 열어줄 테니까 제발 지금은 얌전히 앉아 있어. 알겠냐 엩,,
“내 가애냐?”
“애였으면 걱정도 안하지.”
시론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뭔가 머쓱해졌다.
나는 시론의 말처럼 얌전히 앉아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마구간을 빠져나와 거리의 가도로 나온 마차는 활짝 열린 동문 을 순식간에 지나쳐 도시 밖으로 나와버렸다.
정말 순식간에 도시를 나와버린 것이다.
미리 언질을 받아 길을 비우고 서 있던 사람들의 행렬이 무척 빠르게 지나 쳐갔다.
툭툭툭.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 에 고개를 돌리 니 , 마부석 에 앉아 있던 베 네오경 이 유리문을 밀었다.
“이제 달릴 테니까. 꽉 붙잡아라.”
상당히 깨끗하면서도 무게 감 있는 목소리 였다.
그런데 꽉 붙잡아라니 .
뭘?
주변을 둘러봐도 붙잡을 거 라고는 보이 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이 속도가달리고 있는데 아니라고?
내 가 그런 의 문을 품기 시 작한 순간이 었다.
아직 닫히지 않은 마부석의 유리창 밖에서 사슬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一
“으게에엑!!!”
나는 좌석 에 서 굴러 떨 어 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