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159화 Ep.159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북쪽 거리.
경비대 에 서 단 한 번도 쉬 지 않고 달려온 케 르낙스는 몰려 있는 인파와 생 각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도 멀쩡한 집의 외관에 달리던 발걸음의 속도를 조 금씩 줄여나갔다.
“길을 비켜라.”
케르낙스의 날 선 목소리에 뒤를 힐끗 돌아본 이들이 흠칫 어깨를 떨며 얼 른 옆으로 비 켜섰다.
사람들의 틈을 지나 앞으로 나온 그녀는 집 앞에 서 있는 병사들에게 다가 갔다.
“불이 났다는소식을 듣고왔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아•••그게, 이쪽으로 오십쇼.”
케르낙스는 병사의 안내를 받아 옆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깨져 있는 창문 과 그 안쪽을 살피고 있는 병사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안쪽을 살피던 병사들은 상관의 등장에 하던 일을 멈추고 일단 경례를 때 렸다.
“됐다.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라.”
가장 고참병 이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왔다.
......
“그게 … 저희도 아직 조사 중이라 정확한 상황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갑자기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급히 달려왔는데, 보시다시피 불에 탄 흔적만 이렇게 남아 있었 습니다.”
“하아
사람은 없었나?”
“예? 아, 예. 일단 넽층까지 올라가진 않고 계단 아래에서 스미스님이 계신 지 불러보았으나 대 답은 없으셨습니 다.”
케르낙스는 곧바로 깨진 창틀을 뜯어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과 창문을 사이로 두고 새까맣게 그을린 흔적들이 경계선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피해가 부엌에 그쳤다는 걸 확인하고는 곧장 넽층으로 올라가 침실 의 문을 열었다.
“스미스.스미스 안에 있나?”
사랑스러운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는 욕실과 빈방, 지하실까지 구석 구석 돌아다니며 스미스를 찾았다.
“다행히 집에 없었던 모양이군.”
아무래도 마법을 배운다고 또 마법사의 공방에 찾아간 모양이다.
“하아… 다행이다.”
그녀는 지하실 계단의 벽에 기대며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리나의 입에서 자신의 집에 화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슴 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집이 불타는 거야 매우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업무까지 내팽개치고 뛰어올 일은 아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건 다름 아니라 그 화재가 일어난 장소에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내 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이 었다.
잠깐 마음을 추스른 케르낙스는 본인의 뺨을 가볍게 두드려 표정을 고친 후, 밖으로 나왔다.
“헤엑… 헤에엑……대, 대장니이임….”
부엌으로 돌아오자마자 케르낙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땀으로 젖은 머리 카락을 이마에 덕지덕지 붙인 리나의 허덕이는 모습이 었다.
케르낙스는 창틀에 손을 짚고 숨을 몰아 내쉬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마에 붙은 머리칼을 정리해주며 말했다.
“고작 경비대에서 이곳까지 뛰어오는데 그렇게 지치다니. 지구력을 더 기 르는 게 좋겠다.”
“…… ”
살짝욱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리나는 어쩐지 상관의 손길에서 상냥함이 느껴졌기에 입술을 삐죽 내미는 것으로 불만을 그쳤다.
케르낙스가 리나의 머리를 정리해주며 뒤로 물러나자, 기다리고 있던 고 참병이 입을 열었다.
“정황상 창문을 통해 화염병 같은 걸 투척한 것으로 보입니다.”
“병으로 보이는 파편을 찾았나?”
“그건… 아닙니다. 바닥에 있는 파편도 전부 창문의 유리 조각이고 그 외 의 것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흐 ”
W •
케 르낙스가 미 간을 좁히 며 천천히 바닥과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에는 스미스를 생각하느라 주변을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었기 때 문이다.
‘침입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깨진 창틀이나 그을린 주변으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 같은 건 찾 아볼 수 없었다.
부엌에서 유일하게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조리대와도 상당히 거리가 있 다.
‘화재를 일으킬 만한 다른 원 인이 되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케르낙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창틀 너머에 서 있던 리 나의 뒤 로 붉은 머리 카락이 불쑥 튀 어 나왔다.
“비켜 씨발.”
“으게 엑!!”
시 론의 손바닥에 머리를 맞은 리 나는 괴 상한 비 명과 함께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 …남의 부하를 너무 막 다루는군.”
“앞을 쳐 막고 있으니까그렇지.”
시론이 작게 콧방귀를 끼며 가볍게 창틀을 넘어 안으로들어왔다.
그녀는 주변을 살피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케르낙스의 시선에 똑같이 빤히 노려봤다.
“뭐.왜.”
“…아니다. 그보다 별일 아니니까 길드로 돌아가라.”
시론의 눈썹 이 살짝 아래로 기울어졌다.
“아니 시발. 집에 불이 났는데 별일 아니라고?”
“내 집이다.”
“•••쪼잔한 년.”
“하아.”
케르낙스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얼른 돌아가라 손짓했다.
“이 정도는 저녁까지 충분히 보수할 수 있으니 너는 돌아가는 길에 스미스 에게 오늘 저녁은 만들 필요 없다고 전해라.”
“뭐.마법 공방?”
“그래.
“거긴 경비대랑더 가깝잖아.”
“•••알겠다.내가전하겠다.그러니 그만정신 사납게 만들고돌아가라.그 리고 기에나는 어디 가고왜 너 혼자만온 거냐.”
“언니가 한 년만 다녀오라고 한 걸 어쩌 라고.”
케 르낙스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 쉬 었다.
‘기에나도 걱정을 하고 있을 텐데 ….’
“얼른 돌아가서 별일 아니었다고 기에나에게 전해라.”
“아, 알겠어. 알겠다고. 안그래도 갈 생각이었어.”
시론은 작게 꿍얼거리며 다시 창틀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딴 길로 새 지 말고 곧장 길드로 가야 한다.”
“내가 무슨 애새끼냐? 그리고 언니 때문이라도 바로 길드로 가야 하거든 ?”
“그럼 다행이군.”
시론은 케르낙스를 향해 손가락 욕을 거하게 날려주고는 껄렁껄렁 떠나 갔다.
“리나. 행정관님께 보고하고 다시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잘 살피고 있어 라.”
“아, 옙. 다녀오십쇼.”
케르낙스는 리나의 경례를 받으며 시론과 달리, 평범하게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걷지 않아 곧 걸음을 멈춰 야만 했다.
“무슨일이냐.
99
경비대가 있는 방향으로부터 다급히 뛰어오는 부하병사.
병사는 케르낙스의 앞에 멈춰서고는 경례하는 것조차 잊어버리며 다급히 그녀에게 말했다.
“행정관님께서 봉쇄령을 내리셨습니다!!”
“……봉쇄 령을?”
병사의 보고에 케르낙스는 당황했다.
‘갑자기 왜 봉쇄령을…?’
설마자신의 집에 화재가난것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그러실 분이 아니시다.’
분명 다른 이유가 더 있을 터.
“우선은 알겠다.그리고행정관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알고 있나?”
“그, 그건 모르겠습니다. 집무실의 창문으로 지시를 전달받고 곧바로 대 장님께 알리기 위해 뛰어온터라….”
“알겠다. 너는 이대로 다른 녀석들에게도 이사실을 알리도록 해라.”
“예!!”
병사는 케르낙스가 지 나왔던 길을 따라 뛰 어갔고 그녀는 경비대를 향해 뛰 기 시작했다.
“잊을 뻔했군….”
케르낙스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마법 공방 앞에 멈춰서고는 문을 활짝 열 었다.
“아, 어서 오세요.”
그녀는 카운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자신에게 인사해 오는 시오린을 보며 눈 을 껌뻑이며 물었다.
“스미스는위에 있나?”
“네? 스미스씨요?”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시오린.
그런 그녀의 반응에 케르낙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스미스가방문하지 않았나?”
“네? 아, 네. 저도 스미스씨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니다.혹시라도스미스가방문하면 내가데리러 올때까지 이곳에 서 기다리고 있어라 전해라.”
“어……네에.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케 르낙스는 곧바로 문을 닫고 경 비 대 를 향해 전 력으로 뛰 었다. 그리 고 앞 에 모여 있는 병사들을 향해 물었다.
“행정관님은 어디에 계신가.”
“시,신전으로 향하….”
그녀는 부하의 말을 채 다 듣기도 전에 서쪽을 향해 대로변을 질주했다.
신전… 사교도…….’
자꾸만 좋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혀왔다.
케르낙스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며 계속해서 달렸다. 그리고 막 서 쪽 거리에 진입했을 때, 행정관으로 보이는 이의 뒷모습을 발견 할수 있었다 •
“행정관님!!”
“•••케르낙스경?”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밀리아는,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 을 하고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케르낙스를 발견하고는 티 나지 않게 입술 을 잘근 씹었다.
감정의 표출이 극히 서툰그녀가저토록 험악한 얼굴이 된 것은 필시 그만 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관의 앞에 멈춰선 케르낙스가 숨도 고르지 않고 말했다.
“스,미스가… 보이, 지... 않습니다.”
“도시를 전부 뒤져본 건 아니잖아요.”
“…….”
행정관의 말에 케르낙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모든 도시를 다 뒤져본 것이 아니었다.
어디 잠깐 다른 곳에 들려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집에 화재가 일어난 탓인지, 자꾸만 좋지 않은 감정이 스멀스멀 피 어올라 초조하게 만들었다.
“저는 우선 신전에 도 협 력을 구할 생 각이 에 요. 케 르낙스경은 일단 돌아가 서 병사들의 지휘를 부탁드려요.”
“…그 전에 잠시 모험가 길드에 들리겠습니다.”
“모험가길드에요?”
케 르낙스는 작게 고개 를 끄덕 였다.
“지부장인 아멜라씨가 스미스의 위치를 추적 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소유 하고 있습니다. 그분께 협력을 구하겠습니다.”
“좋네요.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얼른, 얼른 움직 여요.”
케 르낙스는 대 답하지 않고 곧바로 왔던 길을 빠르게 뛰 어 갔다.
그녀의 등을 지켜보던 밀리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 었다.
‘그나마 희소식 이 네 . 위 치 만 알아낼 수 있다면 어떻게 든 해 결이 가능해.’
이미 가주인 아르델에게 까이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으나, 어떻게 해결 하느냐에 따라 그 강도가 솜방망이 가 될 수도 있고 속이 꽉 찬 철 몽둥이 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풍요신의 신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경비대장의 자택에 화재가 일어났고 스미스 형제님의 신변을 감시하던 그림자와의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네.정확해요.”
밀리아는대사제 아가사의 요약에 얼른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사는 잠깐 갈라진 사제복의 사이로 드러난 본인의 매끄러운 허벅지 를 검 지 로 툭툭 두드리 다가 그 고운 이 마를 살짝 찌 푸렸다.
“사교도의 소행은 아니 랍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시는 건가요?”
“믿고 안 믿고는 당신의 자유이니 귀찮게 설명을 하진 않겠어요.”
“•••그렇다면 성기사와 사제들을 지원해 주시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네. 맞아요. 사교가 개 입하지 않는 이 상은 움직 일 생 각은 없답니 다.”
“……알겠습니다.”
밀리아는 단호한 아가사의 태도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알현실의 문을 열고 나가려고 문고리에 손을 얹는 그때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호기심이 드는 사건이니 잠깐그 화재가 일어 난 장소에 가보고 싶긴 하네요.”
아가사가 자리에서 일어 났다.
밀 리 아가 문고리 를 잡은 채 로 말했다.
“제가 그곳까지 안내해 드리죠.”
“어머, 고마워라.”
그대화를 끝으로 둘은 화재가 일어난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단한마디의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
“이곳입니다.”
“그래 보이네요.”
깨진 창문밖에 서서 안쪽을 살펴보던 아가사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 렸다.
바닥과천장에 그을린 자국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신성력이 느껴졌기 때 문이다.
“어떠신가요?”
뒤에 서 있던 밀리아의 물음에 아가사는그을린 흔적 뒤로 이어져 있는흐 릿한 입자를 보며 말했다.
“연결이 닿지 않는다는 그림자라는 분은 인간인가요?”
“ 아뇨.”
“그렇군요.”
아가사는 그대로 몸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로변으로 이어진 흐릿한 흔적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밀리아 역시 아가사가 무언가를 발견한 것을 눈치채고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음을 옮기던 그녀들은 뜻밖의 이들과 마주쳤다.
“케르낙스경!!”
“……
다급히 뛰어가던 케르낙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잠깐 멈춰 섰다.
덕분에 그녀를 따르던 시론과 기에나도 덩달아 멈춰 서야만 했다.
“야!! 멈출 거면 그거 이리 내놔우으읍!!”
“쉬 잇.”
기에나는 행전관의 앞에 걷고 있던 대사제인 아가사를 발견하고는 얼른 시론의 입을 막았다.
일전에 억지로 스미스의 곁에 있겠다고 뻗대다가 그녀의 주먹에 나가떨 어진 것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사는 기에나와 시론을 보며 싱긋 웃은 다음, 케르낙스의 손에 들린 팔 각형 수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쫓는 흔적과 스미스 형제님 이 계신 방향이 같은 모양이네 요.”
“흔적...말씀이십니까?”
아가사는 조용히 고개 를 끄덕 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바람에 다급히 뛰던 케르낙스들도 아가사를 따라 자연스럽게 걷게 되 었다.
북쪽 거리를 벗어나 중심지로 이어진 흔적은 동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수선한 거리로 이어진 흔적을 따라 걷고, 또 걸어 그녀들이 멈춰선 곳은 몰링 타에 서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의 앞이 었다.
케르낙스의 손에 들린 팔각수정도, 아가사의 눈에 보이는 흐릿한 입자도 모두 그 건물로 이 어져 있었다.
그때, 조용히 뒤를 따르던 시론이 이마를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또이 년들이야?”
수정과흔적이 이어진 건물.
바로 밤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