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203화 Ep.203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언니라고 불러보도록.”
시 론은 자꾸만 위 로 올라가려는 케 르낙스의 입 꼬리 를 노려보다가 성벽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더 보고 있다가는 언니 가 아니라 육두문자가 입 밖으로 튀 어나올 것 같았 기 때문이다.
성벽아래.
복부를 관통당해 바닥에 쓰러진 라-로샤.
직접 검을 들고 겨뤘던 자매 중 하나가 쓰러진 그녀를 짐짝처럼 둘러업었 고 다른 한 명은 바닥에 떨어진 기이한 형태의 두 자루의 칼을 회수했다.
그걸 지켜보던 시론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 아니
하, 진짜. 어이가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의 결과를 두 눈으로 직 접 지 켜봤다. 그러 나 라-로샤라는 상위 개 체 가 내뿜던 거대한 기운을 직접 몸으로 받아낸 것 역시 사실이다.
‘단순히 기세만좋은 녀석이었다고?’
“그럴 리가…….”
“뭐가말이냐.”
생각했던 것보다시론의 반응이 좋지 않아, 옆에서 조용히 눈치를보고 있 던 케르낙스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시론이 눈알만 굴려 그녀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 었다.
“……됐어.”
말해서 뭐 하겠는가.
그 기운을 받아낸 것은 자신뿐인데 .
“그보다 뭐 밧줄이 나 사다리 라도 내 려줘 야 하는 거 아니 야?”
머리를 벅벅 긁던 시론이 대화의 주제를돌리기 위해 아래를 가리켰다.
“보면 안다.”
케르낙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자루의 칼을 주워든 자매가 성벽을 향 해손을 뻗었고.
까가각一
발하나걸칠 크기의 얼음이 성벽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일정 간격을 두고 계단처럼 자라난 얼음.
두 자매는 그 생겨난 얼음을 발판처럼 밟아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둘의 승리에 기뻐하며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막 성벽으로 올라온 둘에 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들겠습니다.”
“손질은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몇 번 해본경험이 있습니다.”
“목은지금 잘라도 됩니까?”
먹 이를 찾는 아기 새 처 럼 조잘조잘 쉬 지 않고 떠 드는 기 사들.
기사의 덕목 중 하나인 과묵함은 어디다 버렸는지 잔뜩 신나서 떠드는 꼴 이 처음 도시를 방문한 시골 촌년처럼 보였다.
아닙 니 다. 제 가 처 리 하겠습니 다.
“맞습니다. 저희가처리할게요.”
두 자매는 도움을 주겠다는 기사들의 손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확실히. 온전한 공으로 삼으려 면 뒤 처리까지 직접 하는 게 옳은 일이 긴 합니다.”
기사들이 저마다 살짝 아쉬운 소리를 내뱉으며 뒤로 물러날 때였다.
—데려와라.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긴 목소리가 느닷없이 하늘로부터 울려 퍼지더니 성루에 있던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되듯 파고들었다.
들어본 적 있는, 하지만와닿는 느낌이 전혀 다른 아르델의 목소리에 시론 은 고개를 번쩍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러 나 시 야에 들어오는 것이 라고는 눈을 멀게 만들 정도로 환하게 빛나 는 태 양과 푸른 하늘이 전부였다.
태양 빛에 눈을 찌푸리며 시론이 고개를 숙였고, 두 자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동생인지 언니인지 모를누군가의 어깨에 들려 있는 라-로 샤를.
그녀뿐만 아니라 물러났던 기사들과 일부 병사들의 시선도 자매의 어깨 에 들쳐진 라-로샤에게로 향했고.
—내가 언제 적을 앞에 두고 한눈팔아 좋다고 한 적이 있었던가.
철컥一!!
두 자매를 향하던 여러 시선이 일제히 성벽 너머의 메마른 사막으로 향했 다.
.........
시론은 속으로 짧게 감탄했다.
수백 명이 넘는 인원이 몸을움직였는데 들려온소리는 마치 한사람이 몸 을 움직인 것처럼 단일했기 때문이다.
시론은 바로 옆에 있는 케 르낙스를 힐끗 보았다.
열어둔 바이저 안으로 보이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
“쯔쯔 어、瞁 으
99
시론이 짧게 혀를 찼다.
—시란의 아이야.
흠칫.
두 자매를 향해 눈을 돌리려던 시론의 몸이 굳었다.
—내 영지에선 내가규칙이고 법이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시발.”
시론은 케르낙스의 옆에 붙어 메마른 사막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아르델.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이 메마른 대지에 드워프의 기술과 인간의 노동력 을 이용해 거대한보금자리를 만들어낸 이곳의 주인.
무리를 떠나 단신으로 이 보금자리를 찾은 것도 전부 이곳의 주인과 만 나기 위함이다.
절그럭, 절그럭.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
실망감과 더불어 안타까움을 짊어지고 무리로 돌아가려던 나를 멈춰 세 운 하프가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다.
기세 좋게 내려온 것과 달리, 기백도 실력도. 한참이나 모자란 하프.
절그럭.
계속해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던 쇳소리가 멈췄다.
“이제 내려와도돼요.”
하프의 말에 죽은 듯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바닥을 쓸고 다니던 꼬리에 힘을 주어 하프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음.”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게 이상해 고개를 돌렸더니 그곳에는 밖에서 보 았던 이 보금자리의 높다란벽이 서 있었다.
‘벽이 문제가 아니었군.’
이 보금자리 에 가까워 지 면 가까워 질수록 다가가지 말라고 몸이 본능적으 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높은 벽에 무언가가 있다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벽을 넘어 보금자리에 들어와서야 확연하게 느껴졌다.
사방에서 조여드는 꺼림직함.
벽이 아니라 이 보금자리 전체가자신이 지닌 주술의 힘과상반되는무언 가를 품고 있었던 거다.
고개를 돌려 하프를 보았다.
시험 삼아 주술의 힘을 끌어올렸고.
“……뭐요.”
벽 밖에서와달리,하프는주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내가오해했군.’
보금자리의 벽에 쭈그려 앉아 있던 빨간 머리의 꼬마.
필사적으로 뜻을 전했으나 일관된 무시와 투기를 보이기 에 꼬마를 상대 로 그만 화를 내버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오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엄한 녀석에게 화풀이를 해버렸군.’
그건 전사로서 옳지 못한 행동이 다.
그렇기에 사과해야만 한다.
“나중에 나를 빨간 꼬마가 있는 곳으로 데 려다줄 수 있나?”
“•••꾈.”
이상한 쇠로 몸과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하프.
그러나 얼굴을 가리고 있다하더라도 감정을 읽는 건 어렵지 않다.
제대로 기운을 갈무리하지 못해 흘러나오는 것들이 감정의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
‘두려움은 나를 향한 것일 테고 호기심은 무엇에 대한 호기심인가.’
“•••어렵지 않아요.단, 영주께서 살려주셨을때의 이야기지만요.”
“영주. 아르델. 이곳의 주인.”
하프는 고개 를 끄덕 였다.
그렇다면 안심 이다.
“그런데….”
“뭐냐.
“……괜찮은 거 맞아요?”
의심이 담긴 말.
그 시선이 내 몸을 향해 있다.
‘잊고 있었군.’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이상한 알갱이들.
가볍게 몸을 털었다.
파가각一
돌이 깨지는 소리를 내며 몸에 달라붙은 하얀 알갱이들이 조각나며 모래 가 바람에 흩날리듯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됐나?”
배에 구멍은.”
그러고 보니 이 반쪽이의 검을 맞아줬었다.
억눌러 뒀던 힘을 풀어냈다.
겉과속. 양쪽 모두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대전사인 내가 이런 촌극을 벌이다니.’
보금자리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패배할 필요 가 있었다.
당차게 벽에서 뛰어 내려온하프.
그러나 빨간 꼬마와 달리, 기세 한번 제대로 받아넘기지 못하고 잔뜩 움츠러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런 실망스러운 실력을 가졌기에 약간의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이 렇게 보금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건 실 망스러운거다.
“•••그만 노려보고 따라오세요.”
하프가 걷기 시 작했고, 나는 뒤를 쫓았다.
잘 부서지는 모래와 달리, 보금자리의 지면은 몹시 딱딱했기에 큰 힘을 들 이지 않아도 쉽 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도통 인간들은 구분하기가 힘들군.’
하프를 따라가며 수십 이 넘는 인간들을 마주쳤는데 하나 같이 그놈이 그 놈처럼 생겨 먹어 육안으로구별하기가쉽지 않았다.
쿠구궁一!!
“참 복잡한 보금자리군.”
벌써 몇 개의 관문을 거쳤는지 모른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방금지나온관문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수 있었다.
‘수컷의 냄새가 강해진다.’
어느 종족이건 수컷이 지닌 특유의 페로몬이 코와혀를통해 느껴졌다.
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수컷의 페로몬이 느껴진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 는 거대한 건축물이 이곳 주인의 거처라는 것을 의미한다.
수컷은 언제나 강한 암컷이 차지 한다.
인간은 어떨지 몰라도 이곳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요정.
그러니 분명 저 건물에 이곳의 주인이 있을 것이다.
스으윽.
건축물의 문이 활짝 열렸다.
‘이것도요정의 힘인가.’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밖과 다르게 거대한 건축물의 내부는 놀라우리만 치 서늘했다.
꾸물꾸물.
활짝 열린 문 옆에 붙어 꼼지락거리는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한눈팔지 말고 따라오세요.”
“그러지.”
하프를 따라 부드러운 천이 깔린 길을 밟으며 굉장히 각진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근一!!
엩,,
주변은 놀라울 만큼 서늘했다.
그런데 각진 언덕을오르면 오를수록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하더니 몸 의 체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경험이 미숙하던 어린 시절, 대전사의 시험을 앞두고 흥분감에 심장이 빠 르게 뛴 경험은 있다.
그러나 체온이 함께 상승하는 건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변화였다.
꿀꺽一
게 다가 의 지와 상관없이 과다하게 분비되 기 시작한 침 .
스륵, 스르륵.
각진 언덕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몸의 변화는 심해졌다.
‘요정의 술수인가?’
그것 외 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하아아…….”
마지막 언덕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자의지와 상관없이 입에서 뜨거운 숨 결이 흘러나왔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뛰 었다.
사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서늘한 곳이다.
바닥에 닿은 꼬리를 이용해 열을 계속 방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열이 떨어지지 않는 거냐….’
겉이 달아오르는 것과 달리, 내부에서부터 열이 차오르자 처음으로 답답함이 라는 것을 느꼈다.
“당신...괜찮아요?”
하프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숙이고 있었나?’
언제부터?
“괜, 찮다.”
애써 터져 나오는숨결을 억눌렀다.
“……저걸 좀 보세요.”
하프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투명한 무언가가 있었는데, 거기엔 몹시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 비치고 있었다.
크게 벌어진 동공.
허덕임에 벌어진 입술.
한층 부풀어 오른 흉부.
‘이게, 무슨…?’
내부의 변화가 외부에까지 영향을 준 것일까.
“설마...겁먹으신건가요?”
이 하프는 갑자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일까.
겁이라니.
이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흐브’ 邵펏.
“아무튼, 저곳이에요.”
하프는 앞에 보이는 커다란 문을 향해 걸었다.
두근! 두근! 두근!
문 앞에 다다르자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코가 벌렁거렸다.
침이 멈추지 않았다.
—들어와라.
저 릿한 머 릿속에 파고드는 여 인의 목소리 .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당겨졌다.
점차눈에 들어오는 안쪽의 풍경.
넓은 공간.
그 중심에 놓여 있는 크고 작은 기물.
그 위에 앉아 있는 상반되는 머리 색을 가진 한 쌍의 남녀.
분명 저기 턱을 괸 자세로 엎드려 이쪽을 오연하게 쳐다보고 있는 암컷이 이곳의 주인일 것이다.
그러나 시선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성을 압도한 본능.
그 본능이 두 눈동자를 암컷의 발을 만지고 있는 수컷에게로 이끌었다.
일반적인 수컷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체구와 탄탄한 몸.
코와 입안으로 스며들어오는 진하고 중독적인 페로몬.
무엇보다 암컷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직한 시선.
“하아아……봽”
또 다른 남왕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