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270화 Ep.269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딸랑딸랑.
적막이 감도는 건물에 맑은 종소리가울려 퍼진다.
“괜히 설치했나.”
조용히 문을 닫은 나는 달빛이 스며드는 계단을 밟으며 천천히 누님이 있 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슩층. 길게 늘어진 복도를 걸어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문 앞에 멈춰 섰 다.
똑. 똑. 똑.
“누님. 들어가도 됩니까?”
—……쳐 묻지 말고 그냥들어와 새꺄.
시 작부터 애 정 이 가득 담긴 욕설이 라니 . 내 가 생 각한 것보다 누님 이 훨 씬 긴장한모양이다. 누님의 허락이 떨어졌기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밤임에도 이전에 방문했을 때보다훨씬 밝았다. 암막으로 가려져 있지 않 은 창문으로 스며든 달빛이 적절하게 방 안을 비췄다.
조용히 문을 닫은 나는 침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한쪽 다리 만 끌어 안 은채 무릎에 턱을괸 누님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짐작이라도 하신 건지, 벌써부터 뺨을 발갛게 물들인 누님은 나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바닥만 뚫어지게 노려 보고 있다.
“머리는 왜 푸셨습니까.”
“…잠은자야할 거아냐시발.”
“자정에 찾아간다고 말했잖아요.”
“안 을수도 있잖아.”
누님답지 않게 입술을 삐죽 내밀고 주저리주저리 나에게 투정 부리듯 투 덜거렸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누님의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금 누님의 투정은 본인이 생각도 못 할 만큼 귀 여웠 으니까.
조용히 침대에 오르자누님의 어깨가미약하게 떨리는게 보였다.신경 쓰 지 않고누님의 뒤에 무릎꿇고 앉아풀어진 머리를 살며시 쓸어내리며 정리 했다.
“끈 가지고 계십니까?”
자.”
잘 거라고 머리를 푼 사람이 머리끈을 왜 손에 쥐고 있는 건지.
이 런 말을 했다가는 의 외 로 시 론 만큼이 나 잘 삐치 는 누님 이 제 대 로 토라 질 수도 있었기에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쓸어내리고 정성스럽게 모아 검은색 머리끈으로 단정하게 묶어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자라난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후우.
?!”
입 김을 살짝 불어 넣자, 누님이 눈에 띄 게 몸을 흠칫 움츠리는 반응을 보였 다. 본인도 놀라고 뒤늦게 부끄러워졌는지 새하얗던 목덜미가 무서운 속도 로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낮에 의미심 장한 말을 해서 그런지 정말 단단히 긴장한 모양이 다. 딱히 이렇게 되길 노린 건 아니지만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아보인다.
할 일을끝냈기에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온 나는누님의 앞에 섰다.누님은 여전히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땐 관심을 끌 만한물건이 필요하다.
오늘의 핵심 아이템인 징표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누님.”
뭐.
“아니. 언제까지 바닥만보실 겁니까.제가바닥도 아니고.드릴 거 있으니 까저좀봐주세요.”
그제 야 누님의 고개 가 느릿하게 위를 향했다.
정확히 나와시선이 교차했을 때, 손에 들린 징표를들었다.그러자누님의 미간에 작은주름이 생겨났다. 내가선물하겠다는물건이 손에 들린 ‘징표’ 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 다. 그리고 그닥 마음에 들지 않고.
“설마… 그걸 나보고 차라는 건 아니겠지?”
“싫습니까?”
“씹 … 후우. 야. 아무리 그래도 사내새 끼들이 나 찰 법한 걸 차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누님 이 더 격하게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 거보다 더 무난한 디자인은 없었기에 나는 조금 더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제가 직접만든건데.”
“하? 왜이딴걸….”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소리에 누님이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 흐름이 끊 기기 전에 말을 이었다.
“누님을 생각해서 만들었는데 그렇게 싫어하실 줄은…….”
“아니 ...씹... 너 다른것도 잘 만들면서 왜.......”
끌어안고 있던 다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누님이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 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는다.
슬쩍 눈치를 살피 던 나는 지 금이 딱 좋은 타이 밍 라 생 각하고 누님 에 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다.
“뭐,뭣
?”
무어라 말을 하려던 누님은 돌연 내가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하자, 눈 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더듬거 리 다가 입을 다물어 버 렸다. 태 양처 럼 샛노란 눈동자를 지그시 응시하며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징표를 자연스럽 게 누님의 목에 가져댔다.
찰칵一
누님은 목에 징표가채워 지는순간까지 굳어진 상태로움직 이 지 않았다.
“누님.”
“•••꾈.”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크게 흔들거린다.
숙였던 허리를 곧게 펴며 징표에 닿은 손으로 누님의 목을 천천히 쓸어 올 렸다. 내 손끝을 따라누님의 턱 또한위를 향했다.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거리.
나는 다른 손으로 징표의 유일한 장식을 손으로 붙잡아 당겼다.
강제적인 힘에 누님의 얼굴이 한층 나와 더 가까워졌다.
입 술에 폭신하고 촉촉한 감촉이 닿는다.
달콤함이 스며들어왔다.
잡아당기고 있던 장식을 놓자, 입술에 닿은 폭신함이 천천히 떨어져 나갔 다.
키스가 처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의 끈적한 키스도 아니 었다. 그저 평 범한 입술과 입술이 닿았을 뿐. 그러나 지금 누님의 표정은 요 며칠간 보아 왔던 그 어떤 표정보다도 놀랐다는 감정이 느껴지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님.”
“•••꾈.”
재차이름을부르자, 멍하니 내 얼굴을 향하던 눈동자가살짝위로 움직였 다.
나는누님의 목에 채워진 징표의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는누님이 이걸 계속 착용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른거는 안, 되… 냐?”
또렷하게 나를 올려다보던 눈동자가 슬그머니 옆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이번엔 내가 직접 허리를 숙여 누님의 입술을 훔쳤다.
“……파하〜!!”
이번에도 그저 입술과 입술이 겹쳤을 뿐인, 가벼운 애정 표현이었음에도 누님은 과하게 숨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님.”
“•••드, 듣고 있으니까… … 그만 좀 불러 … … 시발….”
“그럼. 이름으로 불러드릴까요?”
“•••꾈.”
누님의 얼굴이 이제는곧터진 활화산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열기가 가 까이에 닿은 내 얼굴에까지 느껴질 정도로.
“싫다는 말씀은 안하시네요.”
“……어차피 너 새끼 맘대로 할 거잖냐.”
“맞습니다. 제 맘대로 할 겁니다. 그런 약속이었으니까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신성력이 떨어지기 전까지. 성과관련된 일에 있어서 누님은 나에게 뭐든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투덜거 리고 반항하기 는 했지 만, 여태 까지 잘 지켜왔 다.
여 기서 내 가 조금 더 억지를 부린다면, 조건부로 징표를 차고 다니 긴 할 거 다. 그러 나 내 가 바라는 건 신성력 이 다하고 약속한 기 간이 끝났음에도 누님 이 자발적으로 징표를 차고 다니 길 바란다.
육체를 먼저 함락시키고 잔뜩 흐트러져 있을 때 강요하는 방법도 있다. 그 러나 앞서 말했듯 내가 원하는 건 누님이 자발적으로 이걸 착용하는 거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누님의 마음을 함락시 킨다.
“아멜라.”
“……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누님의 어깨가 크게 흠칫거렸다.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
“이거 말입니다. 시론과 다른 아이들에게도 선물해 줄 겁니다.”
“•••이, 걸•••꾈?”
“예.그걸.”
나는 다시 한번 징표의 장식을 붙잡아 위로 당겼다.누님이 ‘긋!’소리를 내 며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대로 있었다면, 처음처럼 입술을 겹치는 상황 이 되었을 테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열기가 느껴 지는 빨갛게 달아오른 뺨에 흔적을 남기며 그보다 더 붉어진 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댔다.
“제가 누님의 목에 채워 드린 이거 말입니다. 단순히 치장용으로 만든 게 아닙니다.”
꿀꺽一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어서 그런 걸까. 누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렸다. 크게 방망이질하는 심장 소리, 바짝 마른 입으로 삼키는목 넘김, 거칠어진 숨결까지.
“이건말입니다.”
a 99
다른 손으로 곧게 펴진 누님의 허리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표식입니다.”
“…표 식?” ,
“예.표식.”
조금 더 강하게 누님을 끌어안으며 빨갛게 달아오른 목덜미에 얼굴을 묻 고 입술을 달싹였다.
“아멜라. 당신이 내 거라는표식.”
“무슨
윽?!,,
목덜미를 깨물며 체중을 실었다. 누님이 뒤로 넘어갔고 자연스럽게 내가 누님의 위에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입에 물고 있던 걸 놓아주며 고개를들었다.누님이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 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 얼굴에, 뺨에 손을 뻗어 상냥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 금은 다들 그냥 평 범한 장신구라고 생 각할 겁 니 다. 그러 나 시 간이 조금 흐른뒤에는 달라질 겁니다.”
나를 상징하는 이 니셜이 각인된 특별한 장식.
앞으로 만들어질 성물에 새겨질 이니셜. 사람들은 이제부터 그 이니셜을 통해 나라는 인간을 기억하게 될 거다.
“오로지 내 연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특별한물건. 내 여자라는표식. 그 렇게 만들 거고,그렇게 알려지게 될 겁니다.”
“나,난
아멜라.”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자, 달싹이던 입술이 조용히 닫힌다.
동요하듯 흔들거리는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을 이 었다.
“당신이라는 여자에게 반했습니다.부디 제 연인이 되어주세요.”
“아, 으, 아으으…….”
흔들림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대신, 반짝이던 눈동자가천천히 촉 촉하게 젖어갔다.
“시론도 케르낙스도 아닌, 아멜라. 당신에게 처음으로 선물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받아주시 겠습니까?”
“ 으 으......”
나를 또렷이 올려 다보던 아름다운 눈동자가 조금씩 아래 로 내 려 간다. 그 리고 작은 입술이 달싹였다.
“……네에.”
“예 ?”
“아!! 아, 알…… 겠다, 고…….”
누님이 두손을 가슴 아래에 다소곳이 모았다. 마치 수줍어하는소녀처럼.
“네,여자가… 되어주겠다고…….”
“무르기 없습니다?”
99
대답하지 않고 겁먹은 소동물처럼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린다. 그게 너무 사 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입술을 훔쳤다.
“으응, 응… 쮸읍…봽”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혀를 휘 감으며 타액을 교환했다. 달콤한 그녀 의 타액을 몇번이고탐한후에야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하아, 하아아….”
“아멜라. 사랑해요.”
“읏…!!”
몽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 다보던 누님 이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시선을 아 래로 피했다.
“사랑해요. 좋아해요. 진짜로 사랑一”
“그,그만!! 알겠, 알겠으니까… 그만해….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고….”
“제가 부끄럽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아, 진짜……!!”
누님 이 눈을 번뜩이 더니 갑자기 시 야가 반전됐다.
순식간에 나와 누님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누님이 앙칼진 고양이 처럼 눈을 날카롭게 만들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발정 날 거 같으니까… 진짜 그만하라고.”
“사랑해요. 아멜라.”
“야!! 진짜, 진짜하지 말라고…….”
누님의 머리 에서 새하얀 김 이 모락모락 피 어올랐다. 나는 잠깐 누님의 울 먹이는 듯하면서도 화가 난듯한 오묘한 얼굴을 감상하다가 입을 열었다.
“ 앉아.”
“읏……?!”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님이 엉덩이를 내 허벅지 위에 안착시켰다.
“옳지. 착하다.”
“너,너어……!!”
“제 사랑 고백은 끝났으니까 이제 누님의 몸을 공략해야죠. 그러니 계속 협력해 주실 거죠?”
“……나쁜 새끼.”
진심이 통한 걸까. 누님의 입이 무척 온순해졌다.
나는 누님의 드러난 복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려가서 옷부터 벗어 볼까요?”
흥.
수줍어할 땐 언제고 다시 입술을 삐죽 내민 누님이 조용히 내 허벅지에서 내려와 휙휙 옷을 벗어 던졌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누님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노려본다. 그 시선을 덤덤 하게 받으며 나는 누님에게 손짓했다.
“사실, 그거 말고도 누님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 하나 더 있거든요.”
또?”
“네. 그러 니까 잠깐 뒤 돌아보세 요:,
이렇게?”
“잠시만요.”
나는 누님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잠깐 감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리고 뒷주머니에서 잘 정리해 묶어 둔 끈을 꺼냈다.
아주 손쉽게 끈의 매듭을 풀었고 누님의 목에 채워둔 징표를 살짝 당겼다
•
“•••뭐하냐?”
“어허.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만들어진 빈틈에 끈을 넣고 새로운 매듭을 묶었다. 그리고 길게 늘어진 줄을 손목에 휘 감아 잡는 것으로 준비 끝.
“너,너……?”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누님이 고개를 돌렸고, 본인의 목에 채워진 징표와 연결된 기다란 끈을 보고야 말았다. 나는 아주 뻔뻔하게 말했다.
“늘하던 거잖아요. 거기에 기분만 더 낸 거 뿐이지.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이러려고 채운건 아니지?”
“어허. 의심하지 마시고 엎드리세요. 누님의 몸까지 공략해서 완전히 제 여 자로 만들어 드릴 테 니까.”
99
누님이 오묘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길게 내쉬며 바닥 에 엎드렸다.
“누님. 연인은 연인이고. 약속은 약속인 겁니다?”
“•••또 뭘 시키려고.”
“씁.대답.”
그래.”
내가 머리를쓰다듬어주자, 조금씩 누님이 내 다리에 바짝붙어왔다.
나는 누님의 턱을 살살 긁어주며 말했다.
“밤 산책은 좀 색다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