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Ep.277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세요.”
“•••시론……나세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론의 굳게 감겨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 다.
“시론. 일어나세요.”
«......O 으”
—•
선명하게 귀에 내려꽂히는 기에나의 목소리.
시론이 이마를 찌푸리며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침대는 푹신하고 이불속은 따뜻하다. 일찍 잤던 만큼 몸과 정신 모두 개운했다. 그럼 에도 잠에서 깨어난시론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 바보
잠에서 깨어나면 항상 자신을 품어주고 있던 포근하고도 심신에 안정을 주던 온기. 바로 그 온기 가 느껴 지지 않았다.
스미스가 떠난 지 고작하루. 시론은 벌써부터 스미스가보고 싶어졌다.
“아침 준비해 뒀습니다. 얼른 내려와서 먹고 길드로 가죠.”
“•••꾈어.”
시론은 누운 상태에서 마른세수를 한 번 한 다음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리고 슬쩍 주변을 살폈다.
평소라면 꽉 차 있어야 할 침대. 그러나 지금 시론의 눈에는 텅 빈 공간만 이 눈에 들어왔다.
“케르낙스는?”
“아침 먹고 있습니다.”
“쯧
시론이 혀를 차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기에나와 함께 침실을 나와 부엌으로 내 려왔다.
시론은 빈자리에 앉으며 눈을 껌뻑였다.
“이년어디 갔어?”
그녀의 질문에 기에나는스미스가 떠나기 전에 준비해 뒀던 비프스튜를 접시에 담으며 대답했다.
“지하에 내려가 있네요.”
“지하? 거긴 뭐하러 갔데.”
지하가 스미스의 개인 공방으로 사용되 면서 그녀들은 스미스가 직접 부 르는 경우가 아니면 사적으론 한 번도 지하에 출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돌연 케르낙스가 지하에 내 려갔다고 하니 없던 호기심도 생 겨났다.
“아침부터 드세요.”
“•••말 안해도그럴 생각이었거든.”
뒤를 힐끗 돌아보던 시론은 언제라도 잔소리를 할 수 있게 맞은 편에 앉는 기에나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 었다.그리고 정확히 시론이 스튜를 한접시 다 비웠을 때 지하에서 케르낙스가 위로 올라왔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처음 보는 투박한 검이 한 자루 걸려 있었다.
시론이 그걸 보며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뭐냐 그거.”
“보다시피 검이다.”
케르낙스는 뭘 그런 걸 묻느냐는 얼굴로 대꾸했고 시론이 이마를 찌푸리 며 다시 물었다.
“누가 검인 걸 몰라서 물어 ? 어디서 난 거냐고 묻는 거잖아.”
“나는 원래 검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었다겠지.”
“으음
시론의 날카로운 지적에 케르낙스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랬다. 그녀는 수집했던 수많은 검을 빚을 갚기 위해 모두 되팔았고 그 돈의 대부분은 스미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바보가 만들어준 거야?”
“아,아니다.”
“맞네. 맞아. 시발. 야. 이리 와. 그거 가져 와봐.”
“아, 아니라고 하지않았나!!”
시론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자 케르낙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주 춤 물러나기 시 작했다.
그에 시론이 혀를 차며 말했다.
“우리가 몇 번이나 말했지만 넌 거짓말을 더럽게 못 해. 얼굴에 다 티 난다 고.”
“난,거, 거짓말하지않……
쿠우웅一!!
“……II”
“무슨….”
서로를 견제하려던 시론과 케르낙스는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에 누 가 먼저랄 것 없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굉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쿠웅!! 쿵!! 쿠우웅一!!
굉 음이 덮쳐올 때마다 지 면이 흔들렸고 유리 창과 테 이블, 의 자 등 집 안의 모든 가구가 요란하게 움직 였다.
그칠 줄 모르고 이 어 지 는 굉 음과 충격 에 시 론과 케 르낙스는 딱딱하게 굳 은 얼굴로 기 에 나를 바라봤다.
둘의 시선을 받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간다고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 일단가보죠.”
셋은 집을 나와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달렸다.
—으아아악!!
—시,신벌, 신벌이야!!
—미친년아!! 지랄 말고 달리기나해!!
비명을 지르며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도망치는 시민들.
그 시민들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할 경비대원들 역시 상태는 비슷 했다.
“애들이 먹고살기 편한가봐.”
“…….”
시론은 케 르낙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망치 던 병 사들을 뒤 돌아보며 이 죽거렸고 케르낙스는 조용히 스쳐 지나갔던 병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콰아아앙一!!
“큭!!”
“끄응….”
천둥이 바로 옆에 떨어진 것처럼 고막이 뒤흔들렸다.
기에나 역시 신음하는 둘과 비슷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살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곤란하군.’
그녀는 소리의 근원지에서 부딪치고 있는 두 개의 기운을 느끼며 식은땀 을 흘렸다.
기 에 나. 그녀 가 기 억하기로 이 도시 에서 지금 부딪히고 있는 두 사람을 중 재 할 수 있는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는 거로 파악하고 있다.
두 사람과 함께 달리 던 기 에나는 앞쪽에서 느껴 지는 또 하나의 기척에 손 을 들었다. 그에 시론과 케르낙스는 기에나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잠깐. 멈춰라.”
속도를 줄인 셋이 막남쪽 거리에 들어섰을 때, 그녀들의 앞에 아르델라가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함과 동시에 시론과 케르낙스는 지금 이 소란을 만들 어낸 주범들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아멜라와 아르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아멜라가 지독히 아르델을 싫어 한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 었다.
범인들의 정체를 깨닫고 이걸 자신들이 막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시론은 곧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란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대신, 눈앞에 나 타나 어색하게 웃고 있는 아르델라에 게 관심을 가졌다.
“언니가 여긴 어쩐 일이야?”
“으음.
.....
어색하게 미소 짓던 아르델라의 입꼬리가 천천히 반달로 변해갔다. 시론 의 옆에 서 있던 케르낙스가 살짝 서운한 눈으로 시론을 흘겼다. 시론은 케르
낙스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크흠. 잠깐너희 얼굴도볼 겸, 케르낙스를데려가기 위해 왔다.”
“아……그래〜?”
음?
아르델라는 갑자기 삐딱하게 기울어지는 시론의 고개를 보며 멍하니 눈 을 껌뻑였다.그에 옆에 서 있던 케르낙스가 삐쩍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묻히 며 두발자국 시론의 옆에서 떨어졌다.
“그래.그렇지. 흐음… 그래. 언니랑 얘랑 그 아줌마랑…….”
“……시론?”
아르델라는 의문 가득한 눈으로 시론을 몇 번이나 불러보았으나 시론은 어딘가 비틀린 미소만 지을 뿐, 그녀의 물음에 대꾸해주지 않았다.
“•••끝난 거 같습니다.”
홀로 집중하고 있던 기 에 나는 소리 가 멈추고 서로 거 리를 벌린 둘의 기운 을 느끼고셋에게 알렸다.
갑작스럽게 돌변한 시론의 태도에 적잖게 당황하던 아르델라가 기에나 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시론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가보 자.”
아르델 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 게 시론이 달려 가듯 그녀를 지 나쳐 갔고 기 에 나가 그 옆을 곧장 붙었다.
“……케르낙스.”
“예.”
“내 가 뭐 시론에게 말실수라도 했나?”
“으음… 이, 일단가시죠.”
“……그러지.”
아르델라는 여전히 시론의 돌변한 태도에 의문을 가졌고 케르낙스는 조 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시론. 입에 먼지들어갑니다.”
기에나는 멍한 눈으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시론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살짝 닫아주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시론이 보고 있는 곳을 살폈다.
‘괴물들이군.’
일단 길드 건물이 있어야 할 자리가휑하니 비어있다. 아니, 건물이 사라졌 을 뿐만 아니 라 그 주변은 대 마법사가 메테오를 떨 어트린 것처 럼 깊은 구덩 이가 난잡하게 파여 있었다.
그뿐이라면 기에나는 크게 감탄하지 않았을 거다. 그 정도는 자신도 얼마 든지 할수 있는 일이니까.
기 에 나가 감탄하고 놀란 건, 누가 선이 라도 그어놓은 것처 럼 나뉜 풍경 때 문이었다.
한쪽은 수백 년간 북풍한설을 맞아온 것처럼 푸른 얼음과 새하얀 서리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 반대편은 화산이 터지고용암이 흘러내린 것처럼 검붉 은 액 체 가 바닥에 고여 부글부글 끓었고 건물과 바닥은 태 양을 연상시 키는 불꽃이 사방에 달라붙어 이글거리고 있었다.
기 에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경 계선으로 향했다.
요새 에서 보았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 지 않은 아르델 이 가슴 아래 에 팔짱 을 끼고서 있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맞은 편엔 어딘가 즐겁다는 얼굴을 한 아멜라가 긴 장검을 어깨에 걸치고 서 있었다.
“끄응
어머니.”
어느새 다가온 아르델라가 한손으로 얼굴을 크게 쓸어내리며 ‘치우는 것 부터 가 일 이 겠군 … ….’ 라고 중얼거 렸다.
“언니!!”
시론의 외 침 에 순간 아르델 라가 흠칫하며 고개 를 돌렸다. 그러 나 아르델 라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언니’가 자신을 지칭하는 게 아님을 깨닫고 다시 풀이 죽었다.
기쁜 일이 라도 있는 사람처 럼 실실 웃고 있던 아멜라가 고개를 돌려 시론 을 바라봤다. 그녀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이쪽을 보고 서 있는 시론의 모습 에 피식 웃으며 어깨에 걸치고 있던 검을 검집에 밀어 넣어 갈무리했다. 그리 고 아멜라가 검을 갈무리 한 순간 또 다른 변화가 일어 났다.
화아아악—!!
그녀의 등 뒤 로 공간을 일그러트리 는 아지 랑이 를 피워 내 던 불길 이 한껏 몸집을 부풀리더니 순식간에 아멜라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따악一
그걸 지켜보던 아르델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만으로 그녀의 뒤 에 피어오른 거대한 얼음꽃들이 가루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주변을 위협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멀찍이 떨어져 있던 네 사람이 엉망이 된 지 면을 밟으며 아르델과 아멜라를 향해 다가왔다.
“언니…!!”
절반쯤 왔을 때, 시론이 아르델을 지나치며 아멜라를 향해 뛰 었다. 시론은 순식 간에 아멜라의 팔에 달라붙어 입 가에 손을 가져대 며 조심스레 입술을 달싹였다.
“아무리 싫어도그렇지…!! 어쩌자고그랬어요!!”
“아,뭐래.그보다 징그러우니까달라붙지 마라.”
아멜라는 날 파리를 쫓아내듯 팔을 휙휙 털어서 시론을 밀어냈다. 그리고 는 귀 찮다는 얼굴로 귀를 후볐고, 귀를 후빈 손가락으로 아르델을 가리 키며 대꾸했다.
“뭔가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시작은 내가 아니라 저년이 먼저 했단다. 그리 고 시론아. 내 가 너처럼 눈 돌아간다고 냅 다 들이 박고 보는 년은 아니 란 다. 확 쥐어박아 버릴까.”
“…….”
“표정이 굉장히 띠겁다?”
“아, 아닌데 … 안 띠거운데 … 요.”
시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몇 걸음 더 뒤로 물러났고, 나머지 세 사람도 도착했다.
“케르낙스.”
“예.영주님.”
아르델라의 뒤에 서 있던 케르낙스가바짝 긴장하며 대답했다.
아르델은 아멜라를 지그시 응시하며 물었다.
“전부숙지했나요?”
“예.전부 숙지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곧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예.예?”
“어머니 잠깐…….”
갑작스러운 아르델의 행동에 케르낙스와 아르델라가 적잖게 당황했다. 그러나 아르델은 당황한둘을 지나쳐 자리를 떠났고.
“끙…… 시론. 일단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만나서 꼭 풀도록 하자.”
아르델라가 급히 모친의 뒤를쫓았고.
“그,그럼……가보겠다.”
케르낙스가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그 뒤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
시론은 순식간에 멀어지는 세 명의 등을 빤히 노려보다가 다시 고갤 돌리 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아멜라를 올려 다보던 시론이 돌연 입술을 닫았다. 그녀의 시 선은 아멜라 의 목에서 떨어질 줄몰랐다.
사랑하는 연인이 직접 목에 채워주었던 장신구와 똑같은 녀석이 아멜라 의 목에도 채워져 있었다.
아멜라는 이번만큼은 시론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 았다.
한 발자국 떨 어진 자리 에서 두 사람을 지 켜보던 기 에 나가 아멜라를 향해 물었다.
“아르델 백작과는 어쩌다가부딪치게 되신 겁니까.”
“뭐어…….”
기에나의 물음에 아멜라는 둘의 시선을 의식하며 슬그머니 목에 채워진 징표의 장식을 어루만지며 불과 몇 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