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286화 Ep.285 골디 아스 왕국
길면서도 짧았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다.
똑. 똑. 똑.
정중함이 묻어나는 박자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마 어제 우리에게 주 문을 받던 종업원일 것이다.
냐호가 조식을 부탁할 때 옆에서 듣고 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이젠 어느 정 도 약한 사람의 기운도 구분 할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다.
“제가나가도 괜찮은데.”
“앉아있어라….”
가랑이 사이가 불편한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베네오가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 이 가득 담긴 트레 이를 끌고 돌아왔다.
“이 건 제 가 할 테 니까 좀 앉으세요.”
“……그렇게 배려할 거면 어제 좀 적당히 하지 그랬나.”
“크흠.”
내 가 시선을 피하자 베네오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냐호와 시오린씨를 힐끗하 고는 테이블 위로 음식들을 옮겼다.
“드실 거죠?”
“…안 먹을 거다.누가내 입에 하얀덩어리들을 사정없이 밀어 넣어서 아 직도 배가 더부룩하거든.”
“… …베네오도 맛있게 먹어 놓고는.”
“그,그건…!!”
베네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달아올랐다.
“좋아하지만… 너무 많이 먹였잖아… ….”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투덜거리듯 작게 항의 한다.
저런 모습이 참 귀 엽고 사랑스럽 다.
나는 슬쩍 팔을 뻗어 베네오의 허리를 감싸 옆으로 당겼다. 그녀는 저항하 지 않고 얌전히 엉덩이를 붙여왔다.
“피곤할테니 떠나기 전까지 좀 더 자세요.”
“아니, 괜찮다. 조금이라도 더 네 얼굴을 보고 싶다.”
“으음
이거야원.
가끔 저 솔직함에 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그럼, 누워 라도 있으세요. 그 정돈 괜찮죠?”
“•••허벅지에?”
“네.허벅지에. 가끔 시론이나 기에나가누우면 부럽다는듯이 보셨잖아요 99
“•• ”
살짝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나는 허벅 지를 두드리 며 재차 말했다.
“ 얼른요.
실례하지.”
베네오가조심히 몸을 눕혀 머리를 내 허벅지 위에 얹었다.
“솔직히 편하진 않죠?”
“근육이 많아 딱딱하긴 하군. 그래도
슬쩍 몸을 돌려 내 배에 얼굴을 묻으며 말한다.
“스미스. 너의 체취를 강하게 맡을 수 있어서 마음이 진정된다.”
“밥먹을 거니까 얌전히 누워 있어요.”
“으음
내가포크를 들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자, 다른 연인들처 럼 베네오도 자연스럽게 눈을 감으며 내 손길을 느끼기 시작했다.
고기. 고기. 고기.
접시 위에 올라간 것들을 대충 찍어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미궁에 대한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있었지…….’
앞서 거쳐왔던 두 도시에서도 일부 여관에서 미궁에 대한 정보가 돌아다 니고 있다는 걸 베 네오가 확인했다. 다만, 관문에서처 럼 출입 명부가 조작되 거나 하는 수상한 건 발견되 지 않았다.
거기에 이곳까지 오면서 어떠한트집도 잡히지 않았고습격 역시 받지 않 았다. 말그대로 정말 순탄한 여행길 그 자체였다.
그나마 걸리는 게 있다면…….
‘남자들이 생각보다 더 자유롭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거.’
관문에서 봤던 소년들처럼 거쳐왔던 두 도시에서 마주쳤던 남자들도 그 소년들과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하호호 웃으며 모험가나 병사들 곁에 붙어 아양을 떠 는 그런 모습을 보였다.
이건 이제 그만 고민하자.’
어차피 몇 시 간 후면 칼름과 만난다. 관계자에 게 직접 물을 수 있는 기회 가 있는데 굳이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는 것만큼 비효율적 이고 멍청한 짓이 또 있을까.
“후우.
생각 없이 입에 넣다보니 테이블에는 어느새 빈 접시만 가득하게 되었다.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으며 함께 왔던 냅킨으로 입을 정리했다.
새액—새액—
아래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
!..
..
고개를 숙이자 이쪽을 향해 돌아누운 베네오의 잠든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정 면으로 봐도 예 쁘지 만 이 렇게 옆얼굴을 보는 것도 색 다른 매 력 이 느껴 져서 나쁘지 않았다.종종 기회가되면 이렇게 눕혀서 머리를쓰다듬어 줘야 겠다.
“으응
“누가 누구보고 애 라고 하는지.”
돌아누운 그녀 가 꼬물거 리 며 조금 더 내 품으로 다가오더 니 살짝 늘어 난 셔츠 자락을 입에 물고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베네오의 머리를 조심히 쓸어내리며 시계를 바라봤다.
벽에 걸린 시계의 짧은 바늘이 이제 막숫자 쪽을 지나쳤다.
‘접선 지역은 여기서 두시간 떨어진 숲.’
이 도시부턴 칼름의 영역이다. 그러나완벽히 통제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사도가 여럿이듯 페트미라교 내에서도 어느 사도를 따르냐에 따라 파벌이 나뉘어 있다고 네메아님께서 알려주셨다.
즉, 칼름이 관리 하는 도시 지 만 다른 사도의 신도들도 활발히 돌아다니 고 있다는 소리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칼름에게 보고가 올라가고 칼름이 처리를 하지만 그걸 다른 신도들이 듣고 그녀들이 따르는 다른 사도들에게 보고를 올릴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잠입한 거라면 몰라도 관문에서부터 숨기지 않고 이곳 까지 왔기에 우리가 외지인이라는 건 조금만 조사해도 알아낼 수 있는 정보 다.
그런 이유로 도시가 아니라 도시에서 조금 벗어난 숲을 접선지로 정한 것 이고.
심지어 평범하게 만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가 길목을 지나면 칼름을 따르는 전투 신도들이 우릴 습격할 것이다. 그럼 적당히 도망치는 척하다가 내가 마차 밖으로 굴러떨어져 잡히면 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칼름과 네메아님이 이렇게 하기로 했다니 나는 그냥 따를수밖에.
그리고 지금 여기에 보이지 않는 네메아님은 미리 숲을 살피고 계시기로 했다.혹시나 예정에 없는 손님이 있을 경우 잘 타일러 돌려보내기 위해서라 고하셨던가.
‘시론이랑 애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출발할 땐 가을이었고 돌아갈땐 겨울일 것이며 다시 몰링타에 도착했을 즘이면 봄이 되 어 있을 것이다.
‘돌아가면 이번엔 진짜 진득하게 집에 좀붙어 있어야지.’
그때면 단체로 휴가를 떠난 정신 나간 선배님들도 돌아왔을 거고.
“집나가면 개고생이라더니….”
물론, 고생이라고 할 만한 일을 겪진 않았지만, 사랑하는 연인들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고통이나 다름없다.
……라고하기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좆질을 하긴 했지.
나는 베네오의 뺨을 어루만지며 소파의 등받이에 편하게 몸을 기대었다.
‘잠은 안 오지 만 살짝 눈만 좀 붙일까.’
출발까지 네 시간.
헤어지기까지 여섯 시간.
베네오의 부드럽고 따뜻한 뺨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았다.
**
—곧‘푸른 잎 숲’에들어선다.
방음 마법을 따로 걸지 않았기에 마부석에 앉은 베네오의 목소리가 짐칸 에 선명히 들려왔다.
“서방님…….”
“어어, 왜 울고 그래.”
점심까지 침대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냐호가 눈물을 그렁거리며 내 품에 폭 안겨 왔다. 나는 고개를 살짝 치켜들어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 아래에 고인 물방울을 소매로 닦아주며 말했다.
“그냥 잠깐 떨어지는 거잖아. 시론이랑 다른 애들이 알면 호들갑 떤다고
“•••그래요
99
정말로 나와 떨어지는 게 슬픈지 냐호의 귀가 아래로 힘없이 처져 있었다.
“마법 걸어야 하니까 그만 좀 떨어져 봐요.”
짓.”
옆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던 시오린씨가 한 마디 툭 내뱉었고 냐호가 혀를 차며 내 품에서 떨어졌다.
“고맙습니다.”
“뭘요. 받은만큼 일하는 건데.”
“하긴. 제가 좀과하게 드리긴 했죠.”
“……시, 신전에서 받은보수를 말하는 거예요!!”
시오린씨 가 빼액 소리 지르며 작은 지팡이를 휘 둘렀다. 그러자 녹색과 푸른색의 빛이 내 몸을 휘감았다.
“지금뛰어내려도 침대에 구른 것처럼 통통 튈 거예요. 다칠 일 없으니까 안심하고 뛰어내리면 돼요.”
“감사합니다.”
“•••진짜괜찮은 거냐고 안 물어요?”
“시오린씨가 안심하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아니, 그거야… 흥. 됐어요.”
굉 장히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시오린씨는 결국 토라진 듯 고 개 를 돌리 며 구석 탱 이 로가 모포를 뒤 집 어 써 버 렸다.
“냐호야 이리와.”
“네에…….”
내 가 두 팔을 벌리자 냐호는 다시 쪼르륵 달려와 내 품에 폭 안겼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에…….”
냐호의 따뜻한 체온과 목덜미 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향기로 마음을 진정 시키고 있을 때였다.
—멈춰라!!
—여긴허락…
크르르르르륵一!!
큭기
—시발!!
마차가 크게 한 번 튀 었고 넘 어질 뻔한 나를 냐호가 붙잡아 주었다.
—쫓아!!
—드레이크는내장까지 팔수 있다!! 무조건 잡아!!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뒤섞여 메아리가되어 숲에 울려 퍼졌다.
나는 껴 안고 있던 냐호의 허리를 놓으며 뒤 로 물러 났다.
“가볼게.”
“……네.”
“시오린씨. 나중에 봐요.”
“……지속시간기니까아직 안뛰어도돼요.”
시오린씨 가 모포에 서 고개 만 살짝 내 밀고는 그리 대 답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빨리 가야 빨리 돌아오죠.”
“…흐”
O •
그녀는 다시 모포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서방님
“어이쿠.”
냐호가 내 허리를 끌어안더니 발끝을 들어 입술을 맞춰왔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그녀의 비단처럼 고운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어 준 다음 미친 듯이 펄럭 이고 있는 암막 앞에 섰다.
추격자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드레이크가 전력으로 숲을 달리 는 중이었다.
‘•••진짜 안전한 거 맞겠지.’
주변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의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고속도로에 서 과속하고 있는 차량에 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꿀꺽.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냐호가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냐호야.”
“네?”
“미안한데 내 등좀 밀어주라.”
“……네?”
얼굴에 열이 확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당당히 뛰어내릴 것처럼 말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밀어달라니.
“팍! 하고 밀어줘.”
“어,그, 제, 제가요?”
“응.시오린씨를 시킬 순 없잖아.”
실제로 그녀는 내가 뛰어내릴 때까지 모포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냐호야. 얼른.
“그, 으으… 하지만서방님을 어떻게
“괜찮아.오히려 그게 날위한 거야. 나중에 원하는 거 하나들어줄게.응
엩,,
“그, 그렇다면야…….”
역시 상인.
나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그럼… 밀게요?”
“걱정하지 말고 팍! 하고 밀一”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자연스럽게 몸의 균형이 무너졌고 짐칸에 딛고선 두 다리가볼품 없이 바 닥에서 떨어진다.
온몸으로 느껴 지 는 오싹한 부유감.
‘나중에 내가뭐 잘못한거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
스미스가 마차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추격자들의 추격이 멈췄다.
크르르르릉一!!
그러 나 갑작스러운 공격 에 화가 난 엘 . 마차를 끌고 있는 드레 이 크는 베 네 오의 명령에도 좀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력으로 숲을 질주했다.
‘……왜 나에게 화풀이를하는지 모르겠군.’
그랬다. 드레 이크가 속도를 줄이 지 않고 계속 질주하는 건 갑작스러운 공 격 때문이 아니라스미스가 마차에서 뛰 어내린 게 원인이었다.
몬스터 라고는 생 각할 수 없을 정 도로 뛰 어 난 지 능을 가지 고 있는 드레 이 크는 뛰어난 청각과 후각. 그리고 줄어든 마차의 무게로 스미스가 사라졌다 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걸 주인인 베 네오의 탓으로 생 각하고 불만을 표 출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그 마법사가 실력이 있어서 걱정은 좀 덜하군.’
딱딱하게 얼어붙은 바닥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드레 이크가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다. 당연히 숲길은 평탄치 못했고 걸리 적거리는 장애물도 상당했 다.
그럼에도 마차는 어디 한 곳 망가지지 않고 이음쇠에 연결된 채 잘 따라 오고 있었다.
전부 안에 타고 있는 마법사.시오린의 마법 덕분이었다.
부유, 충격 완화, 바람 저항의 삼박자가 마차를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었으 며 어떤 충격도 흡수하는 막을 둘러 안전하게 보호했고 바람 저항으로 방향 이 틀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마차가 부서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베네오는 드레 이크의 귀 엽지 않 은 반항을 한 번 눈감아 준 것이다.
‘지치면 쉬어야 하는 건 똑같으니 차라리 숲을 빨리 빠져나가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군.’
어차피 제대로 쉬기 위해선 집결지에 합류해야 했기에 베네오는 드레이 크가 지칠 때까지 잠깐 방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베네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린 결정을 번복해야만 했다.
크르르르…….
세 상 두려울 것 없다는 듯 달리 던 드레 이크가 낮은 울음소리 를 내 며 조금 씩 속도를 줄여 나갔다.
베네오가 고삐를 쥘 것도 없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드레이크는 어느 순 간부터 달리는 걸 멈추고느릿하게 걷기 시작했다.
베 네오는 달리 던 때와 마찬가지로 드레 이크가 하고 싶은 데로 내버려 두 었다.
그 결과, 드레이크는 얼마 걷지 않아 완전히 자리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무 릎을 꿇고 둥글게 몸을 웅크렸다-
마치 겁먹은 짐승처럼.
크르르릉…….
몸을 웅크린 드레이크가 벌벌 떨기 시작했다.
베 네오는 침을 삼키 며 마부석 에 서 내 려왔다. 그리고 새하얀 눈으로 뒤 덮 인 길목을 바라봤다.
뽀드득.
뽀득, 뽀드드득.
쌓인 눈을 밟는 소리 가 조금씩 가까워 졌다.
거리와 관계 없이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존재 감.
뽀득.
발소리가 멈췄다.
새하얀배경속에 나타난 작은태양.
아멜라가 무심 한 시 선으로 짐 칸을 노려보며 작게 중얼 거 렸다.
스미스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