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300화 Ep.299 골디 아스 왕국
나를 포함한 복도에 남아 있던 이들이 긴장한 얼굴로 계단을 주시한다.
토옥. 토옥.
요란하던 비명이 사라진 자리를누군가의 발소리가 대신 메꿔왔다.
“제 뒤로…….”
벡스가 걸어 나오더 니 자신의 등으로 나를 보호하듯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때였다. 내 얼마되지 않는 감각의 범위에 발소리의 주인이 들어온 것은.
‘주범이 직접 왔다라…… 설마칼름이 나에 대한걸 다불었나?’
왠지 세뇌당하지 않았음에도 나에 대한 걸 열심히 떠벌리는 칼름의 모습 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는 점차 가까워 지는 끈적한 기운에 눈을 찌푸리며 나이엘에게 말했다.
“모험가들을 뒤로 물리세요.”
“예. 고귀한 분께서 뒤로 물러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단발머리 여자를 중심으로 모험가들이 천천히 내가 있는 쪽으로 뒷걸음질 치며 계단으로부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혹시 라도 앞에 서 알짱거 리 다가 세뇌 라도 당하면 곤란하니 까.’
바로 앞까지 다가온 끈적한 기운.
나는 부디 칼름처럼 내 아랫도리를 이용해 원만한 합의를 가질 의향이 있 는 이가 내려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계단을 주시했고.
“염병
모습을 드러낸 주범의 모습을 시각적 데이터화 시켜 뇌가 그걸 인식함과 동시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마법등의 불빛을 받아 태양처럼 반짝이는 민머리.
나 같은 건 어린아이로 만들어 버릴 수준의 괴랄하게 펌핑된 근육.
달랑 삼각팬티 한 장만 걸친 지나치 게 개 인주의 적인 복장.
불과 몇 달 전. 바젤란에서 나에게 수상한 짓을 하려고 했던 바로 그 괴한 이었다.
내가 상대를 알아본 것처럼, 상대도 나를 알아봤는지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지나치게 두꺼운 입술을 움직였다.
“아아 이게 바로 운명이라는 거군요. 설마 이런 장소에서 다시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성자여.”
!.
.....
“성,자…?”
괴한의 말을 듣자, 옆에 서 있던 나이엘이 무언가 심히 충격받은 얼굴로 나 를 돌아봤다.
뭐 랄까. 굉 장히 불쾌 감을 들게 만드는 저 눈빛.
당장이라도 꿀밤을 쥐 어박아 주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아, 그, 으음… 저는 고귀한분의 취향을 모두 존중
“그런 거 아니라고!!”
“아.아니었군요. 죄송하옵니다.”
나이엘은 어딘가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다시 괴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괴한은 앞을 막아서고 있는 모험가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오로지 나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운명. 성자께선 역시 우리 위대한 어머니의 짝이 되어줄운 명이었던 거군요!!”
이 전처럼 또 이상한 소리를 지껄 이며 멈췄던 다리를 다시 움직 이 기 시작했 다.
한걸음.두걸음.나와괴한의 거리가천천히 좁혀졌다.
모험 가들은 괴 한이 한 걸음 다가오면 두 걸음 뒤 로 물러 나는 모습을 보였 고그걸 지켜보던 나이엘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외쳤다.
“위 축될 필요 없습니 다. 가서 죄 인을 벌하는 겁니 다. 가장 큰 공을 세운 분 에게는고귀한분께서 직접 그 공을 취하하며 정식으로 세례까지 내려주실 것이니. 여러분들의 마음을 이 자리에서 증명하십시오.”
말에 힘 이 담겨 있지도, 그렇다고 강압적 인 것도 아니 었다. 그러나 나이 엘 의 목소리에 뒤로물러나던 모험가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썅. 날붙이 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 새끼인 이상 치다 보면 뒈 지겠지 !!”
지부장이 라는 양반이 가장 먼저 괴한을 향해 뛰 었고 뒤 이 어 정신을 차린 다른 모험 가들도 괴 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운명적인 만남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운명은지랄!!”
단발머리 여자가 뛰어올라괴한의 얼굴에 주먹을 크게 내지른다.
빠악一!!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중에 떠올랐던 단발머리 여자가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끄으윽?!”
괴한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던 단발머리 여자는 본인의 손목을 감싸며 고통스러운 듯 신음한다.
괴한은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왔다.
“이 시발!!”
“뒈져!!”
한발늦게 달려든 모험가들이 괴한의 몸을 걷어차고 주먹을 날렸다.
“큭?!”
“어억!!”
주먹을 내지른 자들은 손을, 걷어찼던 이들은 정강이와 발을 붙잡으며 바 닥에 주저앉아 신음한다.
괴한은 쓰러진 모험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나를 향해 계속 거리를 좁혀왔다.
“건강한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당신들처럼 나약한 육체를 가진 자들은 저 와 성자의 운명적인 만남을 방해할 자격이 없답니다.”
괴한은 모험 가들의 공격을 그냥 몸으로 받아냈고 어째선지 공격을 가한 모험가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신음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반복되었 다.
‘아니,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시발… ….’
우리 애는 남이나조금 따라 할 줄 아는 글러 먹은 앤데 남의 집 자식은 그 냥몸이 흉기라니. 이 얼마나부조리한 세상이란 말인가.
심지어 은총인지 권능인지 나발인지도 저 괴한쪽이 훨씬 대단했다.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으세요!!”
모험가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자, 나이엘이 전투 신도들을 움직였다.
그녀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결과는 모험 가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지 만.
‘시발.저거 그냥몸이 존나단단해서 저러는거 같은데?’
바닥을 구르며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잘 보면 손목이나 발 주변이 퉁퉁 부 어오르고 있었다.
전투 신도의 절반이 나가떨어졌다.
벡스가 앞으로 나선다.
그러자 나이엘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이엘의 대한평가가 단숨에 몇 단계 위로 상승했다.
“못간다!!”
“잡아!! 잡아끌어 !!”
남은 신도들이 괴한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그러나 괴한의 속도는 조금도느려지지 않았다.
그저 아래에 달라붙은 신도들만 바닥을 질질 끌며 괴한의 발에 딸려올 뿐 이었다.
‘누가좀구해주러 안오나…….’
소설에서 보면 히로인이 위 기에 처하면 주인공이라던가 누군가가 멋지게 구해주러 나타나는 게 정석이지 않은가.
역전세계 인 이곳을 기준으로 두고 보면 나는 히로인 포지션이 맞다. 그러 니 아무나 좀 구해주러 와줬으면 좋겠다.
지금이 라면 상대 가 칼름이 라 하더 라도 껴 안고 진하게 사랑을 속삭여 줄 의향이 있다.
파아아앗一!!
“……?!”
나는 갑작스럽게 오른손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강렬한 빛에 크게 당황했 다.
나뿐만 아니라 평온한 얼굴로 다가오던 괴한 역시 살짝 이마를 찌푸리며 잠깐 제자리에 멈춰 섰다.
괴한이 빛나는 내 오른손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비신 아르메르의 힘이 느껴 지는군요.”
아르메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 것 같은데.
아.”
분명히 칼름이 빼앗은 신전의 원주인이 아르메르라는 이름의 신이었다.
‘왜……?緒
갑자기 그 아르메르라는신의 힘이 어째서 내 오른손에 깃든단말인가.
내가속으로 당황하고 있을 때,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나이엘이 옆으로 물러나더니 존경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바닥에 무릎을 꿇 었다.
“아아… 고귀한분께서 모시는 분은 아르메르님이셨군요.”
아니, 아닌데.
“신께서 직접 힘을 빌려주실 정도로 사랑을 받는 분이시라니 …….”
나이엘이 가슴 아래에 손을 모으며 벡스를 향해 말했다.
“다들 물러서도록하세요.고귀한분께서 직접 저 죄인을 단죄하실 것입니 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벡스를포함한 멀쩡히 바닥을 딛고 선 신도 들이 홍해 가 갈라지 듯 옆으로 물러 났다.
괴한의 발을 붙잡고 늘어지던 신도들도 더는 괴한의 발에 매달리지 않았 다.
“고귀한분이시여.죄인에게 단죄를……!!”
“…….”
나는 눈동자에 믿음을 가득 담은 나이 엘을 힐끗 보며 잠깐 눈을 감았다.
‘시론 가슴에 얼굴묻고 싶다.’
오늘따라 연인들의 너른 가슴이 그리웠다.
나는 환하게 빛나고 있는 오른손과 긴장한 얼굴로 내 오른손을 노려보고 있는 괴한을 한 번씩 훑어보며 생 각했다.
‘……어떻게든되겠지.’
실제로 오른손으로부터 알수 없는 힘의 느껴지는건 사실이었으니까.
한순간에 이 공간에 있는 모두의 이목을 끌게 된 나는 어쩔 수 없이 신도 들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 괴한에게 다가갔다.
대략열걸음.
‘그냥 맞아주지는 않겠지.’
모험가나 신도들의 공격이야 본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걸 알 고 있었기에 그냥받아줬던 것일 테지만, 저렇게 경계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주먹을 내지르면 피하거나 분명 반격할 것이 분명했다.
꽈아아악.
딱히 사람을 때려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주먹을 휘두를 줄은 안다. 그렇 기에 나는 오른손에 힘을 꽉주었다.
발을 내디딘다. 허리에 힘을 준다. 주먹을 내지른다.
아주 간단한세 개의 동작만 이어하면 된다.
아홉, 여덟, 일곱…….
줄어드는거리.
다섯……지금!!
왼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나는 허리에 힘을 실어 괴한의 명치를 향해 오
른주먹을 강하게 내질렀다. 아니, 내지르려 했다.
“으어
엩,,
긴장으로 팽팽하던 정신이 몽롱해져 간다.
내디딘 다리에 힘이 빠져나간다.
눈꺼풀이 무겁다.
저항해야한다. 저항해야함이 옳다.
상대는 내 엉덩이를노릴수 있는 위험한적이었으니까.
그러 나 나는 저 항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인가 겪어본 적 있는 감각.
내 의식은빠르게 멀어져 갔다.
**
“하아…….”
주먹을 내지르다가 멈춰선 스미스가 돌연 한숨을 내쉬 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빛나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치녀가…… 저의 기다림을 물거품으로 만든 대가는 언젠가 반 드시 치르게 만들겠습니다.”
스미스가 오른손을 털어냈다. 그러자 팔에 깃들어 있던 강렬한 빛이 거짓 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신의 힘 이 사라졌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괴한. 룬-비델은 유일하게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힘이 사라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온한 얼굴을 하고서 코앞까 지 다가온스미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두꺼운 손이 스미스의 어깨에 닿으려던 그 순간.
화아아악—!!
아래로부터 피어오른 강렬한 불길이 룬-비델의 몸을 순식간에 집어 삼켜버렸다.
어 떠 한 반응도, 소리도 내 지 못하고 룬-비 델은 그대로 재 가 되 어 사라졌 다.
검은 기운을 머금은 불꽃은 천천히 몸집을 줄이더니 그대로 스미스의 사 타구니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순식간에 괴한을 처리해버린 스미스가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신음하다가 그를 지켜보고 있던 모험 가들이 흠칫하며 전부 눈을 바닥으로 내 리 깔았다.
길을 만들기 위 해 옆으로 비 켜섰던 신도들도 모험 가와 다를 바 없이 스미 스와 시 선 이 마주치 자 전부 바닥으로 눈을 내 리 깔았다.
주변 시 선을 정 리하고 나서 야 스미 스는 뒤 돌아섰다.
흠칫.
방금 있었던 일에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벡스와 나이엘이 스미스와 눈이 마주치 자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 었다.
검은 눈동자 안에서 일렁이고 있는 푸른 빛.
그 빛을 마주하는 순간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껴 야만 했다. 그리 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둘을 한동안 지켜보던 스미스가 입을 열었다.
“나이엘
“예,예에…….”
나이엘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을 처자보며 대답했다.
“스미스가 모시는 신은 아르메르가 아닙 니 다.”
“예에, 예……?”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에 나이엘은 순간 공포심도 잊어버리고 고개를 살 짝들었다.
화아아악—!!
“ 딸꾹.
나이 엘은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피 어오르는 푸른 빛 을 보며 살짝 실금해버렸다.
그녀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그럼.고귀한분께서 모시는분은 어떤 분이신지요?”
—시스.
복도. 아니, 방에 들어가 있던 일반신도들의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려온 이
스미스가 나이엘의 몸에 걸쳐져 있던 로브를 들어 자신의 허리춤에 두르 며 말했다.
“스미스가 모시는 분의 이름은 시스라고 합니다. 절대 틀리지 말도록 하 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