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302화 >Ep.301 골디아스 왕국
제단에 드리운 어둠을 한순간에 몰아낸 강렬한 빛.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칼름의 등 뒤.
“아아아악!!”
칼름이 내뿜은 빛을 코앞에 서 얻 어맞은 나베 리우스는 눈알이 타들어 가 는 고통에 온몸을 비틀며 괴성을 질러댔다.
“코미디가 따로 없군요.”
원흉인 칼름 조차 눈을 감고 있는 상황 속에서 스미스는 무심한 눈으로 둘 을 바라보며 시시한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다행히 나베리우스는 본인이 내지르는 비명에 의해 스미스의 목소리를 제대로듣지 못했다.
대신, 그는 고통스러운 두 눈을 움켜쥔 상태로 끈적한 살기와 함께 칼름을 향해 소리쳤다.
“이 찢어 죽일 년!!”
빛에 눈이 멀고 끔찍한 통증을 얻고 난 후에 야 나베 리우스는 여태까지 칼름을보면서 느꼈던 찝찝함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의도한 것처럼 자신의 무능함과 쓸모없는 정보에 대한 것들만 입 밖으로 내뱉던 모습과 정말로 세뇌에 걸렸다는 걸 입증하듯 아무렇지 않게 페트미 라를 모독하던 것까지.
‘처음부터 세뇌엔 걸리지 않았던 거다!!’
세뇌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페트미라를 모독할수 있었던 이유?
처음부터 페트미 라에 게서 등을 돌린 상태 였다면 모든 게 맞아떨 어진다. 이미 마음이 떠난상태인데 모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베리우스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소리쳤다.
“성욕을 위해 은총을 베푼 신을 배반하다니 !! 네년이 그러고도 정말 사도 란말이냐!!”
그러나 칼름은 대 답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은채 계속해 서 빛을 내뿜을 뿐이었다.
‘젠장젠장젠장!!’
처음부터 끝까지 저 멍청하게 생긴 여자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에 나베리 우스는 극심한 치욕을 느꼈다. 동시에 자신을 농락하고 속으로 비웃고 있을 원흉을 찢어발기고 싶다는 욕구가 폭발적으로 치솟아 올랐다.
‘어차피 살아나가긴 글렀다……!!’
시력을 잃었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은총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도 없는 상황.
‘어차피 죽을 목숨!! 너라도 길동무 삼아 주마!!’
나베리우스는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칼름을 함께 데려가겠다는 의 지를 불태우며 힘을 끓어 올렸다.
강렬한 빛에 의해서 뒤로 길게 늘어진 그의 그림자.
길쭉하게 늘어난 그의 그림자 아래에서 통제되지 않은 불길한 검은 기운 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태풍이 불어닥친 바다 위처럼 불안정하게 물결치며 그림자 밖으로 튀 어 나가는 검은 기운들.
나베리우스의 이마위에 혈관들이 돋아났고.
밖으로 튀어 나가려던 검은 기운들이 한점으로 모여 수축했다.
수축된 검은 구는 곧 터질 것처럼 허공에서 덜덜덜 흔들거렸다.
응축한 힘을 폭발시켜 제단과 함께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묻어버리겠다 는 각오를 다짐하며 나베 리우스가 이를 악물었다.
그는 한계까지 응축시킨 힘을 억누르고 있던 통제력을 거둬들이며.
“죽어—”
쉬잇.
으읍!!”
나베리우스는 갑작스럽게 입을 틀어막은 무언가에 당황했다. 그뿐 아니 라 몸 전체가 무언가에 휘감겨 균형을 잃고는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
‘무슨…?!’
바닥에 쓰러진 그는 지금 자신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힘의 정체를 파악하 고는 경악할수밖에 없었다.
‘은총이어째서……?’
폭주시 키 기 위해 끌어모았던 은총. 바로 그 은총이 자신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힘의 정체였다.
저벅, 저벅一
혼란스러운 와중, 시각을 잃은 나베 리우스에 게 의 지할 수 있는 감각 중 하 나인 청력을 통해 누군가의 발소리가들려왔다.
조금씩 가까워지던 발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췄다.
스윽.
뒤 이어 얇은 천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끄으으으읍?!”
두개골이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에 나베리우스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 지르며 몸을 꿈틀거렸다.
끔찍한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나베리우스의 귀로 짜증과 실망이 뒤섞인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기껏 풀어줬더니.”
‘풀어, 줘……?’
풀어주다니, 누가. 누굴?
“새로 획득한 능력을 시험해 볼 겸 당신을 한 번 더 풀어주는 상황을 고려해 보았으나, 얻는 건 적고 위험 요소만 잔뜩 늘리는 상황이 연출될 것 같기 에 그만두기 로 했습니 다.”
꽈아아악—!!
“……?!”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의 통증이 나베리우스의 뇌를 강타했다.
빠르게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당신의 머릿속에는과연 제가바라는 정보가들어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죠.”
**
화르륵.
나베리우스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 피어오른 거대한 불길.
스미스가 자리 에 서 일어 나자 나베 리우스를 삼켰던 불길 이 그의 사타구니 쪽으로 스며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허탕이군요.”
스미스는 작게 투덜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처음 자세 그대로 꿋꿋하 게 빛을 발하고 서 있는 칼름을 향해 말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겁니까.”
“•••꾈.”
칼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스으윽.
좌우로 벌리고 있던 작은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던 빛도 점차 그 세기를 줄어나가더니, 은은하게 어둠을 밝힐 수준에서 딱 멈추 었다.
스미스를 향해 등을 보이고 서 있던 칼름이 몸을 돌렸다.
보랏빛 머리 칼에 연보라색 눈동자.
칼름은 여전히 초점 없는 눈동자를 움직 여 푸른 안광을 내뿜고 있는 스미 스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스미스는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아이를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힘을 회수하고 꺼지도록 하세요.”
“……아니.”
굳게 닫혀 있던 칼름의 입이 열렸다.
“죽이지도 않을 거고 힘을 회수할 생각도 없다.”
“제가 흡수할 텐데 괜찮은 모양이군요.”
“그럴 리가. 힘겹게 모은 힘이 남에게 강탈당하는데 어느 누가그걸 좋아 할까.”
스미스를 똑바로 올려다보던 칼름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지친 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작은 손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힘이 아깝기는 해도 그쪽이 변질시킨 걸 다시 주워 먹고 싶지는 않거든.”
“유감이군요.”
“내가 할 말이 다. 나는 아직 그쪽에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는데 왜 나 를 경계하는 건지 모르겠군.”
“무언가오해가 있군요.”
“오해?”
칼름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초점 없는 눈을 몇 번인가 껌뻑였다.
“경계하는 게 아닙니다. 경고한 겁니다.”
“•••꾈.”
칼름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신 이 라는 년들은 하나 같이 오만하구나. 그리고 욕심도 많고.”
“저는 신이 아닙니다. 그저 유능한 도우미일 뿐이죠.”
“……하.”
칼름이 외모와 어울리지 않은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 는 스미스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씨익 끌어 올렸다.
“그런가. 너는 지켜볼 수밖에 없는 존재였는가.”
칼름은 자신을 노려보는 스미스의 시선을 받아넘기며 한동안 웃었다.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경고. 그래. 경고한 거라고했었지.그렇다면 나도 말하겠다. 나는그 아이 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정성스럽게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지. 그러니 그쪽은 나에 게 더 이상 그 어떤 경고도 할 필요가 없다.”
칼름이 한 걸음 앞으로 내 디 뎠다.
얼굴에 가득했던 웃음기 가 사라졌다.
그녀의 얼굴엔 어느새 알수 없는 아련함이 깃들어 있었다.
작은손이 스미스의 몸을 향해 뻗어 나왔다.그러나닿기 직전, 손이 멈췄 다. 그녀가 스스로 멈춘 것이다.
“누구보다 이 만남을 기다린 내가위해를 가할 리가 없잖은가…….”
칼름이 손을 말아쥐며 다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얼굴에 깃들었던 아련함이 사라졌다.
감정 이 라고는 담겨 있지 않은 초점 없는 눈동자가 스미스를 똑바로 응시 하며 말한다.
“사도들에게 심어 둔 힘은 따로회수하지 않을 테니 그쪽이 알아서 잘 사용하도록해라. 내 나름의 성의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고.”
“꿍꿍이가 있는 배려를 성의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무얼. 어떤 미쳐버린 신처럼 자신의 반려를 찾겠다고 세뇌를 한다거나하 려는 건 아니다. 그저 그 아이가 하루라도 빠르게 성장을 하여야 내가조금이 라도 빨리 그 아이를 만나러 갈 수 있을 테니 . 딱 그 정도의 이유다.”
스미스의 눈매 가 가늘어 졌다.
“그리 노려보지 마라. 지켜만 봐야 하는 너와 다르게 나는 육체가 존재 하고눈앞에 있는 아이를 직접 만질 수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이니까.”
“신이 아님에 감사하도록 하세요.”
“아무렴,그게 아니었다면 나 역시 누이트와같이 그쪽에게 노려지는신세 가되었을 테니까.”
칼름이 어깨를 으쓱이며 동의했다.
흐릿하던 칼름의 눈동자에 조금씩 초점이 돌아오려는 기미가보이기 시 작했다.
“쯧. 무식한년들 같으니라고. 그쪽과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이쪽 에서 시간이 부족하군.”
“얼른 꺼지도록 하세요.”
“나는꽤 유쾌한데 안타깝군.”
또렷하게 뜨여있던 칼름의 눈꺼풀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간다.
“이대로헤어진다면 그쪽이 나에 대한 걸 어떤 식으로 날조하여 그 아이에 게 알려줄지 모르니, 작은 선물을 하나 하지.”
“저는 그쪽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마음이 아주 넓은 도우미입니다. 또한, 공과 사도 구분하죠. 그러 나 선물은 사양하지 않겠습니 다.”
반쯤 눈을 감은 칼름이 입꼬리를 살짝 삐뚜름하게 끌어 올리며 말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
가늘게 뜨고 있던 스미스의 눈이 크게 치켜 떠졌다.
“당신은……?”
“조금 더 좋은 선물을 주고 싶지만, 계 약에 묶여 있는 몸이라 이게 한계군. 그럼, 이만 작별이다.”
칼름의 눈꺼풀이 완전히 닫혔다.
곧게 서 있던 그녀의 다리가휘청이더니 자연스럽게 스미스를 향해 기울 어졌다.
스미스는 옆으로 한 걸음 물러 났다.
빠악一!!
둔탁한 소리 와 함께 칼름이 바닥에 얼굴을 그대로 처 박았다.
스미스의 눈에 일렁이던 푸른 안광이 점차 그 크기를 줄여나간다.
그는 바닥에 엎어진 칼름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최후에 웃는 건 결국 제가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