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313화 (313/771)

횐 313화〉Ep.312 골디아스 왕국

살포시 웃는 필로리아 백작.

“……마차를오래 타서 심신이 지친 모양이야.”

어느새 본인의 천막으로 돌아온 마르비우스는 반쯤 빈 와인병을 흔들며 헛웃음을 지었다.본래라면 세 병은 거뜬히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몸이었으 나 고작해 야 반병을 마시 고 헛것을 보다니.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음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장면에 결국 그가 선 택한 것은 취 기에 헛것을 봤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 였다.

“그만, 그만자야겠어…….”

일찍 자고 오늘 뛰쳐나간 백작의 장녀를 다시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가 침상에 누울 때였다.

“황자.”

십 마성의 열 번째 별이자 마르비우스에게 경고 했던 엘프 기사. 그녀가 천 막 안으로 들어와 침상에 누운 황자에게 말했다.

“전체 회의를 연다고 합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

“……이 시간에 말입니까.”

“예. 이 시간에 말입니다.황자께선 참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회의의 내 용은 제가 정리해서 보고하도록 할 테니.”

“……아니. 아닙니다.”

본래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유세핀에게 반발심이 생긴 그는 참석하 지 않아도 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침대에서 일어나 외투를 단단히 동여매고.

“갑시다.”

“따라오시죠.”

유세핀은 뒤따라오는 황자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 어 나갔다. 그에 황자는 속으로 분을 삭히며 거의 뛰듯 그녀를 뒤따를 수밖 에 없었다.왜냐면 집결지는 여전히 빛 한줌들어오지 않는 어둠이었으니까. 여기서 그녀를 놓쳤다가는 미아가 될 거라는 걸 마르비우스는 아주 잘 인 지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걸은 후에야 마르비우스는 자신이 머무는 천막보다도 더 커다 란 천막 앞에 선 유세핀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언제생긴 거지?’

분명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머무는 천막이 가장 크다는 걸 확인한 그였다.그런데 입구만 하더라도 자신의 천막의 몇 배나되는 게 갑자기 덩그 러니 나타나다니.

“황자. 미리 경고하건대 발언권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 도록 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치욕스럽고 화가 났으나 마르비우스는 어리석지 않았다. 이미 아르델을 통해서 황자라는 신분이 허울뿐이 라는 걸 확인한 상태에서 객기를 부릴 정 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들어가겠습니다.”

“•• ”

유세핀이 입구를 걷어 올렸고 마르비우스는 그녀의 뒤를 따라 천막 안으 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꽈아아악—!!

어깨를 짓누르는 엄청난 중압감이 마르비우스를 덮쳤다.

고작해야 얇은 천 하나. 그것을 넘었을 뿐인데 분위 기가, 공기가 완전히 달 라진 것이다.

의 지와 상관없이 가빠지는 호흡에 마르비우스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 기 시작했다.

“허어어억!!”

“떨어지지 마십시오.”

멀 어졌던 유세 핀이 마르비 우스에 게 다가왔고 그제 야 마르비 우스는 제 대 로숨을 쉬는 게 가능해졌다.

그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유세핀의 경고 아닌 경고 에 조용히 고개를끄덕였다.

멍하니 유세 핀의 등만 바라보며 걷던 마르비 우스는 그녀 가 갑작스럽 게 멈춰서며 그녀의 등에 코를 박고 말았다.

“여기가 제 자리입니 다. 황자께선 서 계셔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유세핀이 자리에 앉았다.조용히 그녀의 뒤에 선 황자는그제야주변을 둘 러볼 여유가조금 생겨났다.

그저 넓기만한천막.

그 넓은 곳에 놓인 원탁의 테 이블. 그 테 이블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 빙그르르 앉아 있었다.

마르비우스는 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유세핀을 보고 자연스 럽게 그녀 가 이곳에서 가장 발언권 이 약하다는 걸 파악해 냈다.

‘바로 옆은……아드리안인가.’

함께 온또 다른 십 마성. 아홉 번째 별이자곰 수인인 기사.

마르비우스는 조심스럽게 눈알만 굴려 자리에 앉인 이들의 면면을 확인 하기 시작했다.

‘저쪽은 전부 성기사들인가.’

서로가 모시는 신의 상징을 세긴 갑주를 걸친 이들. 그 맞은 편에는 순백의 법복을 걸친 사제와 신관들이 앉아 있었다.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군…….’

!.

.........

한 명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 나라를 집어삼킨 사교도를 몰아내는 일이니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책임을 질 만한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몇 명은 을 거라고 생 각했으니까.

‘이름난신관은커녕 심문관도보이지 않는군.’

성직자들쪽을 둘러본 그는 그 옆으로 시선을 움직 였다.

‘그 모험가들이군.’

엘프인 유세핀이 관심을 보였던 모험가들.

‘저자가 모험가대표인가.’

붉은 머리와 주황머리의 모험가를 뒤에 세우고홀로의자에 앉은, 태양을 머금은 듯한 머리와 눈동자를 가진 여성.

모험 가 주제 에 우리 보다 자리 가 높다니.’

마르비 우스는 성 직 자들보다 앞쪽에 있는 모험 가 무리 를 보며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 옆은…… 쯧.’

그는 새하얀 은발의 머리칼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가 문득 스쳐 지나간 장면.

‘……역시. 내가헛걸 본게 맞나보군.’

저토록 무표정하면서도 서늘한 눈을 가진 여인이 그토록 부드럽게 웃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그 아양을 떠는 듯 달라붙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때의 충격이 컸나보군.’

마르비우스는 이 회의가 끝나면 얼른 잠자리에 들기로 하며 옆으로 눈을 옮겼다.

‘공석인가.’

비어 있는 마지막 한자리.

보아하니 이 자리 에 서 가장 발언권 이 높은 자리로 보였다. 그 말은 다섯 번 째 별인 필로리아백작 이상의 강자.

‘쯧

인맥을 넓히러 왔으나 필로리아 백작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 었다. 그렇다고 그녀 외의 십 마성이 있는 것도 아니 었고.

‘나중에 저 모험가라도 불러봐야겠군.’

길드의 지부장급 인사들은 어지간한 황실의 기 사들보다도 강하다는 건 마르비우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었다.

문제 는 한 명 한 명 이 원 래 는 범죄 자였다는 부분이 다.

아무리 인맥이 중요하다지만 과거에 죄를 저질렀던 자들과 가까이하는 건 그로서도 조금 꺼 려 지 는 일 이 었다.

잠깐비어 있던 자리에 머물던 마르비우스의 시선이 탁자의 끝으로향했 다. 그리고.

‘저놈은……?’

가장 상석이자 지휘관의 자리. 그곳에 조금 전에 보았던 웬 덩치 큰 사내 놈이 앉아 있었다.

‘아니… 혼자는 아닌데…….’

순백의 로브를 걸친 성직자한명과칙칙한보랏빛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사내의 옆에 서 있었다.

‘아니아니…… 저놈이 왜 저기에? 어째서?’

황자인 자신도 앉지 못하고 서 있는데 저놈이 도대체 누구기에 가장 상석 에 앉아 있단 말인가.

펄럭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바람 한숨이 마르비우스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휴…….”

가볍지만귀에 선명히 박히는 여성의 목소리.

마르비우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목소리를 쫓아 돌아갔다.

거기에는 마법사들이 주로 걸치는 기다란 로브를 두른 금발의 여인이 품 안에 돌돌 말린 양피지를 한가득 안은 채 안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이거나눠드리면 되는거죠?”

“그렇다.”

새 하얀 로브를 두른 여 자와 대 화를 주고받더 니.

‘허어……?’

금발의 여인이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자 품에 안겨 있던 양피지들이 허공 에 떠올랐다. 그리고 원탁에 앉은 이들을 향해 둥둥 날아가 테이블에 정확히 안착했다.

‘이게 무슨…….’

마르비우스는 마법에 조예가 깊지 않다. 그러나 방금 금발의 마법사가 선 보인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알아보았다.

가장 우수한 궁정 마법사조차도 단순히 물건 하나를 띄워 움직 이는 게 고 작인 만큼 염동술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마력의 소모가 심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까다로운걸 저 금발 마법사는 아무렇지 않게 수십 개의 양피지 를 동시에, 그것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정확히 안착시켰다.

‘저런 마법사라면 한 번쯤 이름은 들어 봤을 터…….’

마르비우스는 저 마법사도 나중에 꼭 만나봐야겠다고 생 각했다.

“다들 양피지를 펼쳐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듯 선명한음성.

마르비우스는 침을 삼키며 힐끗 의자 너머로 펼쳐진 양피지를 엿보았다.

그것은골디아스왕국의 지도였다.색이 다른 점들이 찍혀 있는 지도.

“흰색 점이 내일 처리할 도시들이다.제단은 각도시의 폐쇄된 신전 아래 에 있다. 이단… 사교도들은최대한생포한다. 가능하면 살생을 하지 않도록 . 너희의 실력이라면 조금만 신경 쓰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

그때 한 성 기 사가 손을 들었다.

“발언하도록.”

“어째서 생포입니까. 이단들은모두죽어 마땅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순백의 로브를 쓴 지 휘 관의 고개 가 아주 미 묘하게 아래 를 향해 움직 였다.

“크흠.그럴만한사정이 있다.”

“알려져서는 안되는 겁一”

화아아악—!!

성 기사의 주변으로 커다란 불길이 피 어올랐다. 그 불길은 당장이 라도 성 기사를 삼킬 것처럼 일렁이는데.

“야. 까라면 까면 되 지 뭔 년의 혀 가 그리 기냐. 짧게 만들어주랴?”

“……죄송합니다.”

성 기 사는 고개 를 숙였다.

그녀의 주변에 넘실거리던 불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

마르비우스는 방금 벌어진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성기사가…… 모험가따위 에게… 고개를…… ?,

그런 의문을 되풀이하는 동안 회의는 계속 진행됐다.

“중앙은 우리 신전 연합이 맞는다. 북동은 아르델과유세핀이. 북서는 아 멜라가. 각각 祄개의 도시 이며 시작은 내일 아침 해가 뜸과 동시 에 출발한다.

“ 잠깐.

예의 그모험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뭐냐.

“왜 내일 아침인데? 도시 祄개 그거 얼마나걸린다고.”

“페트미 라하나만 개 입된 사건이 었다면 조금 더 시간을 두었어도 괜찮았 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누이트교가 페트미라의 틈에 스며든 것을 확인 했지. 만에 하나라도…….”

순백의 지휘관이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상석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며 말 했다.

“누이트교에 존재가 알려지는 것만큼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 그 녀석들은 정말로 위험한 놈들이니까.”

“……시발.”

—히, 히익.

칙 칙 한 보라색 머 리 칼을 가진 소녀 가 갑자기 기 겁하며 의 자 뒤 로 숨었다.

“이어서 하겠다. 가능하면 내가말을 다끝내고 질문하도록.”

하루에 한가지 색의 점을지워나간다.동시에 집결지의 위치도수복한도 시로 옮길 것이고.

그렇게 차근차근 수도로 전진.

왕실 지하에 숨어 있는 페트미라의 교주를 붙잡는다.

서른 개 가 넘는 도시를 수복하고 수도에 도착하기까지 고작 일주일.

정말 최소한의 휴식만 거치고 쉬지 않고 움직 이라고 지휘관은 말하고 또 말했다.

“질문할 사람은 하도록.”

그때, 아르델이 손을들었다.

그녀는 지휘관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입을 열었다.

“집결지의 호위는누가맞는 거지.”

“아드리안.”

지휘관의 시선을 따라 모두가 유세 핀의 옆자리 에 앉은 곰수인을 바라봤 다.

“아홉번째 별이다. 네 녀석의 성에 차지 않을 진 몰라도 단순히 거점 호위 로는 차고 넘치는 전력이다.”

“… …할당량을 마치고 집결지로 합류하는 건 괜찮겠지.”

“두 시간. 그이상은 불허한다.”

화르르륵-

카가가각一!!

순식간에 피어오른 불길과 얼음꽃.

그러자 지휘관의 몸에서도 신성한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멜라. 아르델. 너희 가 사심을 채우고자 지원한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아 까도 말했을 테지만 상황이 변했다.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누이트교의 유 무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리고… 내 가 겪 어본바. 두 시간이 면 솔직히 충분하 지 않, 나……?”

“…….”

“…… ”

“…… ”

“…… ”

‘뭐,뭐냐……?緒

마르비우스는 전신에 돋아난 소름에 눈을 껌뻑 였다.

알수 없는 침묵이 천막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일부의 시선이 지휘관을 죽 일 듯이 노려봤다.

“아, 아무튼. 거부하겠다면 당장 짐을 싸서 돌아가도록.”

신성한 빛이 다시 지휘관의 몸으로 스며들어 사라졌고 얼음꽃과 불길도 점차 크기 를 줄이 더 니 완전히 모습을 감춰 버 렸다.

“……더 질문할 인원은 없어 보이니 회의는 여기서 끝내도록하겠다.”

회의의 끝.

그러나 누구 하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그런데 라피테라의 등불이시여.”

“뭐지.”

사제 중 한 사람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 상석에 앉으신 분께선 누구신지 여쭈어도 괜찮을지요.”

모험가와 마법사에게 다가갈 기회를 엿보던 마르비우스의 시선이 그쪽으 로 돌아갔다.

“아직은 알려줄 수 없다. 그러나 얼굴은 잘 기억해 두도록. 그리고 실례되 는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

모든 성직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저놈이 무엇이길래……?’

마르비우스의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만해산하도록.”

순백의 지휘관이 재차 회의의 끝을 알렸고 그제야 성직자들이 하나둘 자 리에서 일어나 천막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 …… 움직여도 괜찮은 겁니까?”

“예.회의가끝났으니 말입니다.”

유세핀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옆에 앉아 있던 아드리안 역시 몸을 일으켰 다.

“가시지요.”

“아니. 잠깐만… 저기 모험가들과 이야기를 조금一”

마르비우스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아멜 라라는 이 름의 모험 가가 자리 를 박차고 일 어 나더 니 무서운 속도로 상석을 향해 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덩치큰 사내의 멱살을 붙잡더니.

“이 씹새끼. 감히 대답을 망설여? 너이 씨발. 당장 따라와.”

“켁,케엑!! 그, 그게 아니 … 꺼억?!”

그대로 사내를 낚아채 천막을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정말순식간에 벌어진 일. 이어서.

“저 미친 언니가?!”

“스미스님의 독점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막는다.”

이어서 주변에 모여 있던 여자들이 우르르천막을뛰어나갔다.

‘……엩,

마르비우스는 순식 간에 비 어버린 천막을 보며 멍하니 눈을 껌뻑 였다.

이제 자리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자신을 위협했던 아르델 필로리아 백작 과두 명의 십 마성.그리고순백의 지휘관뿐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마르비우스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즈음.

“네 메아.”

“뭐뭐냐.

“두 시간이 얼마나 턱없이 부족한지 직접 보여줄 테니 따라와라.”

“아니, 나, 나는 괜……!!”

백작이 지휘관을 잡아끌고 천막을 나가버렸다.

이제 천막에 남은 인원은 유세핀과 아드리 안. 그리고 마르비우스 단 셋뿐 이었다.

그에 곰 수인인 아드리안이 먼저 천막을 나갔고 유세핀이 뒤를 따르며 짧 게 말했다.

“가시죠.”

“……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