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319 화〉Ep.318 골디아스 왕국
다행히 이어진 식사의 자리는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여-기.”
“감사합니다.”
옆에 앉아 뼈에 붙은 살을 발라 내 접시로 옮겨 담는 아드리안.
나는 그걸 사양하지 않고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누가 조리를 한 것인지 고 기가죄다 혀에 닿으면 녹아사라진다.
계속해서 접시에 옮겨지는 잘발라진 살코기들.
그것들을 야금야금 먹으며 생각했다.
‘호감 표시 … 가 맞겠지 ?’
나 때문에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서 최대한 빠르게 배만 채우려고 했다. 그런데 일어났던 그녀가 옆에 앉더니 지금 보는 것처럼 접시에 담긴 고기를 가져가 손수 뼈에서 살을 발라다가 나에게 옮겨주는 게 아닌가.
느릿느릿한 말투와 다르게 빠르고 정교한 동작으로 살을 발라 옮겨준다. 그것도별다른말없이 ‘여-기’라는 단어만반복하면서.
일단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으로 감정을 읽어내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처 음 마주 보고 앉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눈을 깜빡이는 거 이외에 얼굴 근육을 제대로움직이는걸 본적이 없으니 나로서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목소리에 특별한 힘이 담긴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의 패턴으로만 본다면 일단나한테 관심이 있는건분명한데.’
사람 자체가 특별하다 보니 쉽 게 단정 짓기가 힘들었다.
맹한 얼굴과 다르게 누님과 아르델처럼 십 마성의 일인인 여자.
혹시라도 직 설적으로 물어봤다가 주먹이 라도 잘못 한 대 맞았다가는 그 날로 이승과 작별이다.
상대방은 그럴 의도가 없었을지 몰라도 무심코 날린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말이 있는 것처럼, 당황해서 달린 주먹에 내 대가리가깨지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책임져야할 아내들이 여럿인데 …… 조심해야지.’
그런 놈이 또 여자를 노린다는 게 조금 쓰레 기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아내들을 위한 일이니까.
지금은 힘들겠지 만, 나중에는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를 알게 될 날이 오겠지.
“더-먹어...?”
“아뇨. 아닙니다. 이제 괜찮아요. 충분히 먹은 거 같고.”
으”
O •
깔끔하게 비워진 접시와 수북이 쌓인 뼈다귀를 보며 그녀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면 일어날까요?”
“그-래.”
치우는 건 간단했다. 빈 그릇을 놓는 공간에 접시를 올려두고 뼈다귀는 따 로 모아두는 통에 다가 넣는 것으로 정 리 끝.
딱 기 분 좋은 수준으로 부른 배 를 두드리 며 나는 아드리 안과 함께 식 당으 로 운영 중인 천막에서 나왔다. 그리고 시야가 탁 트인 것을 보고는 작게
감탄했다.
내가고기를 처먹는동안십 수개는되던 천막들이 전부 정리되어 있었다. 덕분에 이제는 길을 잃을 걱정은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아드리안님.”
“•••꾈.”
한 발자국 정도 거리를 두고 서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올려다 보더니.
“아드리안-”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자신의 이름을 나에게 강조했다.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 가 멍하니 마주 보고 있으니 그녀는 다시 한번 입 술을 달싹였다.
“아드리 안-”
“•••아드리안?”
-끄덕.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존칭 이 아니라 평범하게 이름으로 불러 달라는 요청이 었던 모 양이다. 본인이 불러달라는데 사양할필요는 없겠지.
“아드리안.”
“•••꾈?”
“운동은 어디서 할겁니까?”
“이-쪽.”
.
그녀는 공터에서 벗어나 나무가 빼곡히 자라난 숲속으로 나를 데리고 들 어갔다.
“여-기.”
“오
아드리 안을 따라 도착한 곳에는 또 다른 공터 가 있었다. 크기는 집 결지와 비교하면 쥐꼬리만큼 좁았으나 둘이서 자유롭게 행동하기에는 부족함이 없 는 넓이 였다.
지이이이—
잠깐 공터를 둘러보고 있는데 아래로부터 강렬한 시선이 느껴 졌다. 고개 를 숙이니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아드리 안이 둥글둥글한 귀를 파닥이며 나를 올려 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운-동……뭐해-?”
그녀는 귀 만큼이 나 동그란 눈동자를 깜빡이 며 나에 게 질문해왔다.
“그러네요. 일단조금 달리면서 땀부터 뺄 생각입니다.”
“……나도. 달-려.”
아드리안은 걸치고 있던 털 달린 외투를 벗더니 근처의 밑둥만 덩그러니 남은 죽은 나무 위에 던졌다.
“…… ”
“…왜-?”
“아뇨.그, 춥지 않으신가해서요.”
외투를 벗은그녀의 몸은 거의 알몸에 가까웠다.
거대한 가슴을 압박하는 것만으로 벅차 보이는 짧은 탱크톱 하나.
그게 그녀가 걸친 전부였다. 속옷도 따로 착용하지 않아서 탱크톱 위로 유 두가 고스란히 자신의 위치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안-추워.”
“그러시군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자리 잡은 근육들.
특히나 선명하게 드러난 복근이 내 시선을 끌었다.
아멜 라 누님 과 케 르낙스도 11자 복근을 가지 고 있었지 만, 아드리 안 그녀 처럼 선명하지는 않았다.
“•••이상-해?”
“예? 뭐가요.”
“내-몸……?”
벗을 때는 언제고 그녀는 갑자기 훤히 드러난 복부를 두 손으로 슬쩍 가리 며 부끄러워했다.
아무래도 내 가 빤히 보고 있었던 걸 다른 의 미로 오해한 모양이다.
확실히 이곳 남자들은 아드리 안처럼 근육을 가진 여성을 본다면 대번에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을 것이 다.
나는 그녀의 오해를 풀어줄 겸 냐호가 준비해준 두꺼운 코트와 상의를 시 원하게 탈의했다.
서늘한 공기가 노출된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허나 괜찮다. 사제님의 봉 사를 받고 나오면서 아랫도리에 징표를 착용하고 나왔으니까.
“•••꾈.”
“아드리안?”
같이 뛰 려고 상의를 탈의했는데 아드리안은 나로부터 완전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걸로 나는 제대로 그녀가 나를 이성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여기서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그냥뛰는 거지 뭐.’
혹시라도 가까이 갔다가 당황해서 밀쳐지거나 한다면 그날로 뒤통수가 깨져 죽는 거다. 실적이 아무리 중요해도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 조심 하는건 당연한일.
“저 먼저 뜁니다?”
나는 뒤돌아선 아드리안을 내버려 두고 천천히 공터를 뛰었다. 그렇게 한 바퀴,두 바퀴, 세 바퀴쯤 돌았을 때였다.
“잘……뛰네.”
“하하. 남자치고는 말이죠?”
응.
자연스럽게 옆에 붙어 함께 달리기 시작한 아드리안은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여자들 기준에서 보면 내가 달리는 건 운동이 아니라산책 수준이라 는 걸 나도 알고 있었기에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후우……!!”
정확히 열 바퀴를 돌고서 나는 가빠오는 숨을 내쉬며 달리는 것을 멈췄다.
“물— 가져올까…?”
“아뇨.괜찮습니다.그보다저는조금쉬고 있을 테니까저 신경 쓰지 마시 고계속하세요.”
“응
나는 밑둥에 앉아 그녀를 지 켜봤다.
공터 한구석에 쓰러져 있는 거대한 나무 기둥.
아드리 안은 그곳으로 걸어가더니 그 거대한 것을 번쩍 들어 올렸다.
‘조심하길 잘했구만.’
절대로 인간이 들어 올리지 못할 것처럼 생긴 나무 기등을 아드리안은 어 깨에 짊어지고현대의 스쿼트를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빤히 보는 게 신경 쓰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녀는 스쿼트를 하 는 동안 단 한 번도 내 쪽으로 시 선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드리안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그녀는 스쿼트 를 그만두었다.
쿠웅一
뭉뚝한소리와함께 짧게 울리는지면.
나무 기등을 원래 놓여있던 자리에 내려두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나에게 로 시선을 주었다. 그리 고는 흘러 내 리는 땀방울을 닦으며 고개를 갸웃거 리 며 물어온다.
“아뇨. 계속해야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면.”
그리고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물었다.
“방금 하셨던 운동. 저에게도 조금 알려주실래요?”
자연스러운 접촉.
나와그녀의 사이를조금더 가깝게 만들어 줄과정의 이름이었다.
**
마르비우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최고급 원단과 날개 솜이 들어간 침대 였으나,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에 그 는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딸랑딸랑.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함께 데려온 시종을 부르 는일이었다.
밖에 설치해둔 종과 이어진 줄을 잡아당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한 외 모의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시원한물을 가져와라…… 그리고유세… 아니.유세핀 경은 떠났나?”
“예. 날이 밝음과동시에 떠나셨습니다.”
“흐음… 알겠다. 물과 함께 간단히 먹을 것 좀 가져와라.”
시 종이 뒷 걸음질로 천막을 나갔고 얼마 지 나지 않아 그녀는 큼지 막한 쟁 반을 가지고 천막으로 돌아왔다.
푸른 계열의 과일과 약간의 고기가 첨가된 샐러드.
마르비우스는 테이블에 놓인 것들을 보며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았 다.그리고는물병을 시원하게 들이킨 후, 시종에게 말했다.
“아드리안경을 모셔와라. 만약 거절하신다면 경이 있는 장소로 나를 데려 가도록.”
“그리하겠습니다.”
시종이 물러가고 마르비우스는 샐러드를 깨작깨작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
‘그 덩치 …… 도대체 정체 가 무엇일까.’
어떤 녀석이기에 이곳의 지휘관이 감싸고돌며, 그 얼음장처럼 차가운 여 자가 미소를 짓는단 말인 가.
‘접점이 필요하다.’
상대 가 같은 남자라면 충분히 황자라는 신분을 사용해 압박하는 것도 가 능할 것 이 다. 그러 나 마르비 우스는 고개 를 저 었다.
십 마성 인 필로리 아 백 작과 친분이 있으며 지휘관이 성직 자들에 게 주의 를 주었다.
‘여 자와 가까운 사내 놈은 신용할 수 없지.’
사교회 에 몇 번만 참석해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자의 지위를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고 없는 말도 지어내 상대방을 모함 하며 깎아내린다. 그게 권력과 가까운 사내놈들이 밥 먹듯 저지르는 짓들이 다.
마르비우스는 그런 자들을 여자들보다 더욱 혐오했다.
능력보다 과한 것을 원하는 무능한 인간.
황자. 마르비우스가 가장 혐오하는 족속이었다.
그렇기에 마르비우스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수도였다면 황자라는 신분으로 찍어눌렀을 테지만, 이곳에선 오 히려 자신이 그 덩치의 눈치를보아야만했기 때문이다.
황자라는 신분을 알고도 위협을 가하는 미치광이와 성직 자들을 이끄는 지휘관. 거기다 자신과 함께 온 두 십 마성보다높은 발언권을 가진 모험가까 지.
그 덩치가 입을 잘 못 놀리면 최 악의 최 악에는 싸늘한 시신으로 제국에 돌 아갈 수도 있는 노릇이 니 조심 할 수밖에.
‘가능하면 아드리 안경을 대동한 채 녀석과 만나고 싶지만…….’
십 마성 중 한 사람이 공증인이라면 최소한 없는 말을 지어내진 못할 거라 고 마르비 우스는 생 각했다.
문제는 공증인이 되 어줄 아드리 안은 자신을 무시하는 유세핀보다 더 다 루기 힘든사람이라는 게 문제였다.
“… …도움이 될 만한 인간들이 하나도 없군.”
마르비우스는 샐러드를 절반도 먹지 않고 포크를 내렸다.
입맛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유세핀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마르비우스는 자신이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 이런 고민을 한 번도 해본적 없던 마르비우스는 까맣게 타들어 가 는속을 달래기 위해 계속해서 물병에 담긴 물을들이켰다.
그리고 물병이 완전히 비었을 때.
“…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시 종이 떠 나고 한 시 간이 나 흘렀다.
물도 다 마셔버렸고, 속은 여전히 답답했기에 마르비우스는 결국 외투를 걸치고 천막을 나왔다.
“……길을 잃을 걱정은 안해도 되겠군.”
빽빽하던 천막이 사라져 시야가 탁트였다. 심지어 자신이 머무는 천막은 이곳에서 가장 컷기에 다른 곳과 착각할 염려도 없다.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납작하게 접은 천막을 들고 가던 성기사가 마르비우스의 부름에 잠깐 멈 춰섰다.
“혹시 제 일행이나 아드리안경을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황자님의 시종이라면 저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예.그럼.”
성 기사는 다시 가던 길을 갔고, 마르비우스는 성 기사가 가리 킨 방향을 향 해 걷기 시작했다.
‘뭔 놈의 나무들이 이토록커다랗단말이냐.’
하늘을 다 가릴 정도로 큼지막하게 자라난 나무들에 마르비우스는 살짝 질렸다. 그에 길을 잃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조심히 앞으로 나 아갔다.
“젠장… 도대체 얼마나 깊숙이 들어간 거야.”
눈도 다 녹지 않아 발이 푹푹 빠지는 바람에 더욱 빠르게 체력이 떨어져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황자로서의 체통을 지켜야만 했기에 마르비우스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젠장……!!”
그리고 몇 걸음 걷지 않아 화를 이기지 못하고 제법 큰 목소리로 답답한 마 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의 목소리 가 짧게 숲속에 메 아리 치 듯 퍼 져 나갔고.
저벅저벅一
“……?”
마르비 우스는 누군가의 발소리 에 얼른 그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 고 얼굴을 구겼다.
그토록 찾고 있던 시종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비 우스는 당장이 라도 호통을 칠 생 각으로 시 종을 향해 걸 어 가며 .
“도대체 어디…….”
입을 열던 그는 시종과 가까워지면서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그녀의 얼 굴을 확인하고는 입을 잠깐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황자님
황자 앞으로 온 시종은 고개를 숙였다.
그에 마르비우스는 화를 내려던 것도 있고 조금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 아픈 것이냐? 표정이 좋지 못하구나.”
“예? 아, 아닙니다…….”
“아니다. 내 너를 오래도록보았으나그토록 얼굴이 붉어진 걸 본 적이 없 다. 게다가 숨도 거칠고 열도 나는 것 같은데.”
시종은 제 이마에 손을 얹으며 이마를 구기는 황자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크게 당황했다.
“괘,괜찮사옵니다.”
“정말이냐?”
“예 …… 그보다 아드리 안경을 찾았사온데 조금 바쁘시어 나중에 찾아 뵙 겠다고 하였사옵니 다.”
“……정말이냐?”
마르비우스는 설마 그녀가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할 줄을 몰랐기에 조금 놀랐다.
“예.그러니 천막으로 돌아가시지요.”
“그래. 그래야겠다.”
아드리 안이 직접 찾아온다는 사실에 기분이 살짝 좋아진 마르비우스는 시종에게 더 질문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에 시종은 짧게 한숨을 내쉬 었다.
다행히 황자는그녀가 바지를 거꾸로 입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엇 하느냐. 얼른 오지 않고.
“예.가겠사옵니다.”
마르비우스의 부름에 시종은 얼른 그의 뒤를 쫓았다. 그렇기에 마르비우 스는 알지 못했다.
시종의 엉덩이가묘한 모양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