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451화 Ep.450 칼란 대산림
나는 잠깐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짜나무네?’
물론, 가짜 나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 기분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시답잖은 농담은 때려치우도록 하자.
나는 요리 보고 저 리봐도 그냥 존나 큰 나무로밖에 보이 지 않는 숲의 어 머 니를 살펴봤다. 그러나 역시 그냥 나무였다.
사실은 터질듯한 정령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농밀한 엘프가 저 끝이 보이 지 않는 나무의 풍성한 가지 중 한 곳에 숨어 자신을 놀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다시 나무에 손을 가져 대봤다.
【이놈! 왜 계속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
“끅
하지 만 뇌 에 다 확성 기 를 가져 대 고 소리 친 것처 럼 강하게 물결치 는 소리 에 곧장 손을 떼고 말았다.
“어우씨…….”
나는 손을 떼고 나서도 웅웅 울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눈을 찌푸렸다. 농담 이 아니 라 눈알이 빙 그르르 돌 정도로 강한 충격 이 었다.
‘말을 무시한다고?’
흔들리던 시야가 차츰 안정을 되찾고, 두통이 사라지면서 나는 조금 전에 머릿속을 강타했던 그녀의 말을 곱씹어봤다.
‘•••혹시?’
벼락이 친 듯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간 하나의 과정.
“저기, 숲의 어머니? 저희 사이에 약간의 오해가 있는 거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는 지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입니 다. 대신 조금 전처럼 손을 대거나 신체를 접촉하면 목소리가들리더군요.”
손을 슬쩍 나무 앞에 두었다.
“그러니까제발아까처럼 소리치지 말아주십쇼. 머리가울려서 죽을 뻔했 습니다.”
祄초 정도의 텀을 두고 나는 다시 나무에 손을 대었다.
【정말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냐?】
“예.진짜로 안들렸습니다.”
【흐음, 10초 정도 샌 다음에 다시 손을 대보거라.】
“옙.,,
일단 시 키는 대로 손을 뗀 다음, 적당히 10초를 새고 다시 손을 댔다.
【정말이구나. 이지를 망가트릴 생각으로의지를 보냈는데 멀쩡한걸 보니
.】
“•••꾈예.”
팔은 물론이 고 등허 리 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까 내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금 나를 병신으로 만 들어볼 생 각으로 실험을 해봤다는 소리 가 아닌가.
‘시발…….’
아무래도 이 숲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나무는 지금껏 내가 만나왔던 여자 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이거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진짜 큰일 이 날지도 모르겠다.
“그런 방법 말고도 그냥 제게 아무 신의 이름으로 맹세해 보라고 하셨어 도 됐을텐데…….”
【웃기는 놈이로고.】
음성 자체는 조금 전과 다를 바 없는 평탄한 어조였으나, 왠지 모르게 기 분이 나빴다.
【맹세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걷어차듯하는 주제에 잘도 그런 말 을 하는구나.】
“…… ”
시발, 어떻게 알았지?
....
갑자기 입술이 바짝 말랐다.
【긴장할 것 없다. 그런 거 가지고 해코지할 생각은 없으니까. 원래 삶이란 속는 놈들이 병신이 니 라. 그런 의 미 에서 너는 훌륭히 네 가 사용 할 수 있는 수단을 이용해 이득을취한 것이니 오히려 칭찬들어 마땅하다.】
“어, 그, 감사, 합니다…?”
뭐지. 의외로 말이 통하는 나무일지도.
【음. 예의 바른 아이 역시 나는 좋아한다.하지만 명심하거라.조금 전에는 나에 대해 몰라 넘어갔으나, 지금부터 나를속이려 든다면 그에 합당한벌을 내릴것이니.】
“••옙. 명심하겠습니다.”
차라리 대답하지 않으면 모를까, 나는 이 나무에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 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는 어찌 보자고찾아온 것이냐.】
“그게 말입니다…….”
대뜸 섹스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하려니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몇 번을 생 각해봐도 그냥 존나 미친놈 같아 보였기 때문이 다.
“그전에 질문 몇 개 괜찮겠습니까?”
【그러려무나. 너처럼 어린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꽤 오랜만이라 그 런지 기분이 그닥 나쁘지 않아.]
지금은 본인이 말한 대로 기분이 좋아 보였으나, 급발진이 라는 건 이름에 서부터 알수 있듯, 어떠한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런 이유로 나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입을 열어야만 했다.
“맹세에 관한 거 말입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보고 있었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
“보고 계셨다고요?”
【그래. 이 대륙의 모든초목이 내 눈과귀이니라. 그러니 내가보고듣지 못할 것은 매우 한정적이 지.】
“•••그러시군요.”
입술과 혀는 바짝 말랐는데 괜히 목울대가 움직였다.
【나의 아이 중 하나와 각별한 사이 같아보이기에, 나에 대해서도 어느 정 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넘겨짚었구나.】
“•••기에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그 대 답에 나는 고민하고 있던 걸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저를 특별히 눈여겨보셨습니까?”
【나름오랜만에 찾아온 외부인이니 말이다.】
“•••아, 음. 그렇군요.”
순간 습관적으로 되물으려던 것을 목구멍 너머로 다시 꿀떡 삼켰다.
‘오랜만에 찾아온외부인이라서 눈여겨봤단 말은…… 이 숲에 들어와서 야 나를 처음 봤다는 거지?’
나는 내 합리적인 추론에 조금 더 힘을 실어보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
“아까 말씀해주시기는 하셨는데. 숲 바깥도 자유롭게 보고 들으실 수 있 으십니까?”
【그래. 지금도 차곡차곡 정보들이 내게 쌓이고 있느니라.】
“정말대 단하십니다.”
【무얼. 인간으로 비유하면 자연스레 숨 쉬는 걸 칭찬하는 격이니라. 하지 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아.】
진심이 통한것인지, 다행히 아직까진 그녀의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 었다.
‘휴,혹시나 예전부터 나를보고 있었으면 어쩌나했는데 그건 아니었구나. ’
본인이 말했듯이, 이 숲에 외부인이 들어온 것도 오랜만이고 거기에 기에 나와함께 있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전부인 모양이다.하지만방심할 수없다.
‘정보가 쌓이고 있다는 말을 한 걸 보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원하는 부 분을 찾아낼 수 있는 모양인 거 같고.’
어쩌면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금에도 나와 관련된 것을 찾아보고 있 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에 걸릴 만한 부분은 떠오르지 않았다.
시스랑 대화할 때는 대부분 집의 지하실이 었고, 간혹 어딘가의 침대나 욕 조의 안이 었으니까.
【질문은 그게 끝이냐?】
“예 엩 아,으음…… 그, 평소에는 무얼하고 지내시는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끝났는데 그리 물어와 나도 모르게 생각나는 걸 대 충 지껄였다. 무슨 소개팅을 나온 것도 아니고.
【오늘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잠으로 시간을 보내지.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의 시대는 몹시 지루하니 말이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내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엩,,
대부분 잠으로 보낸다.
그러면 내가들어온건 어떻게 안거지?
이곳을 지날 때와 다르게 숲 안으로 들어올 때는 특별히 뭔가 느낀 기억은 없는데 말이다.
“제가숲에 들어오실 때는 깨어 계셨던 겁니까?”
【아니 . 리히 나 그 아이 가 나를 깨웠지 . 바다의 망나니 가 오고 있으니 큰 문 제 가 생 기 면 막아달라고 말이 야.】
“바다의 망나니……?”
정말그러면 안 되는데 순간적으로 시란의 얼굴이 머리를스치고지나갔 다.
【참고로 네 가 데리고 들어온 그 붉은 녀석을 말하는 것이다.]
“그,그렇군요…….”
【말이 나온 김에 하나물어보자꾸나. 그 망나니가 네 옆에서는 잘 길들여 진 짐승처럼 굴더구나. 게다가 제 얼굴을 쏙 빼닮은 작은 아이까지 데리고 있 었고. 혹시 너와 그 녀석 사이에서 나온 자식인 것이냐?】
“아뇨. 아닙니다. 시론… 그러니까, 그 작은 아이는 제연인이고 부친은 따 로 있습니다.”
【흐으음…… 하긴.】
처 음으로 그녀 가 아쉽 다는 목소리 로 이 야기 했다.
【인간과교배했는데 순혈이 나올 리가 없지.】
그리고 굉 장히 섬뜩한 소리를 중얼거리듯 내 게 흘렸다.
【자식들 숫자좀 늘려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아쉽군….】
자식도 아니고 자식들이 라니 .
나를 쥐어짜서 엘프들에게 내 아이를 낳게 만들 생각이었던 건가?
“그,숲의 어머니?”
【실이라고 부르거라.】
“•••실님.”
【말하거라.】
“엘프들을 자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 혹시 엘프는 실님에게서 비롯된 종족인 겁니까?”
【일부아이들은 그렇지.】
“…….”
나는 진심으로 이 자리에서 어떻게 벗어나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시란?!’
나무가 어떻게 엘프를 만들어내는지는 둘째치고, 방금 대답으로 나는 직 감했다. 조금 전에 말한 자식의 숫자를 늘리겠다던 그 발언. 그게 다른 엘프 들에게 내 아이를 가지게 만드려는 게 아니라,본인이 직접 모체가되어 새로 운 하이엘프를 만들어낼 의도였다는 걸.
‘최대한 자연스럽게 도망가야 한다.’
지 금 이 자리 만 좋게 끝맺으면, 오늘 당장 이 곳을 나가더 라도 후에 다시 들어올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지금은 잠깐 후퇴 해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으음, 실님……?”
대충 아까 받은 충격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둘러대며 물러나도록 하자.
“실님?
그런데 돌연 그녀가 내 부름에 답하지 않게 되 었다.
‘•••기회인가?’
하지만 나는 선뜻 물러나지 못했다.
혹여나 멋대로 나갔다면서 다시 만나주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 하니 말이다. 아직 시란이 바라는 것을 그녀에게서 얻어내지 못했으니까. 애 초에 뭔지도 모르지만.
‘•••다음에 오면 저주에 대한 거나좀물어봐야지.’
그리고 리히나님에 대한 것들도 조금 물어보고.
은근히 내 질문에 답하는 걸 즐거워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거리를좁히 는 방법으로는 괜찮은 선택인 거 같다.
【아아, 떠올랐느니라.】
한참이 나 대 답이 없던 그녀 가 돌연 혼잣말을 하듯 이 야기 했다.
그런데.
스르르륵
“어……?”
사방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 가 돌연 내 손발을 붙들었다.
“저,실님……?”
【어째서 그 빌어먹을 놈을 잊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군.】
“으음
뭐 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내가 처음 상정했던 그 상황이 벌어진 거 같다.
빌어먹을 급발진 같으니라고.
‘시발. 이거 생물이라서 능력도 안통하는데…….’
나는 부디 적절한 순간에 시스가 강림해주기를 기다리며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아, 그래. 이렇게 보니 더욱확신이 드는구나.그놈도 너처럼 암컷을 홀 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 몸집은 조금 작은 거 같다만…… 닮았어.】
꽈아아악一!!
“끄윽……II”
당장이라도 내 팔목과 발목을 으스러트려버릴 듯이 나뭇가지가 조여왔다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목이 타들어 갔다.
정말오랜만에 느껴보는 위기감에 정신이 아찔해져 갈때, 머릿속으로그 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놈. 이방인이구나.】
그것은 지금껏 들었던 것과는 다른, 몹시 서늘하고도 차가운 분노가 느껴 지는 음성이었다.
【대답해라.】
머리를 굴리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이미 내가 이곳 출 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는 듯 보였으니까.
1 그렇,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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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다면 납득이 가는구나. 그 망나니가 그토록 순한 양이 되어 있 는게. 하하하!!]
“끄응……II” O • •
그녀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강하게 때렸다.
순간 토악질이 올라올 정도로 머리가 흔들렸다.
스으으윽.
“……?”
팔다리 가 자유로워 진 것은 아니 지 만, 아프지 않은 수준까지 조임 이 약해 졌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틈도 없이 새로운 것이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드드드드득--II
I • •
아래에서 굵은 뿌리들이 올라오더니, 서로 얽히고설키며 뭉치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것은 그럴듯한 사람의 형태를 갖추더니 .
스르르륵.
연녹색 머리칼까지 찰랑이는,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엘프로 변모 했다. 만약 뿌리의 형태로 바닥에 박혀 있는 두 다리만 아니었다면 진짜로 살 아있는 엘프라고 생 각할 정도로 리 얼했다.
【네놈에게 원한이 있는것은 아니다.】
분노가 가라앉은 것인지, 조금 차분해진 그녀의 음성이 다시 머릿속에 들 려왔다.
【그러니 얌전히 있기만한다면 아무 일 없이 바깥으로 내보내 주마.】
마치 자비를 베풀었다는 듯.
거 만함이 느껴 지 는 목소리 였다.
【알겠느냐?】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붙들린 나뭇가지에 의해서 만들어진 엘프의 앞으 로 옮겨졌다.
【겁먹지 않아도 된다. 얌전히만 있으면 네게 해가 될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
만들어진 엘프의 손이 내 바지춤으로 향했다.
인형 같은 외모.
자유분방하게 움직 이는 젖가슴.
‘……가능.’
얌전하던 아들놈이 고개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