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506화 Ep.505 르벨룸 요새
스아아아.
엩,,
기분 좋게 시원한 무언가가 이마에 닿아왔다.
처음에는 라-로샤의 꼬리인가싶어 가만히 있었는데.
스으스으 --1--1 •
이마에 닿아 있던 것은 머리로 올라가더니 내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에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나른함을 이 겨내고 무거운 눈꺼 풀을 힘 겹 게 들었다.
음?”
잠에서 깬 누군가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거라 생 각했는데 막 잠에서 깨 흐릿한 초점에 잡히는 실루엣이 조금 이상했다.
‘흰색•••꾈?’
갈색과 검은색으로 통일한 라-로샤 일행에게 서는 볼 수 없는 색 이 다. 그 나마 코카리스족대전사인 리-아렐의 날개가 짙은 빨간색이다.
“•••아르델?
“제가 깨워버린 모양이네요.”
눈앞의 상대가 그간 떨어져 있었던 아르델이 라고 인식한 순간, 흐릿하던 초점이 빠르게 잡혔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칼을 단정하게 묶은 아르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어루만지던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은 무척 서늘해 날이 밝으면서 올라간체온을 떨어트려 주어 몹 시 기분이 좋았다.
“여긴•••꾈.”
“아직 축복의 샘물이랍니다.”
확실히 고개를 돌려보니, 라-로샤 일행들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쉼터 안 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푹신한 침대 에 커 다란 나뭇잎을 겹겹 이 쌓아 만든 벽과 천장.
오로지 나를 위한쉼터였다.
“라-로샤랑 아크-탄은?”
“음
분명 잘 때만하더라도 내 양쪽 옆에 있던 둘이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오랜만에 만난저를두고그둘부터 찾는 건가요…?”
차갑고 도도한 그녀 가 입술을 살짝 삐죽이 며 내 볼을 살짝 꼬집 었다.
“미안해요.”
“으응
금방 내 실수를 깨닫고 아르델의 허리를 끌어당기자, 그녀는 기분 좋은 콧 소리를 내며 내 품에 안겨 왔다.
“혹시 저 때문에 체온 낮추시고 계신 거예요?”
“너무차가울까요?”
“아뇨. 기분 좋아요.”
“다행이네요.”
아르델은 언제 토라졌냐는 듯 화사하게 웃으며 내 목을 끌어 안았다.
“으음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 게 입술을 겹쳤다.
아주 가볍게,오로지 서로의 애정을확인하기 위해서.
아르델의 입술은 여전히 폭신하고 촉촉했다. 그리고 은은한 단맛이 내 입안을 맴돌았다.
“언제 왔어요?”
“그 둘과 뒤 엉키고 있을 즘 왔답니 다.”
“•••새벽에 왔으면 그냥들어오시지 그랬어요.”
내가 머쓱하게 말을 건네자, 아르델이 고개를 저었다.
“약속은 약속. 그리고 저는 고작 한 달 남짓이지만 저 아이들은 일 년을 기 다렸죠. 스미스, 당신을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는데 방해 를 할 수는 없잖아요.”
“고마워요.”
끌어안은 아르델의 허리에 조금 더 힘을 주자, 아르델이 살포시 웃으며 다 시 한번 내게 입술을 겹쳐 왔다.
“이대로 당신 품에 안기는 것도좋겠지만… 당신과밖에 있는 아이들과 나눠 야 할 대화가 있어요.”
“대화… 수도에 다녀온 거랑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렇죠.”
내가손을 풀어주자 아르델이 품에서 벗어나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나도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일단 몸을 일으켰는데.
“어이쿠.”
아주 시원시원한 내 몸 상태를 깨닫고는 얼른 침대 아래에 넣어둔 팬티를 꺼내대충걸쳤다.
‘이틀간쉬지 않고쥐어짜서 그런가… 아침 발기도 없네.’
쥐어짜다.
말그대로의 의미다.
아크-탄의 교성에 스위치가들어가버린 여성들을 안기 시작한순간부터 늪의 시작이었다.
기절했던 대전사들이 한 명씩 깨어나면서 다시 대열에 합류했고, 그녀들 과 몸을 섞는 동안 다시 깨어난 다른 여성들이 엉켜왔다.
그나마 라-로샤가 이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일부 만족감을 느낀 이들을 데 리고 쉼터도 마저 건설하고 내가 먹을 것들을 챙 겨주어서 망정이지.
라-로샤까지 스위치가 켜졌다면 쉼터고 뭐고 작년처럼 밤낮 쉬지 않고 그 냥종마처럼 허리만흔들었을 거다.
“들어오렴.
아르델의 청아한 목소리가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스으윽.
그러자 길게 늘어진 천이 걷히며 라-로샤와 아크-탄의 뒤를 따라 나머지 대 전사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휙휙!!
아크-탄은 나를 보자마자 기쁜 듯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흔들었다.
“괜찮아요.”
“큼큼, 아크-탄?”
응!!”
내가 손짓하자, 아크-탄은 기다렸다는 듯이 곁으로 다가와 내 허벅지에 머리를눕히며 벌러덩 누웠다.
그걸 신호로 아르델의 존재에 긴장한 듯 서 있던 다른 대전사들도 쭈뼛쭈 뼛 내 곁으로 다가왔다.
“주인님.”
“아,고마워.”
침대 아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다른 대전사들과 다르게 라-로샤는 선 반에 올려둔 과일 바구니와 오아시스의 물을 받아둔 컵을 내게 가져왔다.
나는 라-로샤가 먹 여주는 과일을 받아먹은 후, 시원한 오아시스의 샘물 로 목을 축였다.
“이제 말해도 괜찮을까요?”
“아,넵.”
허벅지에 누워 고롱고롱 기분좋게 우는 아크-탄의 턱을 긁어주며 아르델 에게 집중했다.
“스미스.우선은당신이 선택해줘야할 게 있답니다.”
“선택이요?”
아르델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 대전사들을 바라 봤다.
“그대의 선택에 따라서 저 아이들을 제 영지에 한해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조치해줄 수 있어요.”
“•••영지라면, 몰링타도 올수 있는겁니까?”
“그래요. 제 가 다스리 는 도시와 마을이 라면 어디 든.”
내가 라-로샤와 다른 여성들을 인간에 가깝게 보고 있다지 만, 설마 아르 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줄은몰랐다.
설마 저들을 직접 몰살하려고 했던 장본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제가뭘하면 됩니까?”
“첫 번째는 이 아이들을 교육할 인원을 그대가 선별해서 보내야 합니다.”
“교육... 그건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장 흑선 상단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고, 몰링타에는 내가 생각하 는 것보다 훨씬 능력이 출중한 신도들이 기 다리고 있으니 그녀들 중 몇 명을
뽑아 보내도 되는 문제 다.
“두 번째는 그대 가 만들어내 는 성물.”
“•••이런거 말씀이시죠?”
나는 즉석해서 초-진동 검과 만능 기구를 창조해 손에 쥐어 보였다.
“맞아요. 흑선 상단을 통해 판매하려고 했던 성물의 성능을 많이 낮춰주 셨으면 해요.”
“성능을요?”
“네. 지금껏 제가 직접 겪어본그대로시중에 풀린다면, 장담컨대 그대가 만든 성물을 한 번이라도 사용해본 암컷은 더 이상 당신 이외의 수컷은 찾지 않게 될 겁니다. 지금이야남성의 숫자가현저하게 부족하니 당장에 문제점 은 보이지 않겠지만, 시간이 흘러 거의 모든 여성이 그걸 접하게 된다면 안 그 래도 문제가 되는 출산율이 더욱 줄어들게 되겠죠.”
“이해했습니다.”
손에 쥔 두 개를 다시 재료로 환원시켰다.
“적당히 성욕을 달랠 수준으로 성능을 낮추길 원하시는 거죠?”
“맞아요. 그 정도만 되 더라도 암컷은 더 이상 수컷을 찾지 않게 되 겠지만, 먼저 다가오는 수컷을 내칠 정도로 푹 빠지진 않을 테니까요.”
“……남자들에게 위기감을줄 생각이군요?”
아르델이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끄덕였다.
“수컷들이 나태해진 건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암컷들이 달라붙고 떠 받 들기 때문이랍니다.하지만더 이상 암컷들이 찾아주지 않는다면?”
“살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발품을 팔겠네요.”
“그래요.”
나는 아르델이 무슨 이 야기를 하는지 조금도 관심 이 없다는 듯 오로지 내 손길을 즐기며 그릉그릉 거리고 있는 아크-탄의 귀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녀들을 영지에 돌아다닐 수 있도록 조치하는 건 다른 여성들에게도 긴 장감을 주기 위해서 입니까?”
“설마요.”
아르델은 고개를 저으며 대 답했다.
“이미 그대의 여자들인데 다른수컷들에게 눈이 갈리가있을까요.저 아 이들에게 부분적인 자유를주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중요한 이 유는 매년 그대를 기다리 며 끙끙거리는 게 같은 그대의 여자로서 보기 안쓰 러워서랍니다.뭐, 몇몇은그다지 반기지 않겠지만요.”
그녀가 웃으며 내 가슴을 콕 찔렀다.
“그만큼그대가 더 열심히 하면 해결될 문제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걱정하지 마세요.그부분은제 전문이니까.”
“그래요. 그래서 어딜 다녀올 때마다 여자들이 늘어나는 거겠죠.”
콕콕.
가슴팍을 찌르는 아르델의 손가락에 조금 힘이 실린 것 같은데 기분 탓이 겠지.
“그러면 받아들인 거로 생각하면 되는 걸까요?”
“옙. 일단요새로 돌아가서 바로성능시험 좀 해볼게요.”
“좋아요. 그러면 잠깐 나가서 다른 아이들과 대화 좀 나누고 계시겠어요 ?”
“그럴게요.”
아무래도 그녀들에 게 따로 할 이 야기 가 있는 모양이 다.
“ 아크-탄?”
“우응••••••
어느새 완전히 풀어진 아크-탄이 아쉬운 얼굴로꼬물꼬물 침대 아래로 내 려 갔다.
덩치는 누님보다 큰데 하는 짓은 완전 스위치가 들어간 시론과 판박이다.
“읏차.”
마지막으로침대 아래에서 셔츠를꺼내 몸에 걸쳤다.
안 그래도 이틀 사이에 많이 탔는데 여기서 다 탔다가는 진짜 사막인이 되 어버릴지도 모른다.
‘시론은 좋아하려나?’
나는 그녀들을 뒤 로하고 쉼 터를 나왔다.
스미스가 떠난 후.
아르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 라-로샤.”
“말하라. 백작.”
라-로샤 역시 사막의 대전사로 돌아와 아르델을 마주 봤다.
“내가한말은 이해했겠지.”
“그렇다.주인님께서 우릴 위해 일해주시는대가로우리에게 백작, 네 영 토를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고.”
“그래.하지만 명심해라. 내가자유를주는 건 너희 상위종에 한해서다.”
“•••외형 때문인가?”
“그게 가장큰 문제지. 그리고 나머지 놈들은 신체 구조상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자제 력 이 부족하다.”
“이해했다.”
아르델은 잠깐 침대 아래에 얌전히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대 전사들 을 둘러보다가 말을 이 었다.
“스미스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너희만 원한다면 스미스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에 너희의 자리를 마련해줄 생각이다.”
“우리 자리를?”
“평화가 이어지는 지금, 너희는 기존 부족원들에게 있어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일 테니 말이다.”
“•••꾈.”
라-로샤는대답하지 않았다.
하지 만 그게 곧 긍정 이 라는 걸 아르델은 모르지 않았다.
“너희도 일 년간 사냥본능을 계속 억눌러 왔을 테지. 스미스와 함께 살아 가기 위해서는 그걸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한환경에 적응할 필요도 있고.”
“•••확답할 수 없다. 본능은 우리가 제어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 니다.”
“진정으로스미스를원한다면 제어해 보여라.”
“노력하겠다.”
아르델은 고개를 끄덕 였다.
“무리를 이끌고 요새로 찾아와라.”
“•••언제?”
“지금.”
• ••
!.
..
아르델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원하면 언제든 만날 수 있도록 해줬으니, 스미스는 그만 데 려가겠다.”
“무……?”
라-로샤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아르델은 이미 쉼터에서 사라져 있었 다.
-으허어어억?!
펄럭이는 천막 틈으로 스미스의 비명이 요란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