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523화〉Ep.521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등장으로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이엘은 내가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사도들과 다른 신도들을 이끌고 자 리를 피했다.
덕 분에 두 사람과 대 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 가 자연스럽 게 마련되 었다.
“어 떻 게 창문 하나 없을 수가 있냐? 갑갑하게.”
“혹시라도누가침입하면 어쩌려고 그런 걸 달아?”
주변을 둘러 보며 이 마를 살짝 찌푸리 는 시 란. 그리 고 콧방귀 를 뀌 며 시 란 에게 대꾸하는 비젤린님.
“꼭 창문 하나 안 달아둔 것처럼 말한다?”
“뭐가그렇게 불만이야? 스미스가 여기 있으면 얼마나 있을 거라고. 애초 에 그냥 형식 적으로 만든 공간 같던데 . 그리고 스미스가 여 기 지 내 면 당연히 아래에서 누가 지킬 거 아닌가?”
짝! 짝!
저대로 내버려두면 진짜로 싸움이 날 것 같아서 나는 얼른 둘 사이에 끼어 들었다.
“싸우는 거 금지 입니다. 싸우면 화냅니다 진짜로.”
떠 나기 전만 하더라도 조금 관계 가 개선된 것처 럼 보였는데 몇 달 못 봤다 고 그간 쌓인 친밀도가 초기화라도 된 걸까.
“싸우긴…… 장난이지.”
“그래. 장난이야.”
장난이 라고 말하는 도중에도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으면서 잘도 그 런 거짓말을 한다.
“아니, 뭐 싸우는 걸 아예 금지하지는 않을 텐데, 적어도 도시 바깥에서 싸 워주세요.”
이제 신전을 운영하기에도 자금이 빠듯한데 엄한 곳에 돈을 쓰고 싶지 않 았다.
“그러니까 당장 싸울 거 아니면 그만 노려보고 둘 다 이리 와요.”
나는 얼른 팔을 뻗 어 시 란과 비 젤린님 을 동시 에 끌어 안았다.
“나는 괜찮아……!!”
“아예.”
나는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떠는 비젤린님의 반응에 그녀를 놓아줄 수밖 에 없었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비젤린님은 아직 나와 몸을 섞은 경험이 없다. 이렇다 할 신체 접촉도 끽해야 손을 붙잡는 게 전부였던가?
‘나를싫어하시는 건 아니라고했지.’
뭔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시란이 말한 적 있다. 이번 기회에 그녀가 숨기고 있는 장인어른에 대한 비밀과 함께 그 비밀도 은근슬쩍 물어 보도록 하자.
“이제좀 진정됐어요?”
“•••뭐, 흥분하지도 않았는… 으응….”
뻔뻔하게 거짓말하려는 시란의 뺨에다가 내 뺨을 문질렀다. 부드럽고 좋 은 향기가 났다.
“큼큼… … 완성된 것부터 보지 않을래 ?”
“그러죠.”
나는 많이 얌전해진 시란을 놓아주며 관? 아니 , 아무튼 보관함 비스무리 한 것 앞에 섰다.
“일단 네 부탁대로 만들기는 했어.”
스르륵.
비젤린님께서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자, 보관함의 뚜껑이 두둥실 위로 떠 올랐다.
“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뚜껑이 사라진 보관함 속에 깊은 잠에 빠진 듯 누워 있는 아름다운 여성. 아니, 인형.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 물빛 머리 칼.
잡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백 옥같은 피 부.
날카로운 콧날과 앵두처럼 붉은 입술.
그야말로 내가 바라던 완벽한이상형의 얼굴이었다.
몸매는 또어떤가.
과하지 않게 부풀어 오른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누가 봐도 감탄할 순산형 골반.
꽈악.
“끅?!”
팔뚝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나도모르게 펄쩍 뛰었다.
“시란?”
나는 꼬집힌 팔뚝을 문지르며 새초롬한 표정을 한 시 란에 게 다시 다가갔 다.
“그래봤자 인형이라고.”
“어,그으...그렇죠......;
살짝 부푼 내 사타구니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시 란이 내 게 본인의 젖가슴 을 꾸욱 눌러왔다.
“이걸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걸 기억해. 알겠냐?”
“그,그럼요. 예.”
살짝 치 켜뜬 눈으로 나를 올려 다보며 이빨을 드러 내는 시 란의 모습에 나 는 과거의 시론이 겹쳐 보였다. 살짝 껄렁한 말투까지. 역시 모녀는 모녀인 모 양이다.
“그럼
“우린 잠깐나가있을게.”
시스와의 대화를 위해 먼저 양해를 구하기도 전에 비젤린님께서 내가 할 말을 대신 꺼냈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뭔 일 생 기면 소리쳐라.”
“빨리 나오기나해.”
“•••스미스 앞이라고 깐족거리지 마라. 그러다가 진짜 대가리 날아간다.”
시란과 비젤린님은 내게서 떨어지기 무섭게 서로를 향해 으르릉거리며 문 을 닫고서 퇴 장했다.
드디어 인형과 둘만 남게 된 나는 보관함 앞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시스 를 불렀다.
[뭡니까. 사원서민수.]
약두 달만에 듣는시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맑고 청아했다.
‘아니, 지금부터 중요한 걸 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네가꼭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자리에 있나 확인차 불러봤지.’
[혹시나해서 묻는 거지만, 지금 사원 서민수의 눈앞에 있는 인공육신에 저를옮겨 담을 생각인 겁니까.]
‘옮겨담을 생각입니다만.’
애초에 내 머릿속 생각을 모두 읽을 수 있으면서 모르는 척 물어보는 거 굉 장히 괘씸하거든요?
[ 사원 서민수의 단세포나 다름없는 생각 따윈 굳이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더 라도 쉽 게 추측할 수 있습니 다. 그리고 사원 서민수의 생각을 모두 읽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제가원치 않을 경우에는 차단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
“뭐 ? 진짜?”
[ 제가 아무리 시스템이라지만, 1 년 365일 성교와관련된 생각만 하고 사 는 발정난 원숭이와 다를 바 없는 사원 서민수의 생각을 공유받으면 시스템 에 과부하가 걸립니다.그렇기에 저는 제 안위를위해 사원 서민수의 생각공 유를 차단할 권리 가 있습니 다. 아시 겠습니 까. 사원 원숭이 . ]
아니,원숭이는좀 너무하지 않나?
그리고 나는 공유를 허락한 적도 없는데 공유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는 것도 좀 많이 괘씸하거든요?
[ 제 행동 어디가 밉살스럽고 예의에 어긋난 것인지 모르겠군요. 지적해보 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
“크흠.”
한동안 시스가 나게 호의 적 이 었기 에 잊고 있었다. 내 가 단 한번도 입씨 름으로 그녀를 이겨본 적이 없다는 걸.
‘그보다 시스야.’
[말돌리시는겁니까.]
‘…내가 미안해.’
[ 빠르지 못한 사과였으나, 사원 서민수가 원래 그런 남자라는 걸 알고 있으니 제가 너그러이 용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어,고마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줄줄흘러내릴 것 같다.
‘•••암튼, 그래서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게 뭔지 모른다는 거지?’
[ 성물 보관소의 능력을 이용해 저를 재료화시킨 후, 저 인형의 디자인을 담아낼 수 있는 성물의 승인을 받아낸 다음 저를 그곳에 사용하려는 것까지 는알고 있습니다.]
‘•••꾈緒
뭔데 그거.
전부 다 알고 있잖아.
[ 사원 서 민수는 정말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 각하는 겁 니까? ]
‘마법이 랑 신성력도 되는데 너라고 안 될까? 물론, 네 가 일단 바깥으로 나 와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나오기만하면 될 거라고 확신해.’
[ 그럼 저를 어떻게 바깥으로 나오게 하실 건지 들어보고 싶군요. ]
‘그거야…….’
네 가 자의 적으로 나와주지 않을까?
[하아.]
언제나고저 없이 평탄하던 시스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감정이 담긴 듯한 한숨이었다.
[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성공적으로 재료화가되었다고 가정해 보죠. 그 러면 제 육체가되어줄 성물은 어떻게 승인받을 생각인 겁니까. ]
‘•••원래는 마차를 타고 오면서 승인받아 둘 생각이 었거든.’
!.
.
그런데 요새에서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완전히 잊고 말았다. 그리고 방금 비젤린님이 도착하면서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 당신이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니 그 또한 이해 하겠습니 다. 그러면 마지 막입 니 다. 재 료화가 된 저를 이 용해 만들어낸 뭔지 모를 성물이 정상적으로 기능한다고 가정할때, 그곳에 제 인격이 남아 있을 거 라고 확신하십 니 까. ]
‘그거야…….’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성물 창조에 이용된 재료들은 그 성질만 남고 본래의 형태를 완전히 잃 어버린다.
그래,본래의 형태를완전히 잃어버린다.즉, 시스의 인격도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소리 다. 인격은 사라지고 인공지능이 라는 성질만 남아 성물 창조에 의해서 새로운 인격이 만들어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꾈.]
[ 정 말이 지 당신 이 란 남자는 조금 성 장했다 싶으면 금방 부족한 모습을 보 여주는군요. 뭐, 그렇기에 저라는 존재가 있는 거지만요. ]
화아아악——!!
내가뭐라고 대답하기도전에 내 오른손에서 영롱한빛이 터져 나왔다.
마치 활활 타오르고 있는불길에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결코 아름답지 못 한 통증이 오른손을 덮쳐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허억, 헉…….”
턱 끝으로 흘러나온 식은땀이 투둑 하고 떨어져 내렸다.
나는 빛이 사라진 오른손을 본능적으로 확인했다. 다행히 느꼈던 끔찍한 통증과 다르게 오른손은 매우 멀쩡했다.
“그렇게 머 리를 조아린 다고 해 서 제 가 잔소리 를 그만둘 거 라고 생 각하시 는겁니까.”
“•••꾈?”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맑은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뭡니까. 그 멍청한 표정은.”
보관함에 누워 있어야 할 인형이 몸을 일으킨 채 무뚝뚝한 시선으로 나를 내 려다보고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인공 육신이군요.”
새하얀손을 가볍게 움켜쥐며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너, 어떻게?”
“컴퍼니에 속한그대의 육신을 차지하는 것도 가능한데 주인 없는 육신을 차지 하는 건 손바닥 뒤 집 는 것보다 간단한 일입 니 다.”
“하…….”
그녀의 대답에 나는 헛바람을 내뱉었다.
“아니, 너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냐?”
“징 계를 받기 전에 는 그런 상태 였습니 다. 징 계 를 받고 난 후에 는 달라졌 습니다. 당신의 시스템에 간섭할 수 없게 된 대신 구속력이 느슨해졌다고 생 각하면 편할 겁니다.”
스으윽.
내가뭐라고 대답하기도전에 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물빛 머리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보다 똑바로 앉으세요. 이 기회에 단단히 교육해야겠습니 다.”
무뚝뚝하던 시스의 눈매 가 날카롭게 변했다.
그에 신변의 위협을느낀 나는 얼른 입을 열었다.
“누님!! 누님 !! 비젤린님 !!”
얼른 두 사람을 부르며 자리 에서 벌떡 일어나 후다닥 문을 향해 뛰 었다.
“언기,, I • •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문을 향해 뛰 어 가던 나는 무언가에 부딪혀 서 그대로 자빠졌다.
“당신의 행동 패턴 따윈 진즉에 학습을 끝냈습니다.”
통! 통!
아무것도 없는 곳을 손으로 두드릴 때마다 미세한 물결이 퍼져나간다. 빌 어먹을보이지 않는벽 같으니라고.
“의 미 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얌전히 제 교육을 받도록 하세요.”
우우웅-
시스의 손바닥에 빛이 모여들더니 곧 작은 막대기의 형태를 갖췄다.
“그, 시스야? 설마 그걸로 날 때릴 생각은 아니지 ?”
“통계에 따르면 물리적 교육이 가장 효율이 좋습니다.”
“•••그거 다구라야.”
“판단은 제가합니다.”
스으윽.
시스의 손이 높게 올라간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막대가 지금 내 정수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아니,내가나만 좋자고 저 걸 부탁했나?!’
어차피 대가리가 깨질 거, 일단저 부드러운육체라도 한번 만져보고자 나 는 바닥을 박차며 시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꺄악.
뭔가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비명과 함께 시스는 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와 함께 바닥으로 넘 어졌다.
“윽. 힘이. 들어 가지. 않는군요. 컴퍼니의. 구속력.때문이 겠죠.”
마치 국어책을 읽는 듯한 부자연스러움.
힐끗.
고개를 옆으로돌린 시스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군요.”
힐끗힐끗.
다시 한번 나를 살피는 시스의 눈동자.
‘허참…….’
아무래도 시 스는 교사가 아니 라 학생 이 되 고 싶은 모양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