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531화 Ep.529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으흐으읍!!”
짐가방의 손잡이처럼 가지런하게 등 뒤로 묶여 있는 아가사, 교황님의 손 발. 나는 혹시 라도 누가 볼까 봐 얼른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본 다고 해서 어떻게 할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교황님께서 부르셨다고 해서 온 건데 …… 네메아님께서 부르신 겁니까 ?”
“아니. 너를부른 건 이 여자가 맞다. 너를부른후에 속박한 거지.”
“음, 그렇군요.”
무슨 이유로 속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속박 해둔 거겠지.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아직 복귀하고 한나절도 지나지 않았기도 하고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상태인데 사건 에 휘 말리 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생 각한다.
“•••일단은물어보겠는데, 왜 묶어두신 겁니까?”
“내 몸에 깃든 신성력이 사라진 것이 대한 걸 너에게 물으려고했다.또, 교 황청으로 당장 복귀해 신 라피테라로부터 새로운 은혜를 내려주실 때까지 기도하라고 했다.”
전자는 조금 곤란하긴 하지 만 굳이 숨겨 야 할 정도는 아니 라고 생 각한다. 애초에 신의 맹세도 내게는 먹히지 않으니 몇 가지 살을 덧붙이는 건 손바닥 뒤 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 기도 했고.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조금 곤란하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곤란하냐면 네메아님의 몸에 새로운 신성력이 깃드는 부분이 곤란했다.
라피테라, 풍요신의 신성력은 네메아님을 구속하고 있던 족쇄였고 내가 그걸 삼키는 것으로 그녀는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아직은 당사자로부터 어떠한경고도받지 않았으나, 네메아님이 내게서 멀찍이 떨어지면 어떤 일 을 당하게 될지 나로서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네 메 아님 이 아무리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는 강자라지 만, 상대는 신 이다. 그것도 네메아님을 직접 만들었다고 추측되는 장본인.
그런 이유로 강함과는 별개로 네 메 아님 은 내 게서 , 정확히 는 시스에 게 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는 안 된다. 당장 신이 수작을 부리면 대응할 수 있는 전력 은 시스가 유일하니까.
“확실히 둘다곤란하긴 한데…… 그래도 네메아님께서 교황님을 속박하 신 건 좀 많이 놀랍네요.”
그런 내 대답에 네메아님께서는 은은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 라보며 말했다.
“내 주인은 이제 너다. 또, 내가 받고 누린 것보다 내 손에 묻은 피의 무게 가 더 무거우니 눈치를 봐야 할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낯간지러운 말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을 통해서 네메아님께 서 정말로 많이 변했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를 제대로 책 임져 주기를 바란다.”
“이제는싫다고해도 절 때 안보내줄 거니까그렇게 하세요.”
나 역시 남이 듣는다면 다소 민망해질 수 있는 대사를 내뱉으며 네메아님 의 허리를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스미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살포시 눈을 감는 그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앙다문그녀의 입술을 훔치기 위해 고개를 비 스듬히 기울였다.
“•••꾈.”
a 99
그리고 의도치 않게 네메아님의 어깨 너머로 바닥에 방치된 아가사와 눈 이 마주치고 말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입에 물린 재갈을 뱉기 위해 버둥거렸던 그 녀가 짜게 식은 눈으로 나와 네메아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뻔뻔한 나조차도 흠칫하게 만드는 부담스러운 시선.
“으음
물론,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나는 폭신폭신한 네메 아님의 입술 감촉을 즐기 며 이쪽을 올려 다보고 있는 아가사의 시 선을 담담히 받아들였 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입술을 충분히 탐닉했을 즈음, 아직은 서툴러 호흡 이 가빠온 네메아님께서 먼저 입술을 떼어냈다.
나는 조금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이마와 뺨에 입술을 맞추며 이야기했다.
“나머지는 돌아가서 하도록 할까요?”
으”
O •
어느새 수한 양이 되 어버린 그녀는 일말의 투정조차 부리지 않고 순순히 내 의견에 따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면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여기 문제부터 해결하죠.”
“•••인멸?
흠칫.
짜게 식은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던 교황님께서 몸을 크게 들썩이 더니, 두 눈을 크게 뜨고서 나에게 다급한 시선을 보내왔다.
........
아무래도 인멸이라는게 내가 생각하는 그인멸이 맞는 모양이다.
“적어도 몰링타에서 만큼은 평화롭게 있고 싶거든요.”
“•••네 뜻에 따르겠다.”
네메아님은 금방 의견을 굽히고 내 목덜미에 뺨을 문지르며 깊은 애정을 표현해왔다. 나는 품에 꼭 안긴 네메아님의 머리칼을 상냥하게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얼굴로 다시 얌전해진 아가사를 향해 말을 꺼 냈다.
“일단 재 갈을 풀어드릴 테 니 까, 제 가 허 락할 때까지 는 잠깐만 조용히 있어 주세요. 받아들이시 겠습니까?”
“우으.
그녀가 힘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 였다.
“네메아님? 입에 물린 재갈만좀풀어주시겠어요?”
“음
아쉬움이 가득한 신음을 흘리며 내게서 떨어진 순간, 흐물흐물하게 녹아 있던 네메아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평소의 무심함을되찾는다.
“푸하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몸을 숙여 아가사의 입에 물려둔 재갈을 풀어 뱉어내게끔 손을 움직였다.
“우선, 이번 일은 사고였다고 생 각해주시 면 감사하겠습니 다. 그리고 네 메 아님 께서 조금 과하게 손을 쓴 부분은 대신 사과드리 겠습니 다.”
아가사의 구속은 누가 봐도 과잉 진압이 었기 에 이 부분은 사과하는 옳았 다.
‘허리 좀 굽힌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 이 제 한 단체의 우두머리 로서 행동을 조금 더 조심해 야 한다는 것 역시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후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지금 그녀 에게 사과하는 것이고.
어차피 보는 눈이라고는 당사자인 아가사 한 명뿐이고 나 역시 그녀가 꽁 꽁 묶인 채 바닥에 꾸물거리 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 , 따지고 보면 사과 한 번 으로 이 상황을 단순한 사고로 만들려는 내 가 아주 나쁜 놈이 었다.
‘내 가 제국으로 떠 나있는 동안 칼름이랑 다른 신도들이 다쳐서는 안 되 니 까.’
다시 한번 내뱉어야 할 말들을 정리한 나는 천천히 굽혔던 허리를 펴며 말 을이었다.
“네메아님의 몸에서 신성력이 사라진 이유를 제게 묻고자부르셨다고 하 셨죠. 알려드리 겠습니 다. 사실 부르시 지 않았더 라도 제 가 직 접 찾아뵙 고 설 명드리려고 했던 부분이기도 했는데 상황이 조금 묘하게 되어 저로서도 당 황스럽군요.”
나는 입술에 침 한 번 마르지 않고 거짓말을 술술 내뱉었다.
“믿어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엘프의 숲에서 조금 특별한 힘을 얻었습니 다. 그래서 여성과 관계를 맺으면 그 여성이 품고 있는 기운, 그러니까 마력 같은 특별한 힘을 흡수하는 체 질이 되 어버렸습니 다. 그래요. 마치 지금 이종 족 암컷들이 수컷과 관계를 맺으면 수컷의 생기를 흡수하는 것처럼 말이죠.”
“•••꾈.”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을 덧붙인 이야기를 내뱉으며 아가사의 얼굴을 유 심히 살펴보았으나, 이렇다 할 작은 변화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뭐, 믿고말고는 알바아니지만.’
신과교감 할수 있으니 정 궁금하면 신에게 물어볼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신이 진실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지금처럼 라피테라 신의 종자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 니다. 물론, 다른 성직자분들과도 마찬가지고요.”
달칵.
나는 허리춤에 찬 벨트를 풀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지춤의 단추를 풀었다.
“아가사님께서 오해 없이 있는그대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언제든지 벗을 수 있게 준비를 끝마친 나는, 조금 전과 다르게 몹시 당혹 스러운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허락했 다.
“굉 장히 순진한 분이 시 라고 생 각했는데, 그렇지 만도 않으시 군요.”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조금 많이 늘어나서 말입니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 진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 다.”
“•••어떻게, 신의 이름으로 맹세라도 하면 될까요?”
“그렇게까지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번 상황에 한해서는 신의 맹세를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벌이라는 건 결국 신이 내리는 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 라고 생 각한다.
그러니 여기선 불확실한 보증을 받는 것보다는 아가사, 그녀의 호감을 사 는 쪽이 조금 더 좋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저는 아가사님께 좋은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제 안전 을 위해 네메아님을 붙여주신 것도 아가사님이셨고, 제가 시론에게 생기를 빨려 사경을 해 맬 때 구해주신 것도 아가사님 이셨죠.”
물론, 순수한호의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필요했기에 그랬다는걸 이제 는 알고 있다.
‘아니, 어쩌면 호의가섞여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로서는 그녀와 내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일은 일어나 지 않을 거다.
“비록 제가 협박하고 있는모양새가되긴 했지만, 저는 아가사님께서 제 게 보여주셨던 호의 를 기 억하고 있습니 다. 그래 서 부끄러운 짓이 라는 걸 알 면서도 이번 일 역시 아가사님의 호의에 기대어보려고합니다.”
“…….”
나와 아가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정말이기적인 사내 군요.”
“제가 욕심이 조금 많긴 합니다.
곧 부인들의 숫자를 열 손가락으로 다 샐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최 소한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 기에 내 가 욕심 많다는 걸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 다.
“하아, 오늘 일은 없던 거로 하죠. 네메아를 교황청으로 보내겠다는 명 령도 철회하겠습니다. 물론, 명령한다고 해서 이제는 따르지도 않겠지 만요.”
“감사합니다. 네메아님?”
아가사의 옆에 서 있던 네메아님은 내가 이름을 부르자,몸을숙여 가지런 히 묶여 있던 아가사의 손발을 풀어주었다.
“끄응…… 조금 무리가 많이 가는 자세네요.”
화아악.
은은한 빛이 잠깐 흘러나오더니, 아가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메아. 당신에게는 지금처럼 계속 스미스님의 호위를 맡기겠어요.”
“그러지.”
“•••그래도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 너무쉽게 돌아서는 거 아닌가요 ?”
“반항하지 못하는 내 몸을 희롱한횟수만족히 수백은 된다. 잘도그런 말 을 지껄이는군.”
“으음…… 네메아당신도꽤 즐기지 않았던가요?”
꽈아악.
네메아님 께서 주먹을 강하게 말아쥐 며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역시 인멸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안됩니다.”
완벽히 신뢰할수는 없지만, 아가사그녀는 이쪽에 꽤 호의적이다. 이쪽에 호의적인 사람을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손을 쓸 이유가 없다.
“쯔 어、•
“당신, 정말 많이 변했군요. 아니면 원래 그모습이 진짜인 걸까요.”
“좋을대로 생각해라.”
아가사의 물음에 퉁명스럽게 대답한 네메아님은 몸을 돌려 내 곁으로 돌 아왔다.
“정말 까칠하네요. 일단 저도 생각을 조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오늘은 이 만 돌아가 주시 겠어요?”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뭔가하실 말씀이 있다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네.그러죠.”
“그럼, 실례했습니다.”
가볍게 목례를 한 다음, 네메 아님과 함께 몸을 돌렸다.
“스미스님.”
“네?,,
아가사의 부름에 나는 문고리를 붙잡은 채 고개만 살짝 돌렸다.
“만약에 말이에요.”
“네에, 만약에.”
이쪽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 만약
“만약?”
잠깐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그녀.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 다시 이쪽을 또렷이 바라보며 말했다.
“후후, 역시 아무것도 아니에요.”
“•••꾈.”
한쪽 손을 흔들며 그녀 가 장난스럽 게 웃어 보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살펴 가세요.”
그녀의 손인사를 뒤로 하며 나는 네메아님과 함께 귀빈실을 나왔다. 그리 고 따스한 햇볕이 스며들어오는 복도를 걸으며 생 각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거지?’
아가사가 내게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 자꾸만 신경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