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
튤리우스 제국
[ 리만드 백작가 ]
“도련님. 그만 일어나실 시간이십니다.”
“으으… 조금만 더…….”
금발에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청년은 이마를 구기며,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다가 얼굴 전체를 가려버렸다.
그에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오늘 청장미 기사단 입단 대련이 있는 날입니다.”
“……뭐어?”
도련님이라 불린 청년이 이불 밖으로 머리를 슬쩍 내밀더니,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중년 여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청장미 기사단 입단 대련이 있는 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헉?!”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으나, 여성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성공한 청년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이불을 걷어차며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목욕물을 받아두었으니, 얼른 가서 씻으시지요.”
“늦은 건 아니지?”
“아직 여유 있으십니다.”
“후우…… 역시 날 제대로 보필해주는 사람은 집사장 밖에 없어.”
청년, 지앙 리만드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욕실의 커다란 욕조에는 고용인들이 받아둔 따뜻한 물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 위에는 향긋한 내음을 가득 품은 클레몰니아 꽃잎이 둥둥 떠 욕조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후우~ 역시 여름보다는 겨울이 좋단 말이지.”
입욕제를 가득 푼 따뜻한 온수에 몸을 담글 때의 그 노곤함이란.
-도련님. 그만 나오셔서 식사 하시지요.
“알았어!!”
조금 더 이 노곤함을 즐기고 싶었으나, 오늘은 자신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날이었기에 얼른 욕조 밖으로 나와 미리 준비되어있는 수건으로 몸을 꼼꼼히 닦고 젖은 머리를 또 다른 수건으로 돌돌 말아 감쌌다.
“오늘은…… 이게 좋겠군.”
다른 귀족가 자제들과도 만날 테니, 지앙은 냄새가 옅은 향유의 병을 열어 그것을 손에 펴 바르고 목덜미와 손목 같은 곳에 적당히 펴 발랐다.
“훗, 그야말로 조각상 같은 몸이로군.”
지앙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평균보다 큰 키에 조금씩 붙기 시작한 근육들.
‘오늘도 빛이 나네.’
몸매 감상을 끝낸 지앙은 본인의 날렵한 턱선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미소와 함께 집사장이 준비해둔 의복을 몸에 걸치고서 욕실을 나왔다.
“…이건 뭐야?”
샌드위치처럼 생겼지만, 노르스름하게 그을려 있는 빵을 가리키며 지앙이 묻자.
“풍요의 신을 섬기시는 교황께서 즐겨 드시는 토스트라고 하는 음식입니다.”
“토스트……? 뭐, 이름은 괜찮네…….”
지앙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감히 만나 뵙기조차 힘든 까마득히 높은 분께서 즐겨 드시는 음식이라는 말에 토를 달지 않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바사삭.
“너무 구운 거 아니야? 입천장 다까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살짝 불만을 토한 다음, 지앙은 포크로 적당한 크기로 썰어낸 토스트 조각을 찍어 입안에 넣었다.
“……!!”
그리고 커지는 그의 두 눈.
“맛있으시지요?”
“…….”
집사장의 물음에 지앙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움직이며 토스트를 슥삭슥삭 자르기 시작했다.
‘겉은 바삭… 촉은 촉촉… 고소하고 담백한 풍미에 안에 들어 있는 채소가 베이컨의 짠맛을 꽉 잡아주는…… 아주 완벽한 맛이로다.’
지앙은 말 한마디 내뱉지 않고 토스트 하나를 끝장내버렸다.
“주인어른께서도 아주 극찬하셨습니다.”
“…역시 교황님이시군.”
그는 집사장이 가져다준 우유와 설탕이 듬뿍 들어간 홍차로 목을 축이며 물었다.
“출발은 언제지?”
“한 시간 후에 마차가 도착할 것이니, 그전까지 소화를 시키시지요.”
“…걷기는 싫은데. 밖은 너무 춥단 말이야.”
“그러다 대련 중에 배라도 아프시면 저는 책임져 드릴 수 없습니다.”
“……집사장은 다 좋은데 너무 깐깐해. 그냥 소화제 하나 슬쩍 주면 어디 덧나?”
지앙의 투정에 집사장은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약에 의지해서는 훌륭한 기사가 되실 수 없으십니다.”
“흥,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집사장밖에 없거든?”
“그야 주인어른께서는 도련님을 너무 사랑하시고, 부군께서도 도련님을 아끼시니.”
“다른 고용인들은?”
“목이 달아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감히 도련님께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누가 들으면 내가 망나닌 줄 알겠다?”
“잡담은 그만하시고 얼른 산책하러 가시지요.”
“지금 말 돌리는 거 아니지?”
지앙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는 집사장의 등을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잠깐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 걸었다.
휘이잉─
“젠장…… 아직 가늘 아니야? 왜 이렇게 추워?”
“오히려 작년보다 더 따뜻합니다만.”
“…내가 춥다면 추운 거야.”
“아무렴요.”
집사장의 대꾸가 영 못마땅했으나, 지앙은 불어오는 찬 바람에 몸을 가볍게 떨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틀 전에 이그리트 공자 사교 모임에서 내가 이상한 소문을 하나 들었거든?”
“그러시군요.”
“아니, 좀!!”
“듣고 있습니다.”
“…성의 있게 대답하고 그런 소릴 해.”
지앙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계속 말했다.
“이번 청장미단 지원자들 중에 황금 마탑주의 애인이 지원했다고 허다라고.”
“애인이라고 밝혀진 바는 없으나, 마탑주께서 신원을 보증하신 분이 지원하신 건 맞습니다.”
“……알고 있었어?”
“정보는 귀한 것이니까요.”
“근데 왜 말 안 했어?”
“말씀드려봤자 도련님이 하셔야 하는 일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런…… 이익!!”
결국 지앙은 두 주먹을 쥐고 자신의 바람을 막으면서 걷고 있던 집사장의 등을 툭툭 때렸다.
그저 간지럽기만 한 철없는 도련님의 주먹질을 태연히 받아들이며, 집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날 주변을 통제하던 병사들의 말에 의하면, 각목을 주먹으로 깨부수고 십 분 만에 줄넘기를 천 번 넘게 뛰었다고 하더군요.”
“헛소리!!”
여자도 아닌 남자가 어떻게 맨주먹으로 각목을 깨부순단 말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저 머나먼 사막에서 붙잡혀온 사막 출신 노예들도 맨주먹으로 각목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게다가 십 분 만에 줄넘기 천 개?
그놈 가슴에는 폐가 다섯 개쯤 들어가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하지만 집사장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또한, 그곳에 있던 모두가 우러러봐야 할 정도의 커다란 키에 다부진 몸. 그리고 인간을 초월한 외모였다고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하…… 마탑주가 손을 쓴 거겠지. 아니면 그 작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누군가 손을 썼다거나.”
“그럴 수도 있겠지요.”
지앙은 이야기를 꺼낸 집사장 본인도 그다지 믿지 않는 듯한 반응에 나빠졌던 기분이 조금 풀렸다.
**
황성으로 향하는 마차 안.
“도련님. 긴장한다고 해서 실력이 더 향상되는 건 아닙니다.”
“……언제는 적당한 긴장감은 필요하다면서?”
지앙의 투정에 집사장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적당한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알려드리는 편이 좋으십니까?”
“…젠장. 떨리는 걸 어쩌라고!!”
손바닥에서 나오는 식은땀을 계속 허벅지에 닦아내던 지앙이 버럭 소리치자, 집사장은 손수건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저와 대련하시던 대로만 하시면 상위 다섯 명 안에 드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도련님 나이라면 아직 세 번 정도는 더 기회가 있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죠.”
“…뒷말은 안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거 같은데.”
위로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집사장의 위로에 지앙은 짧게 숨을 내뱉으며 긴장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도착했군요.”
“…빌어먹을. 왜 이렇게 빨리 도착한 거야.”
집사장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고, 지앙은 집사장의 손을 붙잡고서 조심스럽게 마차에서 내렸다.
“잠시 기다리시길.”
집사장은 품에서 고급스러운 양피지 한 장을 꺼내 성문 입구를 지키고 있는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챙이 넓은 푸른색 모자를 쓴 미쳥년이 성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집사장은 그 미청년을 향해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지앙의 곁으로 다가왔다.
“끝날 즘에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후! 후! 다녀올게!!”
지앙은 허리에 힘을 주고서 오늘 이후로 자신의 선배가 될 청년에게 다가갔다.
“입 열지 말고 조용히 따라와라.”
“네, 네!!”
“입 열지 말라고.”
“…….”
지앙은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에 침을 꿀떡 삼켰다.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시선이었기에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물드는 것만 같았다.
“야. 안 따라오냐?”
“가, 갑니─”
“입 닫으라고.”
“…….”
푸른 장미가 장식된 챙 넓은 모자.
저 모자를 얼마나 동경했던가.
하지만 가까이서 직접 바라본 청장미단은 생각했던 것처럼 우아하지 않았다.
“시발, 완전 얼빵한 놈이 걸렸네.”
푸른 망토를 펄럭이며 치욕스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동경했던 이의 태도에 지앙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언동에도 지앙은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입술 한 번 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이름도 모를 청장미단원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미로와 같은 황궁을 얼마나 걸었을까.
상아색의 미적으로 아름다운 외형의 건축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턱을 넘어서자, 잔뜩 위축된 상태로 쭈뼛쭈뼛 일렬로 서 있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저기 가서 서 있어라.”
“…….”
지앙은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나마 안면이 있는 자제 근처로 다가가 섰다.
-체격은 좀 좋은데?
-지랄, 완전 멍청한 새끼더라.
-킥, 그러면 돈 잃어야지.
길거리의 구경거리처럼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지앙의 얼굴은 더더욱 붉어져 갔다.
그렇게 모욕적인 시선 속에 서 있기를 잠깐.
“다 모였나.”
허리까지 내려온 금발을 찰랑이며, 한 사내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러자 지금까지 잡담을 나누고 있던 청당미단원들이 입을 닫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직 한 명 남았습니다.”
“…아직까지 안 왔으면 그냥 탈락시켜.”
단장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하자, 부단장으로 보이는 청년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황금 마탑주께서 신원을 보증한 녀석인지라.”
“쯧…… 시간까지 기다──”
-이, 이, 이이, 이곳입니다!!
-감사합니다.
-아, 아, 아닙니다!!
활짝 열린 문틈으로 들려오는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입구를 향했다.
-아우 썅…… 뭔 향수 냄새가 이렇게 난다냐.
‘다, 다들린다고!!’
지앙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온 욕설에 마치 제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얼굴색이 하얗게 물들었다.
슬쩍 곁눈질하니, 아니나 다를까.
단장은 물론이고 나머지 단원들의 표정이 몹시 좋지 못했다.
‘멍청한 자식…….’
지앙은 소문만 무성한 마탑주의 남자를 향해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린 문틈 사이로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
“헉…….”
지앙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오늘 아침에 집사장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각목을 주먹으로 깨부수고 십 분 만에 줄넘기를 천 번 넘게 뛰었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우러러봐야 할 정도의 커다란 키에 다부진 몸. 그리고 인간을 초월한 외모였다고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꿀꺽.
지앙은 다른 의미로 마른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각목과 줄넘기는 모르겠지만, 그 외의 것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없다고 말이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다들 환절기 질병 조심하시는 겁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