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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575화 (575/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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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오늘도 고맙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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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리우스 제국

“로안경. 다녀올 동안 좀 부탁하네.”

“…하, 하하…… 다녀오십시오.”

나는 조금도 영양가 없는 서류들 속에 파묻힌 로안을 뒤로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충!!”

그러자 살짝 반곱슬머리의 단원이 나를 향해 경례했다.

이름이 페이든이라고 했던가.

“그래. 퇴근하는데 붙잡아서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놈은 어색하게 웃으며 조심히 경례하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내일부터 출퇴근마다 내게 경례하라고 말해뒀는데, 이 녀석을 보아하니 나와 어지간히도 대련하기가 싫은 모양이다.

한 명 정도는 거부하는 놈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겁이 많은 건지 아니면 의외로 자존심이 없는 건지.

아직 까지는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 수정궁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녀석을 따라 기사단 건물을 나와 황궁을 걷기 시작했다.

‘퇴근 때라 그런가.’

여러 시선이 느껴지던 출근 때와 달리, 발 빠르게 다들 퇴근한 것인지 순찰 중인 인원과 시종들을 제외하면 별다른 인물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이곳입니다.”

“…그렇군.”

은은한 광택이 뿜어져 나오는 궁전의 외벽.

‘진짜 수정으로 만들다니…….’

나는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는 외벽과 크리스탈을 깎아 만든 것처럼 백광색을 띈 화려한 문의 등장에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조심해서 돌아가고.”

놈은 나를 향해 꾸벅 고개 숙인 다음, 나를 안내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발걸음으로 후다닥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뛰어가는 꼴을 보니 저놈도 내일 좀 굴려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근데…… 안에 벌써 꽤 있는 것 같은데.’

오랜만에 기감을 펼친 나는 수정궁 안에서 느껴지는 여러 기척에 뺨을 긁적였다.

‘삼십 분이나 일찍 출발했는데 설마 늦은 건 아니겠지?’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모자를 살짝 벗어 머리칼을 한 번 위로 쓸어 올려 정리했다.

원래 실내에서 모자를 벗는 건 지구나 이곳이나 공동된 예의니까.

“큼큼.”

그리고 목소리도 한 번 가다듬은 후, 나는 화려한 문을 힘껏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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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원탁에 앉아 있는 다섯 명의 여인.

그녀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비어 있는 한 자리를 힐끗 노려보며 조금씩 언짢은 기색을 내보였다.

“쯧…….”

그때, 갈색의 꽁지 머리를 한 여성이 혀를 차며 나머지 넷을 향해 말했다.

“안 올 거 같은데 그냥 시작하지?”

“…조금 더 기다려보지.”

어깨에 금색 견장을 단, 블론드 머리를 한 여성이 대꾸했고.

“쓰읍, 푸하…… 아까운 시간까지 낭비하면서 그 새끼들 장단에 어울려줘야 할 필요가 있나?”

입에 두꺼운 시가를 문 여성이 짙은 연기를 내뱉으며 물었다.

“삼십 분까지 조금 남았으니까. 기다려보죠.”

어디서도 보기 힘든 분홍빛 머리칼의 여인이 웃었다.

‘시발…….’

다섯 명 중 유일하게 입을 열지 않은 여인, 이리나가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분홍색만큼이나 제국에서 보기 힘든 검은 머리칼을 가진 그녀는 제국을 대표하는 다섯 개의 기사단 중 하나인 검은 갈기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나머지 넷 역시 그녀와 같은, 산하야 여러 기사단을 거느리고 있는 대표 기사단의 단장들이다.

‘이딴 영양가 없는 회의는 왜 계속하는 건지 모르겠네. 시발년들.’

안 그래도 마대륙과 휴전에 들어간 탓에 분위기가 한껏 느슨해져서 날마다 범죄를 일으키는 년들이 늘어나 인원이 부족할 지경이다.

‘…빌어먹을 년들.’

사막 출신으로 어떠한 연줄도 없이 오롯이 실력만으로 이 자리에 올라온 이리나.

직급상으로는 금색 견장을 어깨에 달고 있는, 황제와 황족들의 호위를 전담하는 근위 기사단장을 제외한 나머지 셋과는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담당하는 업무만 놓고 비교해 봐도 그녀가 다른 셋과 달리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리나의 근무 환경은 몹시 불합리했다.

다른 단체들이 마물이나 유적의 탐사, 혹은 귀족들의 영지 사찰이라면 이리나와 그 휘하 기사와 병사들은 제도의 치안을 전담했다.

다른 왕국의 수도와 비교해도 적게는 두 배, 많게는 네 배나 큰 규모의 제도는 당연히 어마어마한 인구가 모여 살고 유동 인구가 매일 수천 명이 나오는 곳이다.

유동만 수천 명인 곳을 고작 오백의 기사와 삼천의 병사로 어떻게 다 커버하란 말인가.

이리나는 가장 할 일이 없으면서도 자신이 거느린 기사와 병사들의 세 배나 되는 인원을 거느리고 있는 분홍머리 여인을 조용히 노려봤다.

‘시발년… 마물 토벌은 모험가 새끼들이 다 처하는데 할 일 없으면 병력이나 좀 쳐 빌려줄 것인지.’

그렇게 이리나가 속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헐뜯고 있을 때였다.

““…….””

이리나 그녀를 포함한 다섯 명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처음 느껴본 기척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기척은 잠깐 문 앞에 멈춰서 있더니.

그르륵…….

두꺼운 수정문을 힘껏 밀었다.

그러나 문은 아주 살짝 밀릴 뿐,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끄으응…… 뭔 놈의 문이 이렇게 무거워?!

아주 살짝 벌어진 틈으로 흘러들어온 중저음의 목소리.

“크흠.”

“큼…….”

“제가….”

계속 짜증을 내던 단장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동시에 떼어냈다.

하지만 누구보다 문과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이리나보단 빠르지 못했다.

그르르륵──

“어, 어?”

문을 당긴 이리나는 약간 당황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드리우는 그림자에 눈을 끔뻑였다.

‘……?’

당연히 모자에 달린 푸른 장미가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갑작스럽게 시야를 꽉 채운 청색 코트에 두 눈을 끔뻑였다.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이리나의 입.

“저, 무슨 문제라도?”

“어? 아, 아, 그, 아, 아니, 아닙니다아…….”

순식간에 올라오는 열기에 이리나는 두 주먹을 꽉 말아쥐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사고를 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벼, 병신 같은 년……!!’

거기서 말은 왜 더듬고 지랄이란 말인가.

이리나는 자신이 조금 전까지 짜증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 조차 까먹은 채 얼른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혹시…… 제가 늦었습니까?”

귀를 살살 간지럽히는 목소리에 이리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니에요. 저희도 도착 한지 얼마 안 됐어요.”

분홍색 머리가 대답했고.

“맞아. 아, 아니, 맞습니다. 하하!! 그리고 원래 남성은 조금 늦어도 됩니다.”

갈색 꽁지머리가 얼른 말을 받았다.

“혹시라도 늦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이… 콜록, 콜록…!!”

“아, 미, 미안…… 합니다.”

입에 시가를 물고 있던 여자가 얼른 그것을 꺼내 제 손바닥에 비벼 꺼버렸다.

‘…발정난 년들.’

이리나는 조금 전까지 청장미 기사단의 부단장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꼽줄 생각으로 가득하던 그녀들의 태세 전환에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다른 넷을 욕하는 그녀도 눈동자가 자꾸만 옆으로 돌아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스으윽.

“와씨…….”

남자가 모자를 벗는 순간, 이리나는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다섯 명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자, 잠깐…… 사막인이야?!’

짙은 눈썹에 강직한 눈매. 그리고 날렵한 턱선에 잠깐 넋이 나가 있던 이리나는 남자의 머리와 눈동자가 자신과 같은 검은색이라는 사실을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어, 어디 부족의 족장 아들인가……? 그보다 저 근육은… 키는 또 왜 저렇게 크담…….’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전형적으로 여성에 가까운 남자였으나,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회의는 처음이라…… 알려주시면 다음에 제대로 준비해서 오겠습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누……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잖아요.”

“그래, 요…… 모르면 배우면 되는 거지……요.”

“하, 하하!! 힘드신 부분이 있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조금 긴장하고 왔는데…… 다들 친절하신 분들이시군요.”

남자가 고개를 들며 살짝 웃자,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근위 기사단장까지 얼굴을 붉히며 작게 헛기침을 토했다.

“그럼, 오늘은 견학하는 마음으로 경청하겠습니다.”

그가 다시 자리에 앉자, 단장들은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겨냐는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말이다.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를 노려보던 넷의 시선이 어깨에 견장을 단 근위 기사단장에게로 쏠렸다.

“…청장미 기사단장께서 오늘 막 단장의 업무를 맡아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간단하게 서로 소개만 하고 자리를 파하도록 하지.”

“아, 좋은 생각이오.”

“동의해요.”

“찬성.”

“…좋습니다.”

이리나를 포함한 모두가 빠르게 동의했다.

왜냐면 마력을 이용해 흥분을 억누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빨리 내보내자.’

어차피 먹지도 못하는 거.

이렇게 보고 있어봤자 자신들만 괴로울 뿐이다.

그러니 빨리 내보내고 자신들끼리 회의를 이어나가는 쪽이 현명한 대처였다.

“나는 근위 기사단장인 멜버른 레오니스라고 한다.”

어깨에 견장을 단 멜버른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태양 기사단장인 데이지 론벨이에요. 혹시 갖고 싶은 마물의 가죽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분홍색 머리가 눈에 띄는 론벨이 말을 이었다.

“폭풍매 단장 벨벳 카르멘…입니다. 귀족들의 감시를 맡고 있…습니다.”

갈색 꽁지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힐끗거리는 벨벳.

“아탈란테입니다…… 유적 탐사를 맡고 있습니다.”

시가를 급하게 비벼껐던 그녀가 작게 헛기침을 토했다.

‘시발…….’

자신의 차례가 된 이리나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검은 갈기 단장인 이리나입니다…… 제도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멋진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냉혹할 뿐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소개가 끝난 후.

“스미스라고 합니다. 청장미 기사단장이 되었고,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

누군가를 칭찬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녀들이 다시 한번 자신들을 향해 고개 숙인 스미스를 향해 멍한 얼굴과 함께 박수로 환영했다.

“그럼…… 이번 정례 회의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의장의 역할을 겸임하고 있는 멜버른이 회의 종료를 선언했고, 체면이 잔뜩 상한 이리나는 얼른 스미스가 회의장을 떠나주길 바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감사합니다. 이리나경.”

“…아, 아닙니다.”

희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리나는 저도 모르게 바짝 타들어가는 혀를 굴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리나경?”

“……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스미스의 부름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열어둔 문으로 반쯤 몸을 빼낸 스미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경은 안 나오십니까?”

“어, 저는, 그 잠깐…….”

너를 내보내고 회의를 진행할 거라는 말을 내뱉을 수 없던 이리나가 마른 침을 삼키며 최대한 머리를 굴리던 바로 그때.

“치안 관련으로 상담하고 싶은 게 있는데…….”

“……?”

상담?

방금 자신에게 상담할 게 있다고 말한 게 맞나?

“바쁘시다면 다음에──”

“아, 아, 아닙니다!! 지, 지금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회의가 뭔데 시발.

이리나는 등에 박히는 따가운 시선을 모조리 무시한 채 스미스를 따라 수정궁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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