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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592화 (59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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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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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리우스 제국

철그럭──!!

이름값 그대로 눈이 아플 정도로 새하얀 궁전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기사들이 나와 오렌의 앞을 막아섰다.

“황자님께 아뢰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래.”

초대한 손님을 세워둔다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뭐, 그보다는 그냥 오렌이 곤란해질 게 뻔히 보였기에 어지간하면 그냥 얌전히 배만 채우고 돌아갈 생각이다.

철컥.

내가 한걸음 물러나자 기사들이 옆으로 비켜섰고, 오렌은 몸체만큼이나 거대한 백옥궁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

“…….”

당연하지만 바이저까지 내리고 얼굴을 완전히 숨긴 기사들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고, 나 역시 얌전히 있기로 했기에 그녀들에게 따로 말을 걸지 않았다.

‘근위 기사겠지?’

양쪽 어깨에 금색으로 된 독수리가 음각되어있는 갑주를 입고 있는 두 사람. 바이저 안의 얼굴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쪽들 상관이랑 도시락도 까먹고 입에 손가락도 넣어보고 한 사이라는 걸 알고는 있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모르겠지.’

알면 그건 그거대로 소름 돋을지도.

대충 그런 시답잖은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 안으로 들어갔던 오렌이 다시 돌아왔다.

“황자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양쪽 옆에 서 있는 기사들을 한 번씩 바라봤다.

철컥─

그러자 둘은 지나가도 좋다는 듯이 조금 더 넓게 거리를 벌려 공간을 크게 만들었다. 그에 나는 슬쩍 눈을 까딱여 인사를 하고 둘을 지나친 다음 오렌을 따라 1황자가 기거하고 있는 백옥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궁 안에 정원이 있네?”

“네? 정원은…… 원래 궁전 안에 있는 거 아닌가요?”

어. 아니야.

하지만 바깥에 나가본 적이 없는 꼬맹이가 뭘 알까.

“그래서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냐?”

“저어어어~ 기 있는 게 만찬장이에요. 저쪽에 계셔요.”

멀리서 봤을 때도 엄청나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규모가 큰 만큼 내부 역시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조금 전에 말했던 정원도 존재했고, 왜 있는지 모를 분수대와 의자. 그 밖의 안이 어떤 식으로 꾸며져 있을지 모를 수많은 방문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이 녀석 생각보다 체력이 좋네.’

대충 이곳까지 오는 시간만 잡아도 이십 분은 족히 걸은 것 같은데 전혀 지친 기색이 없다. 당장 배를 벅벅 긁으며 세금을 불태우고 있는 우리 단원들도 이만큼 걸으면 힘든 것과는 별개로 앓는 소리를 냈을 텐데 녀석은 묵묵히 걷기만 할 뿐이었다.

‘여기선 안 되지.’

기특함에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손을 붙잡아 허리 옆에 딱 붙였다. 방실방실 웃으며 떠들던 녀석이 웃음기를 싹 지우고 긴장을 했는데 방해를 할 수는 없는 노릇.

“황자님. 청장미 기사단의 단장인 스미스 경을 모셔왔습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우우웅──!!

대신, 닫혀 있던 문에 각인된 문양이 빛나더니 닫혀 있던 문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이게 진짜라는 건가?’

대리석인지, 아니면 특별한 광물을 다듬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활짝 열린 문 너머는 흰색이 아니면 죽는 병에 걸린 사람을 위해 준비된 방처럼 온통 새하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부터 시작해서 바닥에 깔린 대리석까지. 모든 게 새하얗다.

“…스미스 경.”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공간에 잠깐 걸음을 멈추자, 내 옆에 서 있던 오렌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다 어디갔나 했더니 전부 여기 모여 있었구만.’

일렬로 나란히 앉으면 적어도 마흔 명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식탁과 그곳의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반짝이는 금발의, 그냥저냥 수수한 얼굴의 남자와 그런 남자의 뒤로 오렌과 같은 의복을 걸친 소년과 그보다 나이가 많은 녀석들이 고개를 숙인 상태로 뒤에 나열해 있었다.

나는 오렌을 따라 일단 누가 봐도 황자인 녀석의 앞에 멈춰 섰다.

“스미스라고 합니다.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리고 예법이라고는 쥐뿔도 모르기에 대충 고개만 까딱 숙여 인사한 다음 혹시 몰라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제가 사막 출신이라 대륙의 예법에는 무지합니다. 혹, 무례를 저질렀다면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조금 뻔뻔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선을 지켰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우리 마르비우스의 첫째 오라비 되는 놈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아닐세.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해. 무엇보다 내가 경을 초대했는데 겨우 그런 걸 신경이나 쓸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우선은 앉게.”

“그럼.”

1황자는 자신이 앉은 상석의 바로 옆자리를 가리켰고, 나는 싫어도 그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이미 식기와 수저가 준비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손님도 왔으니, 그만 준비한 것들을 가지고 오너라.”

““예에.””

황자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에 서 있던 시종들이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으로 칠해진 카트를 여럿 끌고 다시 돌아왔다.

“음식은 흰색이 아니라 놀랐는가?”

“…조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황자의 물음대로 식탁 위에 올려지는 음식들은 온통 새하얀 이 만찬장과 다르게 아주 색이 진한 스테이크를 시작으로 꽤 먹음직 스러운 것들이 올라왔다.

“하하, 그렇게 대답한 사람은 그대가 처음이야. 다들 내가 이리 물으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기 바빴는데.”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나도 그랬을 거다.

하지만 나는 출세할 생각도 없고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없기에 그냥 솔직하게 대답한 것인데, 황자는 이런 솔직한 면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따로 부를 때까지 모두 나가 있거라.”

음식과 간단히 마실 거리가 식탁에 모두 올라오자, 황자는 오렌을 포함한 모든 시종을 밖으로 내보냈다.

“식사를 하자고 불렀으니, 우선은 배부터 채우도록 하세나. 물론, 예법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들도록. 그편이 나도 좋으니.”

“그러시다면야.”

군대를 다녀와 본 남자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상황이다.

선임이 편하게 형이라 부르라고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당연하지만 이때 말을 놓는 순간 나락 확정이다.

나는 지금 상황도 그와 비슷하다고 여겼다. 황자는 내게 예법 따윈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행동하라고 했지만, 원래 이럴 때일 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여기 있었던 일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 꼬투리를 잡아 올지 모를 일이니까.

‘뭐, 내 알 바 아니다만.’

꼬투리를 잡는 거야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면 그만이다. 내가 뭐 출세하자고 여기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런 이유로 나는 황자가 원하는 대로 정말 편하게 식사했다.

파스타는 포크를 이용해 아주 크게 말아서 입에 넣었고, 바삭한 바게트 위에다 고기와 샐러드를 얹고 우악스럽게 베어 물기도 했다. 당연히 바게트는 손으로 쥔 채로.

“대단하군. 나는 이 한 접시만 먹어도 배가 부른데, 경의 배는 저주에라도 걸린 것인가?”

“뭐어…….”

잘 먹는다고 칭찬하는 건지, 아니면 더럽게 많이 먹는다고 돌려 까는 건지 모를 애매한 화법에 나는 말끝을 흐리며 마지막 남은 스테이크 덩어리를 입에 밀어 넣는 것으로 식사를 끝마쳤다.

“맛있었습니다.”

“그래. 먹는 모습을 보니 퍽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원한다면 가끔 초대하도록 하겠네.”

“예에… 뭐…… 불러주신다면….”

입바른 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면전에 대고 거절할 수는 없었기에 나 역시 적당히 분위기에 맞춰 대답했다.

“한잔하겠나?”

“공무 중인지라.”

“하하, 다른 이였다면 좋다면서 넙죽 받아마셨을 텐데.”

황자는 네게 넘겨주려던 포도주가 담긴 은잔을 본인의 입에 가져대고 홀짝였다.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몰라 거절했던 건데 당연하게도 그럴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뭐, 그런 걸 따지는 것 치고는 식탁을 너무 깨끗하게 비워버리긴 했다만.

이리나와 멜버른 경에게 샌드위치를 양보해 배가 고픈 걸 어쩌겠는가.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단 배는 채워야지.

“스미스 경.”

“예. 황자님.”

“황자, 황자라…….”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술을 한 모금 하더니, 그사이에 취하기라도 한 걸까. 황자는 식탁에 탁! 하고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 얼굴은 지나칠 정도로 굳어 있었다.

“그거 아는가? 내가 황태녀보다 한 달 먼저 태어났다는 걸 말이야.”

“처음 듣습니다.”

“그런가? 비젤린 공작께 총애를 받는다 들어 이런 비밀 한두 가지 정도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정확히 집고 넘어가자.

엄연히 따지면 총애를 받는 게 아니라 주는 쪽이다. 그야 요 며칠 사이 내가 비젤린님의 머리를 쓰다듬은 횟수만 세 자릿수가 될 테니 내가 총애를 주는 쪽이 맞지 않을까?

무엇보다 알고 싶지도 않고 전혀 관심도 없는 비밀 따위 알 게 뭐란 말인가.

“자네의 신세도 알만하군.”

황자놈은 갑자기 혼자 인생의 쓴맛을 다 본 놈처럼 고개를 저으며 와인을 잔에 따랐다.

“비젤린 공작이 질리면 금방 버려질 신세일 테지.”

진짜 취한 건가?

나는 내버려 두면 어디까지 이야기할까 궁금해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그리고.

“…나는 황태자가 될 것이야.”

황태자.

다음 황위를 이어받을 황자를 칭하는 단어였던가.

“남성은 황위를 물려받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바로 그게 이 대륙의 잘 못 된 점이야. 황제란 결국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명령을 내리는 자리가 아닌가? 그런 거라면 무력이 약한 남성이 앉아도 문제가 없지.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내가 다음대 황제가 되어야 한다. 여자들은 어차피 성욕에 눈이 먼 것들이니, 나와의 잠자리를 위해 내가 온갖 아양을 떨기 바쁠 테니 말이야.”

“오…….”

“역시!! 사막 출신인 그대는 내 뜻을 알아주는군!!”

‘……?’

본인과의 잠자리를 위해 온갖 아양을 떨 거라는 엄청난 자신감에 감탄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낸 것인데 그걸 자신의 생각에 동조한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스윽.

“스미스 경.”

식탁에 올려둔 내 왼손등에 제 손바닥을 슬쩍 얹는 황자놈.

순간 나도 모르게 기겁하며 한 대 칠뻔했다.

“듣기로는 밤의 요람의 회원이 되었다지.”

손을 털어내려던 나는 놈의 입에서 튀어나온 의외의 말에 조금 더 인내하기로 하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에 있을 나를 축하하기 위한 무도회에 경이 나를 조금 도와줬으면 하네.”

“…도움이라 하시면?”

“그날, 각국의 왕녀들과 이종족 출신의 호족들이 모일 것이네. 자세한 건 문서로 전달할 것이고, 우선은 내 곁에 서서 그대가 확실히 내 사람이라는 것을 알린다…… 정도만 알아두면 된다네.”

각국의 왕녀들은 조금도 관심이 없지만, 이종족 출신의 호족들이 모인다는 말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밤의 요람에서 아주 특별한 회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더 들어볼 것도 없이 나는 황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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