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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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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리우스 제국
“다녀올게.”
“오늘도… 늦게 온다고 했었지.”
졸음이 맺힌 눈을 힘겹게 뜬 케르낙스가 두 팔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더니, 따끈하고 부드러운 뺨을 내게 살살 문질러왔다.
“최대한 일찍 올게.”
“…으음.”
예전이었다면 ‘괜찮다.’라는 식으로 대답했을 케르낙스가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여왔다.
‘불안해한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어젯밤 기에나와 베네오가 알려온 케르낙스의 근황이 사실임을 확인한 나는 내 목을 끌어안기 위해 살짝 상체를 들어 올린 케르낙스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뺨에 입술을 맞췄다.
“일곱 시 전에는 올게.”
“…알겠다.”
“그러면 진짜 다녀올게?”
“응…….”
마지막으로 입술 도장을 찍은 후, 케르낙스가 다시 시론을 껴안고 눈을 감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나는 침실을 나와 아래로 내려왔다.
“흐아으음~ 출근하니?”
“옙.”
평소와 다르게 잠옷 차림의 비젤린님이 부엌 의자에 앉아 배를 벅벅 긁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케르낙스 잘 부탁드립니다.”
“으응~ 걱정하지 마. 진통 시작하자마자 소환해버릴 테니까.”
그렇다. 케르낙스의 출산일이 가까워졌기에 비젤린님은 이제 마탑으로 출근하지 않으시고 저택에 남아 있기로 나와 말을 맞춘 것이다.
“스미스님.”
한 손에 내가 먹을 샌드위치가 담겨 있는 바구니를 쥔 기에나가 주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평소였다면 편안한 복장에 앞치마를 걸치고 있어야 할 기에나는 정말 오랜만에 엘프의 숲에서 가져온 레인저들의 정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 후드가 가디언들에게만 수여된다는 그 후드야?”
“그렇습니다.”
레인저의 정복 위로 잎사귀를 떠올리게 만드는 연녹색 망토 달린 후드를 눌러쓴 기에나.
“멋지네.”
“…그렇습니까?”
“어. 진짜 멋져.”
색만 검은색이었다면 당장 암흑가로 가서 암살 의뢰를 받아도 될 정도로 레인저 정복은 멋스러웠고 얼굴의 절반까지 덮어주는 후드 역시 기에나의 무심한 눈매와 합쳐지니 그보다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당분간 잘 부탁할게.”
“…신호를 주실 때까지 대기한다…… 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뭐,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없을 거니까 잘 지킬 수 있을 거야.”
나는 비젤린님을 대신해서 한동안 내 호위를 맡기로 한 기에나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엉, 조심해서 다녀와~”
내 도시락을 만들다 남은 거로 만든 샌드위치에 따끈하게 덥힌 우유를 홀짝이던 비젤린님이 아이처럼 작은 팔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비젤린님을 뒤로하고 저택을 나왔다.
크르릉─
“오늘도 잘 부탁한다. 엘.”
예전과 비교해서 절반 가까이 덩치가 커진 드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자, 엘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두꺼운 꼬리로 바닥을 탁탁 두들겨왔다. 역시 덩치만 커졌을 뿐이지 여전히 귀여운 녀석이다.
“얼른 타라.”
“넹.”
“…걷어찬다.”
으르릉거리는 베네오를 피해 나는 얼른 기에나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창밖의 풍경.
“흐응…….”
다만, 황성에 도착할 때까지 비젤린님의 머리가 아닌 기에나의 가슴을 주물렀다는 점이 달랐다.
**
““충!!””
“어, 그래.”
오늘도 기운만 넘치는 우리 단원님들의 경례를 받으며 나는 홀에 들어섰다.
“…단장님.”
“애들 업무 분담시키고 바로 올라와.”
“……예.”
설마 내가 어제 이야기한 걸 까먹었을까 봐.
나는 죽상이 된 로안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은신한 기에나와 함께 집무실로 올라왔다.
[ 굉장히…… 화려한 곳이군요. ]
집무실을 둘러본 기에나의 감상은 그러했다.
보석과 장신구로 화려하게 꾸며진 내 집무실을 찬찬히 둘러본 후, 기에나는 조용히 햇볕이 드는 창가 옆으로 이동해 섰다.
이제 내가 집무실을 나가기 전까지는 저곳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단장님.
“들어와.”
이제는 노크도 없이 냅다 내 이름부터 부르는 우리의 로안.
어제 얼굴 좀 봤다고 제법 내가 편해진 모양이다.
“……앉습니까?”
“뭐, 서서 듣고 싶으면 서서 들어도 되고.”
“앉겠습니다.”
책상 맞은편에 놓여 있는 접대용 소파에 로안이 앉았고, 나는 한 손으로 책상에 턱을 괸 채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로안아.”
“……예.”
기사단 내에서도 내가 기사의 호칭을 떼고 부를 줄은 몰랐는지, 녀석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제 잘 놀았냐?”
“…주신 금화 덕에.”
“그거 다행이네.”
“큼…… 그래서 부르신 이유는 뭔지?”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먼저 입을 열기 전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녀석이 이제는 내 대답을 재촉해오기까지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어제 우리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긴 가까워진 모양이다.
물론, 그런다고 맞을 매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만은.
“너. 오늘부터 밤의 요람에 다니지 마라.”
“……다니지 말라는 말씀은. 출입 자체를 금하시겠다는 겁니까?”
“어. 회원증 가지고 있으면 내놔. 당장 잘라버리게.”
“단장님.”
나름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며 입을 열기에 나는 말을 끊지 않고 턱을 한번 까딱였다. 계속 이야기해보란 의미를 담아.
“…같은 회원으로서 이미 단장님께서도 범죄에 발을 걸치신 겁니다.”
“그렇지?”
“예. 그러니까 아무리 단장님이라 하시더라도 업무 이외의 일로 저를 강제하실 수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군.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다니시겠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가 거기에 낸 돈이 얼만데.”
작게 투덜거리는 녀석의 반응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에게 물었다.
“너, 거기 다니는 게 설마 3층에서 할 수 있다는 내기 도박 때문이냐?”
“콜록, 콜록!!”
세상에.
진즉에 글러먹은 놈이라는 건 알았지만, 설마하니 가장 질이 나쁜 도박에 빠진 녀석이었을 줄이야.
“로안아. 로안, 우리 로안아.”
“으으…… 그,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비위가 상한단 말입니다……!!”
“이 새끼가.”
“헉?!”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들어 올리자, 녀석은 거리와 상관 없이 흠칫 두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야. 너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거기 끊어라? 그리고 도박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당장 밤비노만 가도 합법적으로 돈 걸고 뭐 많이 할 수 있던 거 같더만.”
“…거기도 특별 회원들만 이용이 가능합──”
쾅!!
“으헉……?!”
적당히 힘을 주어 책상을 내려치자, 녀석이 기겁하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가기 전에 딱 말해라. 밤의 요람에 계속 들락거릴지. 아니면 내일까지 회원증 가져와서 나한테 반납할지.”
“이,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뭐긴 이 새끼야.
기껏 목숨 한 번 살려주려는데, 하늘 같은 상관의 너른 마음도 몰라주는 나쁜 새끼 같으니라고.
“알 거 없고. 밤의 요람에 들락거릴 거면 앞으로 매일 나랑 대련할 줄 알아라.”
“회, 횡포입니다!!”
“어쩌라고 새끼야. 그러게 누가 날 단장 자리에 앉히래?”
“그, 그으윽!!”
“이 좀 그만 갈아라. 이참에 갈 이도 없게 만들어 줄까?”
“…….”
주먹을 들어 위협하자마자 이 가는 걸 멈추고 입술을 꾹 다무는 녀석의 행동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어쩔래.”
“…며칠 대련해보고 다시 대답해도 됩니까?”
“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내 입에서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도박에 빠진 인간들은 팔다리가 잘려도 도박에 미련을 못 버린다던데.
“그래. 그렇게 해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러면 일단 내려갈까?”
“……예?”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뻑이는 녀석에게 다가가 녀석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오늘 대련해야지?”
하지만 해결법은 항상 가까이에 있는 법.
나는 오늘도 조상님들의 옛말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
“사, 살려, 살려… 주, 십시…오……!!”
“누가 들으면 내가 로안 경을 죽이려 드는 줄 오해하겠네.”
대략 한 시간의 목검 찜질을 경험한 로안이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아직 점심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그, 그만, 더, 더는 안 다니겠습니다아……!!”
“뭘? 어디를?”
“밤의, 바, 밤의 요람!! 당장… 당장 내일 회원증 가져와서 찢어버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사, 살려주십시오…….”
“진짜?”
“지, 진짜…… 켁?!”
“진짜는 반말이고.”
“제, 제 명예를 걸겠습니다!!”
꿀밤 한 대를 맞은 정수리를 감싸며 나를 올려다보며 그리 대답하는 녀석을 향해.
“니가 명예가 어딨냐? 도박에 빠진 가짜 기사놈이.”
“그, 그럼 제 가문의 명예를…….”
“아, 됐고. 너 내일까지 회원증 가져와라?”
“……컥?!”
굉장히 망설이는 듯이 늦어지는 대답에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의 정수리를 목검으로 가볍게 때렸다.
“왜 대답이 없냐?”
“가, 가져오겠습니다!!”
“꼭 매를 벌어요. 기분 더러우니까 이제 떨어져라.”
“커억…….”
대충 다리를 털었을 뿐인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던 녀석이 튕겨 나가 바닥을 두어 번 구른 후에야 멈춰 섰다.
‘역시 말 안 듣는 놈들에겐 매가 약이지.’
오늘도 조상님들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훌륭히 증명해냈다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뿌듯해진다.
“로안아.”
“……예에.”
곧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기운이 다 빠진 녀석이 힘겹게 대답해왔다.
“내일 회원증 가져오면, 내가 밤비노에서 도박 할 수 있게 그쪽 회원증 하나 구해다 줄게.”
“……?”
온몸이 아프다는 걸 얼굴로 표현하고 있던 녀석이 돌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올려다봤다.
“밤의 요람 회원증 가져오면 내가 밤비노 회원증 구해다 준다고.”
“…지, 진짜… 진짜로 밤비노 회원증을 구해다 주실 겁니까?”
“쓰읍…? 덜 맞았나 왜 말귀를 못 알아 먹…….”
“알아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어날 힘도 없어 바닥을 뒹굴었던 녀석이 어디서 갑자기 힘이 난 것인지 돌연 바닥을 박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시간만 주신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원증을 가지라 다녀올 수 있습니다!!”
“…….”
“말씀하신다면 지금 다녀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
너무나도 속이 보이는 태세 전환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반쯤 놀리는 생각으로 한 말이었는데…….’
설마 진짜로 도박 중독자였을 줄이야.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수인 연합에서 밤비노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지분에는 냐호의 일족인 흑묘족이 꽤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냐호가 알려줬기 때문이다.
즉, 저놈이 돈을 잃으면 잃을수록 냐호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기에 나로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호들갑 그만 떨고, 내일 출근 하면서 가지고 와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 말고 밤의 요람 회원인 놈들 있지?”
“…그, 렇습니다.”
“대답이 느리다?”
“예. 있습니다.”
차렷 자세로 각지게 고개를 치켜들며 다시 대답하는 로안을 향해 나는 말했다.
“다 데리고 내려와라.”
“…전부, 말씀이씹니까?”
“어. 전부.”
“……이유는?”
탁! 탁!
나는 아직까지 손에 쥐고 있던 목검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몸 대 몸으로 진솔한 대화를 좀 나눠볼──”
“당장 끌고 내려오겠습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녀석의 뒷모습에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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