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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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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리우스 제국
오늘 이 무도회의 주인공인 마르비쿠스를 따라 무도회장에 입장한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좆됐다.’
군기가 바짝 든 기사들을 지나서 회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마주쳐서는 안 될 조합과 마주치고 말았다.
또각─ 또각─
다각─ 다각─
사방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과는 별개로 나는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발소리에 자꾸만 입이 바짝 말라갔다.
‘도대체 왜 그 앞에서 기다리고들 있는 건데요…….’
마르비쿠스와 함께 회장에 입장한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입구 옆에 서서 두 눈을 반짝이고 있던 마르비우스와 아드리안이었다. 특히, 아드리안은 특유의 졸린 얼굴과 다르게 머리 위에 쫑긋 올라온 작고 귀여운 귀를 파닥파닥 움직이기까지 하더라.
거기까지는 좋았다.
둘 다 당장은 내게 친분을 과시할 생각은 없어 보였으니까.
진짜 문제는 둘의 맞은편에 있던 또 다른 황족.
바로 몇 시간 전에 복도에서 마주쳤던 황태녀였다.
크게 반응이 없어 보이던 조금 전과 다르게, 아주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덤으로 황태녀의 수상쩍은 기색을 눈치챈 아드리안이 내뿜었던 살벌한 시선까지.
‘그래도 살기를 조절해서 다행이지.’
만약 흉폭한 기세를 고스란히 풀어냈다면, 지금 내 앞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당당히 걷고 있는 우리 1황자께서 오줌을 지리다 못해 입에 거품을 물고 졸도해버렸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우리 눈치라고는 고블린 코딱지만큼도 없는 1황자께선 내 바로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신경전 따윈 모른 채, 미리 준비된 자신의 자리를 향해 뚜벅뚜벅 걷는 중이다.
‘…치고받고 싸우진 않겠지.’
그럴 생각이었다면, 진즉 입구에서 한바탕 했을 거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하.”
뒤를 따라오는 아드리안과 황태녀의 발소리에 실시간으로 간담이 서늘해지고 있는 나와 다르게, 제법 높은 단상 위에 준비된 화려한 의자에 오른 우리 1황자가 담백한 미소를 지으며 회장을 내려다봤다.
우웅──!!
동시에 주먹 쥐고 있던 마르비쿠스의 왼손에서 익숙한 푸른 빛이 흘러나오더니.
[ 내 스물네 번째 탄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모여준 그대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
확성기를 한 번 거친 것처럼, 마르비쿠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무도회장 전체를 뒤덮었다.
[ 황제 폐하께서 마련해주신 귀중한 시간을 지루한 연설 따위로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 ]
따악!
마르비쿠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시중 둘이 다가와 준비해두었던 와인이 담긴 잔을 황자에게 넘겨주었다.
[ 오늘이 끝날 때까지 먹고, 마시고, 떠들며 즐기도록. ]
♪~
그와 동시에 궁중 악사들이 연주하는 부드러운 음색이 무도회장에 잔잔히 퍼지기 시작했다.
연주가 시작되면서 조용하던 무도회장이 조금씩 떠들썩해지기 시작했고, 마르비쿠스는 꽤 만족스러운 얼굴로 와인을 홀짝이며 바로 뒤에 놓여 있던 의자에 편히 몸을 기대었다.
“스미스 경. 거기에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올라오게. 경치가 아주 좋아.”
“예. 마르비쿠스니이──”
빠드득!!
“……임.”
착각이 아니라면 방금 뒤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극대노한 시론이 이를 바득바득 갈 때 나던 바로 그런 소리가 말이다.
나는 애써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단상 위로 올라가 의자에 앉은 마르비쿠스의 바로 옆에 섰다.
‘오…….’
우리 1황자의 말대로 단상 위의 경치는 나쁘지 않았다. 무도회장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바로 앞에 있는 마르비우스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확실하게 보였으니까.
‘나는 병풍이다…… 나는 병풍이야….’
후반부가 시작될 때까지 내가 할 일은 그냥 1황자의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여러 귀족에게 불려 다니고 있는 우리 단원들을 구경하면서 말이다.
‘…적어도 마르비우스가 따로 불러낼 때까지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를 뚫어지게 올려다보고 있는 네 명의 여성도 그렇고, 여전히 서로를 곁눈질로 노려보는 아드리안과 황녀에 갑작스럽게 1황자를 향해 적의를 내보이는 마르비우스까지.
과연 이 무도회가 무사히 후반부를 시작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하, 설마 아드리안 경께서 직접 와주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 자식은 눈이 생기다 만 건가?
딱 봐도 심기가 몹시 나빠 보이는 아드리안에게 먼저 말을 걸 다니.
“…….”
“…….”
그 증거로 아드리안은 우리 1황자의 말에 조금도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마르비우스. 씨 다른 내 동생아.”
“풉…….”
배 다른 동생도 아니고 씨 다른 동생이라니.
예상치 못한 기습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질뻔하였으나, 초인적인 순발력과 인내심으로 안 그래도 망가진 분위기를 더욱 더 곱창내는 건 피할 수 있었다.
“한동안 얼굴 보기가 힘들더니, 이렇게 직접 축하해주러 올 줄은 몰랐구나.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둘째보단 역시 네가 낫다.”
“…아닙니다. 둘째 형님께서도 첫째 형님의 탄생일을 축하하고 있을 겁니다.”
“퍽이나.”
마르비우스의 입바른 말에 마르비쿠스가 콧방귀를 뀌더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홀짝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아무튼, 고맙다. 편하게 즐기다 피곤하면 언제든 돌아가거라.”
“…그러겠습니다. 하온데, 형님.”
“뭐냐?”
1황자가 조금 귀찮은 내색을 보이며 묻자, 마르비우스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정확히 이쪽을 향했다.
“제게도 새로운 청장미 기사단장을 소개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아, 스미스 경 말이냐.”
녀석은 잠깐 와인잔을 찰랑찰랑 흔들더니, 굉장히 죽빵 마려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미스 경? 내 막냇동생과 내 탄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먼 왕국에서 이곳까지 와준 왕녀들에게 간단히 소개를 부탁하지.”
“예. 마르비쿠스니──”
빠드득!!
“…임.”
나중에 대화할 틈이 생기면 이빨 다치니까 이는 갈지 말라고 주의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뒤로하고,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와 이쪽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새롭게 청장미 기사단의 단장이 된 스미스라고 합니다. 나이는 스물일곱. 출신지는 비토리오 왕국 국경 너머의 사막 지대입니다.”
당연히 비젤린님에 대한 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황태녀는 몰라도 이쪽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왕녀들이 부담을 가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막 출신이라…… 흥미롭군요. 첫째 형님. 제가 스미스 경을 잠시 빌려 가도 되겠습니까.”
“하하!!”
마르비우스의 당당한 요구에 마르비쿠스는 기분 좋게 웃으며 의자의 팔걸이를 탕탕 후려쳤다.
“동생아.”
“예. 형님.”
“스미스 경이 내 사람은 맞지만, 그는 물건이 아니다. 방금 네 발언은 스미스 경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충분한 것 같구나.”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꺼낸 말은 아니었습니다.”
마르비우스는 1황자가 아니라, 정확히 나를 향해 미안함이 담긴 시선을 보내왔다.
‘여전히 귀엽다니까.’
어차피 마르비쿠스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었기에 나는 그냥 대놓고 귀여운 우리 황녀님을 향해 웃어 주었다.
“읏…….”
“하아아!!”
“미, 미친….”
그리고 꽤 먹음직스러운 젖가슴을 움켜쥐며 짧게 신음하는 네 명의 왕녀들.
정작 마르비우스는 내 미소에 그저 고맙다는 시선을 보내올 뿐이었다. 아무래도 진정제인가 뭔가 하는 그 약을 또 복용하고 온 모양이다.
하긴, 그게 아니었으면 아드리안이 진즉에 덮쳤겠지.
“……? 뭐, 스미스 경이 갑자기 떠나는 것도 아니니. 대화는 무도회가 끝난 후에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하도록 해라.”
“…예.”
1황자의 답변에 마르비우스는 두 주먹을 꽉 말아쥐며 뒤로 물러났다.
“…우리 황태녀껜 내가 초대장을 보낸 기억이 없는데. 여긴 어쩐 일이신지?”
그와 동시에 우리 1황자는 아드리안과 눈싸움 중인 황태녀를 향해 노골적인 적의를 내보였다.
“…….”
“…….”
웃긴 건 황태녀 역시 아드리안과 마찬가지로 1황자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깔끔하게 무시했다는 거다.
“이익…….”
지금까지 계속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녀석의 얼굴에 약간의 금이 생겨났다.
강하게 이를 깨무는 것은 물론이고,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의 내용물이 바깥으로 흘러넘칠 만큼 두 손을 바르르 떨기까지 했다.
-빌어먹을 년…….
제 딴에는 혼잣말이랍시고 내뱉은 거 같은데, 단상에 올라선 나는 알 수 있었다.
‘다 들었네.’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왕녀들은 물론이고 은근히 시선을 보내오고 있던 주변 귀족들의 얼굴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는 것을.
“황태녀를──”
“스미스.”
분노한 1황자가 무어라 말을 하려던 순간, 여태껏 입을 닫고 아드리안과 신경전을 벌이던 황태녀가 돌연 이쪽을 올려다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과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
황태녀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첫눈에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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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특별한 게 아니면 편식하지 않는 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