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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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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리우스 제국
오늘밤 냐호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한 나는 조금 전 뛰어 올라간 로안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녀석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흘러나오고 있는 휴게실 문을 열며 말했다.
“나 3황자님 궁에 다녀온다?”
“예! 다녀오시지요!!”
“어, 그, 그래…….”
어딜 가도 미친놈은 피하라고 그랬다.
지금 눈이 반쯤 돌아간 로안이 딱 그 미친놈으로 보였기에 나는 살려달라는 단원들의 눈길을 외면한 채 문을 닫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잠깐.”
기사단 건물을 나오던 나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황녀님 궁전이 어디지?’
가장 중요한 마르비우스의 궁전 위치를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뭐,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알려주겠지.”
그렇게 머리에 눌러쓴 모자를 조금 더 삐딱하게 각도를 조절한 다음 건물을 나왔다.
또각─ 또각─
단화의 굽으로 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가는데.
스으윽.
‘……?’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에 의해 제한된 시야 아래로 드리운 짙은 그림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여인의 발끝.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 털이 보송한 검은 부츠와 다리의 라인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가죽 바지에 그 뒤로 보이는 잿빛 코트.
거기서 조금 더 고개를 들어 올리자, 딱 달라붙은 검은 셔츠와 터질 듯 부푼 흉부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가슴 부분은 안 그래도 거대한데 착용한 하네스로 인해 더욱 부각되어 자꾸만 시선이 그쪽으로 향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찬란한 금발을 끝으로 나는 내 앞에 나타난 여성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황태녀님……?”
“음. 좋은 아침이군.”
매끄러운 턱선과 오뚝한 콧날. 강직한 눈매가 매력적인 황태녀님께서 긴 속눈썹을 끔뻑이며 내게 인사해왔다.
“아, 예.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너를 만나러 왔다만, 어딜 가는 길인 모양이구나.”
“예? 아, 3황자의 궁으로 가려던 길이었습니다.”
“막내의 궁인가.”
“…그렇습니다?”
턱을 쓰다듬으며 잠깐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던 황태녀님께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내 옆에 바짝 붙어 서셨다.
“동행하도록 하지.”
“어, 예에… 그러시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태녀께서 가신다는데 내가 뭘 어떻게 거절을 하겠는가.
“사실 궁으로 가는 길을 몰라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음, 본의 아니게 도움을 주게 됐군.”
“영광입니다.”
“됐다. 나는 그런 아부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듣는 말이라 그런지…… 신기하게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아.”
“콜록…….”
“감기인가?”
“아, 아닙니다.”
무도회에서 공개적으로 이미 밝힌 바가 있는 고백이었으나,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와버렸다.
“내가 알려줄 테니 따라오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자연스럽게 손을 내미는 그 행동에 나는 오래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희고 고운 손을 살포시 붙잡아 버렸다.
“…내 손을 다 감싸다니. 기분이 묘하군.”
내 손바닥 안에 포옥 감싸인 손을 내려다보던 황태여께서 두 뺨에 옅은 홍조를 띄우고는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했다. 손을 붙잡은 나는 당연히 그런 황태녀님의 옆에 붙어 졸졸 걸음을 옮겼다.
“어제는 궁으로 출근하지 않았더구나.”
“아, 건강…… 상에 문제가 조금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 마탑주께서 올린 사유서를 아침에 읽어본 참이었다.”
다행히 숙취에 시달리긴 해도 할 일은 제대로 처리해주신 모양이다.
“원래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만나려고 했다만, 무도회에서 네가…… 음. 그대라고 하는 쪽이 좋은가?”
“예? 어, 그, 편하신 대로 불러주셔도 괜찮습니다…?”
“흐음, 이게 바로 그 ‘뭐든 좋다.’인가.”
“…그게 뭡니까?”
“……?”
내가 묻자, 황태녀님께서는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더니, 나와 똑같이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이셨다.
“사내인 그대가 모르면 누가 알지?”
“…그리 말씀하셔도 전혀 모릅니다만?”
“눈을 보니 거짓은 아니구나. 음, 그럼 유모가 내게 거짓말을 한 건가? 사내들은 여성에게 뭐든 좋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미 정해둔 답이 있다고 들었다.”
“아…….”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말을 이어받았다.
“제가 사막 출신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그도 그렇군.”
어떤 귀부인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도움이 되었길.
“그러면 편하게 부르도록 하마.”
“예. 황태녀님.”
“비엘.”
“예?”
“그도 싫다면 르비엘 황녀라 부르도록.”
“…마르비엘 황녀님으루 부르는 건 안 되겠습니까?”
“솔직히 그다지 입에 붙지 않아 좋아하지 않는다.”
“르비엘 황녀님으로 부르겠습니다.”
“그래.”
황태녀님께선 입꼬리를 아주 살짝 끌어올리고서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 저분은 그 청장…… 히익?!
-화, 황……!!
-저쪽, 저, 저쪽 길로 돌아들 갑시다!!
서로 호칭을 정리하고 얼마나 걸었을까.
무도회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보려고 다가오던 무리 들은 내 옆에 서 있는 황태녀님의 존재를 뒤늦게 깨닫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도망을 쳐버렸다.
“딱히 저들에게 해코지라든가 위협을 가한 적은 없다.”
“예? 아, 예.”
“…무섭지, 않은가?”
“뭐가 말입니까?”
“아, 아니다. 아무것도.”
내가 진심으로 무엇을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황태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급히 나로부터 시선을 피해버렸다.
‘마르비우스에게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르비엘 황태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사람 같았다.
“사실은 무도회에서 네가 마르비쿠스 그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걱정을 했다. 워낙 철이 없는 아이라 예전부터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질러 온 터라.”
“하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으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다. 마르비쿠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별났지. 사내이면서 어찌나 사람 만나기를 그리 좋아하던지. 그래서 질이 나쁜 녀석들도 주변에 가득하다.”
“그렇군요.”
나는 앞을 바라보며 걷는 황태녀님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
내 시선을 느낀 황태녀님이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급히 눈을 굴려 시선을 피했다.
“왜…… 그렇게 보는 거냐.”
“아니, 1황자의 나이가 황태녀님보다 조금 더 많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음, 그 말에는 공감합니다.”
우리 사랑스러운 아내들만 하더라도 나이가 세 자릿수가 넘는 사람이 여럿이다. 시론과 냐호를 제외하면 모두가 연상인 만큼, 나 역시 나이는 그냥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아무튼… 조심하라는 소리다.”
“예. 주의하겠습니다.”
“…그래.”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그녀의 눈썹이 아주 살짝 아래로 휘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 이유로 나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르비엘 황녀님.”
“뭐냐.”
힐끗 눈동자만 옆으로 굴려 나를 곁눈질하는 황태녀님께 조금 장난기를 담아 물었다.
“첫 만남에서는 제가 내려다보는 걸 굉장히 불쾌해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은 괜찮은 겁니까?”
“…그때는 조금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 혹시 마음 상했느냐?”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누가 뭐래도 내 무릎은 매우 가벼운 무릎이다.
더군다나 사내놈도 아니고 이렇게 아리따운 여인 앞에서 무릎을 살짝 굽힌 정도로 기분이 상할 사내놈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물론, 이쪽이 아닌 저쪽의 기준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다행──”
황태녀님!!
황성의 어딘가를 느긋하게 걷고 있던 우리는 쩌렁쩌렁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멜버른 경?’
근위 기사단장인 그녀가 몹시 곤란한 표정을 지은 채 빠른 걸음을 이용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태녀님!!”
“음. 날이 갈수록 점점 빨라지는 것 같군.”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멜버른 경은 황태녀님의 옆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장갑을 낀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황태녀님께 말했다.
“회의가 벌써 한 시간째 미뤄지고 있는 중입니다!! 빨리 돌아가시지요!!”
“한 시간 미뤘다면 조금 더 미뤄도 괜찮겠군.”
“도대체 그건 무슨 논리입니까.”
멜버른 경의 답답한 물음에 황태녀님께선 무덤덤한 얼굴로 어깨를 한 번 으쓱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붙잡은 손을 살짝 들며.
“보시다시피 에스코트 중이라서 말이지.”
“에스코…… 스, 스미스 경…?”
순간 날카로워진 눈으로 아래에서부터 훑어 올리던 멜버른 경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두 눈에 주고 있던 힘을 얼른 빼버리는 게 눈에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되니 기다려라.”
“아니, 그…… 하아……!!”
멜버른 경은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크게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에 황태녀님께서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붙잡은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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