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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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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리우스 제국
“…방음 설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
방음 설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내가 방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음.”
우선 양쪽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그러니까. 방음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게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다행히 청력에 이상은 없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차라리 청력에 문제가 있었으면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멜버른 경.”
“……예.”
상급자를 대하듯 고개까지 살짝 숙이는 그녀를 향해 나는 정답을 알 것 같음에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들으셨습니까?”
“…….”
대답 없이 조금 더 바닥과 가까워지는 그녀의 고개에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던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만에 하나라도 일어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군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마른세수를 끝마친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소문. 금방 퍼지겠죠?”
“저희는 물론이고 시종들 역시 입이 무겁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문제는 황태녀께서 이를 숨길 생각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점이겠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적인 이야기.
“정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귀족 회의에 얼굴을 비추셨으니, 내일 아침이면 제도 전체에 소문이 퍼져 있을 겁니다.”
땀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와 울긋불긋 달아오른 목덜미와 귓불.
그리고 풍겨오는 짙은 수컷 냄새.
들어올 때 단정한 모습이었던 르비엘은 사실 회의장을 나와 태양궁의 다른 방에서 말끔하게 단장을 끝마치고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경을 만나신 후로 황태녀께서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계십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께서는 결코 자신의 것을 타인과 공유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이리나.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몸가짐을 바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침실에서 여기사의 눈을 뽑아버리겠다고 날뛰던 르비엘의 모습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충고 감사합니다.”
“…모시겠습니다.”
멜버른 경은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고, 나를 성문 앞에 대기 중이던 황금 독수리 문양이 박힌 마차 앞까지 안내했다.
**
“바라신다면 내일 아침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순식간에 저택 앞에 도착한 마차에서 내린 나를 향해 멜버른 경은 그리 물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녀는 올바른 기사의 교본처럼 절도 있는 동작으로 내게 인사한 다음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차악!
마부가 신호를 보내자, 우리의 엘 만큼이나 덩치가 큰 네 마리의 말들이 힘차게 다리를 움직였고, 마차는 순식간에 저택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나는 완전히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철문을 열고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미스.”
“케르낙스!!”
막 산책을 끝내고 들어가던 참이었는지, 시론과 함께 서 있던 케르낙스를 향해 나는 얼른 뛰어갔다.
“춥겠다. 얼른 들어가자.”
“저기요. 나는 보이지도 않냐?”
“아얏.”
내가 곧장 케르낙스부터 챙기자, 옆에 서 있던 시론이 입술을 삐죽이며 내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그에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한 손으로 시론을 번쩍 안았다.
“그럴 리가요.”
“…꼬집기 전에 하면 좋잖아.”
“흐흐, 질투하는 모습이 귀여운 걸 어떡해?”
“뭐, 뭐래…….”
여전히 이런 류의 칭찬에 면역이 없어 금방 수줍어하는 시론의 얼굴에 나는 키스를 잔뜩 날린 다음, 그런 우리 둘을 보며 미소 짓는 케르낙스와 함께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래서?”
기분 좋게 식사를 끝낸 후, 황태녀에 대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시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또 세상 진지한 얼굴로 뭐라고 하기에 우리 말고 다른 녀언…… 큼!! 다, 다른 여자라도 임신시킨 줄 알았잖아.”
하마터면 시란표 꿀밤을 먹을 뻔한 시론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집착 좋지.”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맥주를 홀짝이고 있던 누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과연 언제까지 집착이 이어질까.”
“침대에서 하루만 제대로 굴러도 생각이 바뀔 거다.”
누님의 태평한 물음에 네메아가 장담한다는 듯이 그리 대꾸했다.
“야. 그래도 황태녀인데 하루는 좀 그렇지 않냐? 사흘은 버틸 거 같은데.”
“하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황태녀가 나로부터 며칠을 버틸지에 대한 내기가 시작되었다.
“저는 닷새에 걸겠습니다.”
“케르낙스?”
심지어 케르낙스까지 재미있다는 얼굴로 내기에 끼어들었다.
“그럼 나도 언니 따라서 닷새!”
“음, 저는 이틀에 걸겠어요.”
“시간 단위는 없나.”
“저는 하루에 걸겠습니다.”
케르낙스가 참여하자, 눈치를 보던 다른 아내들까지 모두 주섬주섬 금화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게 아닌가.
‘이게 맞나……?’
아니, 물론 지금 이 분위기가 싫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그저 혼자서만 끙끙거렸던 것 같아 조금 허탈해서 그렇다.
“정말로 복 많은 분이시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조용히 다가온 시스가 황태녀와 나로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있는 아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끄나풀의 심문을 위해 교황 아가사가 스미스님께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언제?”
“편한 시간대에 방문해 달라고는 했지만, 가급적 빠르면 좋다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하긴, 사안이 사안이니 빠르게 처리하는 게 좋긴 하지.”
끄나풀이 한 명만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일단 내일 저녁에라도 방문하겠다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아내들 앞에서는 세상 조신한 우리의 시스.
나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엉덩이를 살짝 토닥였다.
퍽!!
그리고 내 정강이를 걷어차는 시스.
물론, 간지럽지도 않았기에 나는 아내들의 토론 아닌 토론이 끝날 때까지 시스의 엉덩이를 느긋하게 음미했다.
**
고민이 무색할 만큼 평소처럼 즐겁고 행복한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타시지요.”
나는 어제와 같은 마차를 타고 저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멜버른 경의 손을 붙잡고서 마차에 올라탔다.
“멜버른 경.”
“말씀하시지요.”
마차가 출발하면서 내 맞은편에 앉은 그녀가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오늘은 피로가 조금 덜 해 보이시네요.”
“…예에.”
눈 아래의 다크서클은 여전했지만, 그 색이 매우 옅어졌고 푸석해 보이던 피부에도 생기가 어느 정도 돌아와 있었다.
“마사지를 권유해도 거절하시겠죠?”
“……그렇습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녀가 나를 위해 움직인 것은 사실이었고 그게 곧 피로의 원인이기도 했기에 나는 아쉽지만, 그녀가 곤란해지는 것을 바라진 않았기에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그녀에게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도착 전까지 몇 가지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대답해 드릴 수 있는 범위 내의 질문이라면 무엇이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보다 굳어진 얼굴에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 민감한 질문은 아닐 테니까요.”
“…죄송합니다. 경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정식으로 식을 올리시기 전까지는 황족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말씀드리고 싶어도 몸에 걸려 있는 제약으로 입이 떨어지지 않는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그런 제약이 걸려 있으셨군요.”
이건 또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만약에, 사술 같은 거에 걸려 발설하게 된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럴 일은 없습니다. 머리에 부정한 기운이 침투하는 순간 폭…… 큼, 숨이 멎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내라는 점을 의식해서 도중에 말을 순화한 것 같지만, 그 전에 튀어나온 ‘폭’이라는 한 글자만으로도 완성된 문장이 무엇일지 유추하는 건 내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무섭네.’
이쪽의 눈치를 살피는 멜버른 경을 위해서라도 나는 그 부분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안 그래도 어색한데 더 어색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헛기침을 짧게 내뱉으며 말했다.
“질문 말입니다만, 다름이 아니고 르비엘의 일정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오늘의 일정 말씀이십니까?”
“아뇨. 오늘은 저도 조금 바빠서.”
일단 이리나를 찾아가 붙잡아 둔 민트, 시나몬, 캐러멜을 만나봐야 했고, 오후에는 마르비우스를 찾아가 황태녀와 그 집착성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물어볼 예정이었다.
물론, 아드리안을 달래며 르비엘에게 며칠만이라도 손대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함께.
‘르비엘도 기분파긴 하지만, 아드리안에 비하면야…….’
장담하는데 르비엘 때문에 겨우 얻게 된 나와의 시간을 빼앗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황태녀고 뭐고 냅다 묻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묻어버린다는 건 무언가의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어디 땅에 묻어버린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이미 퇴근 후에 황제를 알현하기로 어제 약속을 잡아두기도 했고.
“그러면……?”
“아, 특정한 날을 콕 찍어 알려달라는 게 아닙니다. 일정이 없는 날. 그게 아니면 오전만이라도 일정이 비어 있는 날이 있다면 알려주시겠습니까?”
“…일정이 비는 경우는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경께서 바라신다고 말씀드린다면, 정오까지는 일정을 조율하실 것 같습니다.”
“아, 그러면 오늘 제가 직접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시론과 누님이 그러했듯.
다른 아내들과 화목하기 위해서라도 르비엘의 성격을 길들일 필요가 있었다.
“……경.”
어떤 식으로 말해야 최대한 많은 시간을 얻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멜버른 경의 시선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지금 얼굴이 굉장히 창백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경.”
“듣고 있습니다.”
무척 걱정되는 얼굴색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 일단 하려는 말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살려주십시오.”
“……예?”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부탁에 나는 두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멜버른 경은 세상 진지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차의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제가 실언했습니다. 경께서 부탁하신다면 황태녀께서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경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실 겁니다.”
‘아…….’
그제야 살려달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나는 차마 그녀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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