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656화 (656/771)

==========

카인G크리티카//감사합니다~~

-=-

튤리우스 제국

“모시러 오겠습니다.”

“예. 그럼.”

남몰래 감사의 눈물까지 보였던 멜버른 경은 나에게 더욱 정중히 고개를 숙인 후 태양궁을 향해 멀어져 갔다.

‘내가 사람 여럿 잡을 뻔했네.’

듣자 하니, 두 달 전부터 올라와서 알현을 기다리고 있던 백작 위 이상의 귀족들의 수만 열이 넘는다고 하더라.

그리고 내 말 한 마디에 그 열 명의 기다림이 며칠은 더 밀릴 뻔한 것이다.

멜버른 경과 근위 기사들은 르비엘을 뜯어말리기 위해 눈물 나는 사투를 벌였을 테고.

‘일단 장인어른이 남긴 메시지만 확인하고, 르비엘부터 어떻게 하든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기사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충!!””

오랜만에 들어보는 우리 단원들의 우렁찬 경례 소리와 뭔가 굉장히 초췌해 보이는 로안이 나를 반겼다.

“너 얼굴이 왜 그러냐?”

“……단장님이 그걸 물으시다니, 단장님의 양심은 안녕하시답니까?”

“안녕 못하시겠다는데?”

“그럴 것 같았습니다.”

굉장히 꿀밤 마려운 대답이었지만, 찔리는 게 많았기에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반갑네.”

““그렇습니다!!””

아주 군기가 바짝 든 우렁찬 대답에 절로 흡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우리 부단장이야. 단원들 상태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

“…그럼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러는데 오전 업무만 하고 오후에는 퇴근해 봐도 되겠습니까?”

“뭐, 오늘은 좀 쉬는 게 좋아 보이긴 하네.”

“역시 단장님. 존경합니다.”

너무나도 속내가 훤히 보이는 반응에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한테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면 됩니까?”

“맞고 싶냐? 악수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럼 뭡니까.”

“뭐긴. 오후에 가서 쉰다며? 혹시나 카지노에 갈 수 있으니까 회원증 나한테 맡기고 조퇴하라고.”

“…생각해보니, 부단장인 제가 단장님보다 일찍 퇴근하는 건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휴게실에서 잠깐 눈만 붙이고 정시 퇴근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너 존나 안 좋아 보이거든? 회원증 반납하고 퇴근해. 내일 출근하면 돌려줄게.”

“단장님.”

“어.”

터억!!

녀석은 단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다신 잔머리 안 굴리겠습니다.”

“잘하자?”

“예…….”

나는 침을 꼴딱 삼키며 우리 둘을 힐끗거리고 있는 단원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 다음, 로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쟤들 할 거 없지? 내가 이리나 경한테 말해둘 테니까 검은 갈기 사람들 나오면 딸려 보내서 순찰 좀 시켜라.”

“…저도 나갑니까?”

“오전, 오후 둘다 자리를 비워야 하거든. 나 대신 얌전히 집무실에 앉아 있어라.”

“단장님. 존경하고 있습니다.”

“시끄럽고. 징그러우니까 그만 좀 놔라 새꺄.”

“큼큼…….”

헛기침을 내뱉으며 무릎을 털고 일어나는 로안.

“출근하자마자 나가는 것도 좀 웃기긴 한데, 협조 잘하고. 이상한 소리 들리면…… 알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라도 거들먹거리는 단원이 있다면 제가 잘 교육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히, 히익!!

-단장님!!

-사, 살려 주십시오!!

적대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더라 살려달라니.

그리고 진짜로 살기 원했으면 조용히 찾아와서 부탁하든 했어야지.

“어제 붙잡은 이들의 심문으로 바쁘실 텐데 얼른 가보시지요.”

“어, 그래. 걸을 순 있어야 하니까 다리는 남겨두고.”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단장님게 배운 게 있는데 설마 실수하겠습니까.”

내가? 뭘?

한 거라고는 머리를 쥐어박고 정강이를 걷어차고나, 목검 찜질을 해준 게 전부인데.

“그래. 퇴근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하고.”

“예. 다녀오십시오.”

“오냐.”

나는 로안의 어깨를 한번 더 두들겨 준 다음 건물을 나왔다.

**

-야! 야! 눈깔아!!

-다들 동작 그만!!

-고개… 아니, 허리 숙여!!

뭔가 평소와 다르게 기분 나쁜 끈적한 시선들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더니, 검은 갈기 기사단의 연무장 안으로 들어선 후에야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

멀리서부터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시끌벅적했던 연무장은 내가 들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리나의 친구이자 연인으로 만들기 위해 단원들이 내게 환호하거나 호의를 보였던 걸 생각하면 너무나도 극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빨리 해결해야 할 거 같은데.’

나는 감히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는 듯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는 기사들의 모습에 걸음을 조금 더 빨리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헉?!”

“죄, 죄송합니다!! 숙여!!”

서류를 가지고 내려오던 여성이 흠칫했고, 그 옆에 있던 기사가 그녀의 머리를 감싸며 내게 고개 숙이도록 만들었다.

“괜찮습니다.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답도 하지 마세요.”

나는 왠지 모르게 몰려오는 미안함에 계단을 다섯 칸씩 뛰어다가 얼른 이리나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리나!! 들어갈게?”

-어? 자, 잠…….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나는 냅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지 않으면 복도에 서 있던 기사들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생각해보니까 이리나쪽 애들은 모두 평민 출신이라 더 그런 거 같네.’

예를 넘어 겁먹은 듯 보이는 태도에 이상함을 느꼈는데 아무래도 태생적인 신분의 차이가 더해진 탓으로 생각됐다.

“너, 그, 아앗!!”

“……?”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안도하며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들려오는 이리나의 비명에 흠칫 정신을 차렸다.

“자,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널브러진 부츠와 한쪽만 신겨져 있는 양말.

그리고 의자에 걸쳐진 외투에 풀려있는 단추.

“이 추운 날씨에 옷은 왜 벗고 있었냐?”

“……집무실은 덥거든?”

“아, 그렇지.”

나는 힐끗힐끗 내 눈치를 보면서 얼른 옷매무새를 바로하는 이리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소파에 편히 앉았다.

“…….”

“어제는 잘만 말하더니. 갑자기 왜 눈치를 보고 그러냐?”

“그, 그거야…….”

“아니. 잠깐. 야야, 왜 갑자기 울려고 그래?”

“아, 안 운다… 누, 눈에 땀이…… 훌쩍….”

나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 건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콧물까지 훌쩍이기 시작한 이리나의 모습에 당황하며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휴, 왜 그래? 응? 자, 울지 말고. 여기. 흥!”

“……흐응!!”

늘 챙겨 다니는 손수건을 코에 가져대자 이리나는 정말로 거기다 코를 시원하게 풀어버렸다.

“내가 황태녀님의 부군이 된다는 것 때문에 운 거야?”

“……!!”

품에 안겨서 어쩔 줄 몰라 손을 꼼지락거리던 그녀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짙은 피부색 위로도 붉어진 게 보일 정도로 얼굴에 화사한 열꽃이 피어올랐다.

“울지 말고. 너랑 내 사이가 달라지는 건 아니잖냐.”

“……안 울어따고.”

“안 울어따고~”

“야아!!”

“어이쿠.”

나는 놀란 척 뒤로 물러나며 웃었다.

“팔팔하네.”

“…뭐래. 피곤해 죽을 거 같은데.”

소매로 얼른 눈가에 남아 있는 눈물 자국을 지워낸 그녀가 입술을 삐죽였다.

“아……!!”

“왜?”

“그, 그거!!”

“그거?”

“그거!! 내놔!!”

“어엇…….”

이리나는 본인의 콧물이 잔뜩 묻은 내 손수건을 쏜살같이 빼앗아 갔다.

“이, 이건 내가 깨끗하게 세탁해서 돌려줄게.”

“그냥 콧물 좀 묻은──”

“아아아아!!”

“어후, 귀청 떨어지겠네.”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은 듯한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리나.”

“뭐, 왜, 왜……?”

“내가 다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괜한 걱정하지 말라고.”

“거, 걱정은 무슨 걱정……?”

“아니면 말고.”

“으읏.”

나는 나와 같은 그녀의 검은 머리칼을 조금 거칠게 헝클어트렸다.

“일단 어제 붙잡았다는 애들한테 데려다줄래?”

“……따라와.”

헝클어진 머리를 슥슥 손으로 정리하며, 이리나는 내 손을 붙잡았다.

“치, 친구끼리 이 정도는…… 평범하잖아.”

“그렇지. 우리 사막에서는 평범하지.”

“…맞아!!”

금방 내가 변명거리를 만들어주자, 이리나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럼 안내 부탁한다?”

“지하라서 딱히 안내하고 말고도 없거든?”

드디어 완벽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리나는 내 손을 당기며 지하로 안내했다.

**

“원래는 안 되는 거야.”

“고마워.”

“……빨리 나오기나 해.”

지하 감옥에 도착한 나는 이리나의 도움을 받아 감옥에 혼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리나가 간수 역할을 겸임하고 있던 기사들을 데리고 올라갔고, 나는 가장 깊숙한 곳에 갇혀 있는 민트, 시나몬, 캐러멜을 만나기 위해 안으로 걸었다.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두 손으로 마른세수하듯 얼굴 근육을 유연하게 풀어주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

“……어?”

“스, 스미스 경?”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그녀들이 고개를 들더니, 내 모습을 알아보고는 허겁지겁 바닥을 기어 이쪽으로 다가왔다.

“스미스 경!!”

“저희를 구해 주시러 오신 거군요?!”

“약간의 오해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죄를 짓지 않았단 말입니다!!”

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기 위해 열심히 손을 뻗는 그녀들.

나는 정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감을 남겨두고 철창 앞에 멈춰서서 그 셋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화르륵──!!

“……?!”

“부, 불?”

“마법, 마법사……?”

가랑이로부터 피어오른 강렬한 불꽃에 놀란 셋의 입이 잠깐 머뭇거렸고, 나는 복도를 걸으며 가다듬었던 목을 한껏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진노하셨노라.”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이빨on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