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660화 (660/771)

==========

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

튤리우스 제국

“막내의 첫날밤을 내게 팔겠느냐?”

막내.

황녀와 황자.

모두 통틀어 가장 나이가 어린 마르비우스.

“콜록, 콜록──?!”

“이런.”

황제가 원하는 첫날밤의 상대가 마르비우스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반사적으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덩치는 곰 수인 같은 녀석이 가슴은 토끼 수인보다 못하구나.”

“케흑, 큽!!”

너무 놀라면 가슴이 진정이 안 된다고 그러더니,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러했다. 기침이 조금 멎으려니 이제는 딸꾹질이 그 뒤를 잇다니.

“후우, 후우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까스로 진정된 나는 어지러워진 호흡을 정돈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아으음~”

기침을 토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던 황제는, 어느새 의자의 팔걸이에 머리를 눕힌 채로 삐딱하게 누워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과 겨우 되찾은 생기마저 사라지면서 권태로움만 남아버린 죽은 눈동자.

“그래서. 막내의 첫날밤을 팔 건가?”

나른하게 늘어지는 끈적한 목소리.

황제의 되물음에 나는 직감했다.

“…팔겠습니다.”

저건 질문을 가장한 강요라는 걸.

“흐음~ 그래?”

“예.”

내가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는 그제야 다시 조금 사람 같은 눈으로 돌아와 푹신한 소파에 바로 앉아 내게 다가왔다.

“어디 말해보거라.”

“그 전에……. 마르비우스가 여자라는 사실을 언제부터 알고 계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아, 난 또 뭐라고. 그거야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는 게 당연하지.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나?”

권태로움과 흥미. 그리고 짜증.

살짝 내려가는 눈꼬리와 날 선 목소리.

황제는 방금 내 질문에 짜증을 느꼈다.

“뭐, 막내 본인도 널 만난 후에야 본인이 여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자각한 것 같긴 하던데 말이야. 부모가 자식의 성별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아, 물론 여섯 번째 남편이 꽤 노력을 하긴 하더군.”

스윽.

겨우 내 옆에 엉덩일 붙이고 다시 앉았던 황제는 조금 전처럼 핝고 다리를 끌어안으며 무릎 위에 턱을 괴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봐. 황성의 주인은 황제인 나야. 그리고 우리 머저리 같은 남편들의 권력 또한 나로부터 나오는 거지.”

마르비우스의 첫날밤을 팔겠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 조금은 밝아졌던 황제의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메마른 사막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제국민 중에서 내 명령을 거스를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아.”

많은 이들이 간절하게 바랐을 권력을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황제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권태로움만이 엿보일 뿐이었다.

‘…지릴 거 같은데.’

손바닥과 등허리에는 이미 식은땀이 흥건히 배어 나와 바지와 셔츠가 축축하게 젖은지 오래였다.

내가 여성을 눈앞에 두고 이토록 긴장한 것은 처음 시론과 만났을 때와 발정 난 누님에게 덮쳐졌을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황제는 그 두 상황을 합친 것보다 더한 긴장감을 내게 안겨줬다.

바짝 마른 입술을 똑같이 바짝 마른 혀로 핥은 다음.

“마르비우스와의 첫만남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오, 그래. 첫날밤보다는 그쪽이 더 길겠어. 그래. 말해봐.”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던 건조한 얼굴을 하고 있던 황제가 언제 그런 얼굴을 했냐는 듯, 처진 눈꼬리로 샐쭉 웃으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에 나는 르비엘이 일 초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시스에게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골디아스 왕국에서 마르비우스와의 첫 만남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하하하!! 그래. 겨울검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지.”

마르비우스가 아르델과의 친분을 맺기 위해 접근했다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붙여보고 날카로운 얼음 칼날에 위협당했다는 이야기에 황제는 화를 내긴커녕 오히려 진심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벌어졌던 이야기로, 마르비우스와 관계를 맺은 후에 마르비우스가 직접 내게 털어놓은 것 중 하나였다.

“흐음~ 하루가 멀다고 궁에 처박혀 지내더니, 그래도 황족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머리는 또 비상하군.”

황자의 신분으로 노예였던 내게 굉장히 관대하게 대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황제는 마르비우스를 그리 평가했다.

“푸흐흐흐!! 자, 자빠져?! 푸하하하!!”

마지막으로 마르비우스가 기승위 자세로 내 위에 올라탔다가 젖은 욕탕의 바닥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처녀를 잃어버린 것에 배를 부여잡으며 깔깔 웃었다.

“하아, 하아, 아하아~ 워낙 무드라고는 없는 녀석이니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이건 정말로 상상 이상으로 어처구니가 없네.”

어느덧 촉촉해진 눈가를 손등으로 닦아낸 황제가 다시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나를 삐뚜름하게 돌아봤다.

“아주 만족스러운 이야기였다. 그러니 값을 아주 후하게 치르마.”

“그럼…….”

이미 정해져 있는 선택지.

그리고 기다리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황제의 성격.

“황제 폐하의 비고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허락하마. 그럼, 내 무료함을 달래준 것에 대한 상은 이것으로 끝이고, 막내의 이야기는 얼마에 팔겠느냐?”

“죄를 지은 1황자를 엘프의 숲으로 보내주십시오.”

“흠~ 황족을 귀쟁이들의 숲으로 보내달라…….”

황제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안 그래도 아래로 쳐져 작게 보이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뜬 상태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못난 쓰레기긴 하더라도 내 핏줄이라는 것은 알고 하는 소리겠지?”

“그렇습니다.”

“그래. 알고 하는 말이렸다…… 푸흐… 좋다. 마르비쿠스 그놈을 귀쟁이의 숲으로 추방해 주마.”

“감사합니다.”

“정당한 값을 치렀을 뿐인데 감사라니 우습구나.”

조소인 건지, 아니면 정말로 그냥 웃겨서 웃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오묘한 미소에 나는 마른 입술을 마른 혀로 핥았다.

“재미난 녀석. 나 같았으면 마대륙으로 가는 길을 열어달라 했을 텐데 말이야.”

“어…….”

“곧 죽어도 마르비쿠스 그놈을 물고 늘어지다니.”

끌어안은 다리의 무릎 위에 턱을 괸 상태로 고개를 삐뚜름하게 틀어 나를 올려다보던 황제가 다시 키득거리며 웃었고, 나는 그제야 황제의 웃음이 그리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막내에서 마르비엘로 옮겨탄 건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올바른 선택을 내렸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게 나오진 않지. 그럼, 안 그래도 지루한 인생이 더더욱 지루해질 테니 말이야.”

스르륵.

점차 옆으로 기울어지는 황제는 결국 푹신한 소파에 삐딱하게 누워 두 다리를 내 허벅지 위에 올렸다.

“마르비엘이 나를 대신해서 대부분의 일을 떠맡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내가 거둬들이면 조금 힘이 강한 계집에 불과하다.”

툭. 툭.

내 허벅지에 올린 발의 뒤꿈치로 내 다리를 가볍게 두들기며 황제는 말을 이었다.

“네가 얻고자 하는 게 있었다면, 이상한 헛짓거리를 할 게 아니라 나를 곧장 만나러 왔었어야지. 충분히 다리를 놓아줄 분이 옆에 계셨을 텐데 말이지.”

“그건…….”

“됐다. 무슨 사연이 있건 내 알 바는 아니니까.”

툭.

내 허벅지를 두들기던 황제의 발길질이 멈췄다.

“아쉽군. 아쉬워.”

스으윽.

허벅지에 올라와 있던 황제의 다리 하나가 복부를 시작으로 천천히 쓸어 올라와 끝에는 내 턱 끝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옆으로 틀게끔 만들었다.

“이대로 가둬두고 사육하고 싶은데 말이지.”

“…….”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에 어울리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황제.

피식.

작게 코웃음 친 황제가 내 턱을 받쳐들고 있던 발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정도로 탐욕적이지 않으니, 너는 내 소탈함에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배움이 빠른 아이는 싫어하지 않아.”

황제는 잠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키더니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괜히 들쑤셔서 귀찮게 만들지 말아라.”

“……조금 더 정확히 말씀해주신다면 주의하겠습니다.”

그에 황제가 몸을 돌려 내 앞에 섰다.

나는 당연히 황제를 올려다봤고, 황제는 내 두 뺨을 제 손으로 감싸며 나를 내려다봤다.

“지금 네놈이 들쑤시고 있는 게 뭐겠느냐. 벌레처럼 음침한 곳에 웅크려서 알 까는 게 특기인 사교도들 말이다.”

“……귀찮으시지 않도록 한 번에 깔끔히 해결하겠습니다.”

“아니. 아니야.”

꽈아악!!

당장이라도 내 광대를 으스러트릴 것처럼 힘을 꽉 준 황제가 말했다.

“내가 그깟 벌레를 어찌하지 못해 내버려 둔 것 같으냐?”

“……큭.”

“이런.”

순간 눈앞에 벼락이 내려친 듯 시야가 점멸하자, 때마침 황제가 손아귀에서 힘을 빼내어 아찔한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파하도록 하지. 더 있다간 망가뜨려 버릴 것 같으니 말이야.”

황제는 사과는커녕 조금의 미안함도 내보이지 않았다.

“쉰내 나는 창고는 마르비엘에게 일러둘 테니, 원할 때 들어가도록 해라.”

“…황태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 마르비엘 녀석에게는 오지 말라고 일러뒀으니, 백날 기다려도 오지 않을 거다. 그러니 이제 나가라.”

귀찮다는 듯이 손을 훠이 저으며 그대로 몸을 돌리는 황제.

나는 욱씬거리는 양쪽 광대를 감싸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금씩 멀어지는 황제를 향해 인사를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느릿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던 황제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작은이모님께 안부 전해다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미요오오옹....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