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
튤리우스 제국
“우웁, 우웨에엑…….”
속에 있는 건 진즉에 다 게워 냈음에도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와 죽을 맛이다.
‘어떻게 다 내려오긴 했──’
“우웁…….”
나는 벌름거리는 목구멍 위로 올라왔던 신물을 꾸역꾸역 되삼키며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난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양쪽 발바닥을 희생한 끝에 나는 무한히 이어질 것 같던 길고 긴 수렁의 밑바닥에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바닥을 딛고 선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아직까지 주변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제대로 눈에 담지 못했다.
“진짜 눈알이 빙글빙글 도네.”
어디서 흘러나오고 있는 빛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무저갱처럼 보이던 수렁의 끝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아주 밝은 곳이었다.
문제는 커다란 회오리를 타고 내려온 여파로 지금 내 눈알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빙글빙글 좌우로 회전하고 있는 탓에 뭔갈 제대로 눈에 담을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나마 천장이 없어서 다행이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처럼, 아래에서 올려다본 위쪽은 빛 한점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보였다.
덕분에 눈알이 핑그르르 돌고 있음에도 어두컴컴한 천장을 올려다 보고 있을 때는 상대적으로 어지러움이 덜 했다.
그냥 눈을 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두 눈을 감아도 보았지만, 두 눈을 감는 순간 구역감에 수십 배로 증가해 아주 기겁했다
“어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새까만 천장 위로 왼손을 들었고, 드디어 손가락이 열 개가 아니라 다섯 개로 보였다.
“끄으응.”
사람이 아프면 아무것도 안해도 체력이 방전된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단순히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팔로 바닥을 짚어야만 하다니.
“후, 몇 년 만에 멀미인지 모르겠네.”
나는 숨을 크게 고른 다음.
“…이건 또 언제 다 확인해 본다냐.”
초점이 돌아온 눈으로 드디어 주변을 제대로 살폈고, 정확히 사람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틈을 간격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며 중심부로 이어져 있는 석판들의 위용에 살짝 질리고 말았다.
심지어.
“저 문들은 또 뭐다냐.”
벽에 딱 달라붙어 빙그르르 내려가던 계단들이 사라진 대신, 그 자리에는 일정 간격으로 굉장히 어디서 많이 본 형태의 문이 달려 있었다.
진짜 여러 의미로 사람을 질리게 하는 장소였다.
“끄응.”
하도 비명을 질러서 그런지 혀가 바짝 말라 갈증이 심하게 났다.
그뿐 아니라 지독한 멀미로 언 몸에서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러나왔고, 그렇게 나온 땀과 오일이 섞여 지금 굉장히 미끌질척찝찝한, 아주 뭣같은 감촉 때문에 실시간으로 기분이 저조 되는 중이었다.
“젠장. 이건 왜 부위 조절이 안 되는거냐고.”
우선은 오일 스킬을 비활성화시킨 다음, 나는 발바닥을 벽에 가져대고 몸을 대굴대굴 굴렸다. 다른 부위는 몰라도 발바닥만큼은 멀쩡해야 했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일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니.
“우웁…….”
겨우 진정됐던 속이 다시 울렁거릴 즘이 되어서야 내 발바닥은 더럽게 성능 좋은 오일막을 벗겨낼 수 있었다.
“하아, 두 발로 선다는 게 이렇게 벅찰 일이었나.”
마음 같아서는 발바닥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흐읍, 후우~”
나는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으며 여러모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잡생각은 그만하고 장인어른 흔적부터 찾아야 한다.’
벽에 달린 수십 개의 문들도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은 황태녀와 혹시 모를 황제가 이쪽으로 오기 전에 장인어른이 남긴 메시지를 확인하는 게 급선무다.
“근데 진짜 더럽게도 많네.”
대충 봐도 수백 개는 될 것 같은 석판들.
그중에서 단 하나를 찾아야 한다.
‘뭐. 앞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대충 어디 있을지 예상은 가는데 말이지.’
나는 중심부를 향해 원을 그리며 나열되어있는 석판의 틈을 걸었다.
신의 힘이 닿지 못하는 장소.
그렇다면 구태여 복잡하게 꼬아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남들에게 들키지 않을 장소에 보관해 둔 거라면야.
“첫 번째 석판이 정답인 게 뻔하지.”
그 외의 석판들은 골디아스 왕국에서 우연히 들렸던 유적에서 발견했던 것처럼 단순히 신이라는 작자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눈속임일 것이다.
‘시스야. 네 생각은 어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석판 사이를 몇 걸음 정도 걸었다.
‘시스야?’
그러나 몇 번을 불러도 시스로부터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거…….”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평소처럼 시스가 그냥 내 말을 씹어 먹었다고 생각할 테지만, 지금은. 아니, 이 장소 자체가 평범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시스템 창.”
【갓-컴퍼니 – 파견사원(서민수)】
『이름 : 서민수. 나이 : 26세
성별 : 남성. 직급 : 차장(파견)
사원평가 점수 : 0점(평가 없음)(?)
사원활동 점수 : 1,343점( - )(?)』
【서민수(차장) 평점】
◎교류 회수 10회
◎평점 등록 2회
◎평균 평점 0점
《교류하기》(가치점수)
《지원 능력》
◎ 성물 창조(?)
·
·
·
《스킬》
◎ 우리 아이 뼈 튼튼(P)
◎ 뒷처녀 감별사 (P)
◎ 암컷 관통(A)
◎ 최후의 한 방울까지(P)
◎ 내 몸은 오일로 되어있다(A)
“시스템은 정상, 스킬도 제대로 발동되는데…… 시스와의 연락만 안 닿는 건가?”
우선 나는 이곳에서 시스의 도움이나 의견을 구할 수 없다는 쪽으로 생각하며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펼쳤던 창을 옆으로 밀어버린 다음 나는 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시스와 연결이 안 된다는 건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것도 있지만, 위쪽에 있는 르비엘이 언제 깨어나는지. 또, 이쪽으로 출발을 했는지에 대해 알 수 없게 된 것이기도 했다.
‘그때도 나보다 한참 먼저 일어나서 귀족들과 회의를 하고 돌아왔었지.’
나는 르비엘이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끄응…….”
게다가 내 어깨가 워낙 넓어 자칫 석판에 부딪힐 수 있었기에 뛰지도 못했다.
그래도 아주 못 지나갈 정도는 아니었기에 대충 게처럼 옆으로 걷는 방법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중심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정답처럼 생겼네.”
한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다른 석판들과 달리,
석판으로 만들어진 원의 중심부에 놓여 있는 내 키보다 머리 두 개 정도 큰 석판 하나.
나는 글자는커녕 작은 흠집조차 나 있지 않은 석판 앞에 섰다.
툭. 툭.
손바닥으로 만져도 봤고, 살살 더듬어도 봤다.
“…어떻게 쓰는겨?”
엘프의 숲에서는 세계수인 엘이 직접 도움을 주었다.
도움을 주었다기보다는 맡고 있던 걸 돌려줬다는 게 조금 더 옳은 표현이긴 하지만.
나는 맨들맨들 만지는 맛이 좋은 석판의 겉면을 더듬거리며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
때려도 보고, 기도도 해봤으며.
“흐읍!!”
석판에 몸을 밀착한 다음, 방금 막 회복된 따끈따끈한 신성력을 불어넣어도 봤다.
파직──!!
“어억?!”
물론, 불어넣는 과정에서 시스의 머리카락이 불타버렸던 것처럼 스파크가 일어나 전달되진 못했지만.
“…걍 다 밀어버려야겠는데?”
스파크 때문에 반쯤 타버린 자지털에서 탄내가 올라와 안 그래도 나쁘던 기분이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시발. 이게 아닌가?”
나는 진지하게 반들반들 빛나고 있는 석판을 노려봤다.
‘마력 주입은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닌 거 같고.’
왜냐면 이 전에 들렸던 곳이 엘프의 숲이었기 때문이다.
장인어른의 첫 번째 안배가 세계수의 신성력이었다.
그런데 뻔히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소에 그런 기믹을 숨겨뒀을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감은 이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말이지…….’
나는 아직까지 오일 때문에 미끌거리는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석판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아니, 돌려고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아니, 이 경우에는 그냥 내가 등신인가?
내가 보고 있던 맨들맨들한 면의 바로 뒤에 낙서처럼 보이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설마 이걸 해석하라는 건 아니겠지?’
머리로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내 감은 전혀 반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저번처럼 영상으로 알려주면 어디 덧나나?”.
종이 한 장 없는 알몸에 파견 사원 채팅창으로는 난생 처음보는 문양을 메모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뒤로 멀찍이 물러나 성물 창조를 도면 제작 창을 활성화 시켰다
“이거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새하얀 도면 위로 나는 열심히 석판의 문양을 옮겨 그렸다.
‘아마도 이건 시스가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단 말이지.’
장인어른이 뜬금없이 저런 문양을 석판에 새겨뒀을 리가 없다.
분명 저 문양들을 해석하면 장인어른이 나에게 남긴 메시지로 이어질 거다.
“이거라면 들킬 일도 없고.”
“뭐가?”
“히이이익?!”
뒤에서 들려온 서늘한 음색에 나는 냅다 앞으로 몸을 굴렸다.
“우푸후웁──!!”
단, 의도한 것과 다르게 덕지덕지 발려있는 오일 때문에 머리 대신 얼굴로 바닥을 굴렀다.
“꺄하하하!!”
“…….”
아프진 않지만, 놀랐던 마음까지 가라앉힐 정도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나는 괜히 코를 문지르며 조심스럽게 뒤돌았다.
“아하하!! 아하! 아, 아앙~ 배 아파!!”
웃고 있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는 날카로운 눈매와 짙은 눈썹.
날렵한 턱선에 뚜렷한 이목구비.
‘은발…… 아니, 백발인가.’
찬란하게 빛나는 새하얀 머리칼은 분명 아르델과 아르델라의 것보다도 눈부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름 모를 여인의 머리칼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기보다는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하아~ 미안. 초면에 너무 웃어버렸다.”
한참이나 웃던 여인은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초대 황제…… 이십니까?”
나도 모르게 나와 버린 말.
그만큼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의 외모는 짙은 눈썹을 제외하면 황제와 너무나도 닮아 있──
“아닌데?”
“…….”
나는 조용히 바닥에 엎드려 죽은 척을 시전했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쪽팔림은 사람을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