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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672화 (67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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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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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리우스 제국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모두 들어준 르비엘이 고개를 들었다.

“자길 수호자라고 자칭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렇습니다.”

“거기다 어머님을 무척이나 닮았고?”

“눈썹이 조금 더 짙긴 했는데, 그것만 빼면 완전.”

“으음…….”

르비엘의 예쁜 이마가 살짝 구겨졌고, 나는 습관적으로 허리에 두른 손을 뻗어 르비엘의 이마를 살짝 눌렀다.

“……?”

“예쁜 이마에 주름 생겨요.”

“…음.”

똑같이 나를 끌어안고 있던 르비엘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제 손으로 이마를 슥슥 문질렀다.

“우선, 나는 스미스 네 말을 믿는다.”

내 말을 충분히 의식해준 르비엘은 눈에 힘을 뺀 상태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 이외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네 말대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게 자유롭다면 갑자기 모습을 감춘 건 내가 나타났기 때문이겠지. 무엇보다 네 손에 묻은 피가 내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 걸 보면 확실히 뭐가 있어도 있는 존재인 건 분명하다.”

르비엘은 내게서 슬쩍 떨어지더니, 본인이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 나에게 내밀었다.

“그, 이제는 조금 가리는 게 좋겠구나.”

“예? 아, 맞다.”

르비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인 나는 다시 내가 옷을 홀라당 벗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르비엘의 망토를 허리에 휘감았다.

‘어후, 치마는 죽어도 못 입겠네.’

차라리 홀딱 벗는 게 낫지.

치마처럼 늘어진 망토 아래로 서늘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데 그게 참 사람 기분을 오묘하게 만들었다.

“크흠.”

묘하게 불편해진 나와 다르게 한결 표정이 부드러워진 르비엘은 기침을 몇 번 토하더니, 분위기를 다시 환기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스미스 네가 만났다던 수호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자리를 피하는 방법이 가장 빠를 것 같구나. 이유가 어찌 됐든 나를 피한 건 분명해 보이니 말이다.”

르비엘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나는 잠깐 올라가 있도록 하마.”

“괜찮습니다.”

스스로를 수호자라 자칭했던 그녀가 호의적이었다면 모를까.

일방적 소통에 주먹이 먼저 나가는 상대를 굳이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 그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내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금방 기쁜 표정을 짓는 르비엘이 너무 귀여워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크, 크흠!! 그, 우, 우선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확인해야 할 게 있다면 그것부터 확인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이, 이런 거야 올라가서도 할 수 있으니…….”

수줍게 나를 배려하는 그 대답에 나는 빨갛게 달아오른 르비엘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웃었다.

“볼 일은 다 끝냈습니다.”

“…그렇느냐?”

“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저 벽에 나 있는 문들 있잖아요. 저 안쪽을 조금 둘러봐도 괜찮을까요?”

“으음……. 보는 건 상관은 없지만, 그다지 추천하진 않는다. 솔직히 보지 않았으면 해.”

“그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은데요?”

“…짓궂은 녀석.”

르비엘은 자연스럽게 내 손을 붙잡았다.

오일 때문에 끈적끈적할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르비엘.

“시간이 빠듯해서 하나밖에 소개해주지 못할 것 같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기회가 되면 나중에 폐하게 다시 한번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설령 허락해주지 않으시더라도 조금만 인내하거라. 내가 황좌에 앉으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이뤄줄 테니까.”

보석처럼 예쁜 눈을 크게 뜨고 아직 제대로 된 민낯을 보지 못한 젖가슴을 당당하게 앞으로 내미는 르비엘.

나는 얼른 칭찬해 달라는 기운을 마구 내뿜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르비엘.”

“……?”

기분 좋게 내 손길을 느끼던 그녀가 고개를 살짝 치켜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번처럼 누가 제 몸을 봤다고 눈을 파내야 한다느니, 죽이겠다. 뭐 이런 짓은 하시면 안 됩니다.”

“…….”

“대답.”

“……응.”

정말로 싫은데 마지못해 대답하는 아이처럼.

르비엘은 왼쪽 뺨을 살짝 부풀린 채로 대답했다.

“그리고 아까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한테는 이미 다른 아내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소개시켜 드리겠지만, 사이좋게 지내셔야 해요?”

“솔직히 누군가와 널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싫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끼어든 것이니…….”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내 가슴에 기대었다.

“정말로 불합리한 상황만 아니라면 네 아내들에게는 모두 양보하도록 하마.”

아름다운 얼굴로 토라진 아이의 얼굴을 연기하는 르비엘의 모습에 나는 살짝 놀란 눈으로 그녀의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렇게 쉽게 양보해주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어요.”

“…내 남자에게 다른 암컷이 덤벼든다면 찢어 죽여 마땅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의 경우이지 않느냐.”

“역시.”

“……?”

르비엘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역시 마르비엘이랑 자매가 맞구나.’

조금 어긋난 부분도 있지만, 생각하는 게 우리 막내 황녀님과 똑같았다.

“그러면 안내 부탁드릴게요?”

“뭐어…… 안내라고 할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다만.”

르비엘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내 손을 붙잡고 석판의 틈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래서. 어느 문을 보고 싶으냐.”

“추천하는 곳이 있나요?”

“…안 보여줬으면 안 보여줬지. 추천할 곳은 없구나.”

“그러면 계단이랑 가장 가까운 곳을 보죠?”

“……알겠다.”

도대체 안쪽에 뭐가 들어 있기에 르비엘이 저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걸까.

나는 붙잡은 손을 이끌어 내가 가리킨 문을 향해 나아가는 르비엘의 옆얼굴을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까 벨마 귀부인이 그랬었지.’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던 르비엘이 성인식을 치르고 황제의 비고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부터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고.

처음에는 황제로부터 무언가 비밀을 들어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르비엘의 저 반응을 보니 황제가 아니라 어쩌면 저 문 안에 있는 무언가들 때문에 르비엘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열겠다.”

어느새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문 앞에 선 르비엘은 현대의 디자인을 빼닮은 문을 밀어젖혔다.

그리고.

“…….”

“…….”

나와 르비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생각 이상으로 드넓은 공간에 틈틈이 새워져 있는 매끈한 대리석.

나는 매끈한 대리석에 가지런히 오와 열을 맞춰 걸려 있는 가지각색의 팬티들을 한 번 눈에 담고, 문을 연 순간부터 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르비엘의 한 번 바라봤다.

황제의 비고.

그 첫 번째 문 안에는 세상 다양한 종류의 팬티들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르비엘의 손을 붙잡고 뒤로 당겼다. 그리고 활짝 열린 문을 조용히 닫았다.

“…신비한 마법이 걸려 있는 속옷이다.”

“아, 예에.”

“…진짜다. 마력을 주입하면 여러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이야. 결코 그냥 속옷들이 아니다. 정말이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르비엘은 갑자기 변명하듯 내게 달라붙어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반응이 그냥 미적지근했을 뿐이다.

“르비엘. 믿어요.”

“…….”

“진짜로 믿어요. 진짜.”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르비엘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던 모양이다.

‘근데 좀 궁금하긴 하네.’

도대체 무슨 팬티 종류가 저리도 많은 건지.

심지어 하나 같이 밤일을 위해 야시시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르비엘.”

“…무어냐.”

남들 모르게 오랫동안 수집한 팬티를 조금 보였다고 잔뜩 의기소침해진 르비엘은 힘없이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혹시 아래쪽 말고 위쪽 속옷이라든지, 남성기를 닮은 여러 도구라든지. 뭐, 그런 것들도 있을까요?”

“…….”

가슴에 머리를 기댄 르비엘의 몸이 딱딱하게 굳더니.

“너…….”

녹슨 기계처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사실은 다 확인해 봤구나……?”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금빛 눈동자.

나는 배신 당했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르비엘의 뺨을 꼬집었다.

“맹세컨대 멋대로 열어본 적 없습니다.”

“하, 하디만, 어허해……?”

“제가 원래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그런 총명한 남자입니다.”

“…….”

살짝 가늘어지는 르비엘의 눈.

누가 봐도 헛소리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시선이었다.

“크흠. 그보다 슬슬 나갈까요?”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여전히 르비엘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두었다.

“가자꾸나.”

짧은 한숨과 함께 나를 향한 의심을 털어낸 르비엘은 다시 내 손을 붙잡아 이끌었다.

나는 르비엘과 함께 계단 위에 올랐다.

달칵.

무언가 함정을 밟았을 때나 들려올 법한 소리에 내 고개는 자연스럽게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나와 함께 계단을 밟고 선 르비엘의 손에 의해 벽면의 일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저 끝없이 이어진 계단은 밟으라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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