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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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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리우스 제국
‘……일단 머리부터 박을까?’
부끄럽게도 무릎 꿇은 시란이 벌서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짜악──!!
찰진 소리가 시원하게 울려퍼졌다.
동시에 두 뺨이 얼얼해지긴 했지만,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미스야?”
“…….”
옆에 서 계시던 비젤린님께서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셨고, 시란과 누님을 혼내고 계시던 레이벨 누님도 조용히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봤다.
‘…팔다리 부러지는 것밖에 더 하겠냐.’
황족들보다 더욱 선명한 금색 눈동자가 빤히 노려보고 있으니 절로 오금이 저려 왔지만, 겨울이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었기에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최대한 힘을 줘 한 걸음씩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뭐냐. 네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그, 그건…….”
놀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시란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난생처음으로 시란이 눈동자를 가로저으며 끼어들지 말란 신호를 보내왔다.
“…그건. 이 상황에 대한 이유를 들어보고 제가 판단하겠습니다.”
“네깟놈이?”
보기에도 빳빳해 보이는 짐승의 귀가 쫑긋 움직이더니.
후우욱──!!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짙은 죽음의 향기가 나를 덮쳐왔다.
“그래. 네놈에게도 한 소리 할 참이었지. 아내를 여럿 둔 주제에 신전에서부터 암컷 냄새를 풀풀 풍기고 다니는 가벼운 놈.”
작은 입술 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날카로운 송곳니.
“네놈도 저기에 무릎 꿇어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들려왔던 그녀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귓가에 쿵쿵 울려왔다.
툭, 투욱.
분명 차디찬 바람이 불고 있을 텐데, 턱 끝을 타고 떨어지는 식은땀.
손발은 물론이고 이미 외투 안쪽은 흘러나온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솔직히 살짝 지린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무릎 꿇을 순 없다.
내 무릎이 아무리 가볍다지만, 지은 죄가 없는데 내 집 앞마당에서 내가 왜 무릎을 꿇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움직였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움직여 시란과 누님의 앞에 서서 힘겹게 뒤돌아 불청객이 되어버린 여자를 마주 바라봤다.
“아무리 자매라지만, 내 집 앞에서 내 아내들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뭐?”
그녀가 한 박자 늦게 눈을 찡그리며 더욱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
“무, 무엇 때문에 이러시는지 짐작하고 있습니다. 당신에 대한 소개를 시란과 누님이 제게 하지 않은 걸 가지고 이러시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잘못을 타이를 거라면 적어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십시오. 나는 눈앞에서 아내들이 힘들어하는 걸 지켜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리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치지 않으면 당장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었다.
“신전에서의 일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시면서 잘못을 따지려 들지 마십시오. 굉장히 불쾌하──”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마주했을 때, 주마등 혹은 죽음을 직접 마주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차원을 초월해 그중 하나가 사실임을 오늘 확인했다.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거대한 꼬리.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저 꼬리에 얼굴이나 파묻어 볼 걸 그랬네.’
꼬리가 그대로 나를 덮쳤다.
**
새근─ 새근─
어디서 들어본 듯한 작고 귀여운 숨소리가 귀를 살살 간지럽힌다.
“쓰읍……?”
그에 정신을 차린 나는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다급히 삼키며 눈을 떴다.
‘낯선 천장…… 이 아니네.’
일어날 때마다 늘 보아왔던 침실의 천장에 나는 내가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우응…….
그리고 다시 들려온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살짝 숙이자, 어디서 났는지 모를 귀여운 토끼 잠옷으로 갈아입은 겨울이의 잠든 얼굴이 보였다.
‘사진…… 아니, 영상…!!’
세상에 천사가 존재한다면 그건 반드시 우리 겨울이여야만 한다.
그게 아니면 겨울이의 사랑스러움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무으응….
“흐흐, 흐흐흐…….”
말랑말랑한 뺨을 찌르자, 겨울이가 작은 입을 오물거리다가 내 손가락을 피해서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그 꼴을 보니 몸은 멀쩡한 모양입니다.】
‘……?!’
갑작스러운 시스의 연락에 너무 놀라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다.
【조금 있다가 다들 올라갈 테니, 그냥 그러고 누워 있으십시오.】
‘시스님?’
그리고 오늘도 여전한 시스의 일방 통보에 나는 눈을 끔뻑이다가 다시 겨울이를 바라봤다.
‘케르낙스는 어디 갔지?’
내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겨울이가 내 몸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겨울이를 혼자 덩그러니 내게 맡기고 어딜 간 건지.
나는 곧 모두 올라올 거라는 시스의 말을 믿고, 두 손을 이용해 겨울이가 깨지 않게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등을 토닥여줬다.
‘어쨌든 살긴 살았네…….’
솔직히 갑자기 눈앞에 꼬리가 나타난 걸로도 모자라 주변 모든 게 느려 보이기 시작했을 땐 정말로 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우리 귀여운 겨울이의 따끈따끈한 체온을 느끼고 있는 걸 보면 아직은 내 감을 조금 더 믿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스르륵.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열리는 문으로 시스와 비젤린님께서 사이 좋게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케르낙스는?’
시스를 향해 속마음으로 질문했지만, 시스는 대답하지 않고 비젤린님과 함께 내 앞에 멈춰 섰다.
“자장자장~”
비젤린님의 손아귀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흘러나오더니 곤히 잠든 겨울이의 주변에 아주 얇은 막이 생겨났다.
“소리를 차단하는 막이니까 이제 크게 말해도 괜찮아.”
“역시 마법.”
“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거든?”
입바른 칭찬에도 비젤린님은 가슴 아래로 팔짱을 끼고는 빈약한 가슴을 자랑스럽게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요?”
“아래에서 케르낙스한테 혼나는 중이지.”
“케르낙스한테…… 요?”
“그래. 걔 화나니까 무섭더라?”
비젤린님께서 소리 없이 키득거렸고, 옆에 서 있던 시스가 특유의 무덤덤한 얼굴로 대신 어떻게 된 일이지 설명했다.
“스미스님께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케르낙스님께서 많이 놀라셨습니다. 그리고 상황의 경위를 모두 들으시더니, 레이벨님을 향해 소리치시면서 다그치셨습니다.”
“케, 케르낙스가?”
“예. 레이벨님께서도 당황하셨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가 당황해 한마디도 못 했었죠. 결론만 말씀드리면 레이벨님께서 케르낙스님께 사과하시고는 조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에…….”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고도 사람을 죽일 것 같던 그 무서운 누님이 케르낙스에게 사과했다고?
“그리고 스미스님께서 다치시도록 만든 상황의 원인을 제공한 시란님과 아멜라님에게도 화가 나셔서 지금 한참 아래에서 설교 중이십니다.”
“아, 엘프, 요정, 고양이 셋은 몸살로 앓아누웠고, 우리 조카는 까불거리다가 시란에게 맞고 기절해 있지.”
‘아이고 시론아…….’
보지 않았는데도 시론이 시란에게 까불거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자식을 낳은 엄마들은 더 강해진다더니, 케르낙스 그 아이를 보니까 그 말이 맞는 거 같더라.”
비젤린님이 나를 흘기며 웃었다.
“너도 조심해. 지금은 널 위해서 화내고 있지만, 내가 봤을 땐 진짜 크게 혼날 사람은 더 같거든.”
“갑자기 두통이…….”
“네메아가 제 신성을 빌려 당신을 말끔하게 치료했습니다.”
“…생겼으면 좋겠네.”
시스가 한심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고, 비젤린님은 그저 재미있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메아는 어디 있어?”
“네메아는 저와 함께 욕탕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과도한 신성의 남용으로 잠깐 휴식을 취하는 중이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문제네……. 그런데 과도한 신성의 남용이라니?”
“스미스님께서 지금 멀쩡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건 전부 네메아 그 아이 덕입니다. 듣기로는 꼬리에 맞았다고 하던데, 코뼈는 물론이고 양쪽 광대가 다 내려앉은 처참한 몰골이었습니다.”
“…….”
원래도 농담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정색한 얼굴로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니 더욱 소름이 돋았다.
“치유는 완벽하게 끝났지만, 케르낙스님께서 꽤 압박을 주셔서 그냥 쓰러질 때까지 신성을 퍼부으라고 지시했을 뿐입니다. 실제론 치유하기까지 일 분도 걸리지 않았으니 그런 얼굴 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그, 그래.”
전혀 가볍게 받아들일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지만, 상대가 상대였던 만큼 어찌 보면 머리통이 제대로 붙어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좀 폭력적이긴 하지만, 나쁜 언니는 아니거든? 단지 사고방식이 조금 구식이라고 할까?”
“구식이요?”
“응. 쉽게 말해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소리지.”
“아……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알 것 같습니다.”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
여기서 과거란 분명 신의 개입으로 남녀의 입장이 뒤바뀌기 전을 말하는 것일 거다.
“근데. 과거에도 남자가 부인을 여럿 두는 건 흔한 일 아니었습니까?”
“인간들 기준으로는 그렇지. 우리 언니는 인간이 아니잖니.”
“아…….”
그제야 나는 완벽하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점수는 꽤 딴 거 같더라?”
“…얼굴 뼈가 다 부서졌었는데요?”
“그건 나중에 본인에게 직접 듣도록 하고, 아무튼 시란이랑 같이 널 마대륙에 데려다 줄 사람이니까 남은 시간 동안 좀 친해지도록 해.”
“그, 그분이랑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여자가 호위로 함께 가주는 거잖아. 좀 더 좋아해야지?”
“아니──”
똑. 똑. 똑.
정중함이 묻어나면서도 뭔가 박력있는 노크 소리에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닫힌 문으로 향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과거, 시론과 나를 두고 거주 구역 하나를 통째로 뒤집어엎었을 때의 무시무시한 눈을 한 케르낙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화는 다 나누셨습니까.”
“응. 할 말은 다 했어.”
“그럼,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비젤린님은 얼른 몸을 돌려 침실을 나가버리셨다.
“그럼 저녁 준비가 끝나면 알리러 오겠습니다.”
“아, 아니…….”
내 도움의 눈길을 가볍게 무시한 시스는 케르낙스와 서로 목례를 주고받은 다음, 활짝 열린 문까지 손수 닫으며 퇴장해 버렸다.
“스. 미. 스.”
“겨, 겨울이 자고 있는데요……?”
최후의 수단으로 나는 겨울이를 방패로 내세우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최악의 수였는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푸른 막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어…… 아, 알고 있었군요….”
케르낙스의 시선이 한층 더 서늘해졌다.
“겨울이를 빠져 나갈 구멍으로 사용하려 들어?”
“아, 아니, 그, 오, 오해가…… 케, 케르낙스……? 부인…?”
무슨 말을 해도 묵묵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케르낙스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웃었다.
‘내가 다신 내 감을 믿으면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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