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693화 (693/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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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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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리우스 제국

다행히 마르비우스가 황제를 찾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워낙 체력이 저질이라 궁을 벗어나기도 전에 제풀에 지쳐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벨마 귀부인이 무슨 짐짝을 수거하듯 옆구리에 끼고 들어와 침대에 눕힌 건 덤이다.

“갑자기 뛰쳐나가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미안하다.”

얌전히 내 품에 안긴 마르비우스는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마대륙으로 가기로 한 건 예전부터 알고 계시던 건데 왜 갑자기 그리 놀라고 그러세요?”

“…막상 또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그랬다. 미안하구나.”

“어휴, 진짜 왜 이렇게 사랑스러우셔서는.”

“우으응…….”

내가 허리를 와락 끌어안으며 정수리와 목덜미에 입술을 쪽쪽 가져대자, 우리 막내 황녀님께선 금방 꺄르르 수줍게 웃으며 좋아하셨다.

“누나. 아드리안 좀 이제 놓아주는 게 어때?”

“딱히 붙잡고 있진 않다만.”

그 말 그대로였다.

아드리안은 단지 레이벨 누님의 허벅지 위에 배를 까뒤집고 누워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움직이려면 얼마든지 제 의지로 누님의 허벅지에서 내려오는 게 가능했다.

‘무슨 마취 총에 맞은 곰도 아니고…….’

완전히 복종을 맹세한 강아지처럼 뻗어버린 아드리안은 레이벨 누님의 손이 탄탄한 복부나 턱을 간지럽힐 때마다 흠칫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래. 이젠 신음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질려버린 거다.

“아드리안은 그만 바닥에 내려두고 누나도 잠깐 여기 와 봐요.”

“내가 연장자다.”

“그야 누나니까.”

“그럼 동생인 네가 오는 게 맞지 않나?”

“난 환자잖아.”

“……그도 그렇군.”

약간의 두통을 제외하면 아주 멀쩡했지만, 아무렴 어떨까. 어느 정도 레이벨 누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으으으…….”

말 그대로 아드리안을 그냥 굴려다가 바닥에 떨어트린 누님은 시원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으셨다.

“누나. 혹시 누이트교에 대해서 잘 알아?”

“그럭저럭.”

아주 미세하지만 누님의 귀가 살짝 반응을 보였다.

“내가 그쪽에 당한 게 좀 있거든?”

“납치당할 뻔했단 건 시란에게 들었다.”

“나, 납치?!”

“쉬잇.”

나는 또 발작하려는 마르비우스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대는 것으로 발작을 막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것도 있고. 사실 가장 큰 건 제국으로 넘어올 때야. 어제 축복 걸어준 우리 딸은 기억하고 있지?”

“당연하지.”

“겨울이가 아직 케르낙스 배에 있을 때 말이야. 그 녀석들이 설치해둔 함정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이 날뻔했거든.”

“큰일?”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레이벨 누님의 한쪽 눈썹이 삐뚜룸하게 구겨졌다.

“혈마법인지 뭔지, 마법진으로 폭발이 일어나게 해뒀더라고. 다행히 마차가 튼튼해서 다친 사람은 없지만, 그때 케르낙스가 크게 놀라서 배를 많이 아파했는데…… 그거 때문에 내가 누이트교에 쌓인 게 좀 많다고 해야 할까?”

“타당한 분노군.”

구겨졌던 누님의 눈썹이 다시 본래의 각도로 돌아왔다.

“그래서. 죽여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거냐?”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누난 진짜 극단적이네.”

그러자 평탄해졌던 레이벨 누님의 양쪽 눈썹이 V자를 이루었다.

“동생. 네가 아직 나에 대해 잘 몰라 그런 말이 나오는 모양이군.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나는 꽤 생각이 유하고 타협을 잘하는 편이다.”

그 대답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팔랑귀였다.

여태까지 누님이 남에게 휘둘리지 않은 건, 누님에게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누님은 말이 안 통하는 만큼이나 말싸움에 취약했다.

고작 반나절 대화를 나눈 내게 이런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누나 말을 듣고보니 내가 실수한 거 같아. 미안해.”

“음.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은 보기 좋구나.”

V가되었던 누님의 눈썹은 다시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래도 누나?”

“뭐냐. 동생.”

“다짜고짜 죽인다라는 말이 나오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누나가 그런 실수를 저지를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겨울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난 몹시 슬플 거야.”

“……조심하마.”

“고마워.”

“으음.”

저것 보라.

누님은 금방 내 시선을 회피하고는 딴청 피우는 척을 시전했다.

‘천천히 관찰해 보니까 은근히 알기 쉬운 사람이네.’

대충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파악이 끝났고, 무엇보다 좋고 싫음이 얼굴이나 행동까지 관찰할 필요 없이 귀와 꼬리로 다 드러나기에 분위기 맞추는 것도 무척 쉬웠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내가 누이트교에 대한 이야기를 왜 꺼냈냐면, 내가 없는 동안 케르낙스랑 겨울이가 다치지 않게 누나가 신경을 좀 써줬으면 해서 말을 꺼내 본 거야.”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군.”

불리한 주제에서 벗어나자 누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똑바로 마주 보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동생. 네 다른 부인들의 전력이라면 시란이나 그 윗급 상대가 아니라면 저택을 침범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 수가 몇만을 넘기든 말이야.”

참고로 시란은 십마성의 세 번째 별이다. 그러니까 대륙에서 세 번째로 강하단 소리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레이벨 누님이 첫 번째.

“누나말고 그러면 한 명 더 있다는 소리잖아.”

“그 녀석은 신경 쓸 거 없다. 이쪽에 없으니까.”

“……?”

꾸욱꾸욱.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얌전히 내 손을 쪼물딱 만지며 놀고 있던 마르비우스가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십마성의 두 번째 별은 마대륙 출신이니라.”

“아하.”

그렇다면 안심할 수 있지.

“그리고 네가 없는 동안 나 역시 각별히 신경을 기울일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고맙습니다.”

“흠흠…….”

내가 이마에 입술을 맞추자, 마르비우스는 기분 좋게 웃으며 내 가슴에 편히 머리를 기대었다.

“그리고 놈들이라면 너를…….”

잠깐 나와 마르비우스의 애정행각을 못마땅한 눈으로 지켜보던 누님이 무어라 말을 하시다가 흠칫 몸을 떨며 입을 다무셨다.

“누나?”

“…그만 돌아가자.”

분명 나와 관련된 말을 하려던 것으로 보였지만,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뿐더러 말싸움에서는 이긴다고 숨기려는 말까지 끄집어낼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그냥 레이벨 누님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 아드리안을 위해서라도 빨리 나가는 게 좋아 보이네.”

나에게 안기고는 싶지만, 옆에 있는 누님이 무서워 다가오지 못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불쌍한 아드리안.

장담하는데 저건 단순히 레이벨 누님의 존재감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어떤 사건을 겪어 몸에 새겨진 두려움에 비롯되어 보이는 행동이 분명했다.

“마르비우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마르비우스는 품에서 일어나 내 뺨을 붙잡고 폭신폭신한 입술로 내게 입 맞췄다.

“르비엘한텐 레이벨 누나가 데려갔다고 잘 좀 전해줘.”

“걱정하지 말거라.”

“고마워.”

마지막으로 한번 마르비우스와 입술을 맞춘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비에 쫄딱 젖은 강아지와 같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드리안에게 다가갔다.

“많이 놀랐죠?”

“웅…….”

울기 직전의 아이처럼 코맹맹한 목소리에 순간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올뻔했다.

“마대륙으로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초대할게요. 겨울이가 아드리안을 많이 좋아했었잖아요.”

“…아기. 좋아. 귀엽고 사랑스러워.”

나를 꼭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있던 아드리안이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그리 대답해줬다.

쪽. 쪽. 쪽.

이어서 나는 아드리안의 이마와 콧등, 그리고 입술에 차례차례 입 맞추었다.

“그러면 가볼게요.”

“…응. 잘 가.”

평소였으면 배웅하겠다며 따라 일어났을 아드리안이었지만, 이번에는 일어나긴커녕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려는 시늉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지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드리안은 최선을 다한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뒤로하며 누님과 함께 마르비우스의 침실을 나왔다.

“히익?!”

그리고 옆에서 벨마 귀부인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우리의 오렌이 누님을 마주함과 동시에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버렸다.

덕분에 인사를 하려던 벨마 귀부인까지 덩달아 긴장한 얼굴로 소리 없이 고개만 숙여야 했다.

“저택으로 갈 거냐?”

정작 당사자인 누님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 안전 운전 부탁해.”

“나는 늘 안전에 유의한다.”

레이벨 누님의 꼬리가 부드럽게 내 허리를 휘감았다.

“내 눈은?”

“…혀 깨물지 않게 입 다물어라.”

누님의 친절한 말 돌리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다무는 김에 두 손으로 눈도 착실하게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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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냐.”

“…응. 좋았어.”

귀를 빳빳하게 새우고 꼬리를 살랑거리는 누님의 모습에 나는 쓴소리를 내뱉을 수가 없었다.

과연 1초에서 2초로 늘어났다고 그걸 안전운전이라 불러도 괜찮은 건가?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굉장히 뿌듯해하고 있는 레이벨 누님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그냥 조용히 입을 닫고 철문을 밀고 들어갔다.

“…누나?”

그런데 뒤따라 들어오는 기척이 없어 고개를 돌리자, 누님은 어느새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난 후였다. 나타날 때도 갑작스러웠지만, 떠나는 것 역시 갑작스러운 누님이었다.

“나왔어.”

아무런 대답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썰렁한 현관 앞 풍경에 나는 굉장한 기시감을 느꼈다.

‘다들 겨울이랑 놀고 있는 모양이네.’

천천히 계단을 밟고 올라가 기감을 펼치자, 아니나 다를까 침실에서 아내들과 사랑스러운 우리 딸의 기운이 느껴졌다.

‘겨울이는 보고 싶지만…….’

괜히 겨울이의 관심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을 다른 아내들로부터 원망을 받고 싶진 않았기에 나는 침실을 지나쳐 곧장 욕탕으로 향했다.

‘흐흐, 어차피 겨울이는 날 가장 좋아한다고.’

그러니 충분히 겨울이의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조금은 배려를 하도록 하자.

그 틈에 나는 마대륙으로 떠나기 전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좀 해결할 시간을 가지고.

“으으~ 역시 온탕이 최고라니까.”

욕탕에 몸을 푹 담근 나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야 조금 정이 붙기 시작한 우리 선배님들과 진득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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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음식. 중요. 마법사.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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